여름방학이 시작됐어요.


계획표는 짜셨나요.

체험활동 몇 개, 여행 한 번, 학습은 어디까지. 특강 알아보시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여름방학은 짧아요. 겨울방학처럼 길지가 않아서, 세워둔 걸 다 하기가 어렵죠.

3주, 길어야 4주예요. 8월 중순이면 벌써 개학이고요.


그래서 저는 방학 때 욕심을 좀 덜어내는 편이에요.

여러 개를 다 하려다 보면 이것도 저것도 남는 게 없더라고요.

이번 여름에 제가 남기고 싶은 건 책 읽는 시간이에요.

독서 이야기라고 하면 좀 뻔하게 들리실 수도 있어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오늘 하려는 건 어릴 때 독서 습관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금 5학년, 6학년, 중학생 아이를 키우고 계신 분들께 드리고 싶은 이야기예요.

이 시기에 아이들이 책을 놓거든요.

주변을 보면 아실 거예요. 저학년 때는 다들 어떻게든 읽혀요.

학년이 올라가면서 조금씩 줄고, 중학생이 되면 읽는 아이가 확 줄어요.

반에 몇 명 안 남는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에요. 시간이 없으니까요.

학원 다녀오면 저녁이고, 수행평가가 밀려 있고, 시험 기간이 돌아오고, 친구 관계도 신경 써야 해요. 그 사이에서 책은 제일 먼저 밀립니다.

안 읽어도 당장 큰일이 안 나는 유일한 항목이거든요.


그런데 하필 그때예요.

아이 안이 제일 시끄러워지는 때가 딱 그때입니다.

이 나이 아이들은 자기를 관찰하기 시작해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애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왜 쟤처럼 못 하지. 나는 왜 이게 싫지.

전에는 없던 질문들이 생겨요.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질문들이요.

감정도 커지고,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려요.

머릿속이 이렇게 복잡한데, 정작 그걸 정리할 도구가 아이한테 없어요.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먼저 언어가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이게 서운한 건지, 부끄러운 건지, 억울한 건지. 이름을 붙일 수 있어야 그 감정을 다룰 수 있어요.

이름이 없으면 그냥 짜증으로 나와요. 방문을 쾅 닫는 걸로 나오고요.

심리학에서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그 감정의 힘이 줄어든다고 봐요.

뭉쳐 있던 게 언어가 되는 순간,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바뀌는 거예요.


그럼 그 언어를 아이가 어디서 얻을까요.

책을 읽을 때 아이는 남의 이야기를 읽어요. 그런데 읽다 보면 자꾸 자기 이야기가 걸려요.

주인공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되는 걸 보면서, 나도 저런 적 있었는데 하고 알아채는 거예요. 그때 내 마음이 저런 거였구나 하고요.

자기 마음인데도 남의 이야기를 통해야 보이는 게 있어요.

열세 살한테 지금 네 마음이 어떠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해요. 몰라서요.

그런데 책 속 인물을 통해서는 봐요. 한 다리 건너서 보니까 덜 부담스럽거든요.

영상은 이게 잘 안 돼요. 속도가 정해져 있어서요.

화면이 계속 앞으로 가니까 멈춰서 생각할 틈이 없어요.


책은 속도가 읽는 사람한테 있어요.

한 문장에서 멈출 수도 있고, 앞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덮어놓고 한참 딴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 멈춤 사이에 아이 생각이 들어갑니다.
읽는 시간의 절반은 사실 자기 생각을 하는 시간이에요.


아이들의 DM 중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친구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

읽다 보면 비슷한 게 하나 보여요.

마음이 힘든 것보다, 그 마음을 설명할 말이 없어서 더 힘들어한다는 거예요.

답답한데 그게 뭔지를 자기도 모르는 거죠.

이 아이들한테 지금 필요한 건 공부법이 아니에요.

물론 저도 알아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요.

고학년 올라가면 정말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이 시기에 책 읽으라고 하면 아이가 뭐라고 하는지도 알아요.

그거 읽을 시간에 문제집 한 장 더 푸는 게 낫지 않냐고요.


그래서 저는 독서를 성적이랑 연결 짓지 않으려고 해요.

책을 읽으면 어휘가 늘고 문해력이 좋아지는 건 맞아요.

그런데 그걸 이유로 읽히기 시작하면 아이한테는 공부가 하나 더 늘어난 게 돼요.

국어 공부의 다른 이름이 되는 거죠. 그러면 안 읽어요.


이번 방학에 제가 말씀드리는 독서는 그게 아니에요.
아이가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에요.

성적표에 안 나오고, 이번 학기에는 티도 안 나는 시간이요.

이맘때 아이들이 속으로 자주 하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내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는 거요.

엄마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고, 이 답답한 걸 나만 겪는 것 같은 기분이요.

세상에서 나 혼자만 이상한 것 같을 때가 이 나이에 제일 많아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순간을 만나요.

내가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마음이, 이미 누군가의 문장으로 적혀 있는 거예요.

몇십 년 전에 쓰인 글일 수도 있고, 나랑 아무 상관 없는 나라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내 마음이 있어요.

그때 아이는 알게 돼요.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누가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과는 좀 달라요. 아이가 혼자 발견한 거니까요. 그래서 더 오래 갑니다.


책 속 사람들이 하나같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도 아이한테는 중요해요.

착한 사람도 비겁한 순간이 있고, 좋은 어른도 실수를 하고, 주인공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질투해요.

그런 걸 보면서 아이가 자기 안의 못난 마음을 조금씩 받아들여요.

친한 친구가 잘되는 게 배 아팠던 것. 엄마한테 못되게 굴고 후회했던 것. 그게 나만 가진 이상한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이 나이에 자기를 미워하는 아이들이 꽤 많아요. 자기 안의 어두운 걸 처음 봐서 놀란 거거든요.

사람이 원래 그렇다는 걸 알고 나면 자기한테 조금 너그러워져요.


그리고 하나 더요.

이 나이 아이한테 세상은 교실 하나예요.

그 안에서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가 전부고, 거기서 밀리면 다 끝난 것 같아요.

어른이 보기엔 작은 일인데 아이한테는 세계 전체가 흔들리는 일이에요.

책은 그 교실 밖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가요.

다른 시대를, 다른 처지로 살아간 사람들을 만나게 하죠.

그러다 보면 지금 내 문제가 조금 다른 크기로 보여요.

여전히 힘들긴 한데, 세상이 이 교실 하나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여름방학은 짧아요. 그 3주도 여행이며 일정에 쪼개집니다.

그 짧은 방학에 아이한테 하나를 쥐여준다면, 저는 문제집보다 이쪽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아이 머릿속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요.

그걸 혼자 감당하고 있어요. 아직 자기 마음을 설명할 말도 다 갖추지 못한 채로요.

그 말을 만들어주는 게 책입니다.


우리 아이가 하루 중에,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늘 응원하겠습니다.
쿨한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