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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이 지날 때마다 이가 하나씩 빠진다면?


오승주 작가

큰 선거가 오면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공자가 말했다. “분별을 잃고 이익을 추구하면 곳곳에서 원망을 사게 된다.” 논어 이인 편


이제 자원봉사는 하나의 브랜드라고 보아야 합니다. ‘마인드셰어(mind share)’가 소비자들이 특정 기술, 제품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이라면 ‘자원봉사’에 대한 대중들의 생각 역시 하나의 마인드셰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연히 ‘자원봉사’에 대한 평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자원봉사 역시 ‘평판관리(reputation management)’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원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은 어느 정도일까요? 다양한 세대가 자원봉사를 하고 학교 생활기록부와 연동돼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자원봉사를 거쳐 갔고 나름대로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을 것입니다. 청소년 때 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서 했던 자원봉사를 성인이 된 후에 자발적으로 하기 위해서 다시 하는 사람들의 비율을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약간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자원봉사의 평판이 한 덩어리씩 뽑혀져 나가는 시련의 계절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선거 공간에서 흔들리는 자원봉사 평판에 관한 것입니다.

 

자원봉사는 선거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선거가 격화되고 초박빙의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자원봉사의 정치적 중립 또는 정치적 자유를 지켜낼 도리가 있을까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제는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정치적인 손길은 은밀하게 다가와 이슬비처럼 서서히 옷깃을 적십니다. 어느 새 옷은 흥건히 젖어버렸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게 될지도 모릅니다.

 

자원봉사는 지금까지 사회의 토대를 이룰 정도로 큰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자원봉사가 사적 이익이나 특정한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 도구화된다면 그것은 자원봉사의 미래 가치를 갉아먹는 위험천만한 일이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자원봉사의 이름으로 선거에 동원되었던 역사를 손으로 꼽지 않더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분별을 잃고 이익을 추구하면 곳곳에서 원망을 산다”는 논어의 경고는 자원봉사가 선거 공간에서 특정 세력의 이익에 도구화된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목격될 것이고, 그 순간 자원봉사에 대한 사람들의 평판이 저하될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평판’도 중요한 자산으로 봅니다. 현재 누적되고 있는 자원봉사의 평판 자산은 미래의 자원봉사가 활동할 공간의 크기를 결정합니다. 최악의 경우 자원봉사는 재산이 넉넉한 정년퇴직자(명예퇴직자)들의 독무대가 되고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는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선거 공간에서 자원봉사가 얼마나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느냐도 중요한 원인이 될 것입니다.

르나르도와 할아버지가 체스를 막 끝냈을 때였어요. 르나르도가 할아버지에게 갑자기 물었지요.


할아버진 왜 이빨이 하나밖에 없어요?”

할아버지가 대답했어요.


르나르도야, 네가 할아비의 젊었을 적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옛날에는 이 할아비도 이빨이 너무 많아서 셀 수도 없었단다. 눈처럼 하얗고, 칼날처럼 뾰족뾰족한 이빨들이었지.”


(클로드 부종, 강철 이빨(비룡소))

할아버지는 르나르도에게 눈처럼 하얗고 칼날처럼 뾰족뾰족한 그 많던 이빨이 왜 하나밖에 남지 않았는지 이야기를 해줍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무서울 것이 없었던 젊은 시절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달려들어 먹잇감을 사냥하다가 사냥꾼들이 오리 사냥용으로 띄워 둔 나무오리를 덥석 물어뜯었다가 이빨 하나가 오리 몸통에 박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희미한 달빛 깜깜한 어둠 속에서 정체불명의 짐승에게 달려들었다가 또 이빨 하나가 사라졌죠. 그렇게 이빨이 하나씩 사라졌고 늘그막에는 부드러운 바나나를 먹다가 이빨 하나가 또 달아나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르나르도에게 마지막 사냥을 하러 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마지막 이빨이 날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처럼 마지막 이빨이 사라질 때까지 조급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이빨이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마지막 이빨이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할아버지가 종말을 스스로 앞당겼다는 점입니다. 자원봉사를 여우에 비유한다면 생생한 자원인 ‘강철 이빨’은 얼마나 남아 있을까요? 자원봉사의 강철 이빨은 우리 사회의 가장 필요한 영역, 국가와 개인이 미처 손쓰지 못하는 영역의 문제들을 활기차게 씹어 먹으며 사회를 지탱합니다.

 

물론 자원봉사가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놓으라는 건 아닙니다. 자원봉사의 제도화 역시 정치의 산물이니까요. 정치적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히 정치적이어야 하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력을 키워야 합니다. 자원봉사의 발전과 제도 개선을 위해서 얼마든지 정치적 타협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정치 세력의 이익을 키우는 데 수단으로 작용할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합니다. 선거의 계절이 지날 때마다 이빨이 하나씩 빠지는 조급한 할아버지 여우의 모습보다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이(자원봉사 자원들)을 내실 있게 지켜내며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자원봉사의 모습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치적 지혜’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큰 선거가 찾아올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찾아드는 것은 한낱 기우(杞憂)이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에게 강력히 경고합니다. 선거관리위원회와 공직선거법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자원봉사를 이용하는 일체의 시도들을 중단하십시오! 자원봉사를 선거에 이용한다면 정작 자원봉사의 의미가 퇴색되고 사람들의 외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의 영역을 건드리는 건 그린벨트 위에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부도덕한 행동이며 미래에 대한 범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