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1.

“콜록콜록 콜록콜록”

월요일 아침 여덟 시, 여느 때면 벌떡 일어나 있을 아이가 눈도 못 뜨고 거친 기침을 한다. 일요일에 나름 패밀리타임을 가지려고 갔던 공원에서 찬바람을 너무 많이 쐐서 그런가. 자책과 동시에 어린이집을 못 가서 휴가를 내야 하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목소리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고 에너지 넘치게 어린이집 가기 싫다는 떼를 써서 일단은 등원을 시키기로 아내와 마음을 먹었다. 대신 출근 전에 소아청소년과를 들러서 증세가 더 악화하는 것을 막아 줄 약을 받기로 했다. 여기서 더 악화할 경우 이번 주가 힘들어지니까. 아이의 일상도, 나와 아내의 회사생활도 모두 힘들어지니까.

아내와 아이를 태우고 지하주차장을 나서는데 미세먼지 가득한 바깥 공기가 먼저 보인다. 원래 깨끗해서 보이지 말아야 정상인 존재인데. 봄이 되면서 그 존재가 너무 잘 느껴지는 게 씁쓸하기만 했다. 옆자리 아내에게 공기 때문에 일상이 우울해지는 게 싫어서, 지식 노동이 아닌 육체노동을 해도 좋으니 이민 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주식투자로 마이너스를 보고 있는 사람이 선뜻 꺼낼 말이 아닌 것 같아 꾹 참았다.

출근이 빠른 아내를 먼저 내려주고 병원 주차장에 도착한 순간, 이미 주차를 마치고 아이를 안고 올라가는 다른 엄마 아빠들이 있었다. 아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 집 저 집 모두 아침부터 난리였겠다는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들어가는데 대기실엔 이미 더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기록적인 저 출생 시대를 다루는데, 소아청소년과는 갈 때마다 왜 항상 사람이 많은지 아이러니할 뿐이었다.

한편 열 시 반에 회의가 있던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똑닥으로 미리 예약한 덕에 내 앞에 5명만 기다리면 되었지만 아이 어린이집에서 회사까지는 차로 안 막혀도 사십 분인데, 느낌상 진료 후 어린이집까지 등원을 마치면 열 시가 넘고, 회사엔 지각할 것 같았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평소의 내가 아닌 다른 자아가 필요했다. 미리 계획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해가며 행동해가는 MBTI J형 아빠 캐릭터가.

차를 주차타워에서 빼는 동안 투약 병에 어린이집에서 먹일 약을 섞고, 주행 중 신호등이 빨간 불이 되면 키즈노트 투약의뢰서를 쓰고, 어린이집에 도착해서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손 씻기와 이불 가방 정리를 마치고, 최대 변수인 아이와의 작별인사는 냉정하게 하고, 문밖을 나올 때 잊지 않고 QR출석도장을 찍는 것까지.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어려운 일은 없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놓치기 쉽거나 출근에 차질이 생길 수 있는 일들이었다.

유별났던 출근 전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럼에도 나는 회사에 삼십 분 지각을 했다.

2.

목요일 아침 여덟 시, 눈을 떠보니 장모님이 와 계셨다. 밤부터 아이 기침이 너무 심해져 아내가 카톡을 남겼고 새벽에 메시지를 보시자마자 수원에서 일산까지 올라오셨다고 한다.

월요일보다 아이의 기침은 더 거세졌고 안 나던 열까지 났다. 월화수 아침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어린이집 일과를 그대로 유지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것 같아 오늘과 내일은 장모님의 도움을 받아 가정보육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부터 꾸준히 먹은 약은 효과가 영 없어 보였다. 장모님이 돌봐주시기 전에 병원이라도 한 번 더 다녀오는 게 좋겠다 싶어 어린이집 가듯이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다행이었던 건 전날 일을 미리 해둔 게 있어 오전까지만 출근해도 괜찮다는 거였다.

거리는 조금 멀지만, 신생아 시절 자주 가던 소아청소년과를 가기로 마음을 먹고 똑닥앱을 켰다. 겨우 4분이 지난 9시였는데 이미 대기 인수는 30명. 한 명당 2분씩만 계산을 해도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한 명당 2분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나의 긍정편향 계산 값이었다. 실제 우리는 두 시간을 기다렸고 기다리는 동안 먼저 진료를 받는 수많은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양한 울음소리가 귀에 익을 때쯤 우리 순서가 왔다. 옛날에 진료실에 들어가기만 해도 겁을 내던 아이는 의젓하게 입과 귀를 내어주고 콧물을 뺄 때까지 울지 않았다. 다행히 약만 조금 바꾸면 될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과 함께 진료는 2분 만에 끝났고 아이는 뽀로로 비타민을 2개나 받으며 병원을 나왔다.

오전이 끝나기 삼십 분 전, 집에 다시 온 나는 옷을 얼른 갈아입고 장모님께 약과 아이를 동시에 인수인계한 후 출근을 했다. 회사에 도착한 시간은 열두 시 삼십 분. 그날 퇴근도 열 두시 삼십 분이었다.

3.

다음날 점심시간, 출근 중인 아내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장모님께 연락을 받았는데 이현이가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설사 증세도 보이고 밥도 잘 안 먹는다는 것이었다. 어제 다녀온 병원에 전화해서 원래 그럴 수 있는 건지, 진료를 다시 보면 좋을지 물어봐 달라는 게 아내의 부탁이었다.

클라이언트 회의가 곧 이라서 나는 아내에게 병원과의 대화 스크립트만 넘기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이현 컴퍼니 카톡방에서는 아내와 장모님 간의 대화가 이어졌고 회의가 끝나고 확인한 카톡방엔 장모님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출발했다는 톡이 마지막으로 남겨져 있었다.

퇴근길 차 안, 갑자기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똑닥앱 예약이 100명 정도 몰려서 일찍이 접수를 마감했는데, 전산이 고장 나 접수가 잘못 이어져 장모님이 헛걸음하셨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서비스 같으면 컴플레인을 해도 되는 상황이었겠지만 먼저 전화로 죄송함을 표현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차마 불만을 품을 수가 없었다. 헛걸음한 아이와 장모님보다 100명의 예약을 처리해야 하는 금요일 오후 소아청소년과의 광경이 먼저 떠올랐다.

“진료를 못 봐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혹시 아이가 더 아프거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 꼭 오세요. 똑닥앱하고 상관없이 먼저 봐 드릴게요. 꼭 이요”

다음 날 아침, 한 번 더 약을 먹고 하룻밤을 보낸 아이는 다행히 열도 내리고 기침도 덜했다. 티켓팅이나 수강 신청하듯 예약하지 않고 프리패스로 진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회사 걱정 없이 여유롭게 갈 수 있었지만, 그 또한 아쉽지 않았다. 소아청소년과의 존재는 그렇게 잊혀 가는 게 자연스러워 보였다.

4.

어린 아이를 둔 양육자에게 동네 소아청소년과의 존재는 각별하다. 신생아 예방접종부터 감기, 발열, 소화장애, 알레르기, 각종 피부병 등등 아이가 어릴수록, 자주 아플수록 그 역할과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아내는 아이가 아주 어릴 땐 코 하나 뺄 때도 소아청소년과에 가서 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라고 말한다.

그런 동네 소아청소년과가 폐과한다고 한다. 저 출생 시대에 아이들 진료비만으로는 수입을 유지할 수 없어서, 일부 극성스러운 부모들의 무분별한 소송과 손해배상 청구에 영업을 계속할 수 없어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간판을 내리고 성인진료로 전환한다고 한다.

만약 내가 아이가 없었다면 의사들이 참으로 무책임하다고 치부하고 넘어갈 뉴스였겠지만 막상 양육자로서 여러 소아청소년과를 다녀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진료비, 오픈하자마자 전쟁터가 되는 대기실, 어른 대 어른 진료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감정노동, 항생제의 약효를 48시간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부족한 보호자, 그리고 블로그와 맘카페, 유튜브에 오가는 자극적인 투병기와 무분별한 의료정보 등 소아청소년과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녹록지 않은 영업 환경인 건 분명하다.

동네 병원뿐만 아니라 대형병원도 마찬가지다. 응급실에 근무하는 소아외과 전문의의 부족은 수년 전부터 여러 드라마와 뉴스가 다뤘지만, 전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자료를 찾아보니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 수는 45명뿐이라고 한다. 해당 나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600만 명인데 말이다.

미국에 이민 가 계신 고모께서 한국에 오실 때마다 미국 의료체계를 탓하며 병원에 다니시곤 하는데 이러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이제 해외여행갈 때마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를 탓하며 소아청소년과 쇼핑을 해야 하는 세상이 오는 건 아닐지 하는 무서운 상상이 든다.

좋은 소아청소년과의 존재는 양육자에게 좋은 어린이집의 존재만큼 중요하다. 매년 새로운 출산 정책을 내고 부모들에게 돈을 더 줘서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양육자가 걱정 없이 스스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려면 약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삶의 질 개선에도 국가적인 에너지를 쏟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양육자들 일상에서 소아청소년과의 존재가 아플 때만 반짝했다가 금방 사그라질 수 있으면 좋겠다.

금요일 퇴근길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에서 간호사 선생님에게 못한 말이 하나 있다. 기다려도 되니 그만두시지만 말아 달라고. 친절하지 않아도 되니 간판을 유지해달라고. 아이가 아무리 예쁘고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도 진료실에선 사진을 안 찍겠다고.

Fathers’ Update

💬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내던 때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이보다 제가 더 많이 울었는지도 모르겠어요. 3개월도 안된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는 길은 늘 다리가 무거웠지요.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이서도 아빠도 잘 해내실거에요!! 저는 오전 8시에 보내고 오후 7시에 픽업했는데요. 아이가 어린이집을 더 좋아할 수 있게 하려고 어린이집 앞 놀이터에서 자주 놀았어요. 가끔은 오전에 미리 놀이터에서 놀다가 등원시키기도 했고요. (갈아입힐 옷을 미리 챙기고요 ㅎㅎ) 웃으며 들여보내고 싶은 마음... 아시죠? ^^ (초록테이블)

💬 위로가 되었어요. 육아동지가 서로 나누는 경험, 솔직란 마음, 작은 다짐.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육아는 매일 더 단단해지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음을 경험합니다. (아민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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