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너주의』 소개를 편집자 세 명이 한 편씩 쓰기로 했습니다. 팔랑🦻은 140호에서 이사도라 덩컨(무용)을 경유했고, 이번 호에서는 죽순🌱이 마르셀 프루스트(소설)를 통합니다. 다음은 초초🕯️인데⋯ 초초는 과연 『바그너주의』의 어떤 챕터를, 누구를, 바그너의 무엇을 고를지 벌써 궁금궁금궁금.

프루스트를 마들렌에서 구하기

🌱죽순


라이트모티프(leitmotif).

바그너 악극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이것은, 풀어쓰자면 ‘식별용 소리 태그’입니다. 악극에서 칼에 대한 장면이 나올 때 짧은 칼의 테마가 흘러나오는 식이죠. 라이트모티프는 어떤 행위를 예시하고, 등장인물이 무엇을 생각하거나 감지하는지를 드러내줍니다. 특별히 음악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만 들리는 복잡한 장치가 아닙니다. 요즘으로 치면, 드라마 OST랄까요? 《미스터 션샤인》의 ‘Sad March’가 유진 초이 테마인 것과 비스무리합니다. 사실… OST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이고, 처음엔 라이트모티프=파블로프의 개를 떠올렸더랬습니다.ㅋㅋㅋ 종소리=밥. 밥의 라이트모티프=종소리.🐶🔔🍚


일차원적 닮은꼴 찾기에서 그친 저와 달리, 소설에 라이트모티프를 녹여낸 대가가 있습니다. 마르셀 푸르스트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스완은 어느 야회에서 어느 곡의 부분인지도 모르는 ‘작은 악절’(소악절)에 매혹됩니다.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오데트와 함께 다시 듣게 되면서 이 작은 악절은 사랑의 상징이 되죠. 사랑이 식어가는 시점에 스완은 예기치 않게 이 악절을 듣게 됩니다.


스완이 그 곡을 알아보고 “뱅퇴유 소나타 소악절이구나, 듣지 말자!”라고 말하기도 전에, 오데트가 그를 좋아했던 시절의 모든 추억들이, ⋯ 현재 그의 불행 따위는 아랑곳없이 잊어버렸던 행복의 후렴구를 미친 듯이 노래하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270-271쪽.


‘작은 악절’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 사랑받던 시절이 한꺼번에 되살아나고 스완은 이제 사랑이 끝났음을 확신합니다. 


“작은 악절”의 감정적 역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다. ⋯ 그 악절은 기억과 감정의 일부가 된다.

—『바그너주의』, 553쪽


⋯ 이제 그만 프루스트를 마들렌에서 구해줍시다. ‘작은 악절’도 있다구요!😉

『바그너주의』 9장 「마법의 불: 모더니즘, 1900~1914」에 ‘작은 악절’에 대한 설명이 압축(알렉스 로스의 장기임)돼 있으니, 긴히 참고하시길요!

제4회 전쟁과여성영화제에 다녀와서
🦻팔랑

떠먹여준다는 말이 수시로 들이쳐, 아이고 아이고 고맙습니다 소리가 절로 새겨지는 영화제였습니다. 그 누가 이리 귀한 상차림으로 빈손의 관객을 맞이한단 말입니까.

첫 상영작 〈시라트〉의 충격이 가시지 않습니다. 초반에 '다큐인가'했다가 20여 분이 지날 즈음 극영화임을 알고 안도했는데, 그 뒤로는 아아... 영화 끝나고 온 삭신이 쑤시더라고요.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 꼭 기회를 만드시길!
두 번째 상영작이자 개막작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까지 보고 나니 온몸이 뜨거운 무력감으로 단단해졌습니다. 

둘째 날 〈전장이 된 여성〉 이후 구기연 선생님의 씨네렉처도 감사했습니다. 시간이 아쉬웠어요. 괴이한 폭력을 휘두르는 원리주의자들 사이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여성운동을 하며 동시에 무슬림으로 스스로를 자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많은 질문을 삼켜야 했지요. 
아, 〈지금, 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하나 심어봅니다.

전쟁과여성 영화제를 기획하고 개최해주신 프로젝트38(손희정, 조혜영 선생님)께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5회를 감히 기다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기관들의 후원은 늘 빠듯하고, 좋은 예술이 파국의 고통을 전할 수밖에 없는 이 시점에, 안다는 것이 다른 지옥이든 같은 지옥이든 아무튼 지옥 터널에 다가가는 용기와 진배없다는 것이 자명해진 이 세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좋은 영화들을 가장 시끄럽고 복잡하고 정신없는 (와중에 극우파의 집회 행진도 열리는 거리가 된) 홍대입구에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작무작
???

“그 각자도생의 세상에서 밀려난 발가벗겨진 빈곤한 존재들이 무작무작 늘어나는, 돈이 양반인 천박한 세상으로 달음질치고 있다.”

— 최현숙,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문학동네, 2023,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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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무작 뜻 아시는 분~?

‘무작하다’(무지하고 우악하다)의 어근을 반복해서 부사 느낌(?)으로 사용하신 걸까요?

아니면 ‘무럭무럭’의 다른 표현을 의도하셨을까요~?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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