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톡에 [얼론 앤 어라운드]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코드는 alone 입니다.

📄 1일 3매 |  최갑수

버스를 보내고 빈 정류장에 앉아

출판사에서 신간이 나왔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책 이곳저곳 살펴보는 일이다. 일종의 검수다. 이번 책은 유난히 아쉬운 점이 많다. 표지와 본문 디자인, 띠지 등에서 미처 체크하지 못한 부분이 여럿 보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새 책이 나왔으니, 일단 서점 담당자와 미팅부터 하기로 했다. A 서점 담당자를 만나고 난 후 B 서점 담당자와의 미팅을 위해 B 서점 로비에 갔는데, 그제야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지갑을 열어보니 명함도 없다. 이런. 그런데 오늘따라 옷차림도 영 엉망이다. 누군가와 비즈니스 미팅을 할 만한 차림이 아니다. 바뀐 담당자와 첫 만남인데 이럴 수는 없다. 어떤 사람과의 첫 만남은 일생에 딱 한 번뿐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는 말을 해야 할 때는 상대방에게 성의와 열정이 전달되어야 한다. 그 성의와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마음뿐만 아니라 옷차림 등 외모와 태도를 갖추는 일도 중요하다. “뭐야, 명함도 없이 이런 차림으로 오다니.” 상대방을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 수는 없다. 기본 예의가 아니다. 나는 어디까지나 부탁하는 사람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결국 미팅을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스케줄러를 보니 이번 주에는 아예 시간이 나질 않는다. 강연과 약속 등이 이어진다. 오늘이 화요일인데, 다음 주 월요일이나 되어야 약속을 잡을 수 있다. 신간 배본이 그만큼 늦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놓친 게 또 하나 늘었군.


출판사를 시작하고 명함을 돌리기 시작한 지 13개월째다. 출판-뉴스레터-얼론 앤 어라운드 관련 프로젝트-취재와 촬영 등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다 보면 뭔가 아차! 할 때가 있다. 메모, 알람, 노션, 워크플로위 등등등 여러가지 앱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은 꼭 생긴다. 이번 책을 만들 때는 뭔가 멍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어쨌든 명함을 넉넉하게 신청하고, 새 린넨 셔츠를 샀다. 사무실 가까운 절에 들러 풍경 소리를 들으며 잠시 절 마당을 걷다가 괜찮은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사서 집으로 왔다.


저기 정류장에 버스가 와 있지만 뛰어가서 억지로 타지 않기로 한다. 이번 버스는 그냥 보내기로. 그럴 때가 필요하다. 잠깐이면 된다. 아주 잠깐. 보사노바나 들으며 다음 버스가 올 때까지 빈 정류장에 앉아 가만히 숨을 고르는 시간. 여름이 오는 걸 지켜보는 시간. 이 시간은 그러니까, 쉼표 같은 거다. ✉️

최갑수는 작가 겸 기획자다. 출판사 '얼론북'을 운영하고, '얼론 앤 어라운드'를 통해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다양한 기획을 한다. 『음식은 맛있고 인생은 깊어갑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 등을 썼다. 인스타그램은 @ssuchoi

📎 Clip | 마감 지키기


“어떤 일을 하든 ‘어느 정도의 시간 안에는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을 훌륭하게 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마감을 반드시 지키려는 일은, 절차를 잘 설계하면 노력으로 99% 보완할 수 있다. 스케쥴을 제압하는 자가 일을 제압한다.”


- 미즈노 마나부, <일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건 처음입니다> 중에서

🥃 위스키에 진심입니다 |  고현

최저가 위스키 시음실

무용;소의 문을 연 이후, 일상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당초 아내와 함께 쓸 작업실 용도로 서촌에 공간을 구했지만, 각자의 로망을 얹어 낮에는 디자인 스토어, 저녁에는 위스키 시음실로 바뀌는 콘셉트로 운영하게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대중을 상대로 한 상업 공간을 연 셈인데, 모든 게 처음이니 어설픈 실수 연발의 나날이었다. 포스기 사용부터 메뉴판 제작, 제품 포장, 세금계산서 발행 등 소상공인의 기본부터 익혀야만 했다. 초반에는 찾아오는 방문객 대다수가 주변 지인들이었지만, 차츰 모르는 일반인들의 방문 빈도가 늘어나면서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신용카드 취소 방법을 몰라 쩔쩔매거나 한 번에 위스키 주문이 몰리면 손이 벌벌 떨리곤 했다.

 

그럼에도 아내는 제법 목적에 충실하게 공간을 운영했다. 본인이 작업한 패턴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는 폴카랩을 기반으로 틈틈이 디자인을 하면서 부채꼴 선반에 제품군을 차근차근 늘려나갔다. 각 패턴은 포르투갈의 아줄레주 타일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하는데, 리소그래프로 인쇄한 포스터, 엽서, 노트를 비롯해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패브릭, 파우치, 보틀백 등이 디자인 스토어다운 구색을 갖추게 했다. 여기에 폴카랩 제품과 어울리는 다른 작가의 디자인 굿즈도 선별해 들여놓았다.


내가 담당한 위스키 시음실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3일만 저녁에 문을 열었다. 거리 자체가 늦은 시간까지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일단 테스트 차원에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 그럼 낮에 나는 무엇을 하느냐고? 바 테이블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초짜 프리랜서 에디터라 고정적인 일이 많지도 않고 마냥 놀기도 뭣해서 낮 시간에는 융드립 커피를 메뉴에 추가해 봤다. 융드립은 커피 원두의 기름 성분까지 추출이 가능해 한층 진한 풍미를 내는데, 다만 융을 계속 소독해 줘야 하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카페로 인식하는 바람에 낮에는 커피를 내리고 융을 삶느라 제법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다.

        

위스키 시음실은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9종 정도 선별해 한두 달 간격으로 메뉴를 바꾸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위스키 바’도 아니고, 굳이 ‘시음실’이라 이름을 붙인 이유는 일단 전문적인 바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간 위스키 바를 갈 때면 높은 가격대도 부담스럽거니와 특유의 엄숙한 분위기 때문에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질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위스키 시음실에서는 입문자들이 캐주얼하게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비교해보고 본인의 취향을 찾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3가지 위스키를 반 잔씩 마실 수 있는 테이스팅 샘플러를 메뉴에 넣은 이유도 그래서다.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흔히 제공하는 샘플러처럼 소량으로 여러 종류의 위스키를 비교해 가며 시음해 보는 샘플러는 나름 무용;소의 시그니처 메뉴가 됐다.   


스코틀랜드의 싱글몰트 위스키만 다룬 이유는 아무래도 내가 그나마 경험을 해본 주종이기도 하고, 블렌디드 위스키나 버번위스키보다 증류소마다 개성과 풍미의 편차가 커서 비교하는 재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스페이사이드의 셰리 오크에 숙성시킨 글렌드로낙이나 글렌피딕과 아일라 섬의 피트 향이 가미된 라프로익이나 보모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술처럼 느껴질 것이다. 위스키의 높은 도수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 하이볼이나 진토닉처럼 내가 평소에 즐겨 마시고 만들기도 간단한 칵테일도 메뉴에 넣었다.     

 

다만 이름 때문에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한 아저씨가 ‘위스키 시음실’이라 쓰인 입간판을 유심히 보더니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위스키 시음이 가능한 곳인가 보죠?” 나는 메뉴판을 보여주며 샘플러를 소개해 줬다. 그 분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샘플러를 주문하고 3가지 위스키를 순서대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싱글몰트 위스키는 가능하면 천천히 향까지 음미하는 게 매력인 술이라 설명해 주려는 찰나, “잘 마셨습니다.” 아저씨는 계산을 하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아뿔싸. 그는 이곳이 무료로 위스키 시음을 제공하는 이벤트 공간인 줄 착각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위스키 메뉴를 설명할 때면 유료인 점을 한층 강조하게 됐다.


사실 무용;소 위스키 시음실의 메리트 중 하나는 저렴한 가격에 있다. 오픈을 준비하면서 위스키 메뉴판을 만들 때 가격을 어떻게 책정해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주로 가격대가 저렴한 엔트리급 싱글몰트 위스키들을 다루기도 하고, 기존 바들처럼 한 잔에 2~3만 원이 넘는 부담스러운 가격은 피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앞서 소개한 적 있는 부산의 모티 바를 참고했다. 그곳은 메뉴판이 없는 대신, 계산을 할 때면 다른 바들에 비해 20~30퍼센트 많을 때는 절반 가까이 저렴한 편이었다. 나 역시 모티처럼 홀로 운영을 하니 비슷하게 가격을 책정해도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여기는 취미로 운영하시는 거죠?” 간혹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초짜의 판단 미스였다. 모티 바 사장님이 건물주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으니. 그렇게 서울에서 가장 저렴하게 위스키를 마실 수 있는 시음실의 운영자가 됐다. ✉️

고현은 낮에 글을 쓰고 밤에 위스키의 세계로 안내하는 공간 운영자다. 작업실이자 위스키 시음실로 사용하는 무용;소(@mooyongso)에서 위스키와 취향을 매개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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