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 글을 읽다 보면, 그의 얼어붙은 바다는 어떤 것이었을지, 그에게 왜 책은 도끼여야 했을지 궁금해진다.
To. 서사의 서사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예은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편지 형식으로 시작해봅니다.
매번 독자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으실지 두근거리는 상상을 하면서요. ‘편지’의 사전적 의미가 “안부, 소식,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이라고 하니, 이때까지 보낸 글들을 편지로 읽을 수도 있겠네요.
저는 평소 편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합니다. 어릴 적부터 받은 편지들은 모두 모아서 ‘예은 추억’이라고 적힌 상자에 보관할 정도로 아끼죠. 가끔씩 꺼내어 읽어보기도 합니다. 편지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편지는 아니었지만 ‘편지 같은’ 글들을 읽으면서 위로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는데요.
작년 이맘때쯤 친구들과 제주에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하루 정도 혼자 더 머물렀습니다. 소란스럽던 시간을 뒤로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1인 숙소에 들어섰죠. 적막했던 그곳엔 방명록이 있었습니다. 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지난 방명록을 하나하나 읽는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다음에 이 방에 올 누군가를 생각하며 써 내려간 글이 저에게 닿아 위로를 주었습니다. 덕분에 용기를 얻고, 방을 나가 혼자서 여행을 잘 즐기다가 돌아왔어요.
이렇듯 마음이 꾹꾹 담긴 어떤 문장들은 저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기도, 또 제가 살아갈 힘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오늘도 독자님들의 안부를 묻고, 마음이 담긴 두 개의 글을 함께 보내드립니다. 여러분께 울타리 혹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그럼, 오늘 편지는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예은 올림
P.S. 저희의 우편함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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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에 사람을 물고 찌르는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읽는 책이 주먹으로 쳐서 우리 정수리를 일깨우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단 말인가? 자네가 편지에서 썼듯이 책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도록 하기 위해서? 사실 책 없이도 우린 행복할 거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책들을 부득이하다면 우리가 직접 쓸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책들이야. 우리가 뭇 인간들을 떠나 숲으로 쫓겨나기라도 할 때처럼, 우리를 너무나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과도 같이,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더 좋아한 사람의 죽음과도 같이, 자살과도 같이 작용하는 그런 책들 말이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하네. 내 생각은 그렇다네. ― 《디 에센셜: 프란츠 카프카》(민음사) 중에서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보니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자기 모습을 발견했다는 문장과 함께 ‘카프카’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문구다. 카프카 글을 읽다 보면, 그의 얼어붙은 바다는 어떤 것이었을지, 그에게 왜 책은 도끼여야 했을지 궁금해진다. 난해한 그의 글을 혼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해설집을 찾아 읽고 강의를 몇 번 들었더니, 알고리즘 영향인지 SNS에 카프카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쏟아졌다. 알고 보니, 올해 6월 3일이 서거 100주기였다. 출판계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크고 작은 행사를 열었고, 작품집이나 관련 서적도 출간되었다.
마침 일정이 있어 서울에 갔다가 소전서림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카프카 북아트 전’에 방문했다. 다양한 번역본, 친필 원고, 드로잉 화보, 일기와 편지, 그의 집필실을 재현한 작은 방이 전시되었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그의 짧은 삶을 엿볼 수 있었다. 지극히 사적인 편지들과 일기 그리고 사후에 불태워지길 희망했던 원고들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에게 공개되고 읽힌다는 걸 알게 되면, 그는 어떤 마음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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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를 들어본 적도 없었던 20대 초반, 프라하에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10년 이상 살고 계시던 엄마의 친구분께서 나를 황금소로 22번가, ‘카프카의 집’에 데려가주셨다. 유명한 작가의 작업실이라는데 기대와 달리 공간이 너무 작고 옹색해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그저 슬픈 눈을 가진 한 남자의 얼굴을 인상 깊게 오랫동안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 돌아와 그의 책을 읽어보려 시도했지만, 문장이 너무 어려워서 결국 그냥 덮어버렸다.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변신》 외에는 여전히 난해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어쩐지 서글퍼진다. 존재의 근원적 불안을 담담하게, 때로는 《선고》의 결말처럼 파격적으로 담아내어 마음속에 꼭꼭 묻어두었던 절망과 불안을 건드리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이토록 《변신》이 인기가 높은 이유가, 자기 능력을 ‘과하게’ 증명해야 하고 가족과 사회에 쓸모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살아가는 한국 사회 속 현대인들의 불안한 정서를 잘 대변해주기 때문이라는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서, 내 인생만 불안한 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끼는 셈이다.
카프카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을까? 궁금해져서 그의 서사를 들여다보았다. 자수성가한 사업가이자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소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카프카의 생애와 작품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카프카에게 있어 아버지는 통제, 억압을 상징한다. 그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위압적인 인물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병약하고 방에 틀어박혀 글만 쓰는 폐쇄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는 ‘엄친아’이자 엘리트였다.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요로 법학 박사학위를 받고, 노동자를 위한 산업재해 보험국에서 14년 근무했다. 그는 초고속으로 승진한 유능한 직장인이었고, 오후 2시면 퇴근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소설 집필을 병행한, 본캐와 부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었다. 특히 보고서를 아주 훌륭하게 잘 썼다고 한다.
독일어를 쓰는 유대계 체코인, 엘리트 시민과 예술인, 사랑하는 연인과의 결혼(그는 세 번 약혼하고 세 번 파혼한 끝에 미혼으로 생을 마감했다)과 작가로서의 삶, 그 갈래에서 고민하며 평생을 경계인으로 살았던 사람. 모호한 정체성 사이에서 고독에 짓눌리며 40년 짧은 인생을 방황하며 살았던 사람.
자유는 전 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의 출구를 오른쪽, 왼쪽, 그 어디로든 간에, 저는 다른 요구는 하지 않았습니다, 출구 또한 비록 하나의 착각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 《학술원에서의 보고》 중에서
카프카가 쓴 글을 읽다 보면 현실에서 부정당한 절망적인 삶 가운데에서도, 출구를 꿈꾸며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평생 자신을 ‘실패’로 간주했던 그를 말없이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싶다.
작가의 삶을 추적해보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다운 번역가님이 글에서 밝힌 것처럼( 〈서사의 서사〉 21호) 김유정문학촌, 박경리문학관 같은 곳이나 작품의 배경과 비슷한 장소에서 해당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좋은 방법 같다. 작가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개어보면서.
이하나 멋진 남편과 세 딸아이 루아, 로이, 라엘 그리고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커피, 책과 여행,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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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총인구수는 51,325,329명이고 총세대수는 23,962,497세대다. 남자 인구수와 여자 인구수의 비율은 거의 같으며, 연령별 비율은 0~9세는 7퍼센트, 10~19세는 9퍼센트, 20~29세는 12퍼센트, 30~39세는 13퍼센트, 40~49세는 16퍼센트, 50~59세는 17퍼센트, 60~69세는 15퍼센트, 70~79세는 8퍼센트, 80세 이상은 4퍼센트로 분포되어있다. (2024년 3월 26일 추계인구는 51,751,065명이지만 정확한 조사 결과는 2023년 12월을 기준 삼는다.)
1천만 관객 시대, 1백만 독자 시대라고들 하니, 한국 인구의 20퍼센트가 한 영화를 본다고 할 수도 있고, 인구의 2퍼센트가 한 책을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가장 최근에 1백만 부가 돌파했다고 보도된 책은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1권과 2권의 누적 판매량이 1백만 부를 넘었다는 기사였다. 만약 50만 부로 사이즈가 줄었다면 1퍼센트라고 보수적으로 판단하게 될까? 이렇게 보면, 기독교 인구를 7백만 명으로 잡으면 7만 부 정도 규모로 베스트셀러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기독교 출판 시장에서 5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 분명해 보인다.
인구 비율로만 보면 40대와 50대가 가장 많다. 일반 출판 시장은 40대와 50대를 주요 독자 대상으로 여긴다. 남성과 여성 비율도 거의 비슷하니 40~50대 남성 독자를 타깃할지, 여성 독자를 타깃할지 결정하면 된다. 여기에 20대와 30대를 대상으로 하는 책을 기획해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유아·아동 출판사들 고민이 깊어진다는 점이다. 합계출산율 0.72명, 책 읽을 인구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출판계도 독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만 간다. 대한민국 인구 비율보다 교회를 출석하는 이들의 연령대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고령 인구 비율이 19.2%인데, 교회의 고령화 인구 비율은 얼마나 될까? 40대 중반만 넘어가도 ‘노안’을 호소하는 이들 비율이 증가한다. 70대가 넘어가면 시력 때문이라도 책 읽기가 쉽지 않다. ‘큰 글자 성경’과 ‘큰 글자 묵상집’의 판매가 늘어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다 ‘노안’ 탓이라고 하면 그 출판사는 노안 전문 출판사가 되고 만다.
여기에 더해,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들의 연령대도 10년 전에 비해 높아졌다. 그냥 높아진 게 아니라 많이 높아졌다. 아마 종이에 잉크를 발라 출간하는 큰 카테고리로서 기독교 출판업을 하는 곳 중에 〈복음과상황〉에서 일하는 이들의 평균 연령대가 가장 낮을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이들의 연령대도 대한민국 평균연령대보다 높고,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들의 연령대도 높아졌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20대 중 기독교 출판사에서 일하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천연기념물’을 발견하는 일보다 어려워졌다.
기독교 출판사는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책을 기획하고 어떻게 마케팅해야 할까, 라는 물음은 이제 행복한 시절의 고민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글자 책만 팔릴지도 모른다. 출판은 오늘 매출이 바닥이라도 내일 출간할 책에 대한 희망을 보고 오늘을 참고 인내하는 업종이다. 하지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찾기 힘들다면 오늘 매출이 좋아도 불안하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란 내일 출간할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감을 느꼈을 때다. 그렇다면 책을 만드는 나는 어떤 출판사에서 출간할 신간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있을까? 책을 쓰는 저자는 어떤 저자의 신간 소식을 기대하고 있을까? 만약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이들에게서 이런 기대감이 사라졌다면, 독자들에게 무슨 기대감이란 게 있겠는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는 현실인데 신간을 출간하고 팔아야겠으니 프로모션과 마케팅으로 어떻게 비벼서 독자들을 낚아 보겠다는 ‘심뽀’를 갖고 있다면, 그게 어떻게 희망일 수 있겠는가. 책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보지 못했다는 말은 ‘힘내라’고 하는 격려 이상의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족한 소비자가 최고의 마케팅이다”라는 마케팅의 오래된 원칙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기획이나 마케팅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려 하기보다는 내가 어떤 독자인지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제대로 된 독자도 아니면서 저자는 되려 하거나, 실은 C급 독자이면서 책을 만들어 팔려고 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만족한 것처럼 보이는 소비자도 아니고 만족한 것 같은 소비자도 아니고 만족할 예정인 소비자도 아니다. 인풋이 없는데 어떻게 아웃풋이 나오겠는가.
마케팅 천재가 되기 위해 몸부림쳐봐야 택도 없는 일이다. 그전에 나부터 내가 꿈꾸는 그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만족한 소비자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보이지 않을까.
이재원 홍성사, 위즈덤하우스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선율 출판사에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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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 의견💌
🗣️ 저도 원룸에 살아서 그런지 집에서는 오히려 책에 집중하기가 좀 어렵더라고요. 자꾸만 침대에 눕고 싶고, OTT에 손이 가는 경우가 많네요. 오히려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 등 대중교통에서 책을 더 많이 읽습니다. 그래서인지 평일에는 책을 쭉쭉 읽다가 오히려 주말에 책을 안 읽게 되는 부작용도 있답니다. 집 근처에 책 읽기 좋은 카페나 도서관이 있다면 그것도 참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동네에서 3년째 살고 있지만, 아직 마음 붙일만한 집 근처 공간이 없어서 좀 아쉽기도 합니다. 최근에 루프탑 카페가 하나 오픈했는데, 나름 괜찮아보여서 책 읽는 아지트로 삼아볼지 생각 중입니다. 그나저나 이범진 편집장님 아들분이 쓴 작가의 말을 보면서 심쿵하게 되는 이번 레터였습니다. 응원하게 되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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