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멋진 하루 #세상의 끝까지 21일 다정한 구독자 님께 안녕하세요. 큐레이터 Q입니다.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붉고 노랗게 물든 가로수를 보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푸른 하늘 끝으로 눈이 닿게 되는 가을이에요. 지금 님의 창문 밖으로는 어떤 하늘이 보일라나요. 11월 첫 주 금요알람은 두 사람이 함께 길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뻔한 로맨스 영화는 아니에요. 로맨스의 클리셰를 빼고 난 자리를 무엇이 대신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만추 (2011) "안녕. 오랜만이에요." 한 여자가 불안정한 걸음으로 걸어옵니다. 멍과 상처 투성이인 얼굴보다 더 걱정되는 건 당장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은 그녀의 눈빛입니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집으로 가득한, 큰 사건이라고는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시애틀의 어느 교외 도시에서 말입니다. 7년 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인 "애나" 대신 "2537번"으로 불립니다. 교도소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애나(탕웨이 분)는 장례식에 가기 위해 짧은 외출을 나섭니다. 오렌지색 죄수복 대신 트렌치코트와 목도리를 걸치고 언제든 받아야 하는 휴대전화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낯선 남자 훈(현빈)을 만납니다. 영화에서 애나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애나는 훈에게 영어 대신 중국어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해요. 훈이 전혀 알아듣지 못할걸 알면서, 어쩌면 그걸 바랐는지도 모르죠. 훈은 거기에 자신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중국어인 하오(좋다), 화이(좋지 않다)를 애나의 표정이나 말투에 따라 추임새로 넣습니다. 통하는 듯, 통하지 않는 듯 주고받는 둘의 대화가 이 영화에서 나왔던 어떤 대화보다 가장 내밀하고 공명이 컸어요. 감독 : 김태용 러닝타임 : 1시간 53분 Stream on Watcha 멋진 하루 (2008) "나랑 있을 때 행복한 줄 알았는데 헤어질 때 더 행복한 표정이라니. 그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내가 조금, 아팠지." 어수선한 경마장에서 희수(전도연 분)는 누군가를 찾는 중입니다. 비슷비슷하게 차려입은 사람 틈바구니에서 꽤 긴 시간 보지 않은 사람을 무작정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어요. 바로 그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경마장의 소음을 뚫고 들려옵니다. 병운(하정우 분)입니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이자 일 년 전에 돈 삼백 오십만 원을 빌리고 잠적해버린 남자죠. 능청스레 희수를 반기는 병운에게 희수는 앞뒤 말을 생략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돈 갚아.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려는 병운에게 희수는 오늘 그 돈을 다 받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거라 엄포를 놓습니다. 희수는 오늘 안에 빌려준 돈을 다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희수는 그저 돈을 받기 위해 병운을 찾아온 걸까요? 영화의 OST는 푸디토리움이 맡았는데요, 트랙의 제목이 재밌습니다. 희수와 병운의 하루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둘이 경마장에서 만난 시각인 "10:12 AM"로 시작해서 둘의 멋진 하루가 끝나는 "11:59 PM"로 마무리됩니다. 영화와 따로 떼어 OST만 들어도 하나의 독립된 작품처럼 좋아요. 이건 비밀인데, 전 이 영화를 보고 징거버거 세트를 처음으로 사 먹어 보았습니다. 감독 : 이윤기 러닝타임 : 2시간 3분 Stream on Watcha 세상의 끝까지 21일 (2012) "우주왕복선이 폭발하면서 인류를 구하려던 마지막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알리는 뉴스로 시작합니다. 소행성 마틸다가 지구와 출동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정확히 3주, 21일. 어느 날 갑자기 종말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0년 만기로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도, 커리어와 승진을 위해 애썼던 노력도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영화는 그런 상황에 사람들을 던져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특히 어딘가 불쌍하게 생긴 이 남자, 도지(스티브 카렐 분)의 입장에서요. 도지는 종말을 3주 남기고 아내로부터 버림을 받고 홀로 남겨집니다. 무언가에 열중하며 남은 시간을 불태우는 사람들 속에서 도지는 이질감을 느낍니다. 자신은 그렇게 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사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연히 페니(키이라 나이틀리 분)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영화의 원제는 『세상의 끝까지 친구 찾기(Seeking a friend for the end of the world)』입니다. '세상의 끝까지'라고 직역하면 어떤 장소를 찾아가는 느낌이 들어 '친구 찾기' 대신 '21일'이라는 시간을 넣은 제목으로 바꾼 것 같아요. 영화 삽입곡이 참 좋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영화의 삽입곡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페니가 LP를 잔뜩 들고 아파트를 달려 나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죠. 그나저나, 스티브 카렐과 벤 스틸러를 자꾸만 헷갈리는 건 저뿐인가요...? 감독 : 로렌 스카파리아 러닝타임 : 1시간 41분 Stream on Watcha 덧붙이는 이야기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에서 지구 종말 뉴스를 막 전한 라디오 방송은 뒤이어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노래 "Wouldn't it be nice"를 전송합니다. 우리나라 말로 "좋지 아니한가" 정도로 번역될 제목인데 곧 닥칠 종말을 앞두고 이런 노래라니. 이 음악만으로 앞으로 이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펼칠지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이야기는 영화 『러브 앤 머시』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폴 다노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을 연기했죠. 언젠가 금요알람에서 다룰 수 있길 바랍니다.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쓰려니 저도 어디론가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네요. 다음 편지에서 또 만나요. 당신의 큐레이터Q 📬 금요알람 구독하기 || 친구에게 소개하기 https://url.kr/4aycxm 금요알람은 언제나 당신의 이야기를 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