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회사가 높은 매출을 달성한 기념으로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단축을 제안했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파트타임으로만 일해도 되고, 길게 휴가를 써도 무방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제안을 활용한 직원은 2만1000여명 가운데 53명에 불과했습니다. 회사의 적극적인 권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휴가를 쓰지 않았고, 근무시간 단축을 택하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하겠다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진 걸까요? 스웨덴 사회학자 롤란드 파울센은 ‘불확실성과 무한한 선택지를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의 특성’에 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한 회사와 달리 회사 바깥에서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이것을 견디지 못한다.”
파울센은 최근 국내에서 번역 출간된 저서 <걱정 중독(복복서가 펴냄, 원제 Tänk om)>을 통해 ‘걱정’과 ‘불안’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됐는지에 대한 추적과 함께 대처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대부분 인류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쏟아지는 정보를 등에 업고 무수한 선택지 앞에 서게 되면서 자유로움이 아닌 부담감에 짓눌리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독일에 점령됐을 때보다 더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 인간의 모순적 심성을 단적으로 증언합니다. 나치 독일군에 점령된 상태에서 프랑스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결정할 필요도, 책임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항만이 유일한 선택지였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답니다. “우리는 불안을 결코 억제할 수 없다. 우리가 곧 불안이기 때문이다.”
범(汎)불안장애, 공황장애, 광장공포증…. 옛날에 없던 병적(病的) 불안감이 잘사는 나라일수록 더 폭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파울센이 132개국 갤럽 조사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1인당 국민총소득(GNP)이 많은 나라일수록 자기 삶에서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투자에 실패하면 어떡하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떡하지?’ ‘내가 던진 돌멩이가 극심한 환경파괴로 이어지면 어떡하지?’ 전체 유럽인의 3분의 1 이상이 이런 강박장애(OCD)에 가까운 망상을 경험한답니다.
파울센은 “현대 인류는 식생활, 기술 장비, 실내 온도, 건강관리 등에서 저소득층조차도 기본적으로 중세의 왕보다 더 나은 삶을 산다”고 일깨웁니다.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아폴로11호를 타고 달에 갔던 컴퓨터보다 700만 배는 더 큰 메모리와 10만 배 더 좋은 성능을 갖춘 ‘기적의 걸작’이랍니다. “도대체 우리가 잘 지내지 못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파울센은 인간의 불안이 “지금 어떤지(현재)가 아니라 어땠을지(과거), 그리고 어떨지(미래)를 생각하는데서 온다”고 진단합니다. “약간의 상상력만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걱정거리를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인간에게 걱정을 제거할 명약은 없답니다. “삶은 수많은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점철돼 있다.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조건과 상황을 마음대로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
그가 제시하는 대처법은 “걱정을 우리 사회의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걱정과 더불어 살아낼 방법을 찾아내자”는 것입니다. “삶과 세상은 단순한 방정식에 따라 굴러가지 않고 언제나 불투명한 미래를 전제한다.” 그것을 인정할 때 자신과 세계에 대해 한 뼘 더 깊은 이해에 가닿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파울센은 ‘불안 속에서도 행동하는 용기’를 강조합니다. 인간은 두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한 발 내디딜 수 있으며, 위험을 감수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단행해볼 수도 있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 행동뿐이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