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그녀와 그’ 사이에서

19세기 서구 소설은 어째서 여성들의 비극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보바리 부인》, 《테레즈 라캥》에서 《안나 카레니나》에 이르기까지, 여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랑과 욕망의 희생자가 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자살 또는 그에 준하는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고 보면 많은 경우 19세기 리얼리즘이란, 잘생기고 야망 있는 청년들의 실패담(《적과 흑》, 《죄와 벌》, 《감정교육》 등)이거나, 유한부인들이 품었던 사랑과 욕망의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들은 대부분 젠트리를 포함한 하급 귀족이나 중간계급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으니, 예외 없이 남성 작가들의 작품이라는 점이다.

19세기까지 문학은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다. 당대의 사회적 구조가 압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작가들은 드물기도 했고, 작품 활동을 하더라도 남성의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샬럿, 에밀리, 앤 브론테 자매는 물론이고 제인 오스틴조차 남성 필명을 내세워 출판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여성 작가들의 소설은 확실히 남성 작가들의 소설과 달랐다. 여성 작가들은 유한부인의 과잉 욕망과 비극적 죽음에 몰두하지 않았다. 남성 작가의 시선으로 재단된 여성이 아니라 여성 작가 자신이 창안한 여성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이성과 감성》이나 《오만과 편견》에서 제인 오스틴의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결코 종속적, 수동적, 피동적이지 않다. 그들은 통속적일지언정 능동적인 인물들이다. 브론테 자매의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 에어》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조르주 상드는 어떤가. 우선 필명. ‘조르주 상드’도 남성 필명이었지만, 이 필명은 단순히 자신의 성별을 은닉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상드가 누구인가. 남장을 하고 다녔던 여성, 남성 편력으로 유명한 여성, 여섯 살 연하의 시인 뮈세와 작곡가 쇼팽의 연인, 로맨틱한 열혈 사회주의자…… 그리하여 당대의 젠더 코드를 정면 돌파한 인물.

《그녀와 그》의 해설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이 투사된 여성 캐릭터 테레즈의 시점으로 되어 있다. 남성 캐릭터들 역시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삼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 초반에 두 남성 인물들, 로랑과 파머는 서로 상반된 캐릭터처럼 보인다. 로랑은 재능 있는 예술가로 병적이고 에고센트릭한 19세기 남성 예술가의 스테레오타입으로 그려진다. 파머는 성실하고 품이 넓은 부르주아 중년 남성처럼 보인다. 하지만 소설의 진행에 따라 로랑과 파머는 일종의 도플갱어임이 밝혀진다. 그 둘은 남성중심주의적인 감성에 침윤된 ‘찌질한’ 인간들로 기각된다. 질투와 인정욕구가 그들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을 비루한 두 남성(로랑과 파머)을 공격하는 소설로 읽는 것은 편협해 보인다. 테레즈와 로랑, 그리고 파머는 끊임없이 사랑에 대해 말하고 규정하고 반박하며 스스로 고통스러워한다. 그러니 이것을 소설 형식을 빌린 사랑의 논쟁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9세기의 사랑과 연애에 관한 여성적 사유의 견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은 19세기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왜 여성들이 스스로 말을 해야 하는지, 왜 여성 작가가 여성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에게 ‘여성의 운명’을 부여해야 하는지를 선명하게 알려준다. 월터 옹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한 대목에서 여성 작가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17세기 이래 여성 작가들은 남성들의 수사 학적이며 규범적인 목소리와는 다른 일상적이고 감성적인 목소리로 스스로를 표현했으며, 그것이 근대소설의 발생을 이끌었다고. 조르주 상드 역시 그 증거 가운데 하나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