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님의 문학수업은 이제는 한빛에서 만나볼 수 없지만, 졸업생으로서 굉장히 특별한 수업으로 기억에 남아있어요. 관련해서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것을 준비했고 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주고자 했는지 궁금해요.
🦖: 이 질문은 아마 저와 수업을 했던 졸업생들은 외우고 있을 구절을 가지고 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 “사랑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 그리고 그다음 단계로 “모든 슬픔은?”
❄️: “이야기로 만들거나 말할 수 있을 때 견뎌질 수 있다.”
🦖: 어쩌면 격언처럼 들릴 수 있을 말인데 그게 제 문학 교육관이고 기본 교육관이에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 사랑이 넘치는 존재예요. 그런데 왜 그 사랑을 사람들에게 쏟지 못하냐면 그 사람에 대한 타인이라고 이야기될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마중물을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라는 말을 좀 하고 싶은데, 신영복 선생님의 말을 빌어서 그 공부라는 말을 다시 한번 해석을 하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것은 사람, 그리고 관계라고 말씀을 하시잖아요? 상상력은 나 혼자 있을 때는 필요하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들 속에서 필요한 거예요. ‘저 사람이 나라면, 내가 저 사람이라면.’ 저 사람과 저 사람의 관계 부분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게 문학 교육이어야 되고 국어 교육이어야 해요. 그리고 그 관계를 알고 이해하면 얘기가 소통이 되고 그 소통을 통해서 말을 하고 표현을 한 순간. 자기가 자기 말을 하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면 견뎌낼 수 있는 거잖아요. 그것의 힘들이 국어, 특히 문학 교육에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문학은 결국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문제, 갈등, 사건 이런 이야기들이니까요. 그래서 여러분들과 문학 작품 공부했을 때 “주인공이 OO이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 옆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고 즉흥극으로 해보거나 모둠에서 장면을 표현해 보는 등의 활동을 했던 거예요.
❄️: 선생님은 지금 교장을 맡고 계시니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었어요. 한빛고가 대안학교로써 가지는 장점과 한계점은 무엇일까요? 저희도 마찬가지로 한빛고에 다니던 시절부터 졸업한 지금까지 멈추지 않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 대안 교육을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한빛고가 대안학교인가라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한빛고를 일반적인 학교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특이한 특성화 고등학교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런 평가를 떠나서 한빛고의 장점은 너무 소수만의 (학교가 아니라), 다시 말해 진보적이기는 하지만 훅 앞서서 몇 발자국 앞서는 게 아니라 일반 학교들에 비해 반 발짝 정도만 앞서있는 학교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생 자치 활동이나 특성화 수업 등 반 발짝 뒤에 있는 학교들이 조금만 더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 고민을 한다면 가져다 쓸 수 있는 정도의 걸음이지요. 열 발자국 앞서 나간 학교와 뒤에 있는 학교의 중간쯤에 있는 학교. 저는 이게 굉장히 장점이라고 봐요. 너무 혼자서 앞서고 있어서 특별한 학교가 되기보다는 교육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하는 지점이 되면 “한빛고처럼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교육의 어떤 부분들을 반 발짝 앞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는 학교.
내용적으로는 단지 놀러 가는 수학여행이 아닌 통합 기행이라든지, 아니면 꼭 전문적인 기술자가 되지는 않더라도 생활예술이나 생활기술, 생활교양을 통해 다양한 것을 만나고 접하게 하는 것들이 있겠지요?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때론 실수를 하더라도 뭐든지 해보겠다고 하면 학생 자치와 자율의 입장에서 주인이 되어서 해보라고 권하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딴지걸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요.
단점(한계)은 어쩌면 앞서나간 학교와 뒤에 있는 학교의 중간이라는 점 때문에 겪는 어려움. 한빛고는 인성 중심 대안학교잖아요? 현재 단계에서 (한빛고는) 개인적 인성 부분들에서는 많이 기다려줘요. 꾸중하기도 하지만 징계 방식으로가 아니라 변화할 수 있을 때까지 이야기도 나누고 하는데 이제 여기에 집중하다 보니 협력적인 인성의 부분까지는 손을 못 대고 있어요. 협력적 인성 혹은 공동체적 인성은 개인의 인성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의 인성까지도 함께 배려하는 것을 의미하고요.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교육의 중요한 요소인데, 비교적 많은 인원과 대학 입시 준비 등의 이유로 개인의 인성을 존중하는 선에서 머물러 있죠. 이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한빛고등학교에서 교장은 예산 관련 부분 빼놓고는 생각보다 결정권이 없어요. 교육과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교사 회의에서 결정된 것에 대해 행정적인 결재를 하는 것 말고는 한 표도 때로는 아닐 수가 있고요. 교장이 만약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면 협력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갑질이 될 수 있어요.
🍓: 그렇다면 한빛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협력적 인성’ 이런 것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잘하는 것을 조금 더 강조하는 그런 것일까요? 한빛고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에도 지금도 하는 고민일 텐데요, 아무도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듯한 상황에서 우리가 제안 혹은 지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 ‘2015 교육과정’, 혹은 ‘미래 사회'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게 꼭 교육 과정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 사회는 단지 지식에 대한 이해와 분석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가 그것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미래 사회를 이끄는 인간은 어떤 역량을 지녀야 되는가라는 이야기를 할 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는 데 첫 번째가 '소통 능력'이에요. 소통은 언어적인 능력만이 아니거든요.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상대방이 던진 질문에서 말 뜻을 넘어서 그 질문을 던지면서 주저하는 표정이나 맥락까지도 이해하고 관계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소통 능력이에요.
두 번째가 '협업'이에요. 나랑 똑같은 사람하고 일하는 것은 협업이 아니에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다른 철학을 가진 사람과 일하는 것이 협업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게 ‘창의력'이에요. 이 세 가지를 보통 학자들이 미래 사회의 역량으로 굉장히 중요하게 꼽아요. 네 번째까지 꼽으라면 ‘비판적 사고 능력'이고요. 어쨌든 저는 주관적으로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역량의 뿌리에는 ‘다름에 대한 이해’가 있다고 생각해요. 소통 자체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이고, 협업도 나와 생각이 다르고 관심이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잖아요? 창의성도 다르게 보는 것이잖아요. 결국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대신 다름을 찾아내서 소통하고 협업하고 함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 이런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지금까지 해왔던 프로그램을 짚어보며 진단하고 풀어나가면서 바꾸고 변화하는 것. 그게 한빛이 가야 할 방향인 것 같아요.
요즘 특히나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신영복 선생님을 자꾸 거론하게 되네요. 신영복 선생님은 '변방의식'을 많이 이야기해요. 성을 쌓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성을 쌓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지키는 일 밖에 없다고요. 그렇잖아요? 성은 지키라고 있는 거지 성 바깥으로 나가라고 성을 쌓지는 않잖아요. 한빛고도 이제까지 20여 년간 뭔가를 해왔다고 하는 성 안에 머물면서 이 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면 이 성을 깨부수고 나가야 되는 거죠. 그런 변화의 흐름 속에 들어가야 되는 것이고 이 변화를 창조해낼 수 있는 게 교사이고 새로 들어온 학생이고 학부모인 거죠. 그리고 이 셋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협업하고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데 이런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가 생각하면 또 고민이네요. 결국은 사람의 문제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