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에세이 + 오버뷰 이펙트 🪐 + <창백한 푸른 점>


047. 2022/3/6 일요


안녕하세요, 00님.

오랜만의 레터예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오늘 투표를 했고,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그냥 보통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늦은 밤부터 이 글을 썼습니다.

이 레터를 보내고 나면

내일 해야할 일들을 정리하며

고요한 밤을 보내려고 해요.


00님은 어떤 하루였나요?

쉘터와 안부 게시판에 남겨주시는 글들을 보면

이 메일로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느끼곤 합니다 :)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을 읽어주시는 00님이

부디 건강하고 평안하기를 바라요.

오늘도 제 메일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봉현



나는 작은 인간이다.


지난 달 부산에 다녀왔다. 엄마의 생일을 축하하고, 가족사진을 찍고, 2년 만에 만난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의 시간이었지만 오후엔 혼자 집을 나와 카페에서 글을 썼다. 하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글이 안 써졌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랬다. 몇 번이나 책상 앞에 앉았지만, 왜인지 제자리 걸음이었다.


쓰다만 글이 다섯 개. 한편의 에세이를 쓰는데 보통 짧으면 하루, 길어도 3일 정도였는데 갑자기 글이 안 써졌다. 어떤 주제의 글을 썼다가 다른 주제의 글을 썼다가.. 애매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글만 여럿 쌓여갔다. 왜 이러지, 지난 몇 달 동안 에너지를 다 쓴 걸까, 피로가 쌓인 탓일까. 아니면 슬럼프 같은 것일까..



뭐랄까.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 평소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고민이 넘쳐나는 편인데, 요즘은 별 생각이 없다. 그래서인지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잘 논다. 멍하니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본다. 별 생각이 없으니 별 자극이 없어서 뭘 봐도 뭘 해도 무념무상이다. 딱히 별일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는데, 크고 작은 실수를 많이 한다.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화분을 깨먹기도 하고, 쓰레기 재활용을 잘못해서 다시 돌아 나가기도 하고 배달 음식을 친구 집으로 보내버리는 등.. 자잘한 실수들이 잦다. 분명 며칠 전에 생각했던 것을 까맣게 잊고 기한이 지나서야 아차, 하고 깨닫는 것도 여러 번. 원체 실수를 잘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웬만한 상황마다 머릿속에 미리 계획을 착착 세우고 실행하는 성격인데, 요즘의 나는 살짝 나사가 빠져있는 것 같다. 근데 그런 상황이 생기면 자책하고 화나고 짜증 날 법도 한데, 그냥 에이 뭐, 됐다. 그러려니 하고 빠르게 포기하거나 해결책을 찾아 행동하고 있다.


작은 실수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부끄러울 큰 사건도 있었는데, 프리랜서 9년 생활 동안 큰 오점으로 남을 만한 일이었다. 변명의 여지없이 내 잘못이었다. 씁쓸하고 속상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이로 인한 다음 스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책하고 후회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 내가 저지른 일, 누굴 탓하랴.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반성하고,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어떤 실수든 해결하는 데는 돈과 시간과 정신력 체력이 모두 곱절로 든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무엇이든 대가가 필요한 거니까. 책임을 지고, 흘려보내기로 한다.



요즘의 이 상태가 나는 썩 탐탁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것도 같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하며, 서툴고 게으르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이 적고 삶의 굴곡도 줄어들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남들에게 뒤처지면 어떡하려고’ … 이런 마음을 다 접어두고 콧노래를 부르며 대자로 누워 심심해하는 기분이랄까.


내 능력의 한계를 알 것.

내 체력의 한계를 둘 것.

나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 것.

나는, 작은 인간이다.



‘나는 작다.’


이상하게 요즘 이 문장을 곱씹을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 엄청난 대작을 그려내지 않아도 돼, 대단한 글을 써내지 않아도 돼, 멋진 옷을 차려입거나 아름다운 외모가 아니어도 돼, 갖지 못할 부를 갈망하지 않아도 돼, 누군가를 꼭 사랑하지 않아도 돼, 가족에게 대단한 힘이 되려고 하지 않아도 돼,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괜찮아…


우주의 푸른 점, 지구의 한 톨 먼지, 그조차도 되지 않는 사람 한 명. 나라는 존재… 뭐 이런 철학적이고 과학에 의거한 거창한 마음가짐은 아니지만, 조금은 <오버뷰 이펙트>의 시선으로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의 이 글은 딱 세 시간 동안 썼다. 못다 쓴 다섯 개의 글은 나도 모르게 자꾸 대단한 교훈이나 깨달음 따위를 이끌어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글은 그냥 손이 가는 데로 썼다. 오늘은 청소와 빨래를 반만 했고, 냉동실에 얼려둔 치킨을 데워 먹었고, 머리를 감지 않았다. 대충 살았듯, 글도 대충 써보았다. 지금 이 ‘오늘의 에세이’가 신중하게 써왔던 다른 글들에 비해 조금은 아쉬울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오늘은 이런 글쓰기를 해본 것도 괜찮은 거 같다. 방금 나는, 글을 쓰는 건 역시 즐겁구나- 라고 아주 작게나마 느꼈기 때문에.


외로워도, 게을러도, 못해도, 포기해도, 잊어도,

그냥 두어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는 작은 한 사람일 뿐이니까.




🪐<오버뷰> 이펙트를 아시나요? 👨‍🚀

Overview effect

: 우주에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인간이 우주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고 겸손해지는 것. 아주 높은 곳에서 큰 그림을 보고난 후 일어나는 가치관의 변화로 폭넓은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효과를 뜻한다.

저는 가끔 우주를 찾아봐요. 나사에서 라이브로 송출해주는 우주 정거장의 풍경을 밤새 틀어놓기도 하고, 지구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위성 영상을 보기도 하는데요.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면서 모든 게 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동시에, 모든 것이 경이로워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추천 영상은, 저도 수십번 봤으며 세계적으로 이미 너무나 유명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점> 입니다.

아래의 문장은 추려서 일부만 남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 글은 모든 문장,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긴 글을 포함합니다. 오늘 00님의 마음에 저 푸른 점은 어떤 의미가 될까요 :) 이야기 들려주세요.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수렵과 채집을 했던 모든 사람들, 모든 영웅과 비겁자들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런 문명을 파괴한 사람들, 왕과 미천한 농부들이,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우주라는 광대한 스타디움에서 지구는 아주 작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인류역사 속의 무수한 장군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그것도 아주 잠깐 동안 차지하는 영광과 승리를 누리기 위해 죽였던 사람들이 흘린 피의 강물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저 작은 픽셀의 한 쪽 구석에서 온 사람들이 같은 픽셀의 다른 쪽에 있는, 겉모습이 거의 분간도 안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셀 수 없는 만행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잦은 오해가 있었는지, 얼마나 서로를 죽이려고 했는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증오가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위대한 척하는 우리의 몸짓, 스스로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망상은 저 창백한 파란 불빛 하나만 봐도 그 근거를 잃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지구는 생명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우리 인류가 이주를 할 수 있는 행성은 없습니다. 잠깐 방문을 할 수 있는 행성은 있겠지만,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좋든 싫든 인류는 당분간 지구에서 버텨야 합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겸손해지고, 인격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류가 느끼는 자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멀리서 보여주는 이 사진입니다. 제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 배려해야 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삶의 터전인 저 창백한 푸른 점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대한 강조입니다.


Pale Blue Dot/ Carl Edward Sagan
#NOWAR 🇺🇦
 

🪐 추가 추천영상  :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1분 과학) 

✉️  💬
블로그의 안부 게시판에
무엇이든 이야기 남겨주세요!

Q. 00님은 창백한 푸른점 보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봉현읽기> 구독/추천하기 🙌🏻
구독료를 보내고 싶으시다면? 
카카오뱅크 3333-18-4833537 ㄱㅂㅎ
Published books 📚
나의 겨울 방학 이야기
나의 작은 집에서 경험하는 크고 안전한 기쁨에 대하여
펜으로 일상을 붙드는 봉현의 일기그림
사랑과 연애,그리고 나에 대해
일러스트로 만나는 2년간의 세계여행 에세이
내 삶의 여백을 채워준 고양이 여백이 이야기
봉현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으신가요? 
궁금하신 점이 있나요? 아래의 링크로 찾아와주세요!
ABOUT BONG HYUN : SNS

봉현
janeannnet@gmail.com

수신거부 😔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