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글을 써야 할까요?
사실 처음에 이야기 나누고자 한 건 '문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문장은 대체 무엇이 다른지,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러나 대화를 나누던 중 마음을 바꿨습니다. 글쓰기는 우주에서 오로지 나만 겪은 것을 고유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자, 동시에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는 왜 글을 써야 할까요? 질문은 꼭 필요한 행위일까요? 우리가 종종 질문하기를 주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무수한 의문 가운데 분명한 한 가지는 질문하지 않으면 답을 할 수도, 찾을 수도 없다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이충걸
이충걸은 한국에서 가장 낭만적인 작은 학교 『스누트스쿨』의 교장이자 작가이다. 그는 글쓰기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며,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저서로는 『슬픔의 냄새』,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의 특별함』이 있으며 대상의 감정과 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기록한 인터뷰집 『해를 등지고 놀다』와 『질문은 조금만』을 펴냈다. 약 18년간 『GQ KOREA』의 편집장을 맡아 한 시대의 문체를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다.
솔직히 이번 인터뷰는 좀 떨렸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말인데, 이런 저를 위한 위로의 한마디로 대화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저는 위로라는 것은 너무 취약하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위로해 줄 만큼 마음의 밭이 넓은 위인은 생각보다 없더라고요. 나이가 들었다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거나 성숙해지는 건 아니에요. 위로하는 사람들도 다 뒷마당에는 고아가 울고 있어요. 저는 누굴 위로할 만한 스승이나 어른은 영원히 못 할 것 같아요. 단지 우리가 함께 있는 순간에 존중감을 갖고 서로를 대하면 그게 그 순간에 대한 매너이자 위로가 아닐까. 사실 '위로'라는 단어도 거의 방치되다시피 흔해진 말이라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떨리는 한편, 굉장히 멋들어진 수락이었어요. 이렇게 말씀하셨죠. “메일 회신이 늦었던 죄로 인터뷰를 수락할게요.” 사실 회신이 빨랐어도 응해주실 예정이었을까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가끔 인터뷰를 하긴 하지만 사실 좀 쑥스러워요. 결국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도 있고. 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가 뻔하잖아요. 만약 제가 한식 주방장이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뭐가 있을까요? 신선한 재료 고르고, 인생, 그리스도··· 그런 건가? 모르겠어요. 아무튼 부끄럽죠. 참, 『브람스라 부르자』 연극 보셨어요?
『브람스라 부르자』 포스터
네, 봤어요. 선생님이 극본 쓰시고, 박정자 선생님이 연기하셨죠.

어떠셨어요?
음··· 무슨 느낌이었냐면 죽기 직전에, 제가 상상하던 천국에서 박정자의 얼굴을 한 이충걸과 마지막 산책을 한 기분이랄까요? 굉장히 여운이 길었어요. 선생님은 어떠셨는데요?

저는 대본을 쓴 사람이니까 몰입할 수가 없어요. ‘혹시 실수가 생기진 않을까? 사운드가 왜 이렇게 작지?’하는 생각에 너무 불안하죠. 저는 공연을 두 번 봤는데, 첫 번째 봤을 때는 선생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으셨어요. 대사도 그렇고 목 상태도 안 좋으셔서 굉장히 걱정했어요. 다행히 두 번째 날은 컨디션이 딱 좋으셨대요. 대사를 시작하자마자 안심이 됐죠. 그렇지만 제가 썼으니까, 몰입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선생님은 자신이 쓴 글에도 몰입이 잘 안되나요?

그냥 잘 썼다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게 무슨 몰입이 되겠어요? 쓰다 보면 또 고칠 게 있고, 또 틀린 게 있고. 그러다 보면 빨리 이걸 벗어나고 싶어요. 제가 1월 아니면 2월 중에 장편소설이 나오는데 그것도 퇴고를 너무 많이 해서 이젠 꼴도 보기 싫어요.
이충걸이 만든 한국에서 가장 낭만적인 작은 학교, 스누트스쿨의 글쓰기 클래스가 10회를 맞이했어요. 감회가 어떠세요?

제가 태어나서 한 것 중에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회계에 밝은 것도 아니고, 아까도 절세 관련해서 뭐 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그게 한국말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제가 잘할 수 있는 걸로 작은 공간을 마련했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너무나도 엄청나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보면 굉장히 기뻐요. 생각보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기쁨이 크고, 아이들이 제가 만든 이 작은 시멘트 교정에서 뛰어노는 걸 보면 흐뭇해요. 우리가 가라오케에서 폭탄주 좀 말다가 만난 게 아니고 스누트스쿨에서 만났다는 게 무엇보다 좋아요. 삶은 너무나 세속적이지만, 어떤 점에선 거룩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순간에 대한 자긍심이 있죠.
평생 하고 싶으세요?

평생요? 네, 그래요. 학생들이 찾아온다면요. 스누트에는 1년 6개월째 다니는 학생도 있고, 그만뒀다가 재등록한 친구들도 있어요. 너무 놀랍죠. 이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서 '나가서 혼자 써봐야지.' 했는데 혼자는 안되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사슬이 필요하죠. 그리고 마지막 코너에 몰리고 마감에 쫓기는 순간, 그 순간에 발생하는 압축적 폭발력에 기대서 글을 써요. 나에게 쌓인 단서가 많다면 그렇게 써도 훌륭한 글이 나오겠죠. 그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순간은 아니에요.
 『이충걸의 글쓰기 클래스』 과제 첨삭본
매번 수업 때 강조하시는 몇 가지 기준이 있지요. 좋은 글의 네 가지 조건 말이에요.

독창성, 문법, 그리고 지식. 독창성이라 하면, 내가 겪은 상황은 우주에서 오로지 나만 겪은 건데 남의 언어를 빌려 쓸 수는 없잖아요. 그 시간이 갖고 있는 고유함을 위해선 고유한 언어가 필요해요. 두 번 다시 반복될 수 없는 나만의 삶을 담은 언어가요. 그리고 문법은 아주 중요하죠.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오문의 왕들이 너무 많아요. 김연아 선수는 점프할 때 치팅 점프를 하지 않고 정석대로 넣거든요? 보통 '치팅 점프'라고 해서 절반을 미리 돌고 몸을 비틀면서 뛰는 점프가 있어요. 근데 그건 진짜 점프가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했을 때 글쓰기의 정석은 문법이에요.

지식도 중요해요. 오늘 날이 추웠다면 '치아가 시렸다.'도 좋지만 ‘한랭전선 시베리아의 오호츠크해 기단 어쩌고’ 같은 이야기를 끌어들이면 전 그게 지식의 내재화라고 생각해요. 글에 지식을 끌어들이면 거기서 강세가 생겨요. "오늘은 추웠어."가 아니라 "오늘은 영하 11.7도였는데 중간진보다 추웠어."라고 한다면 거기서 글의 표정과 윤곽이 드러나는 거죠.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네 가지 중 마지막 한 가지를 빠트리셨어요.

아, 위트. 항상 강조하지만 지루함은 현대 3대 악덕 중 하나예요. 사람들은 남 지루한 건 귀신같이 아는데 자기 지루한 건 몰라요.
한편 수업에서 강조하시는 또 한 가지는 ‘삭제’예요. 하나 마나 한 소리 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시잖아요. 글쓰기에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줄여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하나 마나 한 소리의 핵심은, 그 사람이 다음에 무슨 얘기 할지 다 안다는 거예요. 복학한 선배의 주사가 왜 짜증 나냐 하면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기 때문이죠. 좋은 소리인 거 우리도 모르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말 중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옳은 거 아는데 짜증스럽죠. 애들이 백사장에 쓰러질 때도 이어지는 교장 훈화, 대통령 시정연설, 국정연설은 하나 마나 한 말들의 향연이죠. 안 들어도 뻔한 얘기. 자기도 재미없는 거 알걸요? 마찬가지로 글쓰기에서 ‘삭제’는 밋밋한 글을 강렬하게 만드는 단 하나의 방법이에요.
이충걸, 『질문은 조금만』(한겨례출판, 2023)
『GQ』의 편집장에서 스누트스쿨의 교장 선생님까지,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세요?

바뀐 건, 거기는 사람이 붐비는 백화점에 파이널 세일 코너같은 북적거림이 있었어요. 반대로 여기는 단풍이 진 오솔길의 호젓함이 있죠. 대신 이곳엔 기근이 창궐하고, 거기선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요. 근데 결국 몸과 마음에 좋은 건 적게 먹는 거죠. 저한텐 지금이 중요해요.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도 잘 안 해요. 어떨 땐 스스로 고양이 같다고 느껴요. 고양이는 지금만 생각하니까.
삶에서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당장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죽거나 하지는 않잖아요. 업이 아니고서야 굳이 쓰지 않는 사람도 많고요.

글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능이에요.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지 못한 게 많거든요. 근데 글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심해가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글쓰기는 너무 신비하잖아요. 자음과 모음이 합쳐졌는데 사람을 울리기도 하고 다정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음악과 비슷하지만 글은 그냥 펜만 있으면 되죠. 별다른 기계나 장치도 필요 없고요.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사실 그거는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요. 저는 그냥 이렇게 생각해요. 오늘 이 순간은 그동안 우리가 했던 일들의 열매잖아요. 지금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는 우리가 보여줬던 모든 태도의 열매이니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된다는 것보다는 하루하루를 나태한 즐거움과, 또 필요할 때는 나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집중력으로 그 순간을 존귀하게 대하면 그것대로 어떠한 사람이 되는 거라 생각해요.
혹시 아톰 좋아하세요? 곳곳에 피규어랑 그림이 보여요.

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어요. 아톰은 텐마 박사가 자식인 토비오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그 상실감을 채우려고 만든 기계잖아요. 그 자체로 유한한 것에 대한 비통함이 있죠. 어렸을 때부터 아톰의 그런 배경을 좋아했어요. 감동도 있고요.
평소에 아이 같다는 이야기 자주 들으세요?

많이 듣죠. 왜냐하면 희로애락을 감추지 않기 때문이에요. 기쁘면 기쁘고, 슬프면 슬프고, 눈이 오면 좋고, 추우면 춥고, 그런 거죠. 무언가를 아는 척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다들 기질대로, 천성대로 사는 거죠. 보통 사람들은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지 않으려 하잖아요. 그게 매너이거나 성숙이라고 생각하고요. 근데 저는 싫은 걸 표현하지 않기보다, 좋은 걸 더 좋다고 표현해요. 저는 항상 위선이 위악보다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선생님한테 지금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뭘까요?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우린 서로 익숙해지면 얼마나 방심하는지 몰라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궁금한 게 있어요. ‘60’이라는 나이는 어떠세요? 서른 살엔 안 보이던 게 환갑이라는 나이가 되면 보이나요?

저는 그게 그거라고 생각해요. 현자가 되려고 나이를 먹는 것도 아니고, 서른은 서른대로의 가치가 있는 거죠. 나이가 상징하는 게 있을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제가 그에 대한 강박이 있었다면 꼬마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없었을 거고, 함께 있는 동안 굉장히 거북했겠죠. 근데 저는 다 즐거워요. 그런 저의 성격이 고맙기도 하고요.
기성세대는 나쁜 걸까요? 요즘은 쉽게 ‘꼰대’라는 말을 쓰잖아요. ‘MZ’라는 말이 지천에 널린 것처럼요.

다 나쁘진 않죠. 저처럼 배려 있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벼슬인 사람도 있는 거죠. 근데 나이는 ‘포용’일 수 있거든요. ‘이건 이래야 해, 저건 저래야 해.’ 하고 자꾸 함무라비법전을 만들다 보면, 결국 남는 건 내가 가진 칼로 남을 처형하는 일밖에 없어요. 그리고 그 칼은 결국 자기를 겨누겠죠.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남들 보고 못생겼다고 생긴 거 가지고 비난하는 애들이 더 못생겼어요.
정말 마지막 질문이에요. 죽기 전에 단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무엇을 읽으시겠어요?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있고요. 읽고 싶은 건 많아요. 그런데 죽기 전이라고 하니까, 좀 볼륨이 두꺼운 걸로⋯.
이번 『안팎』은 어떠셨나요? 크든 작든 『안팎』은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안팎』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 『안팎』은 언제나 여러분의 관심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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