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 합법과 불법 사이
포털사이트에 '36주'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추천 검색어로 '36주 낙태', '36주 낙태 브이로그'가 뜹니다.
두 달 전 한 20대 여성이 임신중지 수술을 받는 과정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 시작점이었습니다. 해당 영상이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습니다.
'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를 수사 중인 경찰은 오늘, 수술에 참여한 마취과 의사 등 의료진을 살인방조죄 혐의로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술을 받은 여성과 수술을 한 의사는 지난주 살인죄로 입건돼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두 달 전 취재했던 재판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태어난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한 부부와 아기를 출산한 여성의 모친이 기소된 사건이었습니다.
아기가 사망한 시점은 2015년 3월.
정부가 실시한 출생미등록 아동 전수조사¹를 통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났습니다.
사건 당시 임신 34주차였던 A씨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출산했습니다.
A씨의 남편은 병원으로부터 아기에 대한 진료를 권유받았지만 거부하고 아기를 퇴원시켰습니다. A씨의 어머니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갔고,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던 아기는 사망했습니다.
A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병원에서 진료받을 당시 제왕절개 수술이 아닌 낙태 수술을 하기로 했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그 근거로 '진료를 받은 날 현금 500만원을 병원에 수납한 점',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인 오전 7시에 수술이 이루어진 점', 'A씨가 자필 각서를 써서 병원에 제출한 점' 등을 들었습니다.
지난 6월 13일, 재판부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2015년 당시 수술을 맡았던 산부인과 의사를 증인으로 불렀습니다.
증인은 40년 동안 산부인과의원을 운영해왔고, 임신중지 수술을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임신중지 수술의 경우 보통 태아를 자궁 밖으로 나오게 하는 '유도분만'의 방식으로 수술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왕절개 수술과 방식이 동일한 '자궁절개술'로 하기도 하지만, 매우 드문 경우라고 했습니다.
증인은 A씨가 받은 자궁절개술은 임신중지 수술이 아니라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제왕절개 수술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판사가 증인에게 물었습니다.
"증인은 제왕절개 수술과 낙태를 위한 자궁절개술이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궁을 절개하는 방식으로 낙태 수술을 했을 때 아기가 살아 있는 상태로 나오면 어떤 절차를 거치나, 의사가 아기를 사망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행위를 한다는 건가?"
증인은 "옛날 옛날 시절에는 그런 수술도 있었다고 하더라, 옛날에 선배들이 그랬다는 말을 전해들었다"며 본인은 경험한 바가 없어 답변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 * *
2019년, 임신중지 수술을 한 의사가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A씨와 마찬가지로 임신 34주차였던 한 여성이 병원에서 임신중지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제왕절개 방식으로 태어난 아기를 플라스틱 양동이에 받아둔 물에 담가 사망하게 했습니다. 살인죄와 업무상촉탁낙태죄(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혐의) 등이 적용됐습니다.
1심에서는 두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지만, 2심 재판부는 업무상촉탁낙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²을 내렸기 때문에 해당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2021년,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임신중지 수술을 집도한 의사에게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적용해 처벌할 수 없음을 확정한 첫 판결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시점으로부터는 5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법에는 공백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옛날 일'이라고 치부한 일들이 지금도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36주 임신중지 브이로그' 수사와 별개로, 22대 국회에서 임신중지 보완 입법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¹ 2023년 6월, 보건복지부는 '신생아 번호를 받았지만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아동(출생미신고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2015년에서 2022년 사이 출생한 아동 중 2123명이 미신고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복지부는 출생 미신고 아동의 소재·안전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²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 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제269조 제1항과,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경우를 처벌하는 같은 법 제270조 제1항 중 '의사'에 관한 부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전원재판부결정)
(이 레터는 김주형 기자가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