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뭘 그렇게 세고 있는거야. 그래서 중요한건 뭐라고?
2. 존경받는 사람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은 듣는 행위였다.

숫자란 것은, 말하자면 단지 국가의 질서를 위하여 설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종이 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숫자를 본 사람은 어디도 없다. 이를테면 어느 파티 같은 데서 '7'을 보았다든지 '25'를 보았다든지 하는 것은 절대로 들은 예가 없는 것이 아닌가. 원래 숫자란 가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어령 작가가 쓴 '생각의 축제: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은 몇 개인가'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릴케의 저서인 "말테의 수기"에 나온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숫자에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행복과 즐거움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숫자가 행복을 대신한다는 착각에 살고 있죠.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 데 큰 평수의 집에 사는 친구는 행복하다고 하고 작은 평수의 집에 사는 친구는 불행하다고 합니다. 출장 갔다가 고객사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친구를 마주쳐 반가웠는데 이 친구는 스마트폰으로 주가를 확인하느라 저를 보지도 못한 채 인상만 쓰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지지율에 울고 웃고, 장사하는 분들은 매출에 울고 웃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분은 단기 순이익 계산에 바쁘고, 개업의는 내원 환자 숫자에 민감합니다. 그놈의 숫자 덕분에 오늘 우리의 기분은 좋았다가도 나빴지고, 우울해 하고, 절망하고, 숫자가 좋아지면 하늘도 날고 어깨춤도 춥니다.

우연히 봤던 글이라 정확하지 않지만 SNS에서 요즘 MZ 세대들이 숫자 때문에 불행하다는 글을 봤습니다. 남자는 키가 180은 넘어야 하고, 여자는 165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답니다. 결혼하려면 강남에 30평대의 아파트는 한 채 있어야 하고, 연봉은 5천만원은 돼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해 결혼을 자꾸 포기한다고 합니다. 누가 정한 기준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숫자가 나에게 없으면 남들보다 뒤쳐져 있다고 느끼고 불행하다 생각합니다.

MZ 세대가 아닌 일반인들도 숫자와 관련된 소식을 참 많이 접합니다. 삼성전자 주가가 7만원을 회복했다, 비트코인 시세가 3천만원 대까지 떨어져서 밥이 안 넘어간다, 누구네 집 아이는 반에서 1등 한다는데 너는 왜 계속 2등만 하느냐, 영어 말하고 쓰는 데 불편함이 없는데 토익 점수가 800점밖에 되지 않아 슬프다...

언제부턴가 무엇을 하든 특정 숫자가 아니면 의미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숫자에 끌려가는 불행한 세상에 살게 된 것입니다. 숫자가 없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측정할 건가요? 어떻게 표현할 건가요? 저의 오늘 하루를 숫자 없이 적어보니 이런 글이 나오더군요.

커튼을 열고 잤더니 아침 햇빛에 저절로 눈이 떠져 일어났습니다. 일어난 김에 아내와 아이도 깨우고 밥을 준비해 먹여 봅니다. 아침 일찍부터 아이 바이올린 레슨 약속이 있어 조금 서두는 데 아이는 그런 제 마음도 모르고 어린이집에서 만들어 온 셀로판지 안경을 갖고 노느라 정신 없어 합니다. 귀여서워 계속 바라보고 싶지만 그래도 집을 나설준비를 해 봅니다. 어제 제법 따뜻하게 입고 돌아다녔는 데도 추웠던 게 기억납니다. 오늘도 추울까 싶어 창문을 잠시 열었는데 왠지 어제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이를 두툼하게 입혔습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가 헉헉 거릴 때까지 집에서 축구를 하다 씻겨 재웠습니다.

이런 글도 숫자를 사용해 다시 써보니, 뭐랄까 인간미가 없어지더군요.

아침 7시, 저절로 잠이 깨 일어났습니다. 아이 레슨 가려면 집에서 9시 20분에는 나가야 하니 적당한 것 같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깨우고 밥을 준비해 먹이니 8시 50분. 회당 3만원이나 하는 바이올린 레슨이라 늦으면 손해라 아이를 보채 봅니다. 어제 기온이 영하 12도였던 것이 기억나 오늘은 어쩌나 하고 어플을 확인해 보니 오늘은 낮에 영하 5도 정도까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침엔 추울 수 있으니 아이를 두툼하게 입혀 집을 나섭니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20시쯤 집에 돌아왔습니다. 10분 동안 아이와 집에서 축구를 하고 씻기니 벌써 21시가 다되갑니다. 내일도 아침 7시쯤 일어나서 나가야 해서 아이를 서둘러 재웠습니다.

확실히 숫자로 표현한 글이 좀 더 명확하게 다가오긴 하는 데 저의 취향은 첫 번째 글입니다. 숫자를 빼고 상황을 설명하려니 제 감정과 상태를 더 자세히 설명하게 되더군요. 세상에서 숫자를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숫자에만 연연하지 않으면 우리는 좀 더 꿈과, 사랑과, 고마움과, 정의를 이야기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 숫자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보면 어떨까요? 밥 먹을 때 칼로리를 생각하기 보단 내 몸에 좋은 음식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세요. 오늘 기온은 몇 도일까 생각하기 보단 창문을 열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고 나를 스쳐가는 바람의 날카로움을 직접 느껴보세요. 아파트 평수를 생각하기보단 집이 작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나 친구의 소중함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게 진짜 삶이 아닐까요?

—📝 우아한 세상을 소개하는 지식노동자, 앤드류—

대립하는 인간

우리는 매 순간 판단하고 평가하며 어떤 의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 의견은 다른 의견과 대립을 하곤 합니다. 정치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합니다. 현대 미술은 난해함을 비판하는 의견과 그 가치를 인정하는 의견이 대립합니다. 최근 한국 대중의 이슈인 깻잎 논쟁은 애인이 깻잎을 때주는 것이 화낼 일인가 아닌가를 가지고 대립합니다. 서구 문화의 고전적인 대립으로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하와이안 피자를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거운 주제부터 가벼운 주제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립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대화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비판과 비난이 오가는 살벌한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결론은 좋으면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으로, 나쁘면 상대가 무식하고 비윤리적인 인간인 것으로 마무리 지어집니다. 서로에 대한 이해만 달라질 뿐 주제에 대한 답을 내리지는 못합니다.  왜 이럴까요?

정당함에 대한 주제들은 대립할 수밖에 없으며 답을 내릴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지식과 이성을 사용하는데, 그것들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식의 한계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다음 세 가지 문제 때문입니다.

두뇌 능력의 제한. 인간의 두뇌는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합니다. 이때 기억되는 것의 일부가 지식입니다. 우리 뇌의 정보 처리 속도와 기억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배움의 속도에 정도가 있고, 또한 배운 것을 전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고도화된 지식. 현대에는 수많은 분야와 하위 분야가 있으며, 각 분야는 복잡한 전문 지식을 요구합니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의학 등 여러 상위 주제가 있습니다. 이 중 의학만 하더라도 하위 분야로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등 30가지가 넘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지식의 영역은 계속 확장하고 특화되고 있습니다. 결론은 세상에는 알게 참 많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지식의 변화. 이미 존재하는 지식을 모두 배우기도 벅찹니다. 그런데 지식은 시간과 연구의 진전에 따라 변화합니다. 역사적인 예로 과거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고전 과학의 주류였던 뉴턴 역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대체하고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카오스 이론도 연구되고 있죠.

세상에는 지식이 넘쳐나고 또 새로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개인으로써 그 모든 것을 배울 수 없습니다.

이성의 한계

윤리에서 결과론과 의무론은 유명한 대립 관계입니다. 이 개념을 처음 들어보는 독자분들도 다음 예시를 통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의무론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강조합니다. 결과가 어떠했는 지 보다는 그 의도가 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의무론에 대해 결과론자들은 아래의 예를 들며 비판합니다.

지금 당신의 집에 독립운동가가 숨어있다. 그런데 일제 경찰이 찾아와 집에 독립운동가가 있는지 묻는다. 만약 당신이 사실대로 말한다면 독립운동가는 잡혀가 죽을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면 도덕적 의무를 어기게 된다.

의무론자는 위 상황에 놓이면 이도 저도 못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결정론은 선한 결과가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 상황에서 결정론자라면 집에 독립운동가가 없다고 거짓말해서 그의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의무론자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그들은 결정론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을 합니다.

한반도 남북 전쟁 중, 남한은 북한의 수뇌부 위치를 알아냈다. 남한은 북한의 수뇌부를 폭격하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수많은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만약 결과론에 따른다면 더 큰 전쟁 피해를 막기 위한 명분으로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의무론자들은 결과론이 대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할 위험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처럼 의무론과 결과론 둘 다 일리 있는 말 같지만, 함께 놓고 보면 모순이 생깁니다.

철학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이성의 막다른 길(Reason’s Dead-End)이라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 다다랐음을 의미합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이를 안티노미(Antinomy)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철학적 주제는 그 끝에 결국 모순을 맞이합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의 시작은 개인의 믿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의 폭력성

“무엇이 옳고 그른가?”

이 질문에 대해 하나의 대답을 정하려 한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갈등할 것입니다. 지식과 이성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갈등하는 상황에서 지식과 이성으로 대결하려 합니다. 서로에 대한 비판이 계속 오가지만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결국 인내의 한계에 다다르면 분노하고 서로를 비난하며 상처를 줍니다. 비참한 사실 중 하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픔을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식과 이성의 한계에 대해 늘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틀릴 수 있음을, 그리고 내 주장이 완벽할 수 없고 모순될 수 있음을. 주장은 결국 우리의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해야 합니다. 상대는 나와 다른 경험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에 경청함으로써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경청할 때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대신에 상대를 생동하는 한 존재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쁘면 웃고, 두려움에 떨고, 슬픔에 눈물 흘리는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