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길 떠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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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시작된 이건희 회장 컬렉션 전시회. 이번 전시회에서 이중섭 화가의 <황소>가 공개되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고!
👻 이중섭 화가의 <황소> 원본이라니! 정말 유명한 작품 아닌가령? 그런데 이런 작품을 그린 이중섭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산 인물인가령?

▲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이중섭
나의 삶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조문객들이 조촐하게 모인 한 병원의 로비. 이중섭을 추모하는 두 편의 시가 낭송되고 있어요. 그리고 그를 기리는 시의 낭송이 끝나자 그를 추모하던 사람들은 이중섭이 사랑했던 오브제*인 게와 조개, 천도복숭아, 등으로 모습을 바꿔 퇴장하죠. 그리고 무대 중앙에 그가 사랑했던 소가 남아 그의 젊은 날의 한 장면을 비추기 시작해요. 오늘 소개해드릴 희곡, <길 떠나는 가족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인 이중섭의 전 생애를 담은 작품이에요. 작가는 이중섭의 삶 속 사랑과 고난, 이별의 여정을 기리며 한 명의 화가이자 아버지,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그의 삶을 무대 위에서 재조명하죠.

*오브제 :  미술 용어. 어떤 물건이나 대상이 원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가질 때 오브제라고 부름.

유령이 플로터도 한 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을 화가 이중섭은, 민족의 얼과 혼을 표현한 소재이자 자신의 자화상으로 여겼던 를 강렬하고 역동적인 색상과 붓터치로 그려낸 것으로 매우 유명해요. 이와 동시에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사랑이 가득한 가족의 그림을 많이 그려낸 화가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죠. 그리고 이러한 이중섭의 삶을 희곡 <길 떠나는 가족들>로 재구성한 김의경 극작가는 원래 주로 한국의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희곡화 시키던 분이었어요. 그런데 평소 작품들과 달리 <길 떠나는 가족들>에서 그는 이중섭이라는 한 명의 예술가를 조명했죠. 이는 김의경 극작가에게 이중섭이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의 비극 속에서 피어나, 한국의 아픔과 정서를 가장 뼈저리게 담아낸 예술가로 다가왔기 때문이에요. 특히 고통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도 민족의 얼과 혼을 놓지 않고 화폭에 그려낸 위인으로서도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고.

👻 : 김의경 극작가는 희곡 <남한산성>으로도 유명한 작가가 아닌가령? 그를 사로잡은 이중섭의 작품 세계와 삶이 어땠는지 더 알고 싶어령!

▲ <황소> 1950년대, 이중섭
반 고흐를 길러낸, 식민지의 예술가들👫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이 된 이중섭.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중학교 졸업 후 평안북도 정주에 위치한 오산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예요. 그는 원래 형이 다니던 평양의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그동안 미술에 빠져 공부를 등한시한 탓에 불합격 통보를 받고 오산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곳은 오히려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스승을 만나는 장소이자 그의 화가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이중섭이 입학한 오산학교는 3·1운동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인 남강 이승훈 선생이 설립한 학교로,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한민족의 결속을 중시하는 민족주의의 색채가 강한 곳이었어요. (👻 : 대표적인 민족주의 문학가 김소월, 백석, 황순원, 주기철도 오산 학교 출신이에령!) 그리고 이 학교에서 이중섭은 미술교사이자 평생의 스승인 임용련, 백남순 부부를 만나게 되죠. 사실 이 부부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등장하기 매우 힘든 예술가였다는데!

특히 임용련의 경우 1910년 3.1 운동에 깊이 관여한 이후 수배령이 떨어져 상해를 거쳐 미국으로 도피했다가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을 수석 졸업한 인재였어요. 그리고 수석 졸업자의 특혜로 1년 간 유럽 연수를 떠났다 방문하게 된 파리에서, 조선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유럽에서 미술 유학을 하고 있던 백남순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죠. (👻 : 이번 이건희 컬렉션 전시회에는 백남순 여사의 그림도 있다고 하니 방문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찾아보세령!) 그러나 이후 희망을 품고 돌아온 한국에서 다시 경찰의 감시에 시달리게 되는 등, 화가로서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둘은 오산 학교로 이동해 교사가 돼요. 이 두 예술가는 학교에서 단번에 이중섭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에게 미국과 유럽에서 보고 배운 후기 인상파*, 야수파* 화풍을 전파했어요. 그리고 “조선인은 조선인다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가르치며 언제나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라 지도했죠. 그래서 이때부터 이중섭은 학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를 대상으로 수많은 습작을 그리게 되었어요. 그리고 훗날 이중섭이 우직한 소의 모습에 격동의 시대 가운데 굳건히 지켜진 한민족의 얼과 혼을 강렬한 붓터치로 담아내면서, 소는 그를 대표하는 오브제가 되었다고!

*후기 인상파 : 빛의 변화에 따른 인상에만 집중하던 기존의 인상파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을 적극적으로 담으려 한 미술 사조.

*야수파 : 후기 인상파에서 화가의 주관과 감정이 극대화된 미술 사조로, 강렬한 색채와 즉흥적인 붓질을 특징으로 함.

👻 : 우와 이중섭 화가의 소 그림이 이렇게 시작된 거군령?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예술계가 암울했던 시대에서도 민족을 대표하는 화가를 길러낸 두 스승님께 감사드려야겠어령!

▲ 이중섭과 이남덕 여사의 결혼 사진. 1945년
원수의 국가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두 스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중섭은 오산학교 졸업 이후 더 넓은 세상을 보라는 임용련의 권유에 따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그리고 그는 아방가르드* 성향이 강했던 미술학교인 문화학원에서 자유로운 화풍을 흡수했죠. 반도에서 온 천재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이중섭은 이곳에서 그의 작품 세계의 핵심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돼요. 이 두 젊은 남녀는 곧 꿈같은 사랑을 시작하게 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앞에는 녹록치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죠. 세계 2차 대전으로 인해 학교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떠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도쿄 화단에서도 조선인의 신분으로 입지를 다지기 어려워지면서 이중섭의 일본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는 1943년에 함경남도 원산으로 혼자 돌아오고 말았어요. 하지만 2년 후 1945년, 이중섭을 열렬히 사랑했던 마사코가 온갖 고비를 넘겨 그의 집을 찾아가게 되면서 둘은 극적으로 결혼에 성공하게 된다고!

*아방가르드 :  예술, 문화, 사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작업을 일컫는 말.

👻 : 이때 이중섭은 마사코에게 ‘따뜻한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인’ 이라는 뜻의 ‘이남덕’ 이라는 이름도 지어줬대령~

▲  <서귀포의 환상> 1951년. 이중섭
시작된 평생의 고난😩
이 둘은 이듬해인 1946년에 첫 아이를 갖게 되는데요,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디프테리아*로 사망해 이중섭은 큰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첫 아이의 사망은 이중섭이 삶에서 겪게 될 고통의 시작에 불과했죠. 해방 이후 이북에 있던 원산을 공산당이 점거하자 그의 형이 친일파 부르쥬아로 몰려 끌려가 사라지고 말았거든요. 설상가상으로 전쟁의 요충지였던 원산에 미국의 가혹한 폭격도 시작됐어요. 급박해지는 상황 속에서 그는 형을 기다리겠다는 형수와 노모를 남기고 아내와 아이들, 조카를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죠. (👻 : 이때 작품의 대부분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떠나 이중섭의 초기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어령.) 이후 제주도에 잠시 머물며 한라산에서 부추를 따고, 바닷가에서 게와 조개를 잡아먹는 등 매우 궁핍한 삶을 이어나가다 부산으로 다시 이주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어요. 안타깝게도 1952년에는 가족들의 건강마저 매우 악화되었고, 장인의 사망 소식이 겹치면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디프테리아 : 디프테리아 균에 의해 발생되는 급성 감염 호흡계 질환.

👻 : 영양실조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에게는 가족과 함께한 제주도에서의 시간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던데... 결국 가족과 헤어지고 말았다니 코끝이 찡해져령..

▲  이중섭이 이남덕 여사에게 보낸 편지
다시 보는 그 날만을 그리오, 내 사랑💌
그는 남한에 남아 있으면서 가족들에게 매일 편지를 썼는데요, 이 편지들에는 하루 빨리 재회하기를 바라는 애틋함이 담긴 그림들이 함께 그려져 있었어요. 그리고 그리움을 이길 수 없었던 이중섭은 결국 1953년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들을 잠시 만나고 돌아왔죠. (👻 : 슬프게도 이는 결과적으로 가족들과의 마지막 만남이 되고 말았지령.) 이중섭은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그림을 팔아 하루빨리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어요. 그리고 이 때 ‘소 연작’과 함께 가족과의 제주도 생활 중 즐거웠던 시간들을 그려낸 유명한 걸작들이 탄생했다고. 그는 동료들의 도움으로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도 열었는데요, 다행히 이 개인전은 상당히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어요. 45점 중 무려 26점이나 판매가 예약되었거든요!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전시회가 끝난 후 작품의 대금을 제때 지불하는 이는 거의 없었고, 이때 이중섭은 구매자들의 집을 방문하며 수금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매우 큰 괴로움을 느꼈죠. 그리고 이후 심각한 음주와 건강 악화, 정신 착란 등의 증세를 겪게 되면서 결국 1956년 9월 6일, 서울 보라매 병원에서 쓸쓸히 사망하게 되었다고.

👻 : 강렬한 채색과 화풍의 작품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기억됨에도 불구하고 참 외로운 생이었군령...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도 꼭 기억하고 위로해주었으면 좋겠어령.

💁 :  작품을 읽기 전까지 화가 이중섭은 미술 교과서에서 스치듯 본 <황소>라는 작품으로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소가 뿜어대는 힘찬 에너지는 어렸던 제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이 희곡을 통해 이중섭의 삶, 예술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온갖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절대 그림을 놓지 않았던 집념과 순수한 열정은 이중섭 예술혼의 근본이었을 겁니다. 한편 희곡 <길 떠나는 가족>에서는 이중섭 예술 세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축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이중섭의 지극한 사랑, 그리움이 부각됩니다. 특히 한국전쟁 중에 가족을 처가가 있는 일본으로 보낸 뒤 긴 시간 홀로 가난과 싸우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글과 그림이 빼곡한 엽서로 사랑을 전했던 순하고 따뜻한 마음이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가난이란 고통에 직면했을 때 가장 먼저 외면하게 되는 게 예술일 겁니다. 성공을 위해 가족을 저버리는 신파가 요즘도 드라마에서 흔히 재현되곤 합니다. 계속되는 가난과 실패 속에서도 예술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이중섭의 삶은 오히려 비인간적으로 비칩니다. 하지만 <길 떠나는 가족>을 통해 그의 구도적인 삶을 쫓아가다 보면 애써 잠재웠던 우리 안의 예술과 사랑,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갈망이 깨어나는 것 같은 벅찬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 : 오늘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아요!

이중섭에게 제주 서귀포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가난했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했고, 가족이 떠난 뒤로부터 죽을 때까지 그때의 추억을 삶의 동력으로 삼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돌아봐도 행복에 젖어 꿈처럼 느껴지는 순간, 장소, 여행지, 장면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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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들 집중 💎
희곡 <길 떠나는 가족>

학창 시절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이중섭의 전 생애를 속도감 있게 다루며 그의 삶과 작품 세계 사이의 연결 고리를 풀어내는 희곡 <길 떠나는 가족>. 이번 레터에서 전부 다루지 못한 이중섭의 말년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그의 삶 구석구석에 가득했던 아내 마사코 그리고 아이들과의 사랑은 얼마나 따스했을까요? 지만지 드라마의 희곡을 통해 직접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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