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회 (2024.01.24)

안녕하세요. 박정민입니다.

그간 별일 많으셨죠? 모쪼록 조금만 아프셨길 바랍니다. 저는 그 짧은 시간 사이에 무려 세 명의 인간을 당사자 몰래 용서하는 기적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전 열불이 터질 때마다 저의 달콤한 솜주먹을 움켜쥐어보는데요. 오늘따라 유난히 손이 곱네요. 용서 외엔 방도가 없으니 이내 너그러워집니다. 주먹이 물렁할수록 마음도 물렁해지는 법인가봅니다. 

점점 내 편이 없어집니다.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 편이 아닙니다. 이해관계 속에서 내 편 찾기란 사실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전 매일 밤마다 버릇처럼 혼자서 이겨내는 법을 찾습니다.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게임을 하거나, 운동을 합니다. 보통 게임을 한다는 소립니다.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으로 전 요즘 이 편지를 쓰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시를 읽는데요. 아직 제게 시란 것은 상대편 정글 동선처럼 느껴집니다.

전혀 모르겠어요.

마음을 차분히 하려고 펼쳐 든 시집조차 내 편이 아닙니다. 깜빡 잠에서 깨어 수첩에 적어놓은 생생한 꿈 내용을 한 달 뒤에 다시 보는 느낌입니다. 분명히 생생했고, 말도 됐는데, 다시 보니 ‘도대체 이게 뭐더라’ 싶은 그런 느낌 말이죠. 어쩌면 시는 시인의 꿈 같은 걸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꿈을 차차 내 편으로 만들어봐야겠습니다. 너의 꿈이 나의 편이라니 제법 든든합니다. 그래서 전 요즘 시 한 편씩을 간간이 공책에 옮겨 적습니다. 물론 이 또한 반강제적인 행동이긴 합니다만 마냥 싫지만도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어젯밤 이 시를 수첩에 옮겨놓았습니다.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_이문재, 「문자메시지」 (『지금 여기가 맨 앞』)

이토록 내 편이라니. 꼭 나쁜 데 쓰고 싶을 정도로 한 글자 한 글자 가슴에 와 박힙니다. 마음이 가득한 것이라면 문자메시지도 시가 될 수 있나봅니다. 이 메시지를 받은 시인은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요. 어디에 계셨을지, 날씨는 어땠을지, 어떤 소리가 나고 있었을지, 참 많은 것이 궁금합니다. 만약 나였다면 바로 은행 어플 누르고 입금 확인부터 했을 텐데, 시인님은 이 메시지를 시로 옮겨 또하나의 답장을 남기셨네요. 시인이 이렇게나 다정합니다. 그런 사람의 꿈을 품에 지니고 사는 것은 상당히 낭만적인 일이겠구나 싶습니다. 내일도 또 하나의 시를 공책에 옮겨 적어봐야겠습니다. 그러다보면 집구석에 먼지처럼 처박힌 제게도 이런 시 한 통이 날아오는 날이 오겠죠. 시의 저 동생처럼 제 동생도 분명 온전한 나의 편일 테니 언젠가는 “오빠 백만 원 부쳤어. 나쁜 데 써도 돼”라고 보내주겠죠. “오빠 아이디로 넷플릭스 접속했어. 나쁜 거 봐도 돼?”가 아니라 말입니다.

더불어 여러분들께 이 편지가 짧은 시가 되어드리길 바라봅니다. 다른 작가님들처럼 글솜씨가 훌륭하지 않아서 가슴 깊이 남는 심상을 드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백만 원도 드릴 수는 없겠지만, 찰나의 작은 쉼이 되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편지에 작지만 단단한 응원의 마음을 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덜 불안하시고, 더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또 뵙겠습니다.

박정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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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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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동네♫녹음실이 열렸습니다. 다들 놀러오세요~ 작가의 낭독으로 작가의 글을 직접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들려드릴 낭독은 류휘석 시인의 「유실물」입니다. 

미래에는 여름이 더 길어질거야/극소량의 밤만이 남아/사람들이 죄다 낮으로 도망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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