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Note

“여보, 이상해”.

“뭐가?”

“생리할 때가 됐는데 안 하네.”

“응?”

“둘째 가진 건 아니겠지?”

“으으응???” (그럴 일이 없었잖아?) 

둘째라니.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아내의 말은 내게 적잖은 긴장감을 불러왔다. 아직 하나를 키우기도 벅찬데 1+1이라니. 자동차 뒷 좌석이 두 개의 카시트와 두 아이로 꽉 차는 상상을 하니 머릿속이 벌써 답답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장모님도 같은 마음이셨을까. 평소 휴식에 전념하실 주말에 이따금 아내에게 전화를 하신다. 겨우 손주 하나를 어린이집에 보내 여유가 생겼는데 새로운 손주라니.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지만 이미 송구한 일을 저지른 느낌이었다.

아내는 불안해하는 장모님을 놀리는 게 재밌는지 이미 둘째를 임신한 사람처럼 출산 후 청사진을 펼쳐놓았다.

“딸이면 좋겠다. 이현이도 형보다는 오빠가 된 모습이 어울릴 것 같아.”

“당신에게도 좋은 기회야. 내가 처음 임신했을 때 못해준 걸 만회할 수 있잖아.” 

아내의 수다를 듣다가 우리의 첫 임신을 알게 된 순간이 떠올랐다.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날이었다. ‘설마 아니겠지’로 일관하던 나와 달리 아내는 낙천적인 태도로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했다며 기뻐했다. 우리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구체적인 건 기억나지 않지만, 아내의 감정이 두려움 대신 기쁨이었던 것만큼은 잊히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현실적인 고민부터 한다. 새롭게 펼쳐질 돌봄 전쟁. 두 배로 힘들어질 것 같은 직장생활. 두 배로 늘어날 기저귀 값과 다시 챙겨야 하는 신생아 용품들. 매일 밤 찾아올 고난의 원더윅스와 100일 즈음까지 이어질 수면부족. 그리고 혹여나 재발할까 두려운 아내의 산후우울증까지. 첫째 때는 (경험하지 않아 미리 할 수) 없었던 고민들까지 더해 불안한 상상을 한다. 카시트를 어떤 브랜드로 살지, 이제 유아차 대신 웨건을 사야 할지는 그나마 행복한 고민에 속했다. 

“둘째는 생각 없어?”

싱글에게 결혼 관련 질문이 따라다니듯, 아이를 한 명 가진 양육자에게 잊을만하면 이 질문이 반복된다. 묻기만 하면 다행이다. ‘아이는 무조건 둘 이상’, ‘외동은 아이가 외롭다’, ‘딸을 꼭 낳아야 한다’, ‘아들 낳아봤자 소용없다’ 등 정답의 탈을 쓴 고정관념이 표출되는 순간 명절에 겪을 법한 라떼 수업이 시작된다. 

나의 답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응, 아이 하나로 충분해. 지금의 안정과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내 주변에는 외동인데도 잘 자란 사람 많아.” 

아이가 둘 이상인 사람에게는 아이 하나로 평화를 논하는 내 모습이 가소로울 수 있겠다. 하지만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람에게 불확실성만큼 힘든 존재도 없다. 두 돌을 넘긴 이현이가 겨우 어느 정도 통제 범위에 들어온 것처럼 보이는 진행형의 불확실성이라면, 둘째부터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상자를 열면 분명 불확실성 대잔치가 열리겠지.

아이 갖기를 망설이는 부부나 하나를 키우면서 더 낳기를 망설이는 부부나 걱정의 본질은 그리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따져볼수록 단점이 더 부각되기 쉽고, 투자와 ROI 관점에서도 수년간 이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대에는 아이가 삶의 불확실성을 유독 더 키우거나 내 삶의 주도권을 빼앗아가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함께여서 덜 힘들 수 있지만 함께여서 더 힘든 순간도 분명 있다. 이왕이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좋은 순간만 누리고 싶은 게 나만의 지나친 욕심일까.

한편 이 모든 게 편견, 고정관념 또는 클리셰가 아닌가 싶다. 아이가 있든 없든, 그 아이가 첫째든 둘째든, 외동이든 대가족이든 인생은 똑같이 불확실하고 그 인생을 개척할 기회 역시 동등하기 때문이다. 무자녀 인생과 유자녀 인생을 나누고, 첫째와 둘째의 패턴을 단정 지어버리면서 그들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보편적 패턴은 존재하겠지만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마저 바라보지 않는 건 미래를 혈액형이나 MBTI 따위에만 의존해 살아가는 것과 뭐가 다를까.

둘째에 대한 나의 두려움도 마찬가지다. 분명 둘째가 주는 행복까지 포함하면 그 인생의 스펙트럼도 광활할 텐데 불행에 가까운 쪽만 바라본 느낌이다. 아내처럼 좋은 상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내가 챙겨야 할 일에 과몰입하고 태어나지도 않은 둘째의 기질까지 까탈스럽다고 단정해 버리기도 했다. 부모 역할을 과대 포장한 건 아닐지, 첫째 때 육아를 열심히 했다고 유세 부리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물론 첫째보다 둘째가 덜 힘들 거라는 보장도 없다.)

돌이켜보면 계획된 순간에 찾아온 행복은 없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이현이를 키울 때 행복했다고 기억하는 설렘, 신기함, 기쁨, 놀람 등의 감정은 계획된 경험이 아니었다. 만약 육아를 비롯한 모든 게 확실하고 예측 가능했다면, 아이가 예정일에 맞춰 정확히 태어나고 정해진 순간에 걷고 정해진 시간에 말을 했다면, 가장 완벽한 사진과 영상을 남겼을지 모르지만 결과를 알고 보는 스포츠 경기처럼 즐거움도 임팩트도 덜했을 것이다. 

가끔은 모든 일상이 특별했던 아이의 신생아 시절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땐 아이가 손짓 하나만 달리해도 감탄했고 옹알이만 해도 영상을 찍곤 했다.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사진을 수십 장 찍었고, 50일부터 100일까지는 발도장까지 도화지에 찍어가며 크기를 비교했다. 아내는 그 순간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서라도 둘째를 갖고 싶다고 한다. 나는 반반이다. 아이의 처음을 또 경험해보고 싶으면서도 첫째만큼의 놀라움은 없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온갖 생각이 둥둥 떠다닌 지 일주일 만에 아내는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병원에서는 생리 지연에 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고, 아내는 며칠 뒤 대자연의 섭리를 따랐다. 알게 모르게 상실감을 느꼈는지 그날 아내의 기분도 좋지 않았고, 우리는 오랜만에 부부싸움을 했다. (계획된 순간에 찾아온 싸움도 없었다.)

앞으로 언제 또 둘째의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혹여나 바랄 수 있다면 더 많은 시간 여유를 두고 계획하고 싶다. 이현의 신생아적 기억이 아주 희미해질 즈음, 웬만한 것들을 다 잊어버려 모든 순간을 처음 경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때, 지금의 육아가 너무 안정적이고 지루해져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때쯤 말이다. 물론, 내 계획대로 찾아온 행복은 아직 없었다.

Fathers' Update

지난 레터(40화 내 아들의 💩이야기)에 보내주신 답장들을 소개할게요. 고맙습니다.

💬 디테일한 묘사에 감동하고 갑니다. 💩은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수혁)

💬 아직 아이들이 둘 다 어려서 일(?)을 보고 우릴 부르면, 저나 아내가 달려가서 물티슈로 💩을 닦아주곤 합니다. 그런데 💩도 성격 따라가는지… 평소 깔끔하고 손도 알아서 잘 씻는 첫째의 💩은 한 번만 스윽 닦아도 더 이상 닦을 곳이 없는데, 천방지축 둘째는 여러 번을 닦아야 없어지네요;
매일 같은 밥 먹이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 💩처리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뒤끝(?)이 사람마다 다른 건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웃음) (베지밀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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