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9 - 2025.08.24 / 양면의 조개껍데기, 슈즈오프X엄정화, 악뮤 단독 콘서트
 눈 떠보니 현직 대통령 공식 유튜브 채널의 썸네일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걸그룹 트와이스를 마주하는 나날들입니다. 저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공개일 바로 다음날에 보았는데요. 아직도, 여전히, 기꺼이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나 생명력이 긴 콘텐츠를 보는 일은 무척 드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빠른 호흡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지나간 것들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 대한 감각은 얼마 전 다큐멘터리 <알파고>와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 그리고 이세돌 전직 바둑 프로기사의 《이세돌, 인생의 수 읽기》를 나란히 보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얘기는 8월 26일자로 업데이트 될 팟캐스트 <두둠칫 스테이션>에서 들어보실 수 있고요. 그럼, 오늘의 레터를 시작합니다.

01. (광고) 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02. 슈즈오프X엄정화(유튜브 <SPNS TV>)
03. AKMU 스탠딩 콘서트 '악동들'

 01. 

김초엽 《양면의 조개껍데기》

© 래빗홀ㅣ2025년 8월 27일 출간


 김초엽 작가가 4년 만에 소설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소설집에는 벌에 쏘이고 싶다(<고요와 소란>)거나, 녹슬고 싶다(<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기벽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수중에서는 기억을 잃은 돌고래가 온갖 종류의 소문을 찾아다니고(<소금물 주파수>), 양봉업자와 곤충학자는 “대체 뭘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찾아 세계 곳곳을 들쑤시는 두 여자”(<달고 미지근한 슬픔>) 취급을 받는다. 그들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걸 욕망하고 정처 없이 이동한다.


 오늘은 김초엽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에 실린 단편소설 중 표제작 ‘앙면의 조개껍데기’와 가장 좋았던 ‘비구름을 따라서’를 소개한다.



수록작 ¹ <양면의 조개껍데기>


 28세 여성 샐리는 나의 조금 다른 면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중이다. 샐리는 진료 초반에 “각각 따로 이름이 있는 겁니까?” 라는 질문을 의사로부터 받는데, 그 지구인 의사는 ‘자아’뿐 아니라 ‘타자아’와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샐리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다. 샐리는 인간이 아닌 ‘셀븐인’인데 셀븐인들은 수중 압력을 잘 버텨내기에 오래 잠수할 수 있고, 이 점에서 지구인들로부터 부러움을 산다. 그래서, 샐리는 외딴 행성의 루피너스 심해를 촬영하고 싶어 하는 해양 다큐멘터리 제작진으로 일하기에 적격이다. 그리고 일터에서 만난 다큐멘터리 감독과 사랑에 빠진다.


 지구인과 셀븐인. 이종간의 사랑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다자연애다. 그런데 이제 다자연애인데 몸은 두 개인. 그런데 이제 또 삼자대면을 하는 순간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감정의 화살표는 복잡해진다. 감독은 샐리의 두 자아에 ‘라임’과 ‘레몬’이라는 애칭을 붙여주고 그 둘 모두와 사랑을 주고받는다. 레몬과 라임은 감각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이므로 감독이 나 아닌 쟤한테 주는 다정한 시선을 느끼고, 갓 사랑에 빠진 쟤가 느끼는 감정적 여파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래서 작중 화자인 ‘라임’은 생각한다. 우리 분리되자! 복잡하고 비싸더라도 의료적 도움을 받자! 이렇게 계속 연루돼서 살지는 말자! 우리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삶이 어떤 건지 좀 느껴보자고!


 로맨스라는 새로운 이벤트가 끼어들자 이 삶이 불편함투성이로 느껴진다. “하지만 모든 일을 다 편안한 상태로 만드는 게 옳은 건지도 생각해볼 문제였다.”고 레몬이 생각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너무 많은 감정과 감각의 풍파가 있다. 그냥 마음을 맡기고 파도를 타면 된다. 



수록작 ² <비구름을 따라서>


 평소 보드게임을 즐겼고, 게임으로 알게 된 친구와 살게 됐고, 놀이공원에서 캐스트로 일하며 폐품 처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여자가 사고사로 사망하면 그를 기리는 자리에는 누가 올까? ‘비구름을 따라서’는 보드게임 개발자, 아르바이트 동료, 최근까지 그와 함께 살던 룸메이트이자 주인공이 고인으로부터 의문의 추도식 초대장을 받고 모이면서 시작된다.


 현실에 없는 물건을 만들고 그 쓰임새를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말로 설득시켜야 점수를 얻는 보드게임 ‘노바 파우치’를 소재로 한 이 소설에는 현실에서 내가 잃어버린 물건들이 아주 많이 나온다. 나는 며칠 전에도 우산을 버스에 두고 내렸고, 음악을 NPC를 태그해서 듣도록 인형으로 만들어진 샤이니 앨범 ‘키링’은 길을 걷다가 끊어져버렸다. 게다가 잃어버린 ‘머리끈’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분명 평행세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무튼, 독자에게 낯선 게임인 ‘노바 파우치’의 법칙을 이해시키기 위한 첫 라운드의 제시어는 “그물망처럼 구멍 뚫린 우산”이다. 그런 걸 도대체 어디에 쓸 수 있을까? 플레이어들은 쓸모없으므로 당장 폐품처리장으로 보내도 무방할 듯한 물건들에 알맞은 자리를 찾아준다.

 재미있는 건 주인공이 소설을 너무 많이 읽는 룸메이트와 사는 어려움에 대해 묘사한 지점이다. 소설을 너무 많이 읽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현실에 발닿지 않은 허구의 세계에 대해 말할 때만 눈이 빛난다거나, 가끔 어떤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다는 표정을 짓거나, (모든 소설 독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방에 잡동사니가 쓰레기장처럼 쌓이는 걸 보면 룸메이트로서는 갑갑해진다. 그리고 ‘삼투현상’, ‘반투막’을 넘어온 사물들이 등장할 때 나는 새삼 김초엽 작가의 전공을 떠올리지만,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부터 꾸준히 따라 읽어왔던 사람이라면 작가가 이과적 지식으로 독자를 압살시킬 생각이 없다는 걸 잘 알 것이다.


 소설 속 인물도 평행 세계를 넘나드는 반투막이라는 개념을 접하고서 반투막의 작동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묻는 것이다. “사람이 양말이나 머리끈 따위보다는 훨씬 크지만, (...) 인간이 그걸 못 지날 만큼 크겠어요?” 그는 현실이 아닌 곳으로 가고 싶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현실은 나를 구원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도 소설 속 세계로 도피를 하는 게 아니던가.


 시간여행, 평행세계 같은 SF의 인기 테마들을 선뜻 다루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김초엽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미 그 테마를 깊이 파고든 훌륭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차별화되는 이야기를 구상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소설가로 데뷔 이후 처음 써본 평행세계 이야기에 자신이 좋아하는 보드게임이라는 소재를 더하니 집필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과연 페이지를 넘기는 데 가장 가속도가 붙었던 단편이기도 하다.  

* 《양면의 조개껍데기》 출간 기념 무크지, p.34


지금 온라인서점에서 예약판매중인 《양면의 조개껍데기》를 주문하면 함께 받으실 수 있어요! 

  • 김초엽 작가의 친필 메시지 엽서(인쇄본)
  • 작가 인터뷰를 포함한 100페이지 분량의 무크지

 02. 

슈즈오프X엄정화

© SPNS TVㅣ2025년 8월 21일 공개


 이런 사고실험을 해보자. 어떤 토크 콘텐츠에 게스트로 초대를 받았다. 촬영은 넉넉잡아 세시간쯤 된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 대화를 청한 진행자의 활동명이 ‘오메가 사피엔’이고 게다가 그 사람은 녹색머리를 하고 있다. 그럼 나는 그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까? 아니 그 사람의 존재감을 적어도 그 날만큼은 주인공일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유튜브 <SPNS TV>의 토크 콘텐츠 시리즈 ‘슈즈오프’에서는 예로부터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가 돋보여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초장부터 깨진다. 


 게다가, 진행자들(바밍타이거 멤버 ‘오메가 사피엔’, 전직 벤처캐피털 투자자 ‘조준호’)은 신발을 벗고 있다. 서예와 난초와 온갖 시각적 포스터들이 둘러있는 그 곳에서 옛날옛적 큰집에 놀러가면 거실에 꼭 하나쯤은 놓여 있었을 그런 앤티크한 의자에 앉아서 말이다. 그들은 의자에서 아빠다리를 해버리거나 평소라면 결례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행동을 한다. 맨발인 채로 다리를 꼬기. 그들이 신발을 벗은 이유는 ‘다양성’, ‘포용’, ‘편견 없는’ 등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신호를 상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어떤 영상 콘텐츠의 추구미가 ‘다양성’을 추구하는 거라면 단연코 편집자(또는 PD)의 역량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현장에서는 편하게 대화를 늘어놓되 나중에 편집자가 다 깎고 다듬으면 되니까.)


 그러나 ‘슈즈오프’는 카메라를 고정해둔 채로 촬영을 하며, 꼭 영상을 보지 않고 사실상 듣기만 해도 무방한 ‘보이는 팟캐스트’ 포맷이다. 그리고 촬영분을 무편집으로 내보낸다. 무편집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진행자의 역량에 기대야 한다. 그것은 궁금한 게 있어도 꾹 참고 안전하지만 뻔한 대화만 나누는 게 아니라, 일정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지금 필요한 질문을 상대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 건네야 한다는 의미다. 나이와 계급장을 떼고. 인간 대 인간으로.


 그래서 이들은 엄정화에게 동시대인으로서의 감각을 유지하는 법부터 LGBTQ 커뮤니티로부터 사랑받는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봤는지에 대해 묻는다. 꼬박꼬박 나이 얘기를 들먹이는 언론의 구시대적인 면모를 입을 모아 탓하고, 여성 아티스트를 수식하는 ‘선정적인’ 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적절한 표현을 함께 찾아나간다. 무엇보다, 그들은 엄정화를 무조건 레전드라고 치켜 세우지 않고, 시대를 앞서갔던 음악과 비주얼과 철학과 태도가 지금의 자신들에게 어떻게 느껴지는지 구체적으로 반응한다. 그리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엄정화는 ‘핏덩이’ 같은 그들을 귀여워하기 시작한다. 


 약 70분에 달하는 이 토크 영상의 후반부 타임코드는 ‘신앙’이라고 찍혀있다. 최근, 유튜브 <찰스엔터>의 토크 시리즈에서도 NCT 마크가 출연하여 종교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는 은은한 파장으로 이어졌다. 나는 그들의 대화가 꽤 좋았기에 어떤 반응이 있을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커뮤니티와 SNS 반응을 부러 찾아보지 않았었는데, 왜냐하면 종교 얘기를 풀어놓으니까 비로소 마크라는 사람이 더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엄정화도 마찬가지다. 종교 얘기를 금기로 분류할 것이냐 아니냐, 지금 어떤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은 그 선을 시험하는 과도기를 뚜벅뚜벅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03. 

AKMU 스탠딩 콘서트 '악동들'

© YG엔터테인먼트ㅣ2025년 8월 8일 - 2025년 8월 24일 진행


 악뮤의 단독콘서트가 3주에 걸쳐 총 9일간 열렸다. 매 주 세트리스트를 다르게 구성하였다는데, 공연은 전석 매진이 되었고 나는 겨우 취소표를 잡아 3주차 중 하루를 다녀왔다. 최근 발매된 이찬혁 솔로 앨범 [EROS]가 말 그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지긋한 인상의 방송국 부장님들도 이 앨범을 극찬한 바 있다. 이찬혁이 프린스 같다며….) 내가 간 공연일의 첫 곡은 기어코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이었다.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떼창의 기류로만 보면 거의 국민 교가와도 같았다. 이 노래 덕분에 적지 않은 이들이 죽지 않고도 죽기 직전의 찰나를 소중히 감각할 수 있게 됐다고 믿는다. 먼저 등장한 건 이찬혁이었는데, 곧 그는 대체적으로 무대에서 물러나 있었고 이수현이 현장을 맘껏 누비도록 두었다. 그렇게 이찬혁은 종종 이수현의 (백)댄서가 되었다.


 고통을 품고 다시 상공으로 비상하는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언제나 죽음 그 자체로도 해석되는 ‘낙하’(2021)라든가, 상상 속에서 혼자 만든 친구를 노래하는 ‘DINOSAUR’(2017) 같은 무대를 보며, 악뮤가 라이브 공연의 신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가창의 문제가 아니고, 관객을 응집하는 에너지에 대한 것이다. 2주차에는 세트리스트에서 제외했으나 이 곡을 부를 때만큼은 관객석의 공기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며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2019)가 3주차에 다시 부활해서 기뻤다. 콘서트 타이틀이 '악동들'로 지어진 건 이찬혁, 이수현 두 사람만으로는 콘서트를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라 한다. 악기를 다루는 세션, 화음을 쌓는 코러스, 조명과 마이크를 관장하는 스태프들까지 모두가 일당백을 해내는 ‘악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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