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정민입니다.
편지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시를 사랑해>라는데, 사실 시를 사랑까지는 하지 않아서요. 아무래도 근사한 시작이 도무지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럼 이건 어떨까 싶습니다. 이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시를 알아가보는 것으로요. 그런데··· 그··· 이미 시를 무척 사랑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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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인들이 참 부럽습니다. 시인 선생님들과 종종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을 때가 있는데요. 이토록 다정한 언어라니. 시인이라서 가능한 그들만의 언어에 늘 감탄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감사합니당^^’이라든지 ‘최고 최고! 저두용~’ 따위의 답장으로 나의 미천한 어휘력을 뽐낼 때마다 ‘다시는 시인이랑 놀지 말아야 하나’ 하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극한의 아름다움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순간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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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참으로 다정합니다. 시선의 방향이 어떻든 간에 무언가를 최선을 다해 예민하게 바라본다는 것, 그 정성만큼 다정한 것이 있을까요. 전 가끔 그런 그들에게 포착된 모든 것을 빠짐없이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시는 제게 조금 어렵기도 합니다. 늘 무언가 더 남은 게 있는 것 같거든요. 읽고 또 읽어도,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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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얼마만큼 그런가 하면 네가 좋게 들은 곡을 모아서 계절마다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앨범 커버도 손수 만들어서.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는 네가 음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들려줘서가 아니라 참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인데. 야자 빼먹고 지하 클럽에 공짜로 벽화 그려주고. 포르투갈에 다녀온 다음부턴 어떤 가수가 자신의 할아버지라고 분명히 믿고. 밴드 하고 음반 내고 음악가가 되었고. 무엇보다 너는 무슨 걱정이 있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 전주가 나올 때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벌써 다 알지. 술을 홀짝이며 기뻐하는 속삭거림에 너의 얼굴엔 만족스러워하는 미소가, 또 짐짓 당연하다는 표정이.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냐 조금 기다려봐, 이 부분을 정말 좋아할 거야…… 그렇게 하나의 음악이 끝난 후에 다른 곡을 들려주다가. 한참 그러다가. 한참 멀리까지 강 건너 바다 건너 잘 가다가. 결국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음악을 틀어놓고. 깊이 취해 고개를 기울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을 바라본다. 거기에 무엇 중요한…… 어떤…… 저절로…… 고여 있다는 듯이. 새로운 물질을 발명해버린 사람처럼. 나는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길 바라지만. 혹시 네가 무언가 슬픈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섭다. 그것이 영영 슬픈 생각일까 두렵다. 두려움. 창백한 형광등이 어둠을 박살낼 때 우리가 집에 가져가는 것. 이제 허겁지겁 우리끼리의 농담 같은 음악들로 각자를 도로 채워놓고, 제정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지막 술을 들이켜지. 난 그때마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드는 거야.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고.
_임유영, 「무언가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 (『오믈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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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또한 이루 말할 것 없이 다정합니다. 깨져버릴까 노심초사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온 신경을 일깨워 재차 자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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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한 것, 하지만 분명 중요한 것, 그것을 위해서 ‘나’의 모든 것이 ‘너’에게 가닿습니다. (어쩌면 ‘너’는 ‘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틋하고 조심스럽게, 예민하고 다정하게 바라봅니다. 느끼고 파악하기의 시도를 멈추지 않습니다. 마치 갓난아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죠. 이 시의 ‘나’는 ‘너’를, 그리고 나는 그 ‘나’를, 어쩌면 ‘너’일지도 모르는 ‘나’를 마음에 품고 내내 질문합니다. 더 중요한 게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서요. 그리고 그로 인해 나 또한, ‘너’일지도 모르는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과연 무엇이 중요해서 내 앞의 술잔을 바라보고만 있을까. 난 대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슬퍼서 무엇이 애달파서, 무엇이 불안해서 가끔씩 그 잔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던 것일까. 읽고 멈추기를 거듭하다보니, 질문의 화살이 내게로 향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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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과정의 파르르한 떨림이 시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시와 시인의 특권이기도 하겠죠. 문득 시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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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랑 그만 놀지 말아야겠습니다. 좀더 자주 연락을 하는 쪽으로 해야겠습니다. 그들은 분명 나의 안부를 멋진 언어로 물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아름다운 위로를 위해 질문을 던져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형편없는 단어와 속앓이를 버무려 답장을 보내도 그들은 다정한 단어를 건네줄 테고, 난 그것으로 당분간을 견뎌낼 것입니다. 난 그토록 다정한 시인들이 참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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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겠지만 저도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조금씩이나마 다정해진 언어로 여러분의 안부를 물을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주위 사람들과 멋진 시와 언어를 공유하는 겨울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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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감이 유행입니다. 모쪼록 유행에 둔감한 사람 되시길 또한 바라겠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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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이참에 친구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근사한 표현으로 안부를 물어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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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시인이랑 그만 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어주는 좋은 친구들을 둔 나 자신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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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것은 나누면 두 배! 독자 피드백 타임
2024년부터 새로운 필진─김소연 시인, 박정민 배우로 인사드린 <우시사>! 오늘은 지난주 발송된 김소연 시인의 첫 레터를 다른 독자분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해요. 좋은 글은 혼자 볼 수 없으니까요😙 <우시사>는 항상 여러분의 소중한 감상과 의견을 꼭꼭 살피고 있으니 피드백 마구 부탁드립니다.
💓 산뜻한 인사와 고민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정해진 일과 속에 사실은 기계가 되어버린 저의 아침에 대화를 걸어준 모양입니다. 시를 한번 가볍게 읽고 책상을 정리한 후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 전화보다 메신저가, 책과 편지보다 쇼츠 영상이 편한 요즘, 소통보다 일방통행이 익숙해진 시대에 이렇듯 말 걸어주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 비문학으로 둘러쌓인 세상을 살다 어쩌다 구독하게 된 <우시사>, 김소연 시인의 문학 감성 낭낭한 문장들은 첫눈엔 낯설었지만 두 번 세 번 곱씹으니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표현들이었습니다. "밥도 안 먹고 똥도 안 싸고 죽지도 않은 개"는 첫 방에 장난감 강아지 인형이 떠오르지 않아 살짝 오싹했지만 지하철 찰나의 순간에서 이렇게 여러 갈래의 이야기 길이 뻗어나갈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됐던 시간이었네요.
💓 무겁지 않게, 하루 한 편의 시를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 생활의 작은 쉼표가 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시를 읽는다는 일이 거창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래서 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항상 앉혀둘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기는 오후였습니다.
💓 시는 여전히 어렵지만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달뜬 표정이 연상되는 소개글을 읽다보면 언젠가 나도 시를 사랑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새로운 시와 시인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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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님께 보내는 어느 문학편집자의 편지 이번 레터에서 박정민 배우가 소개한 시집, 왠지 익숙하지 않으신가요? 바로 지난 레터에서 김소연 시인이 소개한 시집도 『오믈렛』이었지요. 어쩜 두 필진이 첫 레터에서 똑같은 시집을 소개하다니, 이런 우연이👀 (우시사팀도 몰랐답니다.)
두 필진에게 첫 레터에 소개하는 시집으로 선택받은 『오믈렛』은 트위터에서 '독자님께 보내는 어느 문학편집자의 편지'로 한 차례 화제이기도 했었는데요. 역시 혼자 보기는 아까워 우시사 독자분들께도 편지의 내용을 소개드립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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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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