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나를 흘끔거렸다. 회사로 가는 중이었다. 아침 10시도 안 된 시각이라,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리는 없다고 믿었지만 눈빛에 어떤 의미같은 것이 보였다. 핸드폰으로 시끄러운 영상을 틀었다. 



“우리 공주님 아니야?”



인간의 뇌는 극한의 상황에서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찰나의 순간에 수만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내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5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당신을 ‘우리 공주’라 부른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의 정체에 대해 다양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냥 ‘공주’가 아니라, ‘우리 공주’라는 것은 나와 일면식이 있다는 걸까. 일단 창문을 내리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내 반응에 당황한듯한 기사는 머쓱하다는 듯 웃어보였다.

“나야. 나 은하사진관 아저씨야.”



우리 동네는 무슨 가게가 들어와도 2년 안에 망해버리는 희한한 동네였다. 흔한 카페도 들어오면 망해서 나갔다. 그래서 웬만한 인프라는 옆 동네까지 가야 누릴 수 있었는데, 은하사진관도 그 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시절 여권사진은 물론, 중학교 때 찍는 우정사진까지 그곳에서 찍었다. 꽃무니 배경지 앞에 앉은 나와 친구의 코는 뽀얗게 사라지고 콧구멍만 달랑 남아있었다. 아저씨는 그렇게 유행에 적응하며 가게를 계속해나가셨다. 가족들 여권사진을 받으러 심부름을 가면, 아저씨가 “공주님-“ 하고 맞아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래, 은하사진관 아저씨구나. 그 때도 말랐던 아저씨가 더 야위어서는 운전대를 꼭 잡고 계셨다.



한 동네를 책임졌던 사진작가가 택시를 몰고 있다. 나는 그것이 괜히 서글플 뻔 했으나, 아저씨가 해맑게 안부를 물어온 덕분에 쓸데 없는 의미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아저씨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엄마, 아빠, 언니. 모두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우리 가족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를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 아무래도 신기했다. 택시에서 내리고서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다시 아저씨와 마주칠 일은 없을텐데. 짧은 20분이 이상하게 명료했다. 우리는 평생의 안부를 미리 묻고 답했다.



엄마는 가끔 나와 언니를 ‘산수약국’이나, ‘신라명과’에 맡기셨다. 약국의 카운터 너머에서 과자를 먹거나, 빵집의 카운터 너머에서 빵을 먹었다. ‘산수약국’ 할머니는 갑자기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신라명과’ 아줌마의 소식은 모른다. 그러나, 그들과도 인연에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없다. 충분히 진득했던 이웃들의 기억은 머릿속 1등석을 수십년 째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 때 그 모습일 것 같아서, 그리움이 없다.



지금 내 곁에는 그리워할 이웃도 영원히 기억할 이웃도 없다. 자주 가는 식당 사장님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해서, 한동안은 그 가게에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당근마켓 이웃에게는 최대한 다정하게 굴었다. 단편 영화 소품으로 썼던 ‘성인용 기저귀’를 나눔으로 올렸더니, 요청이 서너개 도착했다.



“저희 삼촌이 갑자기 사고를 당하셨어요. 기저귀 나눔 요청드립니다.”



마음이 쓰여, 이 말 저 말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집 앞 식당 사장님은 모른척하면서, 에먼데서만 덕을 쌓는다. ‘우리 공주님’은 왜 이렇게 됐을까.

  정겨워지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이웃이 혼자 죽거나 내가 혼자 죽는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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