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회 (2023.07.19)

안녕하세요. 황인찬입니다. 날이 참 더운데 보양은 잘하고 계신가요? 저는 점점 입맛이 없어져서 차갑고 시원한 음식들만을 찾고 있습니다. 냉면, 콩국수, 냉라멘, 냉우동…… 여름은 시원한 면 요리의 계절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여름날에는 보양이 필요하고, 보양에는 따뜻한 음식이 더 어울립니다. 뜨거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저는 시원한 면 요리에 튀김을 함께 자주 먹고 있습니다. 따뜻한 튀김이 속을 좀 데워줄 수 있을 거라 믿으면서요

고명재 시인의 「시와 입술」에서도 여름날에 먹는 따뜻한 튀김이 나오는데요. 세상에, 이렇게 기름진 시는 살면서 처음 읽어봤습니다. 당신의 사각거리는 옷자락도 얇은 튀김옷 같다고 말하고, 튀김을 먹는 당신의 입술이 빛을 받아 반짝거린다고 고백하는 그 순간, 사랑은 배부른 것이 되네요. 풍족하고 기름져서 아주 넉넉한 것이 되어버리네요.

당신 셔츠의 소매가 곱게 사각거릴 때

어쩌면 우리는 튀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명재씨, 부르는데 입을 맞출 뻔

번들거리는 입술로 순간 환해져버릴 뻔

 

눈귀코로 사랑이 바글대고 있는데

솟고 싶다 헤엄치고 싶다 비 맞고 싶어

기름은 씨를 꾹꾹 짜낸 빛이라서요

 

좋은 튀김은 아침볕과 색이 같다고

늙은 조리사는 손등을 보여주었다

안이 다 비치지요?

여름옷처럼

얇은 튀김옷으로 우린 갈아입고서

 

그렇게 커튼을 손목과 강을

시와 입술을

반투명하게 읽고 반쯤 사랑해버리고

 

자꾸만 솟는 사랑의 은유를 젓가락으로 누르며

우리는 온갖 기름진 말을 나누는 것인데

 

참기름: 한국에선 가장 참된 것

모든 요리의 마무리로 금박을 입히죠

카놀라유: 유채 꽃씨를 힘껏 짜낸 것

꽃이 될 뻔했던 씨의 땀이었다니

그래서 호박이 이렇게 밝고 고소한가요

 

올리브유: 올리버올리버올리버올리버

당신의 이름을 연거푸 말하면 여름이 불타고

해바라기유: 맥주를 따르며 웃는 걸 본다

개기름: 눈길만으로 불이 붙을 때

 

입술이 옴짝달싹 기름을 바르고 리듬을 입고 마음을 업고 무릎은 꿇고

미강유: 아름다움에 대해 강하게 말하자

쌀눈유처럼 사랑의 눈을 번쩍 뜬 채로

몰라유: 전라도로 여행 갈래요

 

사랑을 해야지 심장을 구하자 기름 속에서

작약이 모란이 겹벚꽃이 흐드러지는데

늙은 조리사가 살짝 윙크를 한다

마음속 깊이 두 손을 담그면 별들이 튀고

너무 익으면 날 수도 있어 장대를 다오!

튀김기 속에서 새우들이 솟아오른다

_고명재, 「시와 입술」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사랑이 이토록 풍요로운 것이라는 것을 이 시를 읽으며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랑할 때 우리의 마음은 가득 차오르고, 가득 차오른 우리의 마음에는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는 법이니까요. 안이 비치는 얇은 튀김옷처럼, 넘쳐나는 사랑 또한 숨길 길이 없습니다.

ⓒ 황인찬   

이 시의 제목이 「시와 입술」인 까닭은 시도 입술도 숨길 수 없는 사랑의 흔적 그 자체이기 때문일 겁니다. 입술에 묻은 그 기름진 사랑의 흔적들, 숨기지 못하고 솟아오르는 사랑의 은유들, 당신과 함께하면 내 안의 모든 것이 다 비쳐 보이는 것이지요. 여러 기름진 말들이 솟아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니까, 사랑이 너무 넘치니까. 먹다보면 온갖 곳에 기름이 묻는 것을 피할 수 없듯이, 넘쳐나는 그 사랑은 모든 곳에서 빛나고 있습니다. 참기름, 올리브유, 카놀라유, 해바라기유와 개기름, 넘쳐나는 사랑은 다양한 기름의 모습으로 펼쳐지고요. 몰라유, 까지 가버리고 나면, 사랑이 얼마나 넘치기에 이렇게 흥겨운 마음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여름날의 뜨거운 사랑을 이렇게 귀엽고 능청스럽게 그려내는 시는 또 얼마나 귀한 것인지요.

시인의 또다른 여름날 먹거리 시라 할 수 있을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에서도 입술은 번들거리고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 일하느라 고생하는 어머니를 데리고 시인은 콩국수를 먹으러 갑니다. 시원한 면 요리를 먹으러 가는 것인데요. 아니 세상에, 이렇게 콩국수가 먹고 싶어지는 시는 또 처음입니다. 콩은 백사장 같고, 면발은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국수를 먹을 때면 푸르륵 말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는다고 말하는 이 시의 풍요로운 감각이 아주 인상적이지요.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보자 리듬을 엎자 금(金)을 마시자 손잡고 나랑 콩국수 가게로 달려나가자 과격하게 차를 몰자 소낙비 내리고 엄마는 자꾸 속이 시원하다며 창을 내리고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 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주 낡은 콩국숫집에 나란히 앉아서 엄마는 자꾸 돌아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입안은 푸르고 나는 방금 떠난 시인의 구절을 훔쳤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윤기,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두 접시 나오고 우리는 일본인처럼 고개를 박고 국수를 당긴다 후루룩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

_고명재,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가 이렇게까지 감각적인 풍요로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이 시가 그리는 상황이 몸과 마음 모두 넉넉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덥고 버거운 일상을 잠시 중단하고, 국수 한 그릇에 얼굴을 마주하는 그 순간 또한 넘쳐나는 사랑의 순간입니다. 영원히 해갈되지 않는 어머니라는 갈증, 어머니에게 품는 그 복잡한 마음들도 콩국수를 먹는 이 순간만은 터져오르는 감각들과 더불어 잠시나마 잊히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도 입술에는 윤기가 돈다고 시인은 말을 하고요. 시인은 그렇게 윤기가 도는 입술로 사랑을 하리라고, 그것이 설령 헛물켜는 일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이 사랑을 계속 줄 것이라고 다짐을 합니다. 먹고 돌아서면 금세 배가 꺼진다고 하더라도, 결국 언젠가 우리가 슬퍼진다고 하더라도, 이 사랑을 멈출 수는 없고, 식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시인 김수영은 사랑의 음식은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사랑과 음식은 이렇게나 가까이 있는 것이군요. 사랑도 음식도 입술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 참 닮았습니다. 사랑이 닿고, 음식이 닿으면 입술은 번들거리게 되고, 그렇군요. 우리는 그 번들거리는 입술로 입을 맞출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전해드린 두 편의 시가 실린 시집의 제목이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인 것도 그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음악은 ZARD의 <負けないで(마케나이데)>입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식당을 나와 여름날의 거리를 걸을 때, 엔딩 스탭롤과 함께 흘러나올 것 같은 음악입니다. 스탭롤이 끝나면 ‘다음 이 시간에’라고 말이 붙을 것만 같죠. 두 사람의 삶도 앞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시사 레터도 그렇게 다음 이 시간에 다시 뵙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2023년 7월

황인찬 드림

📮 문학동네시인선 184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오늘 레터에서 소개된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은 고명재 시인의 첫번째 시집으로, 사랑은 어떻게 생겨나고,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하여 담고 있어요.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자신의 전부를 다 거는, 다정하면서도 용감한 사랑의 세계. 그 충만한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할게요. 
💛 도서 미리보기1
💛 도서 미리보기2
고명재 시인 우시사 레터 (84호) 
고명재 시인도 우시사 레터를 보낸 적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우리의 내면엔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이라고, 스스로를 꾸짖는 ‘마음의 박동’이 있어요. 그게 바로 시라고 여기, 미래가 있다고. 저는 감히 그렇게 믿어보고 싶어요." 시인이 소개한 시와 그 내용은 아래의 버튼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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