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 일본과는 복잡한 관계입니다. 특히 과거를 생각하면 그렇죠. 언제까지나 과거에 매몰돼 있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올해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관계 회복을 위한 한국의 일방적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정부는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 등 일본이 환영할 만한 카드를 선뜻 내보였고, 윤 대통령은 이번 한일정상회담을 두고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라 칭했습니다.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우리가 원한 것이었는지는 따져 봐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우리의 대통령은 외교적 판단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과 피해 당사자의 의견, 혹은 국익에 대해 충분히 고려했을까요?

지난 16일, 한일정상회담이 마무리됐습니다. 회담의 주된 성과는 일본과의 경제 협력과 안보 협력. 우리는 경제 부문에서 반도체 수출 규제 해제를, 안보 부문에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집중해서 보면 좋을 듯해요.

반도체 수출 규제는 이번 회담에서 정부가 대표적으로 꼽는 성과예요. 4년 전 일 정부는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으로 수출을 막았고, 이에 우리는 WTO에 일본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어요. 회담 이후 일본이 규제를 풀면서 한국도 소를 취하했습니다. 이외에 양국이 민간 자본으로 ‘미래 파트너십 기금’을 조성하기도 했고요.

안보 면에서는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통해 협력을 다졌습니다. 한국, 미국, 일본 간 안보 협력의 중요성을 공고히 하는 도구로서의 역할로서의 한일 협력인 셈이죠. 그런데 이 내용들은 한국이 제3자 변제안이라는 카드를 내놓고 얻은 성과라기엔 애매해 보입니다.

여론도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이 얻은 게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한국 입장에선 국가 차원에서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을 완전히 뒤엎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외교적 성과가 미미하죠. 그런데도 ‘대승적 결단’이라는 말로 결정을 밀어붙이고,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말로 강제동원 피해자의 의사를 기각합니다. 피해 당사자 개인의 의사보다 대통령의 의사가 더 중요하게 반영된 제 3자 변제안에서 보았던 태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지금,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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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정상회담을 전후로 가장 큰 논란을 불러온 건 제3자 변제안 해법이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의 문제점이 연일 언론에서 보도됐죠. 그런데 제3자 변제안의 한계점과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를 바라보는 관점 말입니다.

“자신만이 위기에 놓인 국가를 구할 수 있다는 일종의 메시아적 환상에 사로잡혀있다.” 한국일보 이충재 전 주필이 이번 한일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을 꼬집으며 한 말입니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뜻대로 제3자 변제안을 만들었다고 밝힌 데에 그 이유가 있죠. 윤 대통령은 “내가 정치를 하기 전 (검사라는) 법률가로 활동할 때부터 이런 해결책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말을 일본 언론에만 전한 바 있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국민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건 물론이었습니다. 이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정부의 해법을 거부하고, 미쓰비시 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추심하는 소송에 나선 상황입니다.

국민과의 소통, 피해자에 대한 설득 대신 윤 대통령은 ‘결단’을 택했습니다. “미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는 여당의 자화자찬도 이어졌죠. 그러나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으로 인해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제동력이 오히려 떨어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일정상회담 이후 일본은 강제징용의 강제성을 희석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켰죠.

이 모든 일을 만든 데에는 한-미-일 동맹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환상이 있을 겁니다. 신냉전 상황에서 미국·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대한민국의 안보도 경제도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이죠. 그러나 윤 대통령의 생각과는 달리, 미국·일본 일변도의 외교는 모든 걸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미국 반도체법(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납하게 하는 법)이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의 목을 옥죄려하는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한일회담의 성과를 논하는 걸 넘어, ‘대승적 결단’이라는 윤 정부의 자화자찬에 의문을 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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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적 독단’을 감행하며 윤석열 정부가 반복해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반일과 배타적 민족주의라는 헤묵은 감정에서 벗어나자. 일본은 우리가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야하는 동맹국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일정상회담을 마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3.1절 기념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도 반복했죠. “일본은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다.”

윤 대통령에게 일본은 미국과 함께 자유, 법치, 인권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보편’입니다. 반면 강제동원 해법을 비판하는 세력은 보편에의 합류를 막는 ‘배타적 민족주의자’이고요. 이러한 대립구도 속에서 나오는 건, 보편으로 나아가기 위해 강제동원 문제를 ‘수습’해야한다는 폭력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민족주의와 보편을 대립시키는 프레임은 타당할까요? 해답을 찾기위해 고민해야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강제동원 해법을 반대하는 사람은 배타적 민족주의자인가. 둘째, 일본을 보편으로 말할 수 있는가.

‘공격적 보편주의자’의 출현을 알리는 시사IN의 기사는 첫번째 질문에 답을 주는 듯 합니다. 공격적 보편주의자는 누구보다도 보편적인 언어로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강제동원의 반인권적 성격에 초점을 맞춥니다. 강제동원은 국제법상 인도에 반하는 죄이고, 일본은 기본권을 침해했으며, 따라서 사과를 통해 피해자의 존엄을 회복해야한다는거죠. 앞선 논리에는 “조선민족이 유린당했다”는 식의 민족정서가 개입하지 않습니다. 인권처럼 보편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만 존재하지요.

‘일본이 한국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가’라는 두 번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일본은 강제동원이 전쟁범죄라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는 전범국이 보편의 위치를 차지할 순 없는거죠. 유엔총회의 규정에 따르면, 국제인도법 위반행위의 피해자 배상에는 사실 인정과 책임 승인, 피해자에 대한 추모 등이 포함되어야합니다. 한일정상회담과 제3자 변제안이 비판받는 이유는 이러한 인권에 대한 구제가 미흡했기 때문입니다. 성의있는 사과를 통해 피해자의 존엄성이 회복될 때, 한국과 일본은 비로소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강제동원 해법 비판을 반일정서로 치부하는 프레임 자체에 의문을 던져야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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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지지율 1%가 나오더라도 할 일은 해야한다”며 ‘제3자 배상안’을 밀어붙였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시사in 기사 “자유·인권·법치 한꺼번에 날린 ‘강제동원 해법’”은 대통령의 결단이 비판받는 이유를 다양한 갈래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비판의 핵심은 이번에도 전범 가해자인 일본의 사과와 반성이 부재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결단은 강제동원 피해자에게도, 외교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기사는 판단합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씨는 이번 정부안을 두고 “반드시 (일본이)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모든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안을 ‘자유와 인권과 같은 양국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내린 대승적 결단’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정부는 일본과 한국이 협력하는 파트너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과 없는 제3자 배상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피해자 개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듭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이춘식 씨는 2019년 한일 무역분쟁 당시, “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손해가 아닌지 모르겠다”며 피해자인 자신을 탓해야만 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강제동원 피해자는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떨쳐내야 할 과거로 그려집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제안한 제3자 배상안은 피해자의 희생을 감수할 만큼, 외교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을까요? 이번 정부안 발표 이후, 미국은 이례적으로 한밤 성명을 내며 정부안을 환영했는데요. 기사는 3·1절 경축사에 내포되어있던 한·미·일VS북·중·러 구도에 매몰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구도는 가상 현실에 가까운데 이 프레임에 갇혀있다가는 현실의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겁니다. 인도, 베트남, 남미, 유럽 등의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국제 정세를 읽고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지금 세계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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