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본 <파이트 클럽>은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다. 사실 ‘인생 영화’라고 꼽을 정도로 교훈적이거나 감동적인 영화는 아니다. 한 줄로 거칠게 설명하자면, 현대 사회에서 팍팍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탈출 심리를 폭력적이며 마초적인 장치로 표현한 영화다. 실제로 1999년 개봉 당시 영화는 뚜렷한 주제의식이나 철학 없이 스타일만 가득하다고 혹평을 받았다. 반면 그 독보적인 ‘스타일’ 때문에 전 세계적인 컬트 팬을 얻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이트 클럽에는 총 8개의 규칙이 있다. 그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규칙이 가장 유명하다. 이 둘은 같은 말로 반복되는데 그만큼 클럽에서 가장 중요한 규칙이기 때문이다. 즉,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
Gentlemen, welcome to Fight Club. The first rule of Fight Club is: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The second rule of Fight Club is: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Third rule of Fight Club: (…) — Tyler Durden, Fight Club (1999)
얼마 전 우연히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또 다른 영상*을 봤다. 그가 뽐내는 카리스마는 여전히 멋있었지만 리즈 시절의 앳된 모습도 세월을 비켜갈 순 없었다. * 그는 프랑스 국내 영화 시상식 세자르상(César Awards)에 참석하여, 자신의 오랜 동료이자 <파이트 클럽> 감독인 데이비드 핀처에게 명예상을 수여했다.
작업실에서 <파이트 클럽>이 사운드트랙을 다시 들었다. 당시 영화가 비판하던 자본주의의 민낯,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무정부주의, 끝없는 소비를 부추기는 현대사회 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문득 20여 년이 흐른 요즘, 세상이 이미 그런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양육자가 된 내 인생은 요즘 무얼 위해, 누구와 싸우고 있을까. 정부? 돈? 시간? 아이? 늘 부족한 에너지?
스타일리시한 파이트 클럽과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다. 하지만 썬데이 파더스 클럽도 실재할 수 있는 클럽이란 상상을 해봤다. 반짝반짝 빛나도록 조명받으며 자라온 모두가 어쩌다 결혼을 하고, 어쩌다 아이를 낳아 엄마, 아빠, 보호자, 양육자로 불리면서 고군분투하는 모습. 이렇게 각자의 삶에서 투쟁하며 싸우는 중이라면, 이보다 어려운 싸움이 또 있을까.
유아차를 밀면서 거리를 걷다가, 놀이터에서 졸린 눈으로 시소를 바라보다가, 쇼핑몰에서 카트를 끌다가, 수영장이 딸린 리조트에서 아이 손을 잡고 걷다가 양육자끼리 서로 눈이 마주치면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상도 해본다.
언젠가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도 규칙이 생긴다면, 그중 첫 번째 규칙은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두 번째 규칙은 이렇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파이트 클럽> 영화에서 발신하는 이미지처럼 이따금 허무주의와 냉소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그런 감상은 모두 사치였다. 아이와 더불어 사는 삶으로 모든 걸 다시 조정하느라 가끔 버거웠고, 앞으로의 삶이 막막하기도 했다. 간혹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단둘이 근교로 나들이 갈 때면, 중력을 잃고 우주에 둥둥 떠다니는 우주인처럼 어디를 가면 좋을지 몰랐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썬데이 파더스 클럽의 마감을 꾸준히, 간신히 지키고, 동명의 단행본이 나오면서 독자들을 만나고, 미디어 인터뷰를 하고, 그 세월 동안 아이가 자라면서 육아가 조금 수월해지고, 육아 백과사전이란 오픈카톡방(비번 공이공육)이 생겨 수시로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님을 느낀다.
지난 11월 중순의 일요일. 아내에게 자유 시간을 주고, 경기도 퇴촌에서 공동육아 모임이 있어 아이와 단둘이 다녀왔다. 아침 일찍 떠나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득 찬 달이 팔당호를 비추고 있었다. ‘사위가 컴컴한 데에도 저렇게 빛이 밝으니 물결이 잘 보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물결이 떨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전반적으로 평온하고 무탈하면 그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겠지만 하루를 다시 확대해 보면 일상은 매번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아침 등원길마다, 함께 식사를 할 때마다, 저녁에 재울 때마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
마침 차에는 사이먼 앤 카펑클의 1981년 뉴욕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 CD가 플레이되고 있었다. ‘April Come She Will’을 지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이 재생될 무렵 동호대교를 건넜고, ‘The Sounds of Silence’가 연주될 무렵 집 근처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을 아이인데, 그새 체력이 좋아진 건지 70분이 넘는 재생 시간 내내 송이는 조잘조잘 대며 나의 밤 운전을 외롭지 않게 해 줬다.
그날 밤은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풍경의 스냅샷을 글로 기록하고 싶었다.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지만, 이렇게 일기로 담을 수 있어 감사한 기분이었다. 이런 걸 ‘행복’이라고 꼼꼼히 적어 보관하지 않는다면, 내 일상이 다시금 쉽게 다치거나 연약해질 것 같았다.
최근 한 등장인물이 ‘여정과 목적지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라고 묻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어요. 다른 등장인물이 이렇게 대답하죠.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리고 저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I was reading a passage recently where a character was asking “Which is more important, the journey or the destination?” And the other replied, “It's the company”, and I couldn’t agree more. — Brad Pitt
나의 인생에 아내와 송이, 그리고 육아 여정에 함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여전히 좋다.
+ 지난 레터 때에서 언급한 저희 가족만의 대화 원칙은 아직 못 만들었습니다.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여…) 언젠가 꼭 정리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