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임아. 너는 삭발을 했구나! 한아임이 삭발이라니…전혀 본 적이 없어 (당연하게도) 너무 궁금하다. 물론
 
028_나를 알기 위한 빛과 어둠 속으로
오막 to 한아임
2023년 9월
 
  
아임아.

너는 삭발을 했구나!
한아임이 삭발이라니…전혀 본 적이 없어 (당연하게도) 너무 궁금하다. 물론 지금은 머리가 조금 자랐다지만.
진짜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머리를 자른 직후의 너를 봤다면, 귀여운 동자승의 느낌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ㅎㅎㅎㅎㅎㅎ
생각해 보니 나는 살면서 삭발을 해 본 적이 딱 한 번밖에 없다. 보통 대한민국의 90년대생 남자라면 학창 시절 한 번씩은 다 해봤을 법한데, 나는 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스스로 너무나도 안 어울릴 것을 알고 있었거든. 그럼에도 아임처럼 마음 깊숙이 어디 한 곳에는 살면서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우리에겐 군대가 있지 않나? 그때 하게 되었었다. 예상대로 상당히 안 어울렸다. 흐흐. 삭발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 삭발을 했을 것이다. 삭발이란 것, 상당히 편한 상태더구나.

그런데 여기서 ‘잘 안 어울린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내가 이상하게 보인다는 걸까?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까? 근데 나 스스로 내 모습이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진짜 내 생각인 걸까 아니면 몇십 년을 이 세상에 살아오면서 나에게 주입된 ‘잘 어울림’의 기준에서 벗어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까?

일본을 다녀왔다. 이번엔 오사카를 다녀왔다.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확실히 한국보단 상대방의 눈치를 덜 본다는 것. 눈치를 보지 않아 자기가 이기적으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한다는 게 아니다. ‘취향’에 있어서 만큼은 눈치를 확실히 덜 보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런 점은 외향에서도 드러난다. 입는 옷의 스타일이 다양하며, 머리도 다양하고, 화장과 액세서리에서도 드러난다. 이는 개개인의 취미로도 이어진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 않고, 그런지한 음악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지 않으며, 다 큰 어른이 미니카에 빠져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라는 것보다는 아예 거기에 대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게 맞는 표현인 듯하다.
나는 이게 존중이라고 보는데, 이 존중은 취미의 영역을 넘어서 일본의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뭔가 비교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확실히 한국은 ‘다양함’에 대한 역치가 굉장히 낮은 것 같다. 비교적 남들에게 신경을 너무 쓰는 것 같단 말이지.  

일본 여행은 4박 5일이었다. 원래는 3박 4일이었는데 태풍 때문에 결항이 되어서 하루 더 있게 되었다.
그 짧은 기간을 여행했음에도, ‘여행’이란 놈은 이상하게 용기를 주는 듯하다. 여행을 가면 아무도 나를 모르는 제로베이스 상태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가짐이 더 용감해진다.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그렇고, 내 취향을 드러내는 데에서도 그렇고. 그리고 이런 느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든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오면 잠시 과감해지는 나를 발견하지만 이내 안일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나를 보게 되곤 한다. 나조차 나도 모르게 남들을 너무 신경 쓰는 걸까!
마리오&루이지 할머니
과감함은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뷰티풀 노이즈>라는 레이블에 소속된 아티스트들 중 한 명인 시온의 음악을 들으면 그런 게 느껴진다. 남을 신경 안 쓰고 최대한 자기가 하려는 걸 하겠다는, 그런 마음가짐. <뷰티풀 노이즈>에 소속된 아티스트들이 대부분 그런 느낌을 주는데 수장으로 있는 매드클라운이 그런 걸 추구하나 보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해야 해!!’하는 느낌과도 살짝 결이 다른 것 같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나 다운게 먼저여야 한다. 시온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유튜브 채널 딩고에 나와서 크게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는데 그때 처음 접하게 됐을 때부터 ‘내 거 한다’ 같은 느낌이었다.  
Dingo Freestyle - Sion  
5'56"부터 보면 시온이 등장한다. 다른 음악들도 좋지만, 특히 8' 55"부터 나오는 이라는 곡이 압권이다. 음원보다도 이 버전이 더 과감함이 잘 표현되었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꽥 질러버리는 모습이 멋있군.  
Sion - Comedy  
그의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다. 뮤비가 재치넘치고 웰메이드인 건 덤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인식하니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게 돌아가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겠지!
아임아, 너는 내가 중학생 때부터 봤지만, 항상 너의 세계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 어렸을 때부터 말이야. 우연이겠지만 시온이라는 아티스트는 어렸을 때부터 독일에서 살았다고 한다. 아니면 너도 일찍이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 생각엔 그게 생각보다 ‘내 것’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꼭 서양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일찍이 한 문화권이 아니라 두 문화권을 경험하면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즉 가볍게 말하자면 취향이라는 것을 더 확고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아임과 시온, 두 표본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살면서 만난 생각보다 많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그러했다.
나 또한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리고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때 1년 미국에서 살았던 것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느끼고 있다. 그 당시 한국에 살면서 이유를 명확히 모르지만, 싫어했던 것들은 다른 문화권을 겪으면서 더더욱 그 이유가 명확해졌고, 또 반대로 한국에선 무던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내가 아주 좋아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된 경우도 있었다.

빛들 사이에 빛이 있으면 빛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어둠 사이에 어둠이 있으면 어둠이 어떤 건지 모른다. 빛과 어둠이 같이 있을 때 비로소 둘의 존재가 명확해진다. 꼭 반대되는 개념의 것들이 아니더라도 어쨌거나 서로 ‘다른’ 것들끼리 있다면 각각의 존재는 더 명확해진다.  
Maggie Rogers - Folk / Alaska (Pharrell's feedback)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상이다. 지금은 너무 유명해진 메기 로저스가 데뷔 전 퍼렐 윌리엄스의 마스터클래스에서 피드백을 받는 순간이다. 처음 몇 초를 듣자마자 퍼렐의 얼굴에서 놀라움이 묻어나온다. 그리고 피드백에서는 '너는 이미 너의 것을 하고 있어서 내가 코멘트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무려 우탱클랜의 등장을 예시로 언급하면서 말이다. 
결국 내 것 만큼 특별한 것이 없다. 내 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아주 힘든 작업이 될테지만 말야. 
여행으로 힐링한다는 말이 다른 대단한 게 아니고 이런 것 같다.
나는 딱히 여행을 자주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어 ‘힐링하러 여행 다녀온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도 안 갔고, 왜인지 모르게 딱히 달갑지도 않게 느껴졌었다. 이건 그냥 ‘힐링’이라는 단어에 대한 유행스러운 사용 때문에 반감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지만 말야. 최근에 의도치 않게 최근에 꽤나 여행을 자주 다녀오게 됐는데, 용기를 준다는 점에서 나에게 힘이 된 것 같다. 그게 나에겐 힐링적인(?) 측면이다. 아무 시선이 없으니(없다고 생각하게 되니), 나의 취향이 더 확고해지는 기분. 그게 용기였고 힐링이었다. 좋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
어둠과 빛으로 모두 찾아가 보는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면 아주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사실상 나는 딱히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그게 아쉬우면서도 더 늦기 전에 더더욱 제발로 찾아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까만 어둠이든, 눈이 멀 정도로 하얀빛이든 말야. 가 보면 뭐가 있는지 알겠지. 팔을 휘적휘적하다 보면 무언가 걸리겠지.우리가 연초부터 말했던 미국에서의 만남을 나는 아직도 놓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실행까지 좀 걸리고 있긴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2023년 하반기로 가면서 바쁜 게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미래의 그 여행에서도 수많은 빛과 어둠을 겪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참, 그리고 이 편지가 보내지고 난 다음 날인 9월2일, 내가 유하정 님과 작업한 새로운 곡이 발표된다. 유하정 님의 이름으로 나올 곡이고 나는 작·편곡과 프로듀싱으로 참여했다. 아임이 써줬던 영어 가사 버전을 꼭 발매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그러진 못했다. 그렇지만 다음에 있을 나의 앨범에 Alter 버전으로 영어버전을 녹음해서 수록해 보도록 하겠다. 너의 가사가 너무 좋아서 이렇게 공중으로 사라지는 건 너무 아쉽거든.
어쨌거나,

9월 2일에 <유하정 - Lovestruck>

발매되면 종종 들어주길 바란다!
그럼 이만-!


- 어둠과 빛에서 허우적대는
오막이가

이번 편지를 보낸 오막은...
기약 없이 찬란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다. 학창 시절 미국 Omak에서 1년 동안 살았던 기억과 행복의 느낌을 담아 이름을 '오막'으로 정하고 활동중이다. 평소 말로 생각을 전달하는데에 재주가 크게 없던 오막은 특정 장르의 구분 없이 음악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려고 한다. 앞으로 고막사람과 함께 오막 자신의 작업량도 쑥쑥 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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