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scent to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옷은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시는 지 모르겠네요. 저는 오랜만에 예전에 살던 동네에 찾아왔어요. 어릴적 이 곳에서 보내던 시간들을 열심히 잊고 살았는데.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도 없을 초라한 골목에서 저는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있어요.
그 날, 마지막으로 그 사람과 함께 이곳에서 비를 피했던 기억이 나네요. 도저히 멈추지 않을 것 같던 비가 서서히 멎어가는 그 순간이 왜 그렇게 아쉬웠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순수했던 제 마음을 건네었을 때, 그 사람은 저를 그저 꼭 끌어안아주었어요.
항상 은은하게 느껴지던 라일락 향기가 제 품에 다가오는 순간, 저는 입을 잊은 채로 등을 토닥일 수 밖에 없었죠. 그 사람이 제 품 속에서 한 없이 침묵하고 있을 때, 너무 많은 말들이 저에게로 다가왔었어요. 마냥 비를 탓하고 싶어지는 날이었어요. 그저 무슨 탓을 하고싶은 날이었죠. 짙은 먹구름과 쏟아지는 빗속에서 저는 생각했어요. 오늘보다 더 밝은 날은 아마도 내게 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 입고 있던 옷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사람이 들려준 노래에, 함께 거닐던 길가에, 나누었던 말과 말 사이에, 그 향기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어요. 간절히 원했던 사람의 향기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알거에요. 인생에는 간직할 수 있는 게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지금도 그 날의 기억이 가끔 떠오를 때면 라일락 향기를 찾아들고 긴 벽을 따라 느릿느릿 걷곤 해요. 충만한 꽃 향기를 머금고 그 아이가 들려준 노래를 들으며 이보다 더 순수한 행복은 없을거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당신의 그 날을 떠오르게 하는 향기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만약 있다면 부치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편지를 쓴다면 좋겠어요.
그 날의 향기와 시간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서 아무도 몰래 혼자 당신의 향기를 머금고 슬며시 그리워하고 있다고, 그러니 날이 많이 추워졌으니 따뜻하게 챙겨 입고 다니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22년 11월 2일
라일락 향기를 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