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에 햄 어디 갔어!
보내는 사람 : 도토리 에디터
받는 사람 : 끼니어님
#카누 #샌드위치 #주꾸미 #찰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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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창포의 주꾸미 석상. 정수리엔 꼭 갈매기가 앉아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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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어님, 한 주간 잘 지내셨나요? 매일 선물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요. 잠깐 일어나 파란 하늘을 감상하는 여유가 있으셨길 바라요. 주말엔 태풍이 오고 비가 많이 온다 하니 조금 긴장이 됩니다.
개편 기간의 '특별호' 같은 것으로, 오늘은 에세이를 준비해 왔어요. 대체로 먹는 일이란 참 단순하지 않구나 생각하는 내용입니다. 내키는 키워드만 골라 읽으시는 것도 추천해요.
읽다가 혹시 하고픈 이야기가 생각나시면, 메일 하단의 초록색 버튼을 꾹 눌러 남겨 주세요. 함께 많이 얘기 나눌수록, 지속 가능한 좋은 식습관을 만드는 일과 가까워 진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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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지 않은 지 한참 됐어요. 몇 년은 된 것 같아요. 갓 내린 신선한 커피를 요즘은 워낙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 굳이 싶었던 거죠.
맛으로 보나 영양으로 보나 '아메리카노'에 뒤지는 고형 커피를 다시 꺼낸 데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그렇게 됐어요.
주말에 <소방관의 선택>을 읽었습니다. 영국 소방관 사브리나 코헨이 쓴 책이에요. 코헨은 10대 때 노숙자로 살았고, 18살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웨일스 소방 구조대에 들어갔어요. 동료를 잃을 뻔 한 충격적인 경험 후에 '어떻게 하면 재난 현장에서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에 천착합니다.
코헨의 공부는 책상머리가 아니라 자신의 현장,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경로가 순식간에 바뀌게 되는 사고 현장에서 시작되었어요. 교대 근무를 하면서 '오픈 유니버시티'에서 공부를 시작해, 긴급 상황에서의 의사 결정과 지휘 기술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고,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영국 소방관 훈련 및 평가 체계를 바꾸는 데까지 기여합니다. 지금은 소방관 가운데 최고 직급인 '소방대장'으로 일해요.
커피 얘기에서 멀리까지 왔습니다. 코헨의 서사엔 무거운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 누군가의 삶이 종료되거나 혹은 완전히 달라져버리는 순간, 이런 것들을 항상 가까이 하는 직업이잖아요. 험한 일을 마다 않고 씩씩하게 출동해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순간에도 이내 정신을 번쩍 차려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졌습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커피가 등장해요. "대장, 커피를 좀 더 만들까요?" 훈련에 앞서 동료가 사브리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커피인지는 나오지 않아요.
에스프레소가 아닌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유럽 소방관 합동 훈련을 할 때, '이탈리아 동료들이 커피 머신까지 챙겨왔다, 역시 이탈리아 사람들이군' 하고 사브리나가 엄청 웃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럼 뭘까, 아마도 인스턴트 아닐까. 여기에 생각이 이르자 카누를 따게 된 것이랍니다. 에어컨을 켜고 편안한 거실에 앉아 책이나 읽는 주제에,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처럼 그 짱짱한 긴장감을 재현하고 싶었나 봐요. 현장 출동 장면을 읽으며 머그컵을 꼭 쥐는데 손에 땀이 났습니다.
맛있었어요. 먹는 일은 참 복잡합니다. 혓바닥의 감각이나 장내 미생물의 대사 작용으로만 호불호가 정해지지 않는다는 게 진짜 신기해요. 가끔씩은, 썩 맛있다곤 할 수 없는 음식을 그 맛에 먹고 싶어지는 날도 있다는 것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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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가족끼리 오래 같이 살아도 입맞을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집에서 밥을 담당하는 사람의 노고란 다른 어떤 일보다 크게 쳐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말에 가족들과 서해안에 놀러갔습니다. 저와 동거인,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동생, 따로 사는 세 가구가 한 차로 출동했어요. 평소 엄마에게 반찬을 얻어 먹기만 하는 저는 이날 하루라도 뭔가 가족들을 위해 만들고 싶었습니다.
회사 근처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의 '비건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따라해 보기로 했어요. 질 좋은 치아바타에 양상추, 토마토, 아보카도를 썰어 넣고 양념은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로 했습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샌드위치라고 생각해요.
전날 저의 장보기 리스트를 본 동거인은, 자기 샌드위치엔 따로 햄을 좀 넣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채식을 하지만, 동거인은 고기를 몹시 좋아하거든요.
문제는 남은 가족들의 샌드위치였습니다. 동거인이 햄을 많이 샀다고, 다른 가족들 것에도 넣을지 물어보더라고요. 잠시 생각하다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날의 셰프는 저이고, 저는 이걸 '비건 아보카도 샌드위치'로 만들기로 결정했으니까요. 동생이 햄을 꽤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넣지 않기로 했습니다.
길에 올라 샌드위치를 하나씩 나눠줬을 때, 좀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의 입맛엔 좀 부족한 샌드위치인 게 곧 드러났어요. 왜 어떤 샌드위치에만 분홍색 햄이 가지런히 누워있는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어요.
"제가 다 넣을지 물어 보았는데, 도토리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집에 햄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이럴 때마다 "아이고 진짜 맛있다!" 열 번 씩 말해주는 건 엄마입니다. 너무 별로라서 일부러 저러시나 할 만큼, 맛있다고, 맛있다고 계속 칭찬해 줍니다. 다른 일엔 칭찬을 잘 안 하시는 분인데 말이에요.
만드는 수고가 어떤 건지 너무 잘 아셔서 그런 것 같아요. 아버지는 보통 말 없이 드십니다. 입엔 안 맞지만 먹을 수는 있다는 뜻 같아요.
샌드위치 타임이 끝나고, 동생은 이렇게 말했어요.
"형부, 다음엔 제 것도 부탁드려요. 안 물어보셔도 돼요. 그냥 넣어 주시면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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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꾸미
충남 보령의 무창포에 방문했습니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큰 주꾸미 석상이 있더라고요. 크게 오래되지 않았는지 새 것처럼 깨끗했습니다.
보통 이런 석상이 있으면, 꼭 그 앞에 표지석도 있잖아요. 대개는 무슨 시나 노래 가사 같은 게 써 있습니다. 혹은 석상 주인공의 특징이랄지 생태랄지... 그런데 이 석상에는 글쎄, '효능'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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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면 정력에 좋고, 공부를 잘 하게 되고, 알츠하이머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해놓았어요.
무창포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널리 알릴 수많은 수단 가운데 하필 이런 내용이라니. 타우린의 양으로 비교를 당하는 낙지, 꼴뚜기까지 모두에게 섭섭한 내용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한 편의 다큐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나의 문어 선생님>을 혹시 보셨나요? 안 보셨다면 강추합니다. 지난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취우수 다큐멘터리로 상을 받았어요.
문어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자세히 볼 수 있어요. 기지를 발휘해서 상어와의 한판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자주 본 사람에게 다가와 놀이를 청하기도 합니다.
그 장면들을 본 후로, 삶아져 벌러덩 냄비에 뒤집어진 문어를 보면 몹시 서글퍼집니다. 단지 먹을 것으로만 대한다는 게 너무 아쉬워져요.
주꾸미도 낙지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물속에서 살아갈 때 나름의 치열함, 용맹함, 기지 같은 것이 있을 터인데, '필수 아미노산'으로만 얘기되는 게 안타까워요. 아름다운 해변에 세워진 이 석상 앞에, 좀 다른 얘기가 새겨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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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옥수수
혹시 끼니로그 15호를 보신 끼니어님이라면, 저의 간식에 대한 집착을 기억하실 지도 몰라요. 약과, 꼬깔콘, 수미칩 같은 것에 집착이 시작하면, 있는 건 다 먹을 때까지 끝장을 봅니다. 당연히 끝에는 후회가 남고요.
특히 좁은 공간에 갇혀 있을 때 이런 증세가 심합니다. 차를 타고 꼼짝없이 고속도로에 갇힌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어요. 뭔가를 먹어야 돼요. 이건 참는다고 될 종류는 아니어서, 대체할 만한 걸 찾고 있었습니다.
집밥 인증 챌린지 기간 동안 훌륭하게 해낸 것 같아요. 찐 옥수수로 타협을 본 것입니다.
주말 여행 동안 차를 타고 가다가 옆에서 부스럭 부스럭 꼬깔콘을 뜯으면, 잽싸게 찰옥수수를 한 개 꺼냅니다. 유행하는 초당이 아니라도 좋아요. 따뜻한 것이면 더욱 좋지만, 식어도 적당히 쫀득합니다.
꼬깔콘의 바삭 하는 식감과 번들한 기름, 짭조름한 양념이 없지만, 톡 터지는 알갱이의 느낌과 쫀득한 식감, 삶을 때 넣은 소금 설탕의 단짠한 맛이 입안에 퍼져요.
옥수수도 열량이 높습니다. 그래도 튀긴 과자보다는 나아요. 섬유질도 많이 들어 있고요. 먹고 나서 속도 과자보단 편합니다.
뭔가를 꼭 먹어야겠다면, 공장 과자보다는 옥수수를 먹는 게 낫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미리 준비하는 품이 들지만, 재밌게 여겨 볼까 해요.
이제 옥수수의 계절은 떠나보내야 합니다. 길을 떠날 땐 셋 중 하나를 챙길 거예요. 찐 옥수수, 찐 고구마, 찐 단호박. 철 따라 많이 나는 것으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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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분의 끼니어님과 함께 15일간 함께한 집밥 인증 챌린지가 이번주에 끝났습니다.
함께해 주신 끼냥 님, 라끼녀 님, 벨벳 님, 단호박과두유 님, 셀린 님, 바람소리 님, 찹쌀걸 님, 성복라이프 님, 이구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정말 즐거웠어요!
서로의 밥상을 엿보고, 맛있는 걸 추천해 주고, 고민도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식사일기를 매일 쓰다가 15일치 노트가 딱 끝나버려서 엄청 허전합니다. 노트를 따로 만들어서 계속 쓸까 봐요.
혹시 식사일기 파일을 원하는 분 계신가요? 편지 맨 아래 초록색 버튼을 눌러 신청하시면, 메일로 보내드릴게요. 출력해서 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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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는 추석 연휴라 한 주 쉽니다. 시즌 4 첫 회차를 9월 16일 금요일에 보내드릴게요. 집밥 인증 챌린지 이야기 그때 가지고 오겠습니다.
#HAPPY_BIRTHDAY
이번 주와 다음 주에 많은 끼니어님들이 생일을 맞이하셔요. 한껏 축하 받으시길 바랍니다!💐
9월 3일에 태어나신 세이지 님, 9월 4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Sun 님, 9월 5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유니바니 님,🌼 9월 8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푸쉬카 님, 9월 9일에 태어나신 젤로 님, 정정순 님, 멋쟁이 님, 9월 10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자몽몽 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9월 11일에 태어나신 applehead 님, 방나영 님, 유미 님, 9월 12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이수미 님, 제로니모 님, 새끼깜코 님, 9월 14일에 생일을 맞으시는 건강덕후 님, 바람소리 님, 9월 15일에 태어나신 우르르 님께도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한가위 잘 보내시고, 도토리 에디터는 9월 중순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비와 바람 조심하시고, 2주 간 든든하게 잘 챙겨드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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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로그에 소개하고 싶은 상품, 커뮤니티, 서비스, 행사 일정 등이 있다면 stay.balanced.2021@gmail.com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검토 후 도토리 에디터가 연락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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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콘텐츠팀
서울 중구 정동길 3 경향신문 본사 6층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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