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아닌 ‘무출생’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2018년 한국은 OECD국가 가운데 최초로 0점대 출산율(0.98)을 기록했죠. 2022년 기준으로도 0점대 출산율(0.78)을 보여주는 건 한국이 유일합니다. 선진국일수록 출생율이 낮아지는 경향은 일반적이지만, 한국의 경우는 세계적으로 이례적입니다. 아이를 1명만 낳기로 하는 가구보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하는 ‘무자녀 가구’가 증가하는 것이죠. ‘저출생’과 ‘무출생’에 대한 해법은 달라야 합니다. 무자녀 가구 혹은 비혼 가구가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이유는 ‘출산과 육아비용의 부담’이 아닌 ‘삶 자체의 부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총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이유죠.

이번주 폴라리스는 출생율에 대해 다룹니다. 최근 정부가 제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추진 방안’을 살펴보며 정부의 정책방향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도 ‘여성’과 ‘노동’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보았는데요. 출산과 육아에 대해 여성이 남성보다 더욱 부정적 인식을 가지는 이유를 분석하며 ‘돌봄의 가치’에 대한 사회인식을 돌아보고, 당사자인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절감하는 ‘노동문화 개선’의 필요성을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지난 20년간 정부의 저출생 대책이 어떻게 실패해왔는지 돌아보았는데요. 이번 레터가 뭉툭하게나마 앞으로의 대안을 고민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3월 말 열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참여해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7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작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몇명의 아이를 낳을지 예상한 숫자)은 0.78로 또 다시 OECD 최하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라고 하죠. 한국은 지난 15년간 저출생 대책으로 280조원을 지출했으나, 출생율은 꾸준히 하락해왔죠. 특히 2018년을 기점으로 출생율 하락에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출생율 회복을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꼽으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했는데요. 막상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놓은 대책은 기존의 정책들을 정리・확대 하는 형태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거비와 양육비 부담 완화, 돌봄과 업무 병행 등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이 주를 이뤘는데요. 출산 혹은 결혼에 의지가 없는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고려할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제공하는 식이라기 보다 이미 출산 의지가 있는 부부에게 출산과 양육에 관련한 직접적 지원을 하는 식에 더 가까운 정책인 셈입니다.

이를 두고 ‘보편적인 사회 분위기를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정책실효성을 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육아휴직 제도는 노동문화의 개선 없이 확대가 불가능한데, 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특히 장시간 노동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게 만들 뿐 아니라 자녀 출산을 단념하게 만드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주 69시간제’는 출산율 반등과 충돌하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한편 “예산 증액 없이 기존의 제도를 확대할 수 있는가”하는 비판도 있습니다. 예컨대 초등학생의 돌봄 대안인 ‘늘봄학교’ 등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제도들이 많은데, 실질적인 예산 증액 없이는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국의 GDP 대비 가족관련 공공지출 수준은 OECD 평균에 미달합니다.

🧭글 보러 가기

대통령은 과거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한 바 있죠. 대통령의 철학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 이번 저출생 해법에는 ‘성평등’ 용어가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포함되었던 “성평등 제고를 위한 목표와 추진 과제”가 일괄 삭제되었죠. 성평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진 자리에는 임신•출산할 수 있는 몸에 에 대한 현금성 지원들이 들어왔고요. 그러나 성평등 없는 저출생 대책, 성공할 수 있을까요?

최근 발표된 시사in의 통계에 따르면 출산은 물론, 결혼과 연애에 대해서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결혼은 반드시 해야한다’는 문항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20대 여성(86.1%)이 20대 남성(60.1%)보다 26%가량 높았죠. 이처럼 분명히 존재하는 성별 간 인식격차의 원인을 알아야 우리는 저출생 문제의 해법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관련하여 몇 가지 통계자료가 실마리가 될 수 있는데요. 이 데이터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여성 삶의 불안정성이 연애-결혼-출산 기피를 낳는다. 여성에 대한 돌봄노동 전가를 해결해야 여성 삶의 불안정성 또한 해소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3.4%로 여성(63.9%)에 비해 턱없이 낮습니다. 사실 출산과 육아과정에서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은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연령별 여성 고용율 그래프는 여전히 M자형을 그리며 30대 초반에 고용율이 급감하는 형상인데요. 많은 여성들이 30대 초반에 출산과 육아를 기점으로 경력 단절을 경험한다는 거죠. 경력단절은 고용시장에서의 임금격차를 심화시킵니다. 고용노동부 근로실태조사에 따르면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비율은 64.6%에 불과하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신경아 교수는 “직장을 다니지 못하고, 경력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삶의 불확실성 때문에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평등 없는 해법이 결국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런 와중에 ‘성평등을 이루겠다’며 변죽을 울리는 법안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의 ‘외국인 가사근로자법’이 대표적입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법은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하여, 월 100만원 이하의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게 하자는 법안인데요. 조정훈 의원은 싱가포르 등의 예시(사실 싱가포르 예시는 과장된 것입니다.)를 들어 법안을 통해 여성노동자의 경력 단절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여성계와 시민사회에서는 법안에 대한 비판이 거셉니다. 여성에게 가사•돌봄노동이 전가되는 구조는 고스란히 유지한 채, 가사노동을 이주 여성에게 외주화하는 법안이니까요.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국내 여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더 취약한 위치에 있는 이주 여성 노동자를 착취하겠다는 발상”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오랜시간 돌봄을 여성적인 일로 규정해왔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경력단절과 임금하락으로 인한 삶의 불안정성도, 불안정에서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선택한 저출생도 해결할 수 없겠죠. 따라서 해법의 핵심은 젠더이슈로 비화된 돌봄을 ‘인간의 일’이자 ‘사회의 역할’로 재정립하는 데에 있습니다. 캐리 길리건, 사라 러딕 등 보살핌의 윤리를 제기한 여성주의자들은 책의 첫 페이지에서 단언합니다. “돌봄은 젠더 이슈가 아니다.” 대신 이들은 돌봄을 인간의 조건으로 규정하며 공적영역의 작동 원리에 돌봄을 포함시켜야한다고 주장하죠. 돌봄을 전담하는 여성을 현금성 지원과 이주 여성을 통해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사회. 이런 사회에서 더 이상 아이들 태어나지 않는 건 슬프지만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보러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