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눈송이 같은 에세이 신간과 금개 저자의 출간 전 연재 1화를 소개합니다.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을 ‘눈치’라고 하죠. 점점 더 ‘알잘딱깔센’의 인재를 발굴하고 개발하려 하는 한국에서는 눈치 없다는 말이 이런 뜻으로 쓰여요. 혼자 분위기 못 맞춘다, 센스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말과 반응에 뜻을 굽히지 않는다. 눈치가 센스와 동의어가 되는 이곳에서 어떤 이는 굴종과 눈치를 동의어로 보는 세계를 만들어갑니다. 타협 없이 밀어붙이는, 그러나 멀뚱한 얼굴은 아닌 사람의 이야기가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 책 속에서 확인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편집자 캠퍼입니다. 이번에 마감한 신간은 20여 년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해온 서정민갑 선생님의 《눈치 없는 평론가》입니다. 그간 《음악편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시리즈 등 주로 대중음악을 소개하거나 평론을 엮은 책을 출간해왔던 데 비해, 이번 책은 자신을 대중음악평론가아닌 ‘대중음악의견가’라 소개하는 이유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서정민갑이 쓰고, 듣고, 생활하는 법에 관한 책입니다. 평론가로서 자신의 노동과 음악과 예술에 대한 생각, 그리고 사회와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굴종 없이, 계산 없이, 부끄러움 없이 산다는 건 종종 눈치 없단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남들이 다 이렇게 생각해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뭉개지 않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하는 사람, 그러다 가끔씩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찬물 끼얹는다는 말을 듣는 사람. 사람들은 때로 옹고집과 신념을 헷갈려하고, 그래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눈치 없다’고 핀잔주기도 합니다. 정말로 미워하기도 하고요. 저는 서정민갑 선생님이 그러한 핀잔을 기꺼이 정체성으로 삼아버리는 사람 같아서, 무엇보다 이 모든 것에 정말로 진심이라서, 진지하게 읽다가도 너무 재밌고 웃음이 났는데요. 출간을 핑계삼아 저도 한번 눈치 없는 편집자가 되어 서정민갑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 요상한 재미를 독자 여러분도 이해하실 것 같았어요. 눈치 없는 편집자의 눈치 없는 평론가 인터뷰, 재밌게 읽어주세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눈치 없는 평론가》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 안녕하세요. 음악평론을 하면서 살고 있는 서정민갑이에요.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심사하고 강의하면서 살고 있고요. 몇 권의 책을 쓰기도 했답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에서 저를 만날 수 있어요. 아 참, 저도 오월의봄에서 만든 책들을 무척 좋아해요. 반갑습니다.


그간 많은 책을 쓰셨지만 이번 책은 서정민갑이라는 한 사람을 꽤나 세세하게 드러내요. 제목도 음악이나 평론이 아닌 ‘눈치 없는 한 사람’에 주목하도록 지어졌는데, 이번 책에 대한 소회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우선 여섯 번째 책을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사실은 작년에 다른 내용으로 책을 내보려 했는데 잘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여섯 번째 책은 내기 힘든 걸까 생각하던 차에 오월의봄에서 다른 주제로 책을 써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덕분에 나온 책이라 저는 고마운 마음 가득이에요. 이번 책은 저의 관점과 생각을 가장 많이 드러낸 책이라 어떤 반응과 평가를 얻게 될지 궁금해요. 기대만큼 많이 팔리거나 화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고 반응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원고를 쓰면서는 음악에 국한하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예술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겼으니까요.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의 역할과 능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어요. 그동안 몇 권의 책을 냈고 좋은 편집자를 만났지만, 이번 책처럼 제 책에 서사와 캐릭터를 부여하고 제목과 표지 디자인으로 연결한 경우는 없었거든요. 멋진 편집자 캠퍼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싶어요.


여는 글 제목이 ‘대중음악 평론하며 살아가기’인데, 저는 이 제목에서 ‘살아가기’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느껴요. 그 말 안에는 변화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어떤 중심은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취향이 바뀔 수 있고, 생각이 바뀔 수 있고, 삶에 대한 자세도 달라질 수 있고요. 대중음악 평론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변화했고, 어떤 것이 변화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 대중음악 평론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달라진 게 있고, 나이 들었기 때문에 달라진 게 있겠지요. 우선 음악을 더 폭넓게 듣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아이돌 음악도 열심히 듣게 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음악과 글을 중심으로 삶이 재편되었죠. 삶에서 음악이 가장 중요해지고, 글을 잘 쓰기 위해 읽고 듣고 보고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나온 20여 년은 그 방향으로 시간과 노력을 집중하는 시간, 그 방향으로 고민하는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것이 저의 정체성이 된 변화가 가장 중요한 변화겠지요. 한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이 하는 일이 보인다는데 저의 경우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개인적으로는 결혼을 하고 이사를 했군요. 나이를 먹으며 어느새 50대가 되었고(세상에!), 머리숱이 줄고 체중이 늘고 노화가 진행되면서 외모도 달라졌죠. 써낸 책이 늘어가는 동안 친한 사람 역시 조금 바뀌지 않았을까요. 저에 대한 평판도 달라졌을 텐데요.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수없이 깨달았고요.
삶과 자신에 대해 좀 더 여유를 갖게 되기도 했네요. 여전히 자신을 몰아붙이며 사는 편이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까요. 다른 이들과 세상에 대해 체념하고 포기하게 되는 마음이 커지기도 했군요. 제 뜻대로 안 되는 일, 제 바람대로 되지 않는 일을 꽤 많이 만난 탓이겠죠.
세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많은데요. 당원으로 가입한 당에서 다 탈당하고, 가입하거나 후원하는 단체는 늘어나고,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게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


어떻게 하면 좋은 평론을 쓸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어떻게 하면 안 좋은 평론을 쓰지 않을 수 있을까?(33쪽)에 대한 이야기로 글쓰기를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좋지 않은 글을 안 쓰는 방법이라니, 그런 책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문득 이런 게 궁금해집니다. 지나고 보니 왜 그렇게 썼을까, 후회했던 평론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요?


👉 저는 예전에 쓴 글을 다시 읽진 않아요. 네이버나 소셜미디어에서 알려주는 예전 사진과 포스팅을 다시 읽지도 않고요. 그 순간의 저는 서툴고 미숙했을 게 분명하니까요.
사실 예전에 쓴 글을 지금 다시 읽으면 대부분 왜 그렇게 썼을까 싶을 거예요. 이렇게도 썼구나 싶어 흐뭇할 때는 아주 드물어요. 번번이 왜 더 잘 쓰지 못했을까, 다른 이들은 근사하게 써내는데 나는 왜 그렇게밖에 보지 못했을까 싶은 아쉬움과 후회와 부끄러움이 저의 에너지예요. 그래서 제 글을 읽고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어요. 그러면서 책을 낸다는 게 모순적으로 느껴지지만 이렇게 해야 더 고심하게 되더군요. 부끄러움이 저를 밀고 가네요.


평론가로서 음악인과의 거리 유지를 (같이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조심스러워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그렇고, 민중가요를 사랑하면서도 비판할 건 비판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평론이라는 노동에 대해서든 음악에 대해서든 삶에 대해서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지 않기 위해 부단히 경계하시는 듯한데, 그 경계가 무너진 순간들은 없나요? 정말 사람이 언제나 그렇게 너그럽지 않을 수가 있는 건가요?


👉 사람은 대개 자신에게는 관대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글에 쓴 제가 저의 전부는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죠. 글은 스스로를 얼마나 드러낼지 고를 수 있고 편집할 수 있죠. 글만으로 한 사람을 판단하면 위험해요. 제가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한 순간들이 왜 없을까요. 분명히 잘못한 순간,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묻어간 순간, 잘못하고도 잘못한지조차 모른 순간, 비겁하게 자신을 옹호한 순간이 많았어요. 그러고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순간들이 계속 저를 찌르곤 해요. 그만큼 부끄럽고 미안한 일들이 수두룩해요. 가끔은 잘못했던 순간들로 되돌아가서 바로잡고 싶은 정도예요. 다만 너무 부끄러워서, 너무 미안해서 말하지 못할 뿐이죠. 그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미안할 따름이에요.


뉴진스의 〈Hype Boy〉, 그 노래가 왜 좋은지 도저히 공감하지 못했다고 하셨지요. 본인의 감각에 드디어 위험신호가 온 거라고 화들짝 놀라시면서요. 그때가 2022년이었으니 이 기회에 다시 여쭙니다. 여전히 〈Hype Boy〉에 대한 의견은 변함이 없으신지요.


👉 네, 좋은 노래인 건 알겠지만 계속 들어봐도 그 노래를 열렬히 좋아하는 이들만큼 좋아지진 않더라고요. 이건 의견이 아니라 감각이기도 하겠죠. 어떤 노래와 감성과 태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감각.


마지막 질문입니다. 오래 살고 싶은 이유로 온라인서점 개인 보관함에 담아둔 책 3901권(95쪽)을 언급하신 걸 비약하자면 선생님은 독자분들께 수명 연장을 강요하는 셈인데......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딱 한 가지만 꼽자면 무엇일까요?


👉 통념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이에요. 엄청나게 다르진 않더라도 예술에 대해, 예술을 향유하는 방식에 대해 익숙하고 친숙한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제 책이라는 거울 앞에 서서 차이를 확인해보셨으면 해요. 제 책을 통해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일러두기

〈오!레터〉 69화 ‘웃기는 법 알려드립니다’에서 〈프롤로그 ‘적정 코미디 기술’ 연재의 변: 저자 인터뷰〉의 답변 중 출처를 밝히지 않고 쓴 부분을 바로잡습니다.


아티스트 이반지하님은 지난 2024년 10월 1일 DMZ 영화제에서 영화 사탄의 왕국 GV를 진행하며 저는 유명한 곳에서는 말도 안 되게 유명하고, 아닌 곳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극단적인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본인을 소개하셨습니다. 저는 당시 GV의 관객으로 참여해 그 멘트를 들었고, 이를 기억하고 있다가 지난 인터뷰 답변에서 “아주 협소한 관객층에게는 꽤나 자세히 알려져 있고 절대 다수의 일반인들은 전혀 모르는 극단적인 유명세를 가졌습니다”라고 썼습니다. 답변 당시에는 패러디라고 생각하고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했으나, 특정한 시공간에서 한정된 관객에게 발화된 이야기이므로 패러디가 성립될 수 없으며 동료(선배) 창작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은 잘못입니다. 각주를 달아 출처와 맥락을 밝히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실수에 대해 이반지하님께도, 독자분들께도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말과 글을 다루는 창작자로서, 특히 관계와 농담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더욱 신중한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개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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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코미디 준비 자세: 지각하지 마라(네가 교사라면 더더욱)


“10분 늦을 것 같습니다. 출석체크 대신 부탁드려요ㅠㅠ”

업무 메신저의 [근무상황] 채널에 타이핑하고 전송 버튼을 누르기 전에 심장이 또 너무 빨리 뛴다. 그냥 지하철이 이대로 영원히 멈추길 바라면서 전송 버튼을 누른다. 침을 삼키고 이를 꽉 깨문 채로.

교사는 돈 많이 못 버는 연예인이라 했다. 학생들은 가정 밖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어른에게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고 하필이면 나를 만나게 됐다.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지각한 날에는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가상의 광대가 팡파르를 터뜨리고 소녀시대처럼 전 세계가 우릴 주목한다. (우리 학교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캠퍼스로 사용해 모든 공간이 투명 유리창이거나 개방되어 있다. 즉 조용히 밀입국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교사가 지각을 할 수 있나요? 저걸 교사라고 할 수 있나요? 저런 사람에게 누가 뭘 배울 수 있나요? 방음 안 되는 오피스텔 벽 너머로 들려오는 절대 꺼지지 않는 알람소리처럼 스스로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이 목소리들과 함께 살고 있는 주제에 학생들에게 늦지 말라고 하는 것은 고역이다. 헐레벌떡 도착해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열면 개인 메시지로 상사가 보낸 메시지.

“이번 달 벌써 세 번째입니다. 출근 시간 잘 지켜주세요.”

혹은 교무회의가 끝나고 모두가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할 때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하는 말.

“회의 끝나고 잠시 얘기 좀 하시죠.”

지난번에도 이야기한 것처럼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이야기할 게 없습니다. 여기는 학생들도 있으니 그들의 신뢰까지 잃게 되는 겁니다. 편찮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여긴 회사니까 사무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병원에서 꼭 이야기해보세요. 네…네…. 넵.

성취강박/고기능/ADHD의 지각에는 악순환 고리가 있다.

 

지각 → ‘기본적인 것도 못 지키는 사람’이라는 자책 → 위축됨 → 업무 성과 저하 → 성취감을 느끼지 못함 → 자신감 하락 → 성취욕과 인정욕구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 일을 벌임 → 벌인 일까지 소화하려다 체력이 떨어짐 → 새로운 일에서 실제로 뭔가 성과를 얻기 때문에 그만두기 어려워짐 → 정신건강이 악화되어 잠을 더 못 자게 됨 → 수면의 질이 낮아지고 기상하면 공황이 옴 → 지각(*반복)

 

노동을 돈으로 교환받는 입장에서 사회적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 이걸 모르는 건 아닌데 솔직히 마음 깊은 곳에서 납득이 잘 안 갔다. 나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에 의문을 가지기 때문에 좋은 활동가였고 가끔 재밌는 농담을 한다. 그러나 지각을 하는 게 나쁘다는 당연한 사실에까지 의문을 가지는 순간 사회의 입장은 곤란해진다. 슬프게도 좋은 조직원, 동료, 교사 반열에 오르는 합격 목걸이(그런 건 없다……)를 받지는 못하게 되는 셈이다.

지각 문제에 대해서는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상담에서도 엄중하게 다뤘다. 사회의 질서와 불화하는 나의 은밀한 신념은 이런 식이었다. (과거형이니 너무 화내지 마시길……)

 

지각이 그렇게 나쁩니까?(탕웨이 화법) → 지각 문제 때문에 나를 손절하려 했던 사람들의 입장을 들어봄 → ‘지각하는 것은 타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 → 시간이란 게…… 그렇게 소중합니까? → 사회의 입장: 당연하죠 → 헉 그렇군요 저는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며 살고 싶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도 힘든데……. → 지각이 그렇게 나쁩니까? (*반복)

 

나의 네 번째 연상녀(상담 선생님)는 이렇게 표현했다. “혜지씨 안에서 진보와 보수 세력이 싸우는 것 같아.” 보수세력의 골자는 20세 전까지 부모님과 교회가 원했던 ‘목적이 이끄는 삶’이다. 타의 모범이 되는, 글로벌 인재가 되는, 아름다운 연애를 하고 대접받고 사랑받고 결혼하고 아기 낳고 남들 수입만큼을 십일조로 헌금하는 삶을 주된 목표로 한다.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과정은 성실해야 하고, 결과는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 만큼 빛나야 한다. 나는 제법이었다. 서울에 오기 전까지,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까지, 강간당하고 임신중절하기 전까지, 여자 애인을 사랑하게 되기 전까지는. 이후 등장한 진보세력은 정신과 약 먹고 누워 있는 것이 주요 일과지만 매우 강경하다. 보수적 가치에 대항하는 싸움을 내 안의 노사갈등으로 본다면 진보 쪽은 금속노조 혹은 건설노조 느낌으로 강성이다. 이들은 항시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 핵심 정서는 여차하면 죽는다는 마음가짐이다. 진보세력은 묻는다.

왜?

왜 일해야 하지? 왜 돈 벌어야 되지? 왜 내 생활과 패턴을 직장에 맞춰야 하지? 왜 나를 빼고 만들어진 약속을 지켜야 하지? 왜 세상이 엉망인데 내가 노력해야 하지? 왜 살아야 되지? 여기에 명확한 답이 없으니 (있었는데 없어진 건 원래 없었던 것과는 다르다) 모든 당위를 질문들이 이겨버린다. 계약이야? 어쩌라고 나 죽고 싶어. 약속이라고? 어쩌라고 나 죽고 싶다고…… 나를 괴롭히는 상황들의 먼지를 털어내 깊이 파고들면 아래께에는 공통적으로 원망과 억울함이 있었다. 삶 자체에 대한 원망, 살아 있음에 대한 억하심정. 나는 이미 너무 상처받았고(모든 것에, 인생에, 죽은 사람들에게? 내 자신에게) 그 상처는 회복된 적 없는 채로 인생이 돌아가고 있었다. 상처 위에 상처를 덧내며 무리하게 생활하는 방식으로. 내가 〈인생 살기〉의 빅 팬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마음을 언어화하고 나서는 조금 놀랐다.

나는 살아가는 게 억울하다, 나는 삶을 원한 적 없다, 나는 살아 있고 싶지 않다.

헐……

여태 회피해왔던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놓으니 황당한 동시에 어쩐지 마음이 좀 편해졌다. 교직원 대상 비폭력대화 워크숍에서 갈등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으로 ‘살짝 인정하기’ 기법을 배운 적 있다. 납득 안 되는 의견에 완전히 동조하지도, 완전히 반대하지도 말고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기법이었다.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살짝 인정’하니 그제야 나의 살고 싶지 않음에도 의문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진짜 그런가? 나는 정말 살아 있는 게 싫은가?

살아 있음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강아지의 냄새와 촉감, 언제 다 볼까 싶게 많고 대박 훌륭한 작품들, 굳이 사는 이유는 이런 거다 싶은 순간들, 내가 나보다 사랑한다고 믿게 되는 사람들, 걔랑 나만 아는 농담. 누군가를 만나고 그 사람만 가진 좋은 점을 찾아내고 사랑에 빠지고 타인을 통제하거나 소유할 수 없음에 분노하고 애먼 사람을 질투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스스로를 탓하고 과거를 복기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재밌다. 얼마나 재밌냐면…… 다른 건 전혀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근데 나는 자주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고통도 없고 삶도 없는 상태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존나 피곤했다. 그런 피로감 안에서 생각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냥 뇌와 심장에 늘 안개가 낀 느낌으로 하기 싫은 걸 겨우 해냈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것 위주로 삶이 구성되면 사람은 억울함에 잡아먹힌다. 하고 싶은 걸 하는 비율을 늘린 지금은 좀 달라졌다. 하여튼 덜 피곤하고 전반적으로 덜 괴롭다. 어떤 계기로 달라졌는지 뾰족한 비결을 알려줄 수 있다면 자기계발서로서 더없는 영광이겠지만 죄송하게도 그런 건 딱히 없다. 그냥 시간이 지났다. (life happened……) 시간이 약이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어른 대열에 합류해서 송구하다. 그나마 노력에 의한 요인을 찾자면 꽤나 적성에 맞는 일로 돈 벌어서 중고차 한 대 값을 상담 비용으로 지불한 것이 주요했다고 본다. 이외에도 부모님께 커밍아웃하고 손절 안 당하기, 친구들과 애인한테 패악질 부리고 손절 안 당하기, 정신건강 유료구독(정신과 약 꾸준히 먹기), 신체건강 유료구독(PT 받기), 계속 창작하면서 창작자 친구들한테 정서적 지지 받기 등등이 있겠다. 스스로를 실험 대상처럼 대하면서 언제 기분이 좋고 나쁜지, 어떤 환경에서 진짜로 휴식할 수 있는지 관찰했다. 삶에 남아 있는 미련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다가 나와 이효리 선배님 사이의 상관관계를 밝혀낸 것도 도움이 됐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효리 선배와 공통점이 두 개나 있다는 것은 좋은 징조다. 나는 효리 선배가 절친에게 털어놓은 내용과 정확히 같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진짜로 사랑을 줘보기.

나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수상할 정도로 높은 기대와 이상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모태신앙이라는 사실과 관계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관계는 커트라인 한참 아래서 자꾸 못생기고 부끄러운 실패를 거듭했다. 인생 살기를 그만두기에는 이게 진짜 신경쓰였다. 내가 잘하고 싶은 만큼의 1/1000000도 못하는 분야가 있다는 게. 한 번이라도 좀 괜찮게 해보고 싶은데 이게 진짜 어려운 게…… 사랑이란 건 어쩌다 한 번 이벤트성으로 끝내주게 했다고 잘하게 되는 게 아니다. 잘할 확률을 높일 방법은 하루라도 시간을 버는 것뿐, 이번엔 다르게 해볼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시간이라는 기회를 주는 것뿐.

사랑을 잘 주기 위해서는 원망하는 마음과 멀어져야 한다. 효리 선배도 이 사실을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상태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자. 누가 나 좋다고 난리쳐서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는데 걔가 맨날 약속 시간에 2시간 늦고 죽고 싶다고 하고 자해하고 죽고 그러면 엄청 슬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전보다 더 잘 사랑할 방법을 찾고 싶어서 일단 살아 있다는 사실을 좋아해보기로, 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기로 마음먹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먼 길로 돌아와서야 시간이 소중하다는 명제에 동의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미래에 내가 지각하지 않는 교사가 되어 있다면 그땐 노사가 원만한 합의를 거쳐 인생 자체를, 시간을 보내는 일을 꽤나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는 지각하는 학생들에게 아주 단호하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규칙을 납득하고 행동을 바꾸기까지는 아주아주 먼 길을 걸어야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서. 그러니까 내가 이 챕터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일단 조금은 살고 싶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 유의 비장함까지는 아니어도 된다. 그렇게까지 드라마퀸일 필요는 또 없다. 살기 vs 죽기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이승이 좋다는 사실을 ‘살짝 인정’하는 정도라면 오케이다. 인간 실격과 인간 합격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나 죽네 나 죽네 하면서도 삶에 미련 가진 채로 살아 있으면 된다. 이제 코미디를 할 준비가 절반 정도 되었다고 보면 된다. 코미디라는 건 인생을 너무너무 좋아하기만 하면 잘하기 어렵고(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남을 웃기려는 욕구 자체가 없을 확률이 높다) 너무 죽고 싶거나 죽은 사람은 대본을 못 쓰기 때문이다.


*이효리는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 〈요정재형〉에 출연해 삶의 목표가 “진짜 사랑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순이 다음 회차에 출연해서 “진짜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며 놀렸다.

곧 나와요

《우리 같이 노조 해요》

화섬식품노조 20년 20장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기획, 신정임 기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2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 출간됩니다.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절규했던 전태일 열사 또한 섬유봉제 노동자였죠. 화섬식품노조는 그 전태일의 후예, 수많은 ‘전태일들’이 만든 산별노동조합입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뒤에 1995년 민주노총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민주화학연맹과 민주섬유연맹이 화섬연맹으로 통합했고, 2004년 마침내 산별노조 화섬노조가 출범했습니다.

화섬식품노조 20년사 《우리 같이 노조 해요》는 영웅들의 무용담이 아닙니다. 승전보도 아닙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지키다가 쓰러지고 심지어 지리멸렬, 눈물을 삼키고 물러선 적도 있는 조합원들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일제강점기 고무공장부터 산업화의 동력이 되었던 섬유와 석유화학, 이어서 21세기 IT까지, 100년 동안 우리 산업사의 흥망성쇠 속에서 부침과 명멸을 거듭하며 끝내 일으켜 세운 산별노조의 거짓 없는 이야기입니다. “노동자들의 땀과 피어린 눈물로 가득한 조직의 기록”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살아냈던 사람들의 역사”가 이 책에 펼쳐져 있습니다. 감히 우리 시대의 노동운동사가 담겨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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