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인스피아’ 발행인 김스피
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유유에서는 보름에 한 번, 책의 사람을 만납니다.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궁금해하실 독자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보름유유 구독자 여러분? 
추석 보름달 구경은 잘하셨나요? 그렇게나 덥더니 어느새 훌쩍 가을이 되어 버렸네요. 
지난주에 유유에는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가 저희 유유 1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감사하게도 땡스북스에서 10주년 북토크를 열어 주셨어요. 저자와 책이 아니라 출판사와 일꾼이 꾸리는 북토크라니, 어색하고 어려워서 몇 날은 어리둥절, 며칠은 수심에 빠져 있었지만 공간을 가득 메워 주신 동료님, 독자님들 덕에 감사한 마음과 힘을 잔뜩 얻고 돌아왔습니다.
유유와 유유책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저희 올해 낼 책이 많~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열심히 만들어 보여 드릴게요! 

오늘의 인터뷰이를 처음 만난 날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저 유유책 좋아해요”라는 말씀이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매회 뉴스레터를 받을 때마다 ‘이 알찬 레터는 누가 어떻게 준비하는 거지? 이렇게 쓰려면 도대체 일주일에 책 몇 권을 보는 거야?’ 하며 궁금했는데, 역시나 저희가 만든 책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특별히 오늘은 제가 정리한 이 인터뷰를 보시기 전에 인터뷰이가 발행하는 뉴스레터도 한 편 읽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뉴스레터 ‘인스피아’ 발행인 김스피
맥집자 안녕하세요, 기자님. 드디어 뵙네요. 어떤 분인지 정말 궁금했어요. 인스피아는 혼자 쓰시는 거죠? 
김스피 네. 
혹시 뉴스레터도 쓰시고 취재도 하시고 기사도 쓰시는 건 아니죠? 
아, 아니에요. 그렇잖아도 사전 질문지에 취재하고 기사 쓰고 뉴스레터도 쓰는 거냐는 질문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저도 그렇게는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랜 구독자들 중에도 인스피아가 『경향신문』 뉴콘텐츠팀에서 발행하는 뉴스레터고 김스피가 기자님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이나 형식이 여타의 언론사 뉴스레터랑 너무 다르기도 하고. 다루는 책도 문화면에 실리는 책들과 결이 좀 다르고. 글도 마음이 좀 열려 있는 연구자가 쓴 듯한 느낌이에요.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물론 기사는 계속 쓰고 있었지만, ‘진짜로 읽히는 글’을 쓰고 싶었어요. 기사는 보통 쓰고 나면 독자 반응을 그렇게 기대하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누군가가 내 글을 진지하게 읽고 반응해 주는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어요. 이 때문에 한때, 기사 쓰기와 별개로 블로그나 브런치를 만들어서 이런저런 글을 틈틈이 써 보기도 했어요. 그러던 중 작년 초에 회사 뉴콘텐츠팀에서, 개인에게 자율성을 주는 ‘1인 뉴스레터’ 실험을 시작한다고 해서 지원했죠. 

전 뉴스레터가 별다른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글’이라고 생각해요. 블로그나 브런치가 플랫폼에 글을 쓰고 독자가 찾아오게 하는 방식이라면, 뉴스레터는 단지 방향이 반대로 바뀌었을 뿐, 글이 중심인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뉴스레터를 해 보고 싶었고, 처음부터 글쓰기에 주력했어요.


그때 국내에는 단순히정보 취합하는 큐레이션 콘셉트의 뉴스레터가 많았는데, 큐레이션 뉴스레터는 내키지 않았어요. 왜냐면 저는 뉴스레터를, 인터넷 시대에 굉장히 희귀한(?), 그러니까 진지한 텍스트 독자 만날 있는 기회의 장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내게 필요한 글을 굳이 구독까지 해서 읽겠다는 적극적인 독자가 많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기껏 마음을 내서 진지하게 글을 읽어 줄 준비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정보 취합성 레터를 건네는 건 조금 아깝다고 생각했어

글이라면 당연히읽는 있어야겠죠. 그래서 특정 장르, 분야보다도 독자들이 읽고 싶을 만한 초점을 맞춰 서평-칼럼 등이 믹스된 형태의 에세이를 기획했어요.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해외 언론에서는 이미 칼럼을 뉴스레터로 보내 주는 작업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고요. 해외 뉴스레터 플랫폼서브스택에는 큐레이션 말고 에세이 형태의 뉴스레터들이 이미 많았기 때문에 크게 이질감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뉴욕타임스』 지면에서도 “이 뉴스레터를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같은 표현을 발견하고 뉴스레터가 읽을 만한 글을 싣는 매체로 자리 잡은 것 같다고 느꼈고, 재밌다고 생각했죠. 

저는 뭣보다 재미있는 글 읽는 걸 좋아해요. 그냥 웃긴 글 있잖아요. 글로 읽어야만 감칠맛 나는 종류의 글. 그런 글을 써 보고 싶었고, 뉴스레터는 그게 가능할지를 실험하기에 굉장히 좋은 플랫폼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정보를 가진 비문학은 기본적으로 큐레이션’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와! 약간 탄생의 궤적 같은 게 있었네요. 그냥 발행하게 된 게 아니고요. 매회 뉴스레터를 보면 한 주 내내 준비해도 힘들겠다 싶을 정도의 책이 한 맥락으로 싹 꿰여 있었거든요. 자연히 ‘준비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들까?’ 생각해 보게 됐고,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다 하면서 이걸 매주, 혼자? 할 수 있나?’ 생각해 보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럼 『경향신문』에서는 기자의 역할이나 기사의 형태를 달리하는 팀을 만들어 보기로 한 거고, 시작해서, 이렇게 하나씩 시도해 보고 있다는 말인 거죠. 
네, 그런 자리를 준 거죠. 
고되긴 해도 좋은 선택인 것 같아요. 
네. 월급 주면서 딴짓을 허용하는 회사가 잘 없죠. 그런 만큼 되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피드백을 노션으로 하나하나 모으고 있는데, 그걸 보고 회사에서도 결과를 조금씩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이상한 걸 보고 이렇게 진지한 피드백을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하면서요. 기사 쓰는 기자들도 기본적으로 독자 반응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뉴스레터 한 편에서 언급하는 책의 종수가 꽤 많아서 내내 필자의 독서력이 궁금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뭣보다 신간도 아니고 신문 서평란에서 봄직한 책도 아닌데, 이 책이 어디에 왜 필요한지를 흥미롭게 소개하셔서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보통 한 편 발송하는 데 들이는 시간이 어느 정도예요? 책을 다 어떻게 찾으시는 거예요? 
근데 기본적으로 박식가 엄청난책벌레 아니에요. 오히려 기자 생활 하면서는 책을 거의 못 봤어요. 취재할 필요한 책들 말고는요.
기자 사회에는현장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 읽을 시간이 있으면 시간에 차라리 명이라도 만나라’ 같은 말이 있는 거죠. 물론 사람과 현장에서만 나오는 통찰이 있다는 맞는 말이에요. 한편, 책을 직접 읽어서만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 또한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 인스피아를 시작하면서부터였고, 역시 레터 시작하기 전에는 일에 치여서 책을 많이 읽진 못했죠.

그런데 읽기 시작하면서 좀 억울했어요. 전 정말 책에 이런 내용이 다 들어 있는지 몰랐어요. 세상에 좋은 책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던 거예요. 주로 사회과학 분야 책을 좋아하는데, 읽고 보면 제가 현장에서 했던 고민이 고스란히 다 담겨 있더라고요. ‘와 내가 인터뷰했던 분인데 이렇게 통찰 있는 책을 쓰셨다니’ 같은 경험도 여러 번 했어요.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단지 제가 펼쳐 보질 않았던 거죠.

가령 ‘읽히는 텍스트란 무엇인가’는 저한테 단순한 교양이 아니에요. 현장에서 늘 했던 고민이거든요. 기사 쓰면서 ‘이걸 누가 볼까’ ‘아무도 안 볼 것 같다’ ‘그런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계속할 수 있지’ 같은 고민을 거의 매일 하니까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을 보면 흡수가 정말 빨리 되죠.

독서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취재할 주제를 정하고 자료조사를 하는 거예요. 방송도 찾을 수 있고 기사도 찾을 수 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는 책을 더 먼저 찾아보게 됐죠. 왜냐면 책이 가성비가 더 높잖아요. 더 재밌고요.

만약 제가 원래부터 모든 책을 아주 완벽하게 알고 있었고, 철학, 정치, 고전 등의 계보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지금 같은 톤으로 글 쓰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내용, 읽어 본 책일 테니까 감흥도 없겠죠.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모르니까 알고 싶다. 그래서 읽는다 자세로 그때그때 물음표를 떠올리고 허둥대며 읽고, 공부하면서 얻은 느낌표를 공유한다는 취지예요. 이 때문에 독자님들도 친근감을 느끼시는 같아요. 정말이지 저 또한 불완전한 독자로서 대로 느낀 대로 솔직하게 쓰고 있습니다.


아, 책 다루는 뉴스레터라 주제를 먼저 정하는지 책을 먼저 정하는지 궁금했는데 주제를 먼저 정하시는군요.

네, 초반에는 그랬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졌어요.

당장 필요한 책과 당장은 쓸데없는 책을 늘 반반 정도로 보려고 노력해요. 어차피 그 회차 뉴스레터에 소개하는 책은 그 주에 전부 다시 봐야 하지만, 이제는 아예 책을 보는 습관을 새로 들였어요. 보면서 꼼꼼히 기록하는 거죠. 주로 노션을 쓰는데, 읽으면서 포인트가 될 만한 지점을 잡아 놓고, 함께 볼 기사가 눈에 띄면 링크를 걸어 놔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 보이면 바로바로 검색해서 각주처럼 연결해 놓고요. 읽는 과정이 곧 쓰는 과정이 돼 버린 거죠. 그렇게 30~50퍼센트 정도 숙성된 주제는 꽤 많고요, 이제는 적어도 ‘이번 회차 백지로 나가겠다’는 불안감은 없으니까 당장 쓸데없는 책도 읽을 수 있게 됐어요. 그러다 보면 그 쓸데없는 책을 당장 이번 회차에 쓰게 되는 경우도 생겨서 선순환이 되고요.

인스피아 시작하면서 새로운 독서법을 몸에 붙이신 거네요? 권할 때는 묶어서 하지만 독서는 일단 병렬적으로.
네네.


아, 레터 첫줄이 “해찰하면서 느릿하게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잖아요. 첫 레터에서 인스피아를 소개하면서 “당신의 창조에 작은 부싯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쓰셨고요. 혹시 처음부터 콘텐츠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마음속의 독자로 잡고 계셨으려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랬나요? 
아무래도 뉴스레터를 챙겨 보는 사람이라면 콘텐츠 생산에도 관심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죠. 그리고 그냥 “인문학은 너의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어”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잖아요. 그래서 에밀 시오랑을 인용하면서 “당신이 콘텐츠 크리에이팅을 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영감을 얻어야 한다”고 제안했죠. 논문 콘셉트는 하루 만에 정한 거예요, 조금 진지한 독자에게라면 약간의 효능감을 줄 수 있을 거다, 논문 같이 생긴 뉴스레터로 이미지 메이킹을 해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말하고 보니 너무 얼기설기 꾸린 것 같네요.
그래서 처음에는 기자이신 줄 모르고 대학원생인가? 했어요. 열려 있으면서 공부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구나. 글을 보면 글에서 느껴지는 애티튜드가 있잖아요. 그게 ‘나는 배우는 사람이야.’ 같은 느낌이었어요.


책은 주로 어디서 보시나요?

도서관이요.

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세요?

읽고 싶은 책, 읽을 책을 쭉 기록해 둬요. 도서관에서 하나씩 찾아보고 읽을 만한 책을 가리는 거죠. 그리고 책 속에서 많이 찾아요. 어떤 책이든 작가가 책 속에서 인용한 책은 자기가 읽어 보고 좋으니까 인용한 것일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자체로 책 추천이라 생각하고 그 책들도 쭉 읽고 싶은 책으로 기록해 둬요.

좋네요.

인터뷰하면서 인스피아가 왜 재미있게 읽혔는지를 생각해 보니까, 책을 단순히 책으로 권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서두에서 내가 왜 이 글을 쓰는지에 대해 밝히고, 그다음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읽은 책과 생각한 과정을 쭉 정리해서 쓰고.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한 맥락으로 읽히는 게 장점이에요. 책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쓴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요.

맞아요. 가위 필요해서 가위 가져온 거예요. ‘책을 도구로 쓴다’는 걸 제대로 이해해 주신 것 같아요.

그러게 책을 읽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말이잖아요.


저는 책이 갖는 힘이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선뜻 보겠단 마음이 안 생겨서 그렇지(=읽을 만한 독자에게 제대로 접근이 안 되어서 그렇지) 효용이나 내용을 풀어 보여 주면 진짜 보고 싶어 하고 필요로 할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거든요.

제가 뉴스레터에서 소개하는 책 중에는 조금 ‘이상한’ 책도 많아요. 말하자면 신문 서평란에서는 다루기 힘든 책이요. 누군가를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만약 제가 문화부 책 담당 기자였어도 크게 다루지 못했을 책이에요. 그런데 이상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그 책들이, 전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렇게 신문 지면에서 다룰 수 있는 종류의 책과 뉴스레터에서 다룰 수 있는 책이 좀 다르다면, 어쨌든 그 ‘다른’ 책들을 좀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가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보면 딱히 쓸모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을 꾸준히 하면서 느낀 게, 우리 사회에 이런 일하는 사람을 월급 주면서 ‘방치’할 수 있는 지대가 정말 너무 없잖아요? 그렇다면 조금 거창하게 말해서 ‘지금 이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쓸모없는’ 시간을 주었을 때 개인이 뭘 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와아-

그런 여러 고민들이 좀 합쳐진 거고.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는 건가요? 

제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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