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민주주의
뉴스레터 8호
발행일 2022년 9월 7일 
화폐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목차]

  • 화폐민주주의연대 논평 : 국민의
    재산 처분, 국민에게 먼저 물어봐라
  • 서익진의 Q&A : 빚 없는 자유통화 과연 가능할까
  • 김영식의 알쏭달쏭 채권 이야기
    : 채권, 그것이 알고 싶다
  • 현영애의 서평 : <화폐의 비밀> 
  • 화폐민주주의 연대 활동 및
    공지사항 
화폐민주주의 논평
"국민의 재산 처분, 국민에게 먼저 물어봐라"
정부(기획재정부)가 지난 8월 8일 향후 5년간 16조 원+알파 규모로 유휴·저 활용 국유재산의 매각을 적극 추진한다고 밝혔다. 당장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국유재산 매각이 특정 사적 이익집단에게 경제적 특혜를 제공하는 것으로 귀착되어 국가이익을 해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화폐민주주의연대(이하 화민연)는 이러한 우려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우리는 국유재산 매각은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국유재산은 형식적으로는 국가 소유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소유이므로 정부에 위임된 사무일지라도 평소와 크게 다른 정책을 시행할 때는 당연히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최소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마땅하다. 게다가 갈수록 국가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는 마당에 공유재산이 언제 어떻게 국민과 공익을 위해 활용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칙적인 이유 외에 이번 국유재산 매각에는 의문이 적지 않다. 
   첫째, 정부는 유휴·저활용 국유재산은 팔아서 정부재원으로 사용하는 게 공익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틀린 건 아니다. 사실 해마다 2조 원 규모의 매각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당장 지금 대규모 매각을 서둘러야 할 시급하거나 합당한 이유가 있는가? 지금 이 시점에서 대규모 매각 정책을 시행하는 것은 현 정부의 ‘부자 감세’로 부족해질 세수를 메우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문제다. 그 원인인 부자 감세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둘째, 8월 12일 MBC 뉴스 팩트체크 코너 ‘알고보니’ 에서는 정부가 말한 노후관사, 소규모 유휴지, 노후주택으로 지목한 곳들을 실제로 찾아가보니 다들 강남에 소재하며, 수백 억 씩 하는 번듯한 건물들이 들어서서 상당한 임대수입을 올리고 있었고, 현재의 부동산 불황으로 상대적 헐값에 매각하면 구매자는 상당한 시세차익을 누리거나 임대료 인상분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정부는 처음부터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셋째, 국민 여론이 좋지 않자 정부는 8월 23일 브리핑에서 그동안 매각 대상 국유 일반재산의 97% 이상이 수의계약으로 매각되어왔지만 이제부터는 「국유재산법」 제43조에 따라 원칙적으로 일반 경쟁입찰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연한 일을 뒤늦게 강조하는 게 수상쩍기도 하고, 법률에 명시된 수의계약 조건은 허점이 너무 많아 이 해명도 석연찮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누가 경쟁입찰에 참여할 수 있을까? 대기업이나 기획재정부 퇴직자들이 만든 투자회사 아니면 부자들이 아닐까. 부자 감세로 이득을 주고 국유재산 매각으로 또 이득을 주고,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유재산 매각인지부터 정부는 답해야 한다.
 
   이 모든 의문점이 해소되기 전에는 정책적인 대규모 매각은 일단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먼저, 파악된 유휴·저 활용 국유재산의 목록과 현황을 자세히 공개하여 각 재산의 소재지 주민과 지자체가 공익적인 활용방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다음, 당장 적절한 용도가 제안되지 않더라도 지방에 소재한 국유재산은 해당 지역이 원한다면 지역민 총유(總有) 재산으로 전환해 지방 소멸 위기 대응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마지막으로, 달리 활용방안이 없어 결국 매각할 수밖에 없다면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장사꾼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입찰 요건으로 해당 재산에 대한 활용계획 제출을 의무화하고, 활용계획의 공익성을 최대한 고려한다는 것, 그리고 추후 제출한 계획과 다르게 사용한 경우 매각이 취소된다는 것을 공매 절차에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서익진의 Q&A] 

서익진 : 화폐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전 경남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빚 없는 자유통화, 과연 가능할까

 

민간은행이 고객의 예금을 받아 이 돈을 대출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만든 새 돈을 대출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부끄럽게도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놀랬을 정도라면 이 비밀(?)이 얼마나 잘 감춰져왔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저희가 화폐민주주의연대를 만들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화폐민주주의연대’ 단톡방에 계신 분이라면 조금은 식상한 진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시 생각하는 돈의 본성 : “돈은 채무다

 

돈의 본성(nature)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너무나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골치가 아파 경제학자들조차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하자고 했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크게 보면 돈의 본성에 대해서는 두 가지 썰로 대별됩니다. 하나는 ‘상품’이라고 보는 상품화폐설이고, 다른 하나는 ‘신용(credit)’이라고 보는 신용화폐설입니다.


돈의 본성은 무엇보다 돈의 역사적 기원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돈의 기원에 관한 기존의 정설은 상품화폐설이죠. 물물교환이 너무 불편한 탓에 어떤 물품(예를 들어 포목)을 돈으로 사용하기로 서로 합의해서 돈이란 걸 만들어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돈의 형태가 시공에 따라 그리고 기술발전에 따라 돈으로서의 기능 특히 교환매개 수단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좀 더 적합한 형태로 바뀌어 왔다는 거죠. 물품화폐->금속화폐->태환지폐->불환지폐->전자화폐->암호화폐로 말이죠. 그런데 이 설은 불환지폐 이래의 형태가 과연 상품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네요. 어쨌든 이 상품화폐설은 여전히 주류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지론으로 남아 있으며, 학교에서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면 신용화폐설은 비주류 경제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어왔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고대 이래의 오랜 왕정(또는 군주정) 체제 하에서는 왕이라는 절대 권력자가 백성에게 세금이라는 빚을 강제로 지웁니다. 왕은 그럴 힘도 가지고 있고, 백성의 안전을 지켜주는 대가로 일종의 보호세를 거둘 명분도 있거든요. 민주국가도 국방과 치안을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매기듯이 말이죠. 왕은 ‘돈’이라는 걸 만든 뒤 자신이 원하거나 필요한 것을 돈을 주고 확보한 뒤 이 돈으로 세금을 내면 받아주겠다, 즉 내게 진 빚을 갚은 것으로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왕이 만든 이 돈은 왕의 약속 이행이라는 의무(책임 또는 부채, liability)를 증명하는 증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백성들은 세금을 내려면 돈을 확보해야 했고, 돈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돈을 받고 자신의 생산물이나 노동을 내주는 교환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화폐거래가 서서히 일반화되었다고 봅니다. 이것이 ‘국정화폐설’이며, 돈이 일반적인 채권-채무 관계를 형성하고 또 이 관계를 청산하는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신용화폐설’이라 불리게 됩니다.


더 복잡한 얘기들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생략하구요. 돈의 기원과 관련해 어느 ‘썰’이 맞는지는 역사만이 알겠습니다만, 고고학이나 사회학의 연구가 진척되면서 신용화폐설이 판정승을 거둔 상태가 아닌가 싶습니다. 판정승의 근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물물교환이 역사적 실재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점 그리고 실재했던 것은 선물(don) 교환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이러한 성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강단경제학도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형태의 발전과정에서 1930년대에 각국에서 금본위제를 폐지하고 불환지폐를 도입한 이래 통용하는 화폐는 더 이상 본래적인 상품이 아니라 발행자의 신용을 나타내는 증표화폐(명목화폐, 법정화폐)가 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화폐가 상품이라면 그 명목가치에 상응하는 실물 가치 즉 소재가치를 가지고 있거나(물품화폐 또는 금속화폐의 경우) 그 명목가치를 보장하는 담보물이나 본위(standard)가 존재해야(태환지폐의 경우) 하는데, 불환지폐 이후의 화폐는 소재가치나 담보 또는 본위가 없이 표면가치 즉 명목가치만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를 화폐로 인정하기 어렵기에 법으로 (실정법이든 관습법이든) 그 통용력 내지 구매력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것은 현대의 법정·명목·증표 화폐가 국가의 신용을 담보로 발행되며, 국민에 대한 국가의 채무를 나타내는 증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요컨대 현대 화폐의 본성은 채무(증서)이고, 채무통화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겁니다.

 

채무통화의 발행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러나 돈의 본성이 채무증서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이 돈이 자산의 역할을 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돈은 사용가치(효용)를 가진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으며, 빌려주고 이자를 받거나 부채를 변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폐자산’이라고도 불리는 겁니다. 화폐의 본성은 부채라 하더라도 화폐경제에서 화폐 자신은 자산의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화폐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이자나 환율이라는 가격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폐자산의 생산에는 거의 또는 전혀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서로 이 화폐자산의 생산권을 독점하고자 하는 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둘러싸고 영국의 경우 왕가와 은행 세력이 치열한 싸움을 벌였으며, 명예혁명을 계기로 양자 간의 ‘화폐 대타협’을 통해 오늘날과 같은 법정통화의 민간은행에 의한 발행/공급 시스템의 원형이 형성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이미 앞선 뉴스레터들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마틴의 『돈』이라는 책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통화 발행/공급 제도는 선택의 문제이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현행과 같이 시중은행이 은행통화를 창조해서 대출을 통해 시중에 공급하는 채무통화 발행/공급 시스템이 하나의 주어진 소여로서 손댈 수도 바꿀 수도 없는 무엇인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시스템 역시 하나의 제도로서 사회 구성원의 선택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통화 발행/공급 제도가 바뀌면 화폐의 성격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화폐 발행/공급 제도를 설계함에 있어 채무통화 시스템도 가능하지만 자유통화 - 빚을 동반하지 않는 돈이라는 의미에서 - 시스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거죠.


현행 시스템에서처럼 통화를 민간 주체인 은행이 발행하도록 한다면 그 통화는 채무화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은행은 비록 전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무(無)에서 돈을 창조한다 해도 그 공급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은행이 아니라 기업이나 개인 같은 민간주체가 통화를 발행하는 한 이러한 사정에는 변함이 없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중앙은행과 같은 공공은행에게 통화 창조권을 독점하도록 하고 해마다 필요한 금액만큼 돈을 발행하게 하는 방식이면 어떨까요? 공공은행은 이윤 극대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대출 방식을 공급해야 할 이유도 없죠. 그렇다면 이 돈을 정부에게 그냥 주어 공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할 수도 있고 또는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돈은 상환도 이자 불입도 요구하지 않는 그야말로 자유통화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진짜로 그런 방법이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자유화폐로서의 주권화폐는 시행 가능하다

 

앞선 뉴스레터들에서 확인한 바처럼 채무통화 발행 시스템에서는 대출로 창조된 예금만큼 통화가 창조되면 그만큼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지만 대출금을 상환하는 순간 채무와 함께 돈이 사라지고 그만큼 시중 통화량도 줄어듭니다. 그래서 매순간 누군가는 은행대출을 받고 다른 누군가는 채무를 상환하기 때문에 통화량은 매순간 변하게 마련이죠.


예를 들어 1년 동안 신규대출액보다 상환액이 적으면 통화량은 늘어나고, 그 반대면 통화량은 줄어듭니다. 그런데 경제는 항상 일정량의 통화를 필요로 하므로 경제가 물가 또는 통화가치의 변동 없이, 즉 인플레이션도 디플레이션도 없이, 성장하려면 통화량은 경제성장률만큼 늘어나야만 합니다.


따라서 연간 경제성장률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한 해 동안 누군가가 더 많은 돈을 은행에서 빌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죠. 요컨대 현행 채무통화 발행 시스템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누군가의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처럼 빚으로 돌아가는 경제 즉 ‘채무경제’라 부르는 겁니다.


이처럼 통화량은 항상 경제가 필요로 하는 만큼 유통 중에 있어야 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통화량도 증가해야 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자유통화’의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제와 경제성장을 위해 항상 일정량의 통화가 유통하고 있어야 하고 성장률만큼 통화가 늘어나야 한다면, 굳이 누군가는 상환하고 이 때문에 다른 누군가가 신규대출을 받아야 하는 이런 짓을 해야 할 이유가 없죠.


상환이 필요 없는 일정량의 통화를 나누어가지고 있으면 되고, 추가로 일정량이 필요하면 또 그만큼 발행해서 나누어가지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정부가 일정량을 발행해 지출하고 필요한 만큼 추가로 더 발행해도 상관없죠. 상환이 필요 없으니 이자 불입도 필요 없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통화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이러한 돈을 화민연을 비롯한 화폐 민주화 개혁론자들은 주권통화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주권통화 발행 시스템이 현행의 은행통화 발행 시스템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정부나 공공은행이 모든 신규 통화를 자유통화(또는 자산통화)로 발행해 공급하기 때문에 통화를 발행해도 경제에는 채무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더 이상 ‘채무경제’가 아닌 말 그대로 건전한 경제가 되는 겁니다.


아, 물론 이 경우에도 경제에는 대차거래가 일어나고 채권-채무 관계가 생길 겁니다. 일단 국민들이 돈을 나누어가지거나 정부가 공익적으로 지출을 하는 순간 이 돈은 누군가의 소유가 됩니다. 이처럼 사적 소유가 된 돈들은 경제 주체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또는 은행을 중개로 간접적으로 대차거래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꾸준히 해마다 새로 공급되어야 하는 돈은 더 이상 채무통화가 아니라 자유통화 즉 주권통화로만 발행되기 때문에 해가 갈수록 전체 통화량에서 자유통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갈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 전체로 보면 빚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는 빈도나 강도에서 크게 낮아질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음 호부터는 현행 통화 발행/공급 시스템을 개혁하자는 근거를 찾기 위해 그 속에 내재된 모순과 그것이 드러내는 부조리를 살펴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

김영식의 알쏭달쏭 채권 이야기
김영식(삼성생명 뉴욕사무소장, 신설합작생보(영풍메뉴)사 업무담당이사 역임, blog.naver.com/youme41_368 운영중)

 채권, 그것이 알고 싶다


한자로 "債權과 債券" 두 가지 중에서 후자, 즉 증권의 일종으로 주식과 비교되는 개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채권은 확정 이자를 주는 것이고 주식은 지분권으로서 성과에 대한 배당을 포함하여 그 비율 만큼의 최종권리를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주식과 마찬가지로, 그 생성과 거래, 소멸에 대하여 국가 법령으로 규제하며, 경제질서와 혁신창발 사이의 갈등 현상이 끊임없이 관찰되는 영역입니다. 근래에 새롭게 등장한 신종자본증권, 장기CP 등은 주식과 채권, 채권과 어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개념의 금융상품으로 금융소비자 및 투자자와 당국에게 개념적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출생신고를 해야 하고, 법인은 설립등기를 해야 하듯이, 부동산은 등기가 되어야 하고 주식과 채권은 그 발행과 권리변동이 공신력 있는 기관에 등록이 되어야 합니다. 문명사회는 실존과 등기/등록 사이의 괴리 현상이 없기를 지향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공적인 장부는 누구나 열람 가능토록 공개되고 전체적인 현황을 다각도로 분석 정리한 통계자료로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함이 원칙이고 개인정보 또는 경영정보의 비밀보호 차원에서 특정 개인과 기업에 대한 상세정보는 특별한 이해관계자에게만 접근이 허용됩니다.

 

  1. 채권의 등록과 상장

 

2019년 9월 16일부로 전자증권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주식과 채권의 실물증권 발행이 중단되고 한국예탁결제원에 전자적으로 등록함으로써 채권이 생성됩니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증권정보포탈(seibro.or.kr) > 채권 > 시장현황 페이지를 보면 현재 결제원에 등록된 채권은 국채 1,053조 원을 포함하여 28,000여 종목, 액면총액 2,561조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는 외화 표시로 발행되어 결제원에 등록된 채권도 환율로 환산되어 포함되어 있으며, 소량이지만 외국법인이 국내 증시에서 원화로 발행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15,800여 종목, 2,351조 원이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채권입니다.

 

  1. 해외증시에 등록/상장된 채권

 

정부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비롯하여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등의 정부와 공기업을 비롯, 국내 주요 기업들이 해외시장애서 외화표시 채권을 발행하여 장기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평채를 비롯하여 외화표시 채권 전반에 관한 통계자료는 누가 관리하는지,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경제신문 등에서 단편적으로 보도된 한국물 채권 발행 사례들은 대부분 싱가폴 증권시장 홈피(www.sgx.com) > wholesale fixed income securities에 올라 있음이 확인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금액, 금리, 만기일, 통화 등 발행정보의 일부만 나타나서 발행사별로 통화별 채무잔액이 얼마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금융투자협회나 은행연합회 등에서는 좀 더 세부적인 데이타에 접근이 가능할 것으로 짐작되는데, 회원사 전체가 안고 있는 외화표시 부채 총액이라도 집계해서 발표하는 공공서비스 정신을 발휘하길 바랍니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의 아시아채권시장 데이타에 한국물 발행실적이 2006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산업분야별(정부포함)로 백만 불 단위로 정리된 시트가 발견됩니다. 최근 3년간의 수치를 집계해보니 2019년 33,033; 20220년 38,144; 2021년 51,255백만 불이고 그 대부분(평균 73%)은 금융채입니다.

 

3. QIB채권

 

QIB는 적격기관투자자(Qualified Institutional Buyer)를 의미합니다. QIB채권은 일반투자자 대상이 아닌 일정 기준 이상의 자격조건을 충족하는 기관들끼리만 사고팔고 할 수 있는 채권을 말합니다. 따라서 발행절차와 발행조건에 대해 증권감독기관의 감시 대신에 기관들이 서로 알아서 챙길 것으로 기대하고 업계 자율에 맡겨진 영역입니다. 8월 말 현재 국내 법인들이 발행한 QIB외화채권은 미화 610억 달러 포함, 최근 환율로 134조 원에 달합니다.

 

4. 빚내서 빚 갚고, 빚내서 빌려주는 채권시장 세력구조

 

작년 9월 1일부터 금년 8월 말일까지 1년간 우리나라 채권시장에서는 788조 원이 발행되고 631조 원이 상환되어 8월말 발행잔액 2,593조 원입니다. 순발행액 157조 원은 기말잔액의 6%에 해당합니다(금투협 채권정보센터 자료기준).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대부분의 채권 발행은 빚내서 빚 갚은 것이고 6% 정도 순증가는 이자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발행된 채권 전부가 처음부터 빚 갚기 위한 것은 아니며 그 돈으로 더 유리한 다른 곳에 투자하기 위해 발행된 것이 더 많았을 것인데 세월이 지나 만기를 거치면서 발행 주체의 신용등급에 따라 다단계의 중층구조를 이룹니다. 이 다단계 시장구조의 최종 꼭대기에 위치하여 갚아야 할 빚은 없고, 상환 받을 일만 있는 채권자는 누구일까요? 이 궁극의 채권자가 상환 받은 돈을 재투자 할지말지, 어떤 채권을 인수할 런지를 가지고서 시장을 교묘하게 지배하는 것이 작금의 자본시장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필자는 이 궁극 채권자의 교묘한 시장 지배력에 대한 적절하고 정당한 통제장치가 절실하다고 보며, 자유민주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화폐 및 금융자본시장으로 시스템 변혁을 해야 할 역사적 시점에 와있음을 절감합니다.

현영애의 <화폐의 비밀> 서평
(화폐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다큐 감독)  

■서평 : 『화폐의 비밀 - 화폐를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제라르 푸셰 저, 서익진/김준강 역, 도서출판 길, 2021)

 

빈자는 고금리, 부자는 저금리

 

내가 직접 창작극 제작하겠다고 무리하게 빚을 내서 썼던 적이 있다. 나는 어느새 저신용자가 되었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하는 악순환에 빠졌는데, 금리는 사정이 어려워지면 질수록 더 높아졌다. 돈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몰랐냐는 주변의 질타를 받으며 빚을 갚기 위해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지만 내 안에 저항심이 생겼다. 왜 부자(고신용자)들은 적은 이자로 필요한 만큼 돈을 빌리는데 가난한 자(저 신용자)는 최소의 돈을 빌리기 위해 많은 이자를 내야 할까?


화폐 탄생의 비밀


어렸을 때 봤던 만화가 가끔 생각나곤 했다. 한 원시부족 마을에서 누군가가 은행을 만들어 사람들이 돈을 맡기면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면 곧 부자가 되겠구나하고 은행업을 시작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돈을 맡긴 사람들이 모두 다 찾아와서는 자기 돈을 찾아가겠다고 하니 은행업자는 울상이 되는 장면으로 만화는 끝난다.


어린이용 만화였으니 한국은행의 화폐발행 권한이니 민간은행의 지급준비율을 통한 채무화폐 발행이니 하는 건 당연히 어떤 식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았을텐데. 아니 만약 그런 내용을 당시의 내가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암시적으로 들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 만화 작가는 정말 현대사회 화폐와 민간은행의 문제를 날카롭게 꾀고 계셨던 분일 수도 있을 거 같다.

 

만화를 보면서 세상에 처음 돈은 어디에서 나왔고, 사람들이 이자로 갚아야 하는 돈은 또 어디에서 나오는 거지 궁금했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화폐 공부로 이어졌다고 말하는 건 과장이겠지만 기분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다. 성인이 된 후 화폐 공부를 시작하면서 처음 던진 질문도 지금 사회에서 유통되는 돈은 누가 어디에서 얼마를 정하고 어떻게 공급하는 것일까?


간단히 말해서 진실은 이러하다. 국가가 사회를 현명하게 관리하는 데 근본적 수단인 통화를 창조하고 분배하는 권한을 은행 부문에 양도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최소한의 민주적인 공론화조차 없이 말이다. 대다수 시민은 그토록 중요한 기능이라면 마땅히 국가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일군의 민간 행위자들이 최소한의 민주적인 감시도 받지 않으면서, 의회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국민의 이익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자신의 이익만 좇아 이 중차대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11페이지)

 

은행의 시작, 잉글랜드은행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3세가 벌였던 전쟁(1688~1697)에서 금은을 탕진한 영국에는 빚이 남았다. 윌리엄 패터슨이라는 사람이 ‘민간에서 120만 파운드의 자금을 모아서 8%의 이자로 국가에 대부한다’는 계획을 제안했고, “주식회사 잉글랜드은행을 설립하고, 자금과 같은 액수인 120만 파운드까지 은행권(지폐)을 발행해도 좋다”(책 『100%돈이 세상을 살린다』에서 인용)는 국왕의 허가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중앙은행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는 잉글랜드은행의 시작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발행된 은행권은 실제로는 가짜 돈이었다. 국민이 이 은행권을 받은 것은 그것이 금괴와 같은 것이라 여겨 금이 필요하면 바로 은행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기였지만 국왕의 승인 하에 합법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잉글랜드은행에서는 나날의 통화 수요를 잘 맞추지 못해서 정기적으로 예금인출 소동이 일어났다. 어렸을 때 본 만화 속 은행업자는 막강한 국왕의 지원을 받지 못해 바로 문을 닫고 말았지만, 현실 속 은행은 계속해서 화폐발행을 통해 대출을 일으키고, 이자로 인출을 돌려막으며 수익을 키워나갔다. 이러한 방식은 지금의 은행 시스템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민간은행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도 않은 돈을 허공에서 만들어 대출해주고 이자 수입을 챙긴다. 이처럼 은행은 통화 창조라는 특권과 영구적인 이자 수입이라는 특혜를 누린다. 반면 국민은 돈이 추가로 필요하면 은행에서 차입하는 방법밖에 없기에 은행 빚의 노예가 되고 그 대가로 이자까지 지불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권을 전담하고 있고 정부는 국가 경영에 필요한 돈을 한국은행에서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지급받아 사용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정부 역시 세입을 초과하는 돈이 필요하면 국채를 발행해 한국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이나 금융시장에서 팔아서 조달한다. 즉 빚을 내고 약속한 이자를 지불한다.

돈이 상환도 이자도 동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화폐의 비밀』의 저자는 보편적 배당금을 이야기한다. 바로 최근 우리 사회의 핫 이슈가 된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 방식의 하나로 화폐 발행을 고려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국민이 스스로 발행한 돈이 국민에게 기본소득이나 공공재를 통해 공짜로 지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돈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또는 은행을 매개로 자신이 실제로 가진 돈을 빌려줄 경우 당연히 원금 상환과 이자 불입을 요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강제된 경제성장

 

지금 화폐 발행권을 민간은행이 갖고 서민들에게 고금리의 빚에 허덕이게 만드는 문제는 단순히 소수 자본가들의 부도덕함에 관계된 것은 아니다. “경제성장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근본 원인이 있다. 경제성장은 결코 소비자 복지와 경제적 번영을 증가시키기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제성장은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176페이지)


책에서 말하는 시스템이란 지금의 자본주의체제다. 내가 이 책 『화폐의 비밀』에 감탄한 이유가 사실은 여기에 있다. 책에서는 현재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발생시킨 근본적 원인은 도덕성을 상실한 자본주의에 있으며, 그 도구로 사용된 것이 바로 현행 금융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매우 적나라하게 밝혀준다.

 

저자 제라르 푸셰

 

저자는 재미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대학교수도 경제학자도 아닌 연극인이며 연출가이다. 그런 작가가 2018년 MMJ(Mouvement Monnaie Juste, 공정화폐운동)라는 사회단체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고, IMMR(국제화폐개혁운동)이라는 단체의 멤버이기도 하다.

 

다시 처음 만화책을 보며 가졌던 질문을 떠올린다. 누군가 대출을 하고 이자를 지불할 때 그 이자에 해당되는 통화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채무자는 그 돈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애당초 대출이 이루어질 때 이자 지불에 필요한 돈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앞서 보았듯이 은행이 이자에 해당하는 돈을 자신의 지출을 통해 경제 속에 확산시킨다 하더라도 이 돈이 경제에서 사용 가능한 것이 되려면 절대적으로 누가 사전에 차입을 했어야만 한다. 바로 이러한(이자로 인한-옮긴이) 사전 차입의 필요성이 우리 사회에 영구적인 성장을 강제한다”(90페이지)

 

푸셰의 글은 어렵지 않다. 화폐 공부를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책에서는 화폐 발행권을 국민이 가져야 한다는 정당성을 말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한다. 책을 읽고 여럿이 함께 토론을 하는 시간이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토론이 깊어지고 마을로 마을로 이어진다면 함께 좋은 세상 만들기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화폐의 비밀 책 구매 사이트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4452364&start=pnaver_02

화폐민주주의연대 8월 활동 및

공지사항

1. 85, 뉴스레터 7(https://cafe.naver.com/smd2020/125) 발행하고, 사회단체, 정당, 언론사 등에 메일로 발송함.


2. 88일 줌 공간에서 운영위원회 개최.

내용은 https://cafe.naver.com/smd2020/126 참조.


3. 826일 지역순환경제&화폐금융 녹색당 정책 토론회 참여

내용은 https://cafe.naver.com/smd2020/127 참조.


4. 회원가입 안내서(인쇄용) 제작. 필요하신 분은 다운로드 하신 뒤 인쇄하여 사용하시면 됨. https://cafe.naver.com/smd2020/113에서 참조.


5. 831일 현재 화폐민주주의연대에 정식으로 가입한 회원은 총 47(정회원 32/ 준회원 8/ 후원회원 7), 전국 각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음(8월 신규 가입자는 1명임).

 

6. 일반 시민도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화폐민주주의연대 단체카톡방에는 현재 106명이 활발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음. 단톡방 회원은 누구든지 사무국장에게 연락만 하고 다른 사람을 초대할 수 있음. (010-3900-3740 김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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