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최대 활동 반경은 반지름 2킬로미터인 원이다. 서울 약수역 옥상에서 저 멀리 보이는 남산까지 날아갈 수 있다. 바쁘게 날아다니는 꿀벌은 생태계 가장 밑바닥부터 우리 식탁 위 물가까지 영향을 미친다. 전 세계가 사라지는 꿀벌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꿀벌들은 어쩌다 사라진 걸까?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꿀벌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허주행 수의사는 국내에 세 명 뿐인 꿀벌 수의사 중 한 명이다. 그에게 꿀벌에 대해 물었다.

꿀벌 수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생소하다. 국내에 두 명 있다고 들었는데. 수의과대학에 꿀벌 질병에 대한 교과목이 없다보니 진입 자체가 어려울 것 같다.

한 분이 몇 개월 전에 합류하셔서 총 세 명이 됐다. 꿀벌의 질병을 다루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꿀벌의 법적인 위치와 지위다. 날아다니니까 곤충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는데, 축산법 시행규칙과 가축전염병 예방법에서 꿀벌을 가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수의사법에서는 꿀벌을 동물로 정의하고 있다.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은 수의사지 않나. 그런데도 꿀벌은 너무 작고 마이너하게 다뤄져 왔다. 2013년, 수의사 처방전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소나 돼지, 고기나 우유에 항생제가 잔류해 국민 건강을 위협하니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시행된 법안이다. 꿀벌 쪽에도 이런 전문 수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을 했고, 국내 첫 번째 꿀벌 수의사인 정년기 원장님이 국내 자료, 해외 자료등을 모아 세팅을 했다. 지금 막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꿀벌 수의는 보통의 반려동물 진료, 치료와는 개념이 많이 다를 것 같다.

꿀벌 수의에 있어 환경적 요인이 큰 만큼 책만 보고 치료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맞다.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이 너무 많다. 말벌이나 개미, 딱정벌레와 같은 해충이 심각하면 벌들이 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최근 시골에는 골프장이나 도로를 건설하는 경우가 많아 공사 소음으로 인해 벌들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기도 한다. 드론으로 뿌리는 살충제의 영향도 적지 않다. 다른 동물들은 아프면 티가 나지 않나. 그런데 꿀벌은 특징적인 게 별로 보이지 않는다. 환경적 요인이나 질병까지 모든 걸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게 쉽지 않은 작업이다.

꽃이 피는 시기나 지형적 문제도 중요할 것 같다.

보통 우리나라 꿀벌은 2월에 한 해를 시작한다. 5월에 꿀 생산의 80퍼센트가 이뤄진다. 꽃이 피는 시기와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변온동물이라는 벌의 특성상 날씨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는다. 5월에 꽃이 피고, 적정 온도를 유지해 벌들이 꿀을 채집하러 다녀야 하는데 최근은 그렇지 못한 편이다.

계속해서 이상 기후라고 표현하지 않나. 2018년, 2020년, 2021년 모두 꿀 생산이 심각하게 저조했다. 2020년을 최대의 흉작이라고 표현하는데, 평년 대비 8퍼센트밖에 꿀 생산이 안 됐다. 5월은 무조건 날씨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일교차도 심하고 비도 많이 온다. 게다가 기온이 높아지니 4월만 돼도 꽃이 핀다. 평년처럼 온도가 움직이지 않고 이상 고온과 이상 저온이 반복된다. 겨울에 춥지 않은 것도 벌들에게는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하늘만 보고 농사를 짓는데 하늘이 예전처럼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꿀벌 실종은 상황이 어떤가?

우리는 국내 꿀벌의 20퍼센트 정도가 사라졌다고 추산하고 있다. 75억 마리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처음 겪는 일이다보니 정확한 원인 규명이 되지 않았다. 살충제와 흉작, 이상 기후, 꿀벌 밀도, 해충까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외국에서 기자재를 사올 때 외래 병균이 묻어 들어오거나 외래 말벌이 들어오기도 한다. 지금 꿀벌에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는 등검은말벌도 2016년 외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다.

꿀벌은 꿀을 만들기도 하지만 꽃의 수분을 도와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꿀벌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꽃의 수분을 돕는 역할이다. 꿀벌은 다리에 수꽃의 꽃가루를 묻혀 암꽃으로 가서 수정을 시킨다. 아몬드는 꿀벌이 없으면 아예 먹을 수가 없는 작물이다. UN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약 71퍼센트가 꿀벌을 매개체로 수분을 하는 작물이다.

생태계 위협은 멀게 느껴지지 않나. 사실 생태계 뿐 아니라 식탁 위부터 문제가 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생산량은 급감하고 그만큼의 노동력이 계속해서 투입돼야 한다. 원자재 값이 상승하고, 식탁 물가 전체가 오른다. 게다가 특정 작물은 먹지도 못한다. 꿀벌이 사라지면 수분을 통해 열리는 열매가 줄어든다. 이는 연쇄적인 생태계 교란과 식량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서 꿀벌은 공익적인 문제다.

해외의 경우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나?

해외의 경우 꿀벌의 모든 질병을 수의사가 관리한다. 질병이 발생하면 농가가 수의사에게 연락을 하고, 수의사는 진료를 통해 약을 처방한다. 이 과정이 무료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꿀벌 질병을 세 개 분야로 나누고, 약품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진드기 구제약, 노제마증 약품(꿀벌의 설사약), 소독제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구체적인 처방이 잘 이뤄지지 않으니 약을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약품에 대한 내성을 키우거나 과량을 투입해 꿀벌이 더 아픈 경우도 있다. 시스템에 빈틈이 많은 셈이다.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나?

질병도 질병이지만 밀원수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꿀이 날 수 있는 나무가 많아야 꿀벌 전체가 건강해진다. 일단은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나무들도 다 이전에 누군가 심은 나무들이 아닌가. 산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공익 직불금 제도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밀원수 직불금 제도를 실제로 논의한 적도 있다. 나무를 하나 심을 때 드는 비용 중, 나라에서 50퍼센트를 지원해주고 나머지 50퍼센트 중 일부는 양봉 업계가 부담해 밀원 형성의 자부담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양봉 산업법이 제정되던 2019년 국회에서 공청회를 수십 차례 진행했지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양봉 쪽에는 제대로 된 통계 자료조차 없다. 몇 십 년 전 자료라든지 지금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통계 자료만 있는 상황이다.

스마트 벌통도 개발하고 있다고 들었다.

벌통 내부의 생육 환경을 자동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스마트 벌통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벌통 내부의 온도가 몇 도인지, 습도는 얼마나 되는지,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또 조절할 수 있다. 나간 벌의 개체수와 벌통으로 돌아온 벌의 개체수도 측정할 수 있다.

꿀벌 수의사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