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집 가구에는 모두 부적이 붙어 있었다. 숨바꼭질을 하느라 책상 밑이나 옷장 안에 들어가면 여김없이 부적과 마주쳤다. 무섭지는 않았다. 나를 둘러싼 집이란 것이 꽤나 야무지다는 생각이 들어 아늑했다. 할머니는 한 달에 한 번 고사를 지내는 혹독한 불교신자였다. 모태 기독교인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고사 음식을 차렸다. 우리 집에 오시는 조상에 얼마나 많은지, 불고기를 10접시 넘게 만들었다.



나의 역할은 우리집에서 고사를 지낸다는 사실을 귀신들에게 알리는 일이었다. 현관문을 조금 열어 두고, 한 숟갈 정도의 막걸리를 문 앞에 부어 두었다. 그렇게 창가에도, 베란다에도 막걸리를 부어 두는 일이 나의 역할이었다. 그러면 귀신들이 막걸리 냄새를 맡고 우리 집에 들어오는 거다. 나는 나의 역할이 왠지 멋있게 느껴져서, 철두철미하게 움직였다.



나는 가끔 할머니를 따라 산 속 깊이 있는 절에 갔다. 절에서 가부좌를 틀고 오래 동안 앉아 있으면, 할머니들이 모여들어 칭찬을 퍼부었다. 그 관심이 좋았다. 친척 할머니는 우리집에 만화로 된 화엄경을 선물했다. 초등학생 때였는데, 삼국지는 안 읽어도 화엄경만큼은 손에서 떼지 못하고 읽어 내려갔다. 그것은 정말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마약과 술에 빠진 사람들이 알고보면 ‘보살’이었고 주인공에게 큰 가르침을 주곤 했다. 결핍이 있는 사람들이 더 진귀하다는, 일종의 ‘사상’같은 것을 그 때 습득한걸까.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는 나의 바탕 같은 것.



말이 길어졌다. 종교에 관해서라면 할 말이 늘 많다. 이런 할머니의 시대가 지나는 동안, 엄마는 밤마다 방 안에서 기독교 방송을 봤다. 나는 집에서는 화엄경을 읽다가, 외가댁에 가면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엄마는 늘 말했다. 내 소원은 딱 하나. 너가 하나님의 딸이 되는 것. 엄마의 간절한 속삭임을 들을 때도 나는 팔목에 염주를 차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그리 속삭이면서도, 할머니가 원하는 것을 잠자코 들어주었다. 늘 함께 절에 갔고, 불고기도 열심히 만들고.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이방인으로 자랐다. 엄마는 또 속삭였다. 너를 이방인으로 둘 수 없다고. 믿음이 없는 자는 이방인이다. 나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아플 때, 할머니는 부처님꼐 기도했고, 엄마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기도도, 엄마의 기도도, 어떤 신을 거치든 길을 잃지 않고 나에게 와 닿았다. 나는 어떤 신을 믿지는 못해도, 기도의 힘을 믿기로 했다. 어떤 신을 믿든, 누구나 손을 모아 기도 한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글을 읽어도, 절로 손이 모아진다.

슬픈 소식을 듣고, 슬픈 목소리를 듣고, 슬픈 사랑을 해도, 절로 손이 모아진다.

종종 손을 모으고 산다면, 우린 모두 같은 마음. 

네팔에는 4000명이 넘는 신이 있었다. 네팔에서 만난 친구들도 모두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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