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소사

- 밤의서점 점장들은 다른 친구 한 명과 2박 3일의 휴가를 다녀왔다. 여행지에서 가장 손꼽힌 장면은 속초 영랑호에 길게 놓인 다리를 건너던 순간이다. 흡사 물 위를 걷는 느낌을 받았다. 폭풍점장이 강력 추천하여 방문한 뮤지엄 산의 고고한 분위기 역시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속초아이의 대관람차는 꼭 타보시길.

-<마음의 진보> 수업이 이번 주부터 재개된다. 그동안 번역 작업을 하느라 글쓰기 수업도 글쓰기 작업도 소홀히 했는데, 올 여름은 노트북 앞에 앉아 치열하게 글을 쓰며 보내고 싶다. (밤의점장)

- 택배 상자를 주문하면서 이번에 또 집으로 주문하면 안 되는 거지 생각하며 각별히 주의하여 주문했다. 저번에도 집으로 주문해서 필요할 때마다 열 장씩 들고 간 전력이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또 배송이 되었다. 어찌 된 일은 무슨나라는 놈이 또 집으로 주문한 것이다. 인간은, 아니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은가. 열 장씩 들고 출근 중이다

 

- 여느 때처럼 9시 칼퇴근을 벼르고 있었는데 840분경에 손님이 들어오셨다. 그런데 그분이 취준생을 벗어나서 여행을 오자마자 서점에 들렀단 말을 하셨다. 기꺼이 퇴근 시간을 미뤘다. 회사생활 잘하시기를, 밤의서점 방문이 좋은 경험이셨기를, 반가운 소식으로 또 만나 뵙기를. (폭풍의점장)


점장이 읽고 있어요

밤의점장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문학과지성사)

: “점장님은 자기 자신을 던져 사랑할 수 있어요?” 
 지난주에 이런 질문을 받고 내가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프게 깨달았다. 내가 바라는 사랑은 그야말로 나르시시즘과 다르지 않은 안락한 감정임을, 나는 사랑을 위해 자기 자신을 잃는 걸 바라지 않는 사람임을.
 즉시 이 주제를 다룬 책들을, 에바 일루즈의 <사랑은 왜 불안한가>와 <사랑은 왜 아픈가>를 시작으로 <에로스의 종말>까지 읽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영화 <멜랑콜리아>의 주인공 저스틴을 통해 사랑과 우울증, 나르시시즘을 고찰하며 논지를 이어가는 <에로스의 종말>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 한병철은 오늘날의 사회가 ‘해야 한다’와 ‘할 수 있음’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사랑마저도 긍정성으로 무장하여, 에로스의 본질인 부정성을 용납하지 않도록 변질되었다고 말한다. 

 “오늘날 사랑이 점점 더 긍정화되고 길들여짐에 따라 사랑의 부정성도 희귀해져간다. 사람들은 자기 동일성을 버리지 않으며 타자에게서 그저 자기 자신을 확인하려 할 따름이다.”

 “에로스는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주체를 나르시시즘의 지옥에서 해방시킨다.”_본문에서

 알랭 바디우는 서문에서 이 책을 “진정한 사랑의 최소 조건, 즉 사랑을 위해서는 타자의 발견을 위해 자아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데 대한 철두철미한 논증”이라고 평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사랑이라는 모험에 뛰어들 용기가 있는가? 110페이지의 얇은 책이지만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하나같이 묵직하다.(이 책을 읽으며 점장은 여러 번 뼈를 맞았다.) 다음 번 나의 사랑은 좀 더 용감하기를.

미스테리아 편집부, <미스테리아 41호>(엘릭시르)

: 잡지 <미스테리아>는 특집 주제가 마음에 들 때마다 종종 구해 보는데 이번 주제는 ‘책벌레’다. 애서광부터 서점주인, 사서, 책도둑까지 다양한 책벌레들의 관점에서 다룬 기획 기사가 알차게 꾸려져 있었다. 이런 기사를 읽다보면 묻혀 있던 책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다. 이번에도 앤토니어 수전 바이어트의 <소유>와 레이 브래드버리의 <사악한 것이 온다>를 메모해두었다.
 타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터부시되는 2138년을 배경으로 총기난사사건을 다룬 정해연의 단편 <리슨>을 몰입감 있게 읽었다. 곽재식 작가가 신문기사를 통해 재구성한 1951년 ‘유령자동차의 수수께끼’도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점장은 그알 마니아^^) 흥미진진했다. 서미애 작가의 <리옹추리문학축제>는 추리문학 페스티벌의 현장감과 여행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었는데, 삽입된 사진들이 컬러가 아니라서 다소 아쉬웠다. 잡지시장이 위축된 상태에서 여전히 풍성한 특집들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 잡지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폭풍의점장

이순자,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휴머니스트)


: <실버 취준생 분투기>SNS에 화제가 되었던 이순자 작가의 유고집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추천한다. 이다혜 작가가 추천한 문장처럼 모든 사람에게 읽으라고 권하는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역시 울었다. 좋아서. 이 책은 읽으면서 눈물 흘리는 책이 아니다. 읽고 나서 우는 그런 책이다. 무엇이 그리 좋았냐면 삶에 대한 성실함과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생생한 감각이 좋았다. 삶의 고통이 앗아갈 수 없는 인간의 품위나 존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물신주의, 타자화, 대상화 등등 우리가 비인간적이라고 느끼는 것들의 정반대에 위치하는 글들이 담겨 있다. 현대 사회의 잔인함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나처럼 별문제 없이 적응한 사람들에게 이런 게 바로 인간적인 것이라고 깨닫게 하는 독서가 될 것이다.

 

야스토미 아유무, <단단한 삶>(유유)


: 서가를 보다가 가장 이상한 책처럼 보이는 것을 골라 읽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했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가 책 뒷면에 쓰여 있는 홍보 글은 한마디로 재수가 없었다. “부모와 절연하고 아내와 이혼하면서까지 나답게 살기를 선택한 도쿄대 교수의 생존학이라니, 이 얼마나 구절구절 재수 없음의 집합인가. 펼쳐 보니 이 책은 밤의점장이 이전에 나북스에 30페이지 추천평으로 짧게 소개했던 책으로, 처음부터 범상찮고 갈수록 훌륭하며 결말은 가슴 벅차기까지 한 책이었다. 다 읽고 검색해보니 김 얀 작가가 강추하여 SNS에서 회자된 책이기도 했다. 논리를 전개하는 형식이 설득력 있어서 작가의 말에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가 이끄는 명제에 따라 읽어야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지만 누구든 공감할 아래의 한 구절을 공유한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행복은 느끼는 것입니다. 행복이라고 느끼면 행복이고 행복이라고 느끼지 않으면 행복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대전제로 사고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하게 됩니다. ‘이란 행복에 이르게 하는 단서로서 의미가 있지 실현하는 자체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꿈은 제대로 꾸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꿈이 당신을 행복으로 데려가 줍니다.”

 

 ‘행복이라고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지 않으면 큰일을 당하게 된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하다. 세상이 정해둔 행복이 아니라 나답게 행복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

  
당신에게 반하는 구간

           읽는 사람_1
(*폭풍의점장이 읽은 이것저것에 대해 씁니다.)

 

 난생처음 타게 된 지하철인 2호선은 시시했다. 서울에만 오면, 대학에만 오면, 집만 떠나면 흥미진진한 세계가 펼쳐질 거라고 생각한 신입생에게 2호선은 역마다 이름만 다를 뿐 다 똑같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강변-성내(지금은 잠실나루역) 구간과 당산 합정 구간이 있다는 것을. 지상으로 나오는 이 구간 때문에 지하철이 좋아졌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어쨌든,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지하철의 시야가 트이는 것처럼, 마음이 어떤 구간을 지나 열리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를 매혹했던 음악들은 내 마음에 평생에 걸쳐 찾아갈 때마다 감탄할 나만의 길을 내주었다. 한 곡 한 곡 들을 때는 몰랐지만 오브라디오브라다를 지나 뱅갈로 빌의 계속되는 이야기를 지나 행복은 따뜻한 총이라고 불러주는 화이트 앨범의 구간에서 내가 비틀즈에게 영영 반해 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 위대한 개츠비가 왜 위대한 거예요?

 

 이런 질문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던 것을 바라보던 놀이터 정자에서 인사만 하고 지내던 이웃 사람에게는 하지 않는다. 때마침 초여름의 바람이 살랑 불어주었고 질문을 한 그녀가 별처럼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의 미인이었음은 물론이고 마침 나랑 나이도 비슷했다. 그 저녁이 저물 무렵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이웃에게 반한 대목은 비비언 고닉의 회고록 <사나운 애착>에도 나온다. 뉴욕 브롱크스의 슬럼가 아파트에 살던 한 소녀는 계단에서 부딪친 아름다운 네티를 보고 가슴이 뻐근해진다. 그녀가 그레타 가르보를 닮은 미인이기도 했거니와 부딪친 아이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들고 있던 찢어진 봉투는 개의치 말고 어서 나가 햇볕을 즐기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이다. 햇볕이 잘 드는 골목 외에는 놀거리가 없는 가난한 동네에서 이제까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소녀의 가슴이 사정없이 뻐근해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반하면 병이 난다. 아멜리 노통브의 <사랑의 파괴>에는 가슴이 뻐근해지다 못해 기꺼이 세상의 중심을 넘겨준 일곱 살 소녀가 등장한다. 중국의 외인 지구에 사는 나는 예술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잡은 천사처럼 아름다운여섯 살 엘레나를 만나자 상사병에 걸려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중심은 우리 집에서 40미터 떨어진 곳에 살게 되었다.

세상의 중심은 국적이 이탈리아였고, 이름은 엘레나였다.

상리툰의 콘크리트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엘레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이 상사병 투병기는 아멜리 노통브의 장기답게 미쳐 질주하다가 잔인한 쾌감을 선사하는, 파국적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다.) 쌍방이 아니라 혼자서만 반하거나 사랑이 끝났는데도 한쪽만 계속 사랑하게 되면 파국적 결말을 맞게 된다. 파국의 강도는 반함의 강도의 제곱에 비례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적과 흑>이나 <안나 카레니나>나 모두 그것을 경고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 그 끝판왕이 있다.


 이유리의 소설 <둥둥>에서 아이돌 지망생 형규에게 반한 는 그의 앞날을 위해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것도 포기하고 종래는 목숨까지 바친다. 사고를 당해 인천 앞바다에 빠진 주인공은 자신의 생명줄이 되던 캐리어를 버리고 장렬히 빠져 죽는 길을 선택한다. 캐리어에는 형규의 아이돌 인생을 끝장낼 무언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지만, 본래 사랑이란 미친 상태이므로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이 이야기는 꺅 소리 날 만큼 재미있는 소설집 <브로콜리 펀치>에 수록되어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에게 반하는 대목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도대체 왜 저런 얼빠진 구간을 지나 반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 경로는 무궁무진하고 양태도 제각각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분석이나 유형화를 포기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한 줄이 있으니, 바로 이것이다.

 

- I’m eighteen.

 : 나는 너에게 반했다. 그때 나는 열여덟 살이었다.

 

 긴말 필요없이 이해가 된다. 꼭 열여덟이 아니라 열다섯이어도 된다. 하지만 마흔여덟이나 예순여덟은 도대체 왜 그런지 부연 설명을 해 줘야 한다. Suede의 멋진 곡 <Heroine>은 이런 사랑의 열병을 운율 맞춰 노래하고 있다. 나는 아프다(I’m aching). 나는 열 여덟이니까(I’m eighteen).


 그래서 김빠진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베르테르가 슬픈 이유는 실패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젊음 탓이다. (폭풍의점장)

  
삼가, 열심히 녹으면서

           나이츠픽_
: 서효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저자 서효인의 인터뷰를 읽다가 “목줄 대신 생활이라는 넥타이를 맨”이라는 표현을 읽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는데, 그 생활이라는 넥타이가 꽤나 내 목을 조르고 있었나 보다. 한 달 전, 집 월세를 인상한다는 소식에 며칠을 잠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 수면 위로는 서점을 운영하며 평온한 생활을 하는 듯 보이지만, 수면 아래 발은 미친 듯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그렇게 발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제자리만 빙빙 돌고 있을 때, 이 시집을 만났다. 서효인 시인의 책은 공저로 출간된 독서일기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정도만 읽었고, 시집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시집이 들어오면 첫 페이지에 실린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본다. 이 책의 ‘시인의 말’은 나를 수신인으로 한 편지 같아서 주말 내내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여러 번 읽었다.

 (...) 좋은 집에 살고 싶고 그 집의 가격이 오르면 좋겠다는 사람의 마음은 사실 내 것이다. 이제는 하다하다 시를 고백하는 용도로 쓰려고 하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러할 것이다.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고 지껄이고 후회하고 고백하는 삶에 시가 끼어들어 자꾸 묻는다. 너 지금 뭐하느냐고. 너 지금 그렇게 사는 게 맞느냐고. 대답할 수 없어 썼다. 실패하는 마음의 한가운데에서 스스로 만든 지옥에 중독된 채로. _서효인, ‘시인의 말’에서

 나 역시 지금 “실패하는 마음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너 지금 뭐하느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자신에게 하면서. “고백하는 시”이자 “후회하는 시”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에 이끌린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사람의 주소를 들으면
주소지의 시세가 떠올라
사람의 재산 정도가 계산되는
사람이 되고부터
사람의 눈을 쳐다볼 수 없는 관계로
땅 보고 다닌다, 땅에는 거짓이 없지
_‘눈알에 지진’에서

 시집의 전반을 흐르는 정서는 자괴감이다. 원하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자괴감, 아는 만큼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는 부끄러움.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분노 섞인 체념들. 나는 화자에게 공명하고 만다. 나 역시 내가 바라던 모습에서 멀어진 사람이며, 속물적인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땅을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변명으로 삼는 자신에 대해 헛웃음을 짓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무서울 때도 있다. 어디서든 철들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은데 현실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고려하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니까. 그렇게 발이 묶여버린 슬픈 어른들을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한다.

 하지만 그의 시가 거기에서 끝났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으리라. 아마도 화자가 딸아이와 함께 들렀을 아이스크림 가게. 이 책에는 그 공간이 자주 등장한다. 그곳에서는 아르바이트생의 손목이 보이고, 동료의 조모상을 알리는 문자가 도착하고, 은행과 한 약속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도록 대신 제 몸을 녹이는 드라이아이스가 있다.
 
 세상에, 나는 드라이아이스의 생애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주인공은 아이스크림이었으니까. 그걸 먹으려고 꺼낼 때쯤에는 드라이아이스는 흔적조차 없이 푹 꺼져버렸으니까. 그렇다고 드라이아이스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여 없는 삶인가?

(...)
내가 좋은 아빠다 죽지 않는 아빠다
노인의 빈소
모락거리는 연기
아이스크림이 녹고 있다
드라이아이스는 제 할 일을 다하고
30년의 장례를 준비한다
삼가,
열심히 녹으면서
_‘서른 몇 번째 아이스크림’에서

(...)
내게는 큰딸이 있다 큰딸은
드라마로부터 나를 구원해주는 신이다 파고의 변덕으로부터
나를 잡아줄 손이다 타인의 온유한 시선에 놓이길 원하는
마음을 비집고 처단할 칼이다
장애인은 티브이에 잘 나오지 않는다 티브이를 보다 말고
나는 기도하려
손을 모으지만
(...)
드라마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어느 날에 나는 드라마로부터 구원되어 큰딸과 손을 잡고 
공원을 산책하고 면식 요리를 하며 현관의 신발을 정리할 
것이다 딱 10년만큼 늙어서 마지막이 없는 마지막 회를 찍
으면 좋겠다 나의 신이여, 당신은
이제 막 곤히 잠들었고, 나는 너의
작디작은 손톱을 살짝 문다
드라마에서 배운 생각들이
어슷하게 잘려나가고 있었다
_‘드라마틱’에서

 나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화자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아픈 딸)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삼가, 열심히 녹”고 있는 드라이아이스를 발견한다. 아이스크림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 텅 빈 봉지. 그리고 “녹은 하드의 막대처럼 남은” 안쓰러운 존재. 이 둘은 서로를 껴안는다.
 나를 녹여 타인의 삶을 지탱해주는 사랑이란 요즘은 고리타분한 것으로 여겨지는 게 아니던가. 좀 더 영악하게, 좀 더 합리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사랑하려고 애썼던 나는 순간 허탈해진다.
 내 인생은 “파고의 변덕으로부터 나를 잡아줄 손”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 몸이 작아질지라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삼가, 열심히 녹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도 사랑하던 날이
있던 적도 있어서 덜덜덜 몸을 떨며
울었다 닮은 것들의 몸을
통과한 악취가 제향을 
대신하였다
_‘부음 2’에서

 이 시집에는 부음을 소재로 한 4편의 시가 나오고, 장례식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타인의 죽음은 우리 삶을 뒤흔들지만, 우리는 나날이 죽음에 가까워진다는 진실에서 애써 눈을 돌린다. 아직은 죽을 수 없기에 미친 척 삶을 택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과 “닮은 것들의 몸을 통과”하며 살아간다.

 부고를 들을 때마다 고인과 함께한 추억과 기억들이 우리 안에 우수수 쏟아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아직은 죽을 수 없다며 드라이아이스는 죽음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제 몸을 녹이고 있음을 안다. 곁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도록 그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 역시 다짐하는 것이다. “삼가, 열심히 녹으면서” 살아가보겠습니다.  (by 밤의점장)

*인용된 시는 저자의 허락을 받고 수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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