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무임승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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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하늘이 푸르러서
  • <이방인>의 뫼르소가 단지 ‘햇빛이 너무 눈부시다’는 이유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였다면 <천개의 파랑>의 콜리는 단지 ‘하늘이 푸르다’는 이유로 달리는 말에서 떨어진다. 말을 타기에 적합한 가벼운 탄소섬유, 말이 달릴 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관절,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기에 좋은 긴 팔, 콜리는 말을 타기 위한 경마 전용 안드로이드 기수로 탄생했으나 어느날 문득 ‘푸른 하늘을 보고싶다’는 생각에 팔려 경주 도중 달리는 말에서 떨어지고 만다. 책을 읽은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도 이 부분 만큼은 생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에게는 거의 이방인의 뫼르소가 사람을 죽인 이유만큼이나 강렬한 대목이었으므로.

    <천개의 파랑>이 경마 전용 안드로이드 기수 ‘콜리’가 달리는 말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망가진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라면 영화 <애프터 양>은 중국인 입양아를 위해 데려 온 안드로이드 ‘양’이 작동을 멈추면서부터 시작한다. 원래의 쓸모가 없어진 안드로이드는 자연히 폐기의 수순을 밟아야 하겠지만, 인간은 본디 ‘살아 있지 않은 걸 사랑할 수 있는’ 독특한 존재이므로 <천개의 파랑>에서 연재가 콜리를 고치는 것처럼 <애프터 양>에서 제이크도 고장난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수리점을 전전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양’의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던 일상의 찬란한 순간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양’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아닌 기계이기 때문에 그의 메모리에 저장된 수많은 짧은 영상들은 스스로 어떤 의미를 부여한 특별한 추억이라기보다는 흘러가는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터이다. 아니,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이라는 영화 소개 글의 마지막 질문 또한 ‘왜’가 아닌 ‘무엇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역시 양이 오랜 기간 남긴 많고 많은 영상들은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기보다는 단지 ‘하늘이 푸르다’와 같은 이유로 남겨둔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비록 우리는 하늘이 그토록 푸르른지 보통 잊고 살지만.

    어디에선가 인간은 기쁜 일과 슬픈 일이 1:1이면 대체로 (행과 불행의 비율이 동일함에도!)삶을 불행하게 여긴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작디 작은 불운에도 쉽게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고 깨어지는 것이리라. ‘사는 건 원래 고통의 연속’이라거나 ‘사는 게 재미없다’고 나 스스로 염불을 외는 것 역시 기쁜 일보다는 슬픈 일에 기어이 집착하는 인간의 습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또 일부 염세적인 성격 탓에 ‘범사에 감사하라’ 따위의 말 등에는 섣부른 위로라며 코웃음을 치곤 했다. 하지만 창 너머로 비치는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풀, 서서히 퍼지는 찻잔 속의 찻잎 혹은 그런 풍경을 넘어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양을 부르는 순간까지, 이토록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섬세하게 기록한 ‘푸르른 하늘’과 같은 아름다운 일상의 순간에는 어쩔 도리 없이 마음이 누그러진다.

     나의 경우에는 산책하는 시간이 있다. 처음에는 가양대교에서부터 안양천까지, 월드컵대로의 야경이라든가 멀리 보이는 여의도의 네온사인처럼 한강변에 쭉 펼쳐지는 풍경이 좋았으나 요새는 한강공원을 나가기 전 별 풍경이랄 것도 없는 소박한 산책길을 주로 다니고 있다. 거기에는 때때로 과일트럭이나 우유 판매대 같은 작은 노점상이 들어오기도 하는데 얼마 전에는 이것도 색다른 경험이라며 토마토를 사기까지 했다.(물론 그 토마토는 사 놓고 한번도 꺼내먹지 않았다.) 게다가 엊그젠가에는 산책하는 길가에 있는 신호등이 깜빡거리는 게 문득 멋지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서서 아무것도 아닌 신호등 사진을 찍어 왔다. 그러니까 이 모든 건, 그저 하늘이 푸르러서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매사 그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이 퍽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는 일상의 순간들을 자주 누리고 싶어진다. 일상의 찬란한 순간들을.
왜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브루스 올마이티]에서 답을 얻다
  • 인류가 문화예술이라는 것을 향유하기 시작한 이래, 아니 문화예술의 형태를 아직 제대로 띄기조차 전부터 가장 흔하게 등장했던 테마는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가슴 터질 듯한 행복과 설렘부터 문자 그대로 심장에 칼이 꽂히는 실연의 고통까지, 사랑은 우리가 구현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문화와 예술에서 발견된다. 가끔은 가장 기대하지 않던 때 한순간에 찾아와 마치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한 행복을 선사하기도 하고, 반면 아무 예고 없이 떠나 총 맞은 것 같은 고통을 주기도 하니, 사랑만큼 논리와 예측 그리고 통제 밖의 영역이 또 있을까. 

    똑 같은 사람에게 한때 구원받았다가 그 사람 때문에 지옥을 맛보기도 하는 등, 나 역시 가끔은 사랑 때문에 그야말로 신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왜’로 시작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대답해 줄 사람 없이 내 마음 속에서 공허하게 소리친다. 왜 나 같은 사람을 사랑해줬을까, 왜 사랑이 식었을까, 따지고 보면 내가 너보다 훨씬 나은데 왜 미련 없이 먼저 나를 떠난 걸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왜?’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다 보면 꼭 내가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우연히 신의 힘을 손에 넣은 주인공이 휴가를 가는 신 대신에 신 노릇을 하게 되며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코미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이다. 지금은 몰라보게 늙어버린 근황으로 커뮤니티 등에서 가끔 언급되는 수준에 그치지만 90년대~00년대 헐리우드 코미디의 제왕이었던 짐 캐리, 주로 신이나 모든 것을 꿰뚫는 통찰력의 소유자 등의 역할로 자주 나오는 모건 프리먼, 그리고 시트콤 <프렌즈>의 레이첼 역으로 유명한 제니퍼 애니스턴이 각각 주인공 브루스, 신 그리고 브루스의 오랜 연인 그레이스를 연기했다. 짐 캐리 특유의 풍부한 표정과 슬랩스틱 개그가 넘치지만 그렇다고 천박하거나 몸개그로 때우는 코미디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따뜻한 웃음과 감동이 있는 줄거리이며, 참고로 <프렌즈>를 통해 아메리칸 스윗하트로서 큰 사랑을 받았으나 유독 영화 흥행 성적이 극도로 부진했던 제니퍼 애니스턴의 영화 필모그래피 중 흥행과 비평 양측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이기도 하다. 

     지역 방송국의 리포터 브루스는 잘 나가는 동료이자 라이벌 에반을 시샘하며 본인도 언젠가 미녀 동료 앵커와 함께 뉴스를 진행하기를 꿈꾸지만, 현실은 특이한 과자를 굽는 할머니를 취재하는 등의 시시한 얘깃거리나 찾아 다니는 신세이다. 그의 오랜 연인 그레이스는 사람들을 편안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며 그를 위로하지만 브루스는 화려하지 않은 자신의 일상에 크게 염증을느끼고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며 분노한다. 그러던 중 어느 노숙자가 동네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동적으로 노숙자를 구해주는데, 갑자기 그의 앞에 신이 나타나 브루스에게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almighty) 신의 힘을 빌려주며 신도 가끔은 휴가가 필요하니 당분간 브루스가 자신 대신에 신이 되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유념해야 할 것은 그 어떤 전지전능한 신의 권력이라도 타인의 자유의지(free will)는 조종할 수 없다는 것. 졸지에 신이 된 브루스는 그 힘을 마음껏 이용하여 라이벌에게 생방송 중 망신을 주고 자신은 특종을 여러 건 따내 스타 앵커로 급부상하고, 내친김에 미녀 동료와 불장난도 해 보는 등 꿈꾸던 모든 것을 누린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돈과 인기의 맛을 보고 속물로 변해 버린 브루스에게 실망하여 그를 떠나고, 그제서야 그레이스와 함께하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은 브루스는 이런저런 방법을 써 보며 그녀의 마음을 돌리려 노력하지만 신이 말했던 대로 타인의 자유 의지는 신의 전지전능함조차 바꿀 수 없었다. 브루스는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신에게 그토록 절실하게 원하던 돈과 명예를 손에 넣고 화려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마음이 공허하다고 고백하고, 결국 신 역할을 반납한 후 신의 힘을 빌리지 않고 본인 스스로의 진심을 보이며 그레이스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 성공한다. 

    이후 신의 힘을 잃어버린 브루스는 자연스럽게 스타 앵커 자리에서도 쫓겨나고 다시 시시콜콜한 지역 뉴스를 전하는 리포터로 돌아가지만, 이번에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된다는 훈훈한 결말이다. 짐 캐리가 쌩쌩하던 시절의 거의 끝물에 나온 영화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까지는 아직 젊고 잘생기고 재능 넘치는 짐 캐리의 열연을 만나볼 수 있으며, 결말이 뻔히 예측되지만 그런 진부한 해피엔딩조차 ‘야후!(Yahoo!)’ 대신 ‘여호와!(Yahawah!)‘ 사이트가 나오는 등 깨알 같은 재미와 주연 세 사람의 케미 덕에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수작 코미디로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고 느꼈던 사람마저 허무하게 사랑이 식거나, 아무리 봐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마저 나를 거절하거나 하여 대체 왜? 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 절실할 때 나는 자유의지를 떠올린다. 아 그렇지,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그러니까 받아들여야 한다고, 나와 사랑에 빠진 것에 이유가 없었듯이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것에도 이유가 없으며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그저 우리는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끝낼 뿐이라고.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 보면 사랑과 이별에 따르는 감정의 파동들이 얼마쯤 차분하게 잦아드는 것이다. 그러니, 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개개인의 신념과 유물론적 논쟁은 제쳐두고서라도, 자유신에게 잘잘못을 떠넘기거나 원망하지 않고 애초에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려 애태우지 말자. 

    지금 회사가 삼성역 근처에 있어서 하루는 퇴근 후 코엑스를 구경하고 있는데, “혹시 24세 이상이시고 결혼에 관심 있으시냐”며 어느 결혼정보회사의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코엑스 쪽에 이런 결혼정보회사 길거리 영업이 있다는 말을 익히 듣기는 했는데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겪으니 신기해서, 문득 그런 세계는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해져 약간 관심을 보이는 척했다. 평소라면 속으로 짜증을 내며 못 들은 척 지나쳤을 텐데 최근 사랑에 대한 심오한 고뇌(?)를 할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전에 없던 호기심이 솟았다. 그러자 영업사원이 한껏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가격표를 보여준다. 30대 여성에게 결혼에 대한 조급함을 조장하며 불안 마케팅을 할 생각에 속으로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자는 나이 몇 살부터 가입비가 얼마고, 직업과 집안 재산이 이 수준이면 얼마고 N회 패키지로 가입하면 할인이 되고… 그들의 잣대로 나를 평가하게 둘 생각 따위 전혀 없고 중요한 건 애초에 나에게는 필요조차 없는 세계이지만, 그 어지러운 숫자들에 조금은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도 쓴웃음도 아닌 그냥 웃겨서 나온 웃음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말고의 자유의지는 신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자본주의는 신도 이기나 보다. 아니, 자본주의가 곧 신일지도 모르겠다. 
성수동 문구소품샵 탐방기 - 작은 것들이 주는 큰 기쁨
  • 문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7년 성인이 된 이후 정식으로 첫 다이어리를 쓰게 되면서 인 것 같다. 마침 그 즈음부터 다이소에서 계절별로 예쁜 스티커나 마스킹테이프를 활발하게 판매하여, 다이소에서 새 시리즈가 나왔다 하면 친구와 다이소 털기를 취미로 삼곤 했었다. 일단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디자인의 스티커와 문구들을 구입할 수 있어 나오는 족족 사들였다. 그렇게 사모은 스티커와 마스킹테이프로 다이어리를 꾸몄으나 그러다 보니 내 취향은 완벽히 반영하지 못하고 그저 다이소 취향으로 잔뜩 꾸며진 다이어리를 가지게 되었다. 2017년부터 5년 간 매년 다이어리는 5월을 넘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는 꼭 12월까지 다이어리를 다 쓰기로 마음먹고 7월인 지금까지 잘 유지하고 있는데 작심하고 다이어리를 적다 보니 새로운 스티커를 구매하고 싶은 마음이 다시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서울에 있는 문구소품샵을 검색하며 동네 별로 탐방하는 중에 있다. 이번 뉴스레터에는 성수동에 있는 문구소품샵 몇 개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Point of View- 찾아가는 길도 가게의 분위기도 특별히 초대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비밀 공간 같다. 벽돌 건물 카페 2층 안에 있는 작은 나무 문을 통해 들어가면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다이애건 앨리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손톱 만한 빈티지 지우개나 클립부터 다이어리나 수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구를 조금씩 전시해 놓은 전시장 같은 곳이다. 특히 빈티지 느낌이 가득한 아이템들이 많아 하나하나 꼼꼼하게 구경하기 좋은 곳이다. 각각의 아이템을 설명하는 감성과 정성이 가득한 큐레이션 메모를 보면 모두 사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대신 가본 곳들 중 가장 가격대가 높아서 빈티지 메모지 한 상자밖에 구매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Made By-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형 스티커 마트 같은 곳이다. 딱딱한 창고형 매장이라기 보다는 포근한 느낌을 준다. 주로 스티커와 엽서를 판매하고 작가별로 진열이 되어있는데 그 수가 정말 많아 거의 백 명 가까이 되어 보인다. 다꾸를 새로 시작하여 이것 저것 다양한 스티커를 많이 사고 싶을 때 방문해야 할 곳이다. 공간 한 켠 에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상품을 진열해 놓는데, 내가 갔을 때는 Letter Market 으로 다양한 편지지와 엽서를 구경할 수 있었다.

    -Object- 대표적인 소품샵으로 특히 홍대 본점이 아주 유명하다. 삼청점은 1년 전쯤, 성수점은 이번에 방문해보았다. 삼청점은 각종 문구를 비롯하여 에코백, 머그컵 등의 생활용품 전반을 판매하고 있고, 성수점은 스티커 등의 문구와 다이어리 등에 집중하고 있다. 아파트 단지 옆 상가 2층인데 정말 소품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이라 상가를 찾아가는 길이 어색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한 쪽 벽을 차지한 흑백의 엽서들, 그리고 카운터 뒤를 가득 채운 박스 인테리어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자체 제작한 상품들이 많아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루 종일 문구 탐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구매한 것들을 꼼꼼히 다시 살펴 보고 다이어리에 하나하나 붙여 꾸미는 일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마치 여권에 찍히는 도장처럼 오늘의 문구여행을 마친 사람들에게 찍어주는 도장 같은 스티커, 사진을 보고 여행을 추억하는 것처럼 문구여행을 추억하게 해주는 엽서들, 그것들을 이어주는 마스킹 테이프. 문구 탐방일의 다이어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에너지와 기쁨과 설렘으로 가득 차있다. 남은 6개월도 즐거운 다이어리 생활을 위하여 이후에는 소품샵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홍대, 연남, 연희동 탐방을 앞두고 있다. 또 어떤 작은 것들이 내게 큰 기쁨을 줄 지 기대해 본다.
누구를 위하여 영화는 상영되나
  • 코로나19라는 거대하고도 특수한 시대적 상황, 그에 따른 영화산업의 주춤거림, 이래저래 다사다난했던 개인사 등이 겹쳐 영화관과 서먹해졌다. 자연스레 영화관 회원등급도 VIP에서 일반회원으로 내려왔다. 오바 좀 보태, 한 달에 한 번 꼴로 영화가격은 끊임없이 인상되는데, 일반회원에게는 할인쿠폰도 주어지지 않고, 새로 적립을 시작하려니 먼 산이라 영화관에 가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사그라드는 이때, 우리의 '톰 아저씨'가 손을 흔들었다. 얘들아, 내가 왔다~!

    탑건:매버릭은 이 시대 상업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매끈함의 끝판왕으로 그야말로 심리스하다. 주인공은 그 자신의 콜사인(Maverick)처럼 개성과 매력이 넘치고, 서사는 온갖 고초와 갈등 끝에 해피엔딩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볼거리는 화려하며 음악은 흥겹다. 만얼마의 티켓값으로 최대한의 오락을 원한다면 탑건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다만, 너무나 매끄러워 도리어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원톱 주인공은 백인 남성이고, 엘리트 사회에서의 일탈과 성취를 반복한다. 인종도 성별도 그들의 행동과 동기도 모두 지극히 한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수십년간 내가 겪어왔던 수많은 헐리웃무비 역시 그래왔기에 불편함을 미처 깨닫기 전에 영화는 아드레날린 최고조로 달려 몰입하게 한다. 도리어 모두가 백인이고 남성이기에 그냥 그런 또하나의 한정적인 '이세계'인가보다 하게 될 정도다. 한편으로는 피닉스의 여성성을 유별나게 강조하지 않고도 다른 인물처럼 멋있게 제 역할 그 이상을 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든지, 주인공 옆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혼도나 은근히 신뢰하고 지지함으로써 주인공의 동력을 제공하는 인물들이 흑인이라는 점은 무시할 수만은 없다.

    또, 미군의 '하드웨어 차원'의 절대적 강력함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영화에서 더욱 자연스럽고도 인상적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존재적 차원'의 정당성마저 강화된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강하지만,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매버릭의 열 두 제자로 하여금 은유한다. 애초에 1987년의 탑건부터 군의 프로파간다였다는 걸 짚어보더라도, 도리어 되묻게 하는 것이다. 이토록 세련된 결과물이라면 그 이념적 목적의 촌스러움과는 별개로 그 미학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클리셰로 점철된 갈등관계나 일견 단순해보이는, 그래서 예상 가능한 플롯 또한 복잡한 세계관에 도취되어 종내는 스스로 길을 잃어버리는 요즘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떠올려봤을 때 차라리 명쾌하고 산뜻하게 느껴진다. 이처럼 탑건:매버릭은 흥미롭게도 그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했다가 반감시켰다 하며 스스로를 모순적으로 증명해나간다. 그리고 그 범위는 어쩌면 '영화' 그 자체의 정의로 확장되기도 한다.

    영화는 콘텐츠 그 자체를 뜻하는가 아니면 영화관에서의 경험을 의미하는가?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되었고 그로인해 폭넓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는 이유로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에서 외면받았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배우들의 연기와 실제 풍경을 진실되게 담아야 하는가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CG만으로 그림이 완성되어도 좋은가? 필름을 고수해야 하는가 디지털 나아가 아이폰으로 촬영한 결과물로도 충분한가?

    탑건:매버릭은 작전을 수행하는 비행 장면처럼 당연히 CG일 거라고 생각하는 위험천만한 장면마저 실제로 촬영했다고 한다. 장르적 특성까지 감안한다면, 이 영화는 스크린으로 감상해야만 하는 당위를 갖는다. 여전히 '이런 것만이 영화다'라고 선언하는 셈이다. 그러나 4D나 스크린X같은 최신 기술이 이 영화를 체험하는 감각을 풍성하게 할 때 '여기까지도 영화다'라고 경계를 깨도록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무인기가 조종사를 대체하게 될 거라는 제독의 경고에 'Maybe so, sir. But NOT TODAY'라고 응수하는 매버릭의 대사가 오늘의 답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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