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사회를 휩쓴 유행어 가운데 '누칼협'이 있습니다.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인데요.
누군가 자신이 힘든 처지를 꺼내면 누구도 그걸 선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니 아무말 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라는 의미입니다.
이 유행어는 마치 무적의 논리처럼 거의 모든 사안에 적용됐죠.
가계부채로 힘들다는 이에게 "누가 칼 들고 빚내라고 협박했냐",
일터에서 부당한 일을 겪은 이에게 "누가 칼 들고 거기 취업하라고 했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심지어 화물연대 파업과 이태원 참사에도 "누가 칼 들고 그 일 하라고 했냐", "누가 칼 들고 거기 가라고 했냐"는 말들이 나왔습니다.
각자도생도 이젠 조용한 버전을 넘어 적극적으로 서로를 다그치는 형태로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저는 누칼협의 가장 반대편에 우리의 시대정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도움'이자 '서로 돌봄'입니다. 관계적 돌봄이기도 하고, 관계적 복지이기도 합니다.
만일 서로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많은 일들이 쉬워집니다.
이른바 '내어남쉬'(내겐 어려운 일이 남에게 쉬운 일)의 법칙이 있는데요.(제가 만든 법칙입니다)
이를테면 한 사람이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열 명이 있다고 한다면요.
그 한 사람이 겪는 어려움에 도움이 되는 일을 상대적으로 쉽게 여기는 사람이 열명 중엔 분명히 있을 거란 의미입니다.
그 도움은 재정적 지원이든, 혹은 지식이든, 혹은 도움이 되는 다른 이를 소개하는 일이든, 혹은 정서적 지원이든 다양하겠죠.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지난 십여년간 복지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건들에서 그들이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사람들이 있었으면 분명 달랐을텐데란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도움을 촉진하는 체계, 다시 말해 연쇄적인 도움의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는 그 고리를 만들어낼 열쇠를 찾고 있습니다.
<래디컬 헬프>의 저자 힐러리 코텀은 그 열쇠를 '관계'로 보고 있으며 "우리의 현 복지당국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또 그 고리를 단단하게 할 다른 요소들은 무엇일지가 궁금한데요. 이제 그 고리를 찾는 여정을 떠나려 합니다.
실은 지금까지의 '빌드업'을 통해 LAB2050을 도와달란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LAB2050을 도와 같이 연쇄적인 도움의 고리를 만들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방법은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