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7 . 2022.09.23~29

혁명의 최전선에 선 이란의 여성들

완연한 가을이네요. 아침에는 추웠다가 점심엔 더웠다가... 큰 일교차에 감기에 걸린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래도 순식간에 지나갈 가을, 최대한 즐겨봐야겠죠. 저는 햇빛도 자주 쐬고 산책도 틈틈이 하면서 한주를 보냈는데요. 여러분들도 이 가을 충분히 즐기고 계시길 바랍니다!🍂🍁

플랫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폭풍같았던 2주를 보냈어요. 관련 기사들이 정말 많이 쏟아졌거든요. 지난주 금요일 레터를 발송하면서 '다음주부터는 한숨 돌릴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이번주 월요일 출근하자 거짓말처럼 뉴스가 뚝 줄어든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죽음도 이렇게 지나가는 걸까' 다시 찾아온 일상의 평온함에 씁쓸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어요.

이 감정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고민하면서, 이번주 화요일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대표님 인터뷰를 다녀왔어요.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등 여성폭력 피해자 지원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여성 단체에요. 22년만의 스토킹처벌법 제정에도 큰 역할을 하셨고요. (란희 대표님 표현에 따르면 '우리 법좀 봐주시겠어요?' 젖동냥을 해가면서 만든 법이라고..)

하지만 스토킹처벌법 제정 1년이 조금 넘은 지금도, 신당역 사건과 같은 비극적 죽음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자들을 죽이지 말라" "국가가 대책을 마련하라" 똑같은 이야기를 20년, 30년째 되풀이하면서 수없이 많은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는 활동가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지치거나 무력감을 느끼진 않을까요. 란희 대표님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일단 사람이 죽게 되면, 단체에서 오래 일한 사람으로서는 자괴감을 느끼죠. 도대체 이 세상이 변하긴 변하나 싶고. 그래도 저는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로요. 제가 여성의전화 들어온게 2003년인데 그 사이에 대통령도 많이 바뀌었고, 여성 이슈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죽기도 했었고, 전국적인 유행이 되기도 했었어요. 그런 시절을 다 겪고 나서 보니,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여성들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거에요. 여성들도 다 각자 역할을 하는 사회 구성원이잖아요. 이들의 생각이 바뀌면 사회가 안바뀔 수 없어요."

마음 깊은 곳에서 뭉클함이 올라오며 감동에 빠지려던 찰나. “근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냐?라는 생각은 늘 있죠.” 란희 대표님이 무심한 한마디에 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지! 우리 뿌듯해하기는 아직 이르지! 순간 피식 웃음이 나면서 다시 운동화 끈 단단히 매고, 열심히 싸워봐야겠다 다짐하게 됐답니다. 란희 대표님을 비롯한 수많은 '센언니들'이 우리의 든든한 뒷배라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요.

란희 대표님 인터뷰 기사는 다음주 중 읽어보실 수 있게 열심히 마감해볼게요. 그전에 오늘 준비한 레터부터 읽어보시겠어요?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히잡 시위, 'n번방, 남겨진 공범들'을 취재한 취재팀의 인터뷰도 알차게 꽉꽉 담았습니다. 그전에 이번주 플랫 에디터의 최애 기사, 놓치고 지나가기 아쉬운 젠더 기사들도 '3줄 요약' 해드려요.

플랫팀 ｜ 심윤지 기자

갈팡질팡 페미니스트

광고·협업 문의는 flat@khan.kr

③돈 되니 눈감고, 수사엔 비협조… 플랫폼이 ‘최후의 공범’이다

경향신문 사건팀 <n번방, 남겨진 공범들> 마지막 회차입니다. 1화에서는 n번방 이후에도 계속되는 디지털 성착취 실태를, 2화에서는 가해자에게 한없이 관대한 사법부의 문제적 판결들을 다뤘죠. 마지막 3화는 이 모든 성착취를 가능하게 한 '최후의 공범' 플랫폼의 책임을 묻습니다. 'n번방 사건'부터 '엘 성착취 사건'까지. 텔레그램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경찰청의 성착취물 삭제 요청에도 묵묵부답입니다.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은 절대 수사협조 안한다"며 자신만만해하고요. 이쯤되면 '플랫폼이 최후의 공범’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여겨지는 텔레그램도 당국의 압박에 무릎을 꿇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오늘 레터 하단에 취재팀 인터뷰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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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들의 일터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다른 몸’은 ‘일그러진 몸’이 된다

문화부 책 담당 기자들은 플랫의 핵심 필진입니다. 출판계에선 '페미니즘'이 대세가 된지 꽤 오래되었거든요. 이번주엔 유독 좋은 페미니즘 관련 신간들이 쏟아졌는데요. 그중 하나가 캐린 싱의 <일그러진 몸>입니다. 캐나다의 인간공학자이자 생물학자인 그는 통신 기술 분야에서의 여성 노동자가 감소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여성들은 일터에서의 어려움을 성차별로 명명하고, 심지어 '인정'하기조차 꺼려했어요. 싱은 여기서 "남성에 비해 크기와 힘이 열등한 '제2의 몸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읽어냅니다. 남성들이 설계한 일터에서 여성들의 '다른 몸'은 '일그러진 몸'이 되곤 합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싱의 고민을 담은 서평을 이혜인 기자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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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살인’ 김병찬 항소심 선고, 법정에선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 29일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가해자 전주환은 선고 직전 재판부에 선고 기일을 최대한 늦춰줄 것을 요청했었다고 합니다. “지금 국민들 시선과 언론 보도가 집중돼 있는 것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누그러지길 원하는 마음”이라면서요. 가족을 잃은 슬픔으로도 모자라, 반성 없는 가해자의 뻔뻔한 태도까지 지켜봐야 하는 피해자 가족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옛 연인을 스토킹 끝에 살해한 김병찬(36)은 지난 23일 열린 항소심에서 1심보다 5년이 늘어난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는데요. 재판 내내 오열하던 피해자 어머니는 선고 직후 “다른 부모들도 사랑하는 딸을 잃고 있다”며 신당역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김희진 기자가 김병찬 항소심 재판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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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기 쉬운 젠더 뉴스를 '세줄 요약' 해드립니다.

😥 1950년대 말, 성소수자를 수용소에 보냈을 정도로 성소수자 탄압이 극심했던 공산권 국가 쿠바에서 ‘동성결혼’이 공식 허용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가족법 개정안 국민투표에 쿠바 국민의 3분의 2가 찬성표를 던지면서입니다.
▶ 성 소수자 탄압했던 쿠바, 동성결혼 공식 인정한다

🤔 대법원이 고 이예람 공군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부대 선임에게 징역 7년을 확정했습니다. "극단적 선택의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 책임으로만 물을 수 없다"며 1심보다 형량을 2년 깎은 2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 ‘고 이예람 중사 성추행’ 가해자 징역 7년 확정

🤔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했던 기지촌 여성들의 피해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부가 미국과의 동맹 강화와 외화 벌이를 위해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며 성매매를 조장·정당화해왔음이 70년 만에 법원 판결로 인정된 것입니다.

▶ 대법, ‘미군 기지촌 성매매’ 국가 배상책임 70년 만에 인정

플랫팀은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두려워하라, 함께인 우리를

이란 반정부 시위가 1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국의 무력 진압에 진압에 사망자만 벌써 60명이 넘었다고 하죠. 전세계 여성들이 '단발 시위'에 동참하며 연대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집니다. 지난주 플랫 트위터에선 '이란 시위'를 다룬 기사들의 반응이 압도적으로 뜨거웠는데요. 이란 여성들의 투쟁에 많은 구독자분들이 연대의 마음을 보내주고 계시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위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간 마흐사 아미니(22)의 의문사가 발단입니다. 히잡 문제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이번 시위를 남녀 대립이나 여성 혐오로만 이해하긴 어려워요. 이란에서 히잡은 지난 30년간 전통 이슬람 교리의 복원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해 온 이슬람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상징하거든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가속화된 경제적 고립, 코로나19로 인한 높은 실업률과 살인적인 물가 상승 등 경제적 요인도 작용했고요. 이번 시위가 여성들만의 시위를 넘어, 남녀노소가 모두 동참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된 덴 이러한 맥락이 있습니다.

사실 파흘라비 왕정 집권기인 1930년대만 해도 이란은 '히잡을 금지한 최초의 이슬람 국가'였어요. 이웃나라 터키의 근대화 정책에 큰 감명을 받았던 레자 샤는 '히잡 금지 조치'를 발표하며, 그날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왕정의 의복 개혁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도시의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조치를 환영했지만, 전통적인 집안에서 자랐거나 나이가 있는 여성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어요. 이들에게 히잡은 정숙과 순결, 존경이라는 가치를 상징했거든요. 결국 히잡금지법은 1941년 레자 샤의 퇴위와 함께 사라졌고, 뒤이어 집권한 무함마드 레저 샤는 히잡 착용 여부를 여성들의 선택에 맡기게 됩니다.

이란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 의무화된 건, 1979년 이슬람 혁명 전후 일입니다. 이 시기 이란에서는 부패한 피흘라비 왕정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당시 영향력 있는 이슬람 사상가들은 세속화, 서구화의 물결로부터 '이상적인 이슬람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여성의 히잡 착용'에 '전통과 이슬람의 복원'이라는 정치적인 맥락이 덧씌워지기 시작한거죠. 검은 차도르 차림으로 시위를 하던 여성들의 모습은 서구 사회에 큰 충격을 주는 한편, 이슬람 권력과 혁명의 성공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슬람 정권은 많은 여성들의 반대에도,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합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이란 여성들의 일상은 규제와 단속의 대상이 되어 왔어요. 여성들은 히잡을 적절하게 착용하지 않거나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까페 직원에게, 쇼핑몰 직원에게, 택시 기사로부터 제지를 당해야 했습니다. 경찰의 단속에 걸리면 여성만 처벌받는게 아니라 사업주에게도 벌점이 부여돼 영업 정지를 당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란 여성들은 이러한 정부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적극적인 사회 운동의 주체로 성장해왔습니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는 그 중요한 분기점으로써 2014년 개설된 페이스북 페이지 '나의 은밀한 자유(#MyStealthyFreedom)'에 주목합니다. 영국에 거주하는 이란인 저널리스트 마시 알리네자드는 공공장소에서 '은밀하게' 베일을 벗고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합니다. 처음엔 산이나 강같이 한적한 곳에서 베일을 벗은 뒷모습을 찍어 보내던 여성들은 점점 과감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2018년 저항의 의미로 하얀 히잡을 쓰는 '하얀 수요일(#WhiteWednesday)' 시위, 테헤란 한복판에서 히잡을 벗고 1인시위를 하는 '혁명 거리의 소녀들(#GirlsofRevolutionStreet)' 시위를 거치며 여성들의 투쟁은 소셜미디어 밖으로까지 확장되게 됩니다.

그동안 이란 정부는 히잡 착용에 관해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을 체포·구금하며 강경하게 진압해왔습니다. '서방의 검은 손에게 뒷돈을 받고 선동을 하는 것'이라면서요. 하지만 이제 국민들의 분노는 임계점에 달한 듯 보입니다. "나도 아미니처럼 죽을 수 있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히잡을 벗고 거리에 나서고 있거든요. 남성들도 이런 여성들의 용기있는 발걸음에 동참하고 있고요. 목숨을 건 이들의 투쟁이 앞으로 얼마나 계속될지는 알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이 이란의 현대사에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 선봉에 여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란의 유명한 시위대 구호 중 하나인 “두려워하지 마, 두려워하지 마, 우리는 함께 있어”라는 구호는 어느새 “두려워하라, 두려워하라! 우리는 모두 함께다”로 바뀌어 있었다. 이란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자들이 두려워할 수 있도록 경계 없는, 전 지구적인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 이란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자들이 두려워할 수 있도록 경계 없는, 전 지구적인 연대가 필요한 때이다." ([플랫] 두려워하라, 두려워하라, 우리는 모두 함께다! 칼럼 중에서)

구독자분들은 이번 이란 여성들의 시위를 보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아래 링크에서 자유롭게 감상을 나눠보세요. 이란의 여성들에게 연대의 한마디를 남겨주시는 것도 좋아요!

<참고문헌>

-이란 히잡 관행의 역사적 의미 변화와 수행성 연구 (구기연, 2020)

-혁명 거리의 소녀들(#GirlsofRevolutionStreet): 해시태그 정치를 통한 이란 여성의 사회 운동 (구기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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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을 만드는 사람을 소개해요.

📢<n번방 남겨진 공범들> 시리즈를 취재한 경향신문 사건팀 이유진, 강연주, 박하얀 기자를 소개합니다!

'엘 성착취 사건'을 계기로 시작한 기획 기사에, 연달아 터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까지… 정신없는 한달을 보낸 세분입니다. 그 와중에 전주환이 피해자를 스토킹 해왔다는 단독 보도, 서울교통공사 내 2차가해를 증언한 피해자의 동생 유족 인터뷰, 전주환의 디지털 성범죄 전과를 거르지 못한 서울교통공사 관련 보도까지.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을 열정적으로 쏟아내셨고요. 덕분에 플랫도 관련 소식을 발빠르게 전해드릴 수 있었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경향신문 대표 '불꽃 페미'🔥 세 기자에게 취재 후일담을 들어보았습니다.

1. 이번 기획에 참여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유진) “절망한 한편 기뻤어요. n번방 사건과 다를 바 없는 성착취물 제작·유통 범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걸 지켜보는 건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해?’라며 절망만 했던 3년 전과 달리 ‘뭐라도 해보자’라며 함께 머리를 맞댈 동료들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실제로 우린 해냈어요!☺”

(연주) “여러모로 빚진 기획이었어요. 이번 기획을 준비하며 '조주빈 사건' 취재원들에게 다시 전화를 돌려야 했거든요. 2년만에 전화하자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더라고요. 디지털성범죄 사건은 늘 계속되고 있었는데, 전 특정 사건을 계기로 필요한 순간에만 연락을 한거니까요. 그런 제게 ‘언제든 연락줘도 좋다’며 800여개의 디지털성범죄 관련 판결문을 선뜻 내어준 분, 법원 내부 문제를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신 분들이 있어 취재를 순탄히 마쳤습니다. 이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유독 크네요. 3화까지 함께 고생한 팀원들에게도 더없이 고마운 마음이고요.”

(하얀)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수많은 가해자들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한 '구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성범죄물을 방관하며 이윤을 창출하는 플랫폼 사업자들, 시민들의 인식과는 동떨어진 감형요인을 내놓는 재판부, 피해자 지원 체계의 빈틈을 메우지 않는 정부.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피해는 이어질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2.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다룬, 이른바 '젠더 기사'를 많이 쓰고 있죠. 여기자로서 '젠더 기사'를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유진) “여성으로 태어나 경험하는 모든 일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작업 같아요. 그저 ‘불편해’ ‘무서워’가 아니라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직시하고, 호명하는 작업이 젠더 기사를 쓸 때 반드시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면 최근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그래요. ‘신당역 역무원 살인사건’이란 호명은 본질을 흐리게 하죠.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 ‘스토킹’이란 끔찍한 젠더폭력이었다는 점을 반드시 알려야 했고, 사건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었어요.”

(연주) “결국 제가 살아가야 할 이야기를 쓰는 것 같아요. 여성 기자로서 젠더기사는 불편하지만 꼭 다뤄야하는 대상이에요. 모종의 책임감, 혹은 부채의식도 느끼고요. 젠더 기사를 쓸땐 기저에 '화'가 깔려있을 때가 많은데, 오히려 이런 감정을 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이번 기획에서 저희가 들여다 본 판결문이 총 275개인데요. 돌이켜보면 첫 번째 판결문을 볼 때의 제 모습과 백 번째 판결문을 볼 때의 제 모습은 달랐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판결문을 보는 족족 화도 내고 욕도 하고 그랬는데, 갈수록 그 횟수가 현저하게 줄더라고요. 반성의 의미이지만, 적어도 젠더이슈만큼은 무뎌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사실을 축소한 275개 판결문 속 판사들과 별반 다를게 없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테니까요.”

(하얀) "기자이기에 앞서 일상에서 여성으로서 마주하는 젠더 폭력이 있잖아요. 젠더 기사를 쓴다는 것은 각자가 겪는 경험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 문제로 규정하고, 그 이면을 해체해나가는 작업같아요.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살펴보면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쏟아져요. 기자들도 관계 정부부처, 기업 등에게 어떤 조치를 했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또 물어야 해요. 그래야 폭력이 조금이나마 허물어질 수 있을테니까요."

3. 여성 폭력 뉴스를 읽고 쓰는 것은 지치는 일이에요. 요즘 여러분들을 즐겁게 하는 것을 세가지만 꼽아주신다면.

(유진) "첫째는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팀원들, 둘째는 기사를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독자들, 셋째는 퇴근 후 몰아서 하는 모바일 게임."

(연주) "지난 6월에 나온 포스트말론 앨범. 이제서야 돌려듣고 있는데 야근 퇴근길 노래로 추천합니다. 앨범 수록곡 다 좋았고 무엇보다 빠른 기분 전환에 제격이더라고요. 나머지는 (살기 위해 하는) 운동, 예매해놓은 음악 페스티벌이요!"

(하얀) "답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함께 분노하면서 내일을 다짐하는 곁의 존재들, 기사를 읽은 분들이 간간이 보내주시는 호응(감사합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듣는 음악(재즈를 사랑하고 여성 싱어송라이터 김수영과 선우정아에도 빠져 있어요.) 이렇게 세가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더 열심히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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