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매거진 10호가 도착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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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9호 공지를 통해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젬 매거진은 10호를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이에요.
그동안 젬과 함께한 시간이 즐거우셨다면 좋겠습니다.
부족함이 많은 매거진을 사랑으로 지켜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마지막 호까지 gem나게 읽어주세요💕


젬매거진 발행인들이 전하는 편지💌

바람을 타고 떠나는 여행, <마녀 배달부 키키>
9호의 공지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번 10호는 젬 매거진의 마지막 호입니다. <행다의 엔딩크레딧>의 마지막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녀 배달부 키키>예요. 마지막이니만큼 가장 아끼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 사흘 정도를 고민했는데, 젬 매거진을 시작하고 운영하며 느낀 점과 코너를 마무리하며 구독자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고려했을 때 이만한 작품이 없겠다 생각했습니다. 저는 ‘안 해보면 모른다’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면 무조건 하고 후회’가 인생의 모토인 사람이에요. 젬 매거진 역시 시작은 오히려 쉽고 빨랐습니다. 음악, 패션 등 여러 관심사에서 취향이 통하는 친구 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 호기롭게 매거진을 기획하게 되었고, 든든한 지원군인 에디터 여름을 만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1호를 발간한 후였습니다.
 
구독자님들께 이미 원고를 드리기로 약속은 했는데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이고, 전혀 다른 곳에서 나고 자란 3인방의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고, 기타 등등(할말하않)의 일들을 겪으며 솔직한 표현으로는 도망치고 싶었으나, 구독자님들과의 약속 덕분에 극복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창업가와 크리에이터를 존경한다는 소리를 한동안 밥 먹듯 했던 거 같아요.
 
젬 매거진을 마무리하며 그동안의 시간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성장’이었습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어떤 힘든 일이 있었는지를 묻고 답하는 것보다 차라리 업무 관련 회의가 마음 편했던 저는 엄쥐, 여름을 만나 자기 이야기를 (조금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요. 스스로의 세계에 빠져 글을 써 재끼던(?) 습관은 여름을 만나 읽는 사람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며 조금씩 개선되었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원고를 읽어주신 구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때로는 누군가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도움을 주기도 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쓰기도 하다가 ‘그래 이게 나다’ 하고 달관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걸 성장이라 하는 게 분명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평생에 걸쳐 씨름해야 하는 성장 과정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영화예요.
 
빨간 리본을 묶은 귀여운 소녀 키키와 검은 고양이 지지로 유명한 <마녀 배달부 키키>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카도노 에이코의 동화 <마녀의 택급편> 중 1편의 내용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에요. 1989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무색하게 언제 보아도 촌스럽거나 모자라지 않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입니다. 영화의 제목에 걸맞게 마녀 배달부 키키의 성장기를 다뤄요.
 
마녀 마을에서 살던 주인공 키키는 열세 살이 되면 마을을 떠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 정착해야 하는 규칙에 따라서 직접 독립할 날을 정해요.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마녀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숙명을 타고납니다. 약을 만들어 사람들을 돕거나, 점을 봐 주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지요. 키키는 무슨 일을 하면 좋을지 정하지 못한 상태로 마을을 떠납니다.
 
키키는 힘차게 하늘을 날다 폭풍우를 맞이하기도, 날다 지쳐 기차에 몸을 싣기도 하다가 바다 너머의 아름다운 마을을 발견해요.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지 않은 사람도 들으면 아는 그 곡, 히사이시조의 ‘바다가 보이는 마을(海の見える街)’은 키키가 정착할 아름다운 바다 마을과 새로운 출발을 앞둔 키키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해요. 바이올린과 플루트 합주가 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가는 키키의 모습과 함께 청량감을 더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키키의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직접 그렸다고 해요. 장인정신으로 표현한 바람과 적절한 밀도의 OST, 푸른 바다가 마치 이온음료 광고를 보는 듯이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줍니다.

아름다운 마을에 도착한 키키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마을에도 마녀가 사나요?”라고 친절하게 묻습니다. 그러나 키키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마치 마녀를 처음 본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자리를 피하죠. ‘미야자키 하야오의 판타지는 사실적 판타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녀라는 판타지적 설정과 그를 받아들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이 어우러져 관객이 키키에게 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합니다.
 
키키가 상상했던 희망찬 미래와는 달리 퉁명스러운 사람들의 반응에 지칠 때쯤, 키키는 마을의 빵집에 다다릅니다. 빵집 아주머니 오소노의 부탁으로 키키는 그곳에서 손님들의 물건을 배달하기 시작해요. 오소노는 키키가 지낼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하늘을 나는 능력으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늘을 나는 배달부(空とぶ宅急便)’의 미스터리하고 앙증맞은 멜로디는 열세 살 마녀인 키키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한시름 덜었지만 마음 한 켠에 걱정이 남아있는 키키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해요.
 
키키는 비행 실력을 인정받으며 점점 많은 심부름을 하기 시작해요. 새로운 마을에서 만난 오소노 아주머니, 친구 톰보와 함께 일상에 적응하며 바쁘지만 활기찬 나날을 보내죠. ‘바쁜 키키(大忙しのキキ)’는 경쾌한 멜로디와 스타카토가 걷던 사람도 뛰게 만드는 곡이에요. 마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깨닫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키키의 모습과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어느 날 거센 비를 뚫고 할머니가 정성껏 만든 청어파이를 손녀딸에게 배달한 키키는 손녀딸의 입에서 “청어파이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할머니는 왜 또 보내신 거야”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할머니가 손수 파이를 만드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키키에게는 가슴 아픈 말일지 몰라도, 어린 손녀딸이 청어 파이를 좋아하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요. 미야자키 하야오 피셜, 이 손녀딸이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라고 합니다. 손녀딸은 너무하지만 키키를 한 단계 성장시키는 인물이에요.
 
설상가상으로 톰보의 친구들 또한 키키를 ‘배달하는 애’라고 낮잡아 부르기 시작합니다. 키키는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했던 배달이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한다는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져요. 키키의 빛나던 비행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집니다. ‘날 수 없어(とべない!)’는 비행 능력이 사라진 키키가 맞이하는 당혹감과 절망감을 표현합니다.
 
끝이 없는 슬럼프에서 허우적대던 키키는 우르술라를 만나 ‘힘들고 되는 일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하는 것뿐’이라는 깨달음을 얻어요. 끊임없이 비행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넘어지기를 반복하던 키키에게 어느 날 친구 톰보가 사고로 비행선에서 추락하기 직전이라는 소식이 들려오죠. 톰보를 구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길에 보이는 아무 빗자루나 집어든 키키는 그동안 실패했던 비행에 기적처럼 성공합니다. 멋지게 톰보를 구해낸 키키는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받아요.
 
‘하면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잘)하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의 줄임말이라는 건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걸까요. 어쩐지 크게 속은 느낌이 드는 건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믿고 싶습니다. 계속되는 비행 실패에 영혼이 없어진 키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어요. 열심히 해도 실패할 수 있고, 좋아서 한 일이라도 욕먹을 수 있고, 생각보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몇 번을 반복해도 유쾌하지 않죠. 성장이라는 단어는 완전무결한 개념보다는 시행착오로 뒤범벅된 현실에 더욱 맞닿아 있는 듯합니다. 될 때까지 뭐라도 해 봐야 하는 시기에 놓인 모든 분들께 <행다의 엔딩크레딧>이 일말의 청량감이라도 드릴 수 있는 코너였다면 기쁠 것 같아요. 저 역시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
Kiki's Delivery Service, 魔女の宅急便, 1989

재개봉 | 2019.06.26
장르 | 애니메이션/판타지
국가 | 일본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음악 | 히사이시 조

안녕하세요 여러분. 10호로 찾아온 엄쥐입니다!😊 장르글을 기다린 분들이 계시다면 죄송하지만, 오늘은 장르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거예요. 마지막 호라서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유학 생활 썰을 풀고 있더라고요? 네, 이번 글은 제가 유학 생활을 하며 느낀 점들 및 젬을 마무리하는 소감이 되겠습니다.

# 여자 화장실 창문으로 남자가?
그제 저는 학교 여자 화장실 세면대에서 바지에 묻은 소스 얼룩을 물로 지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 화장실 창문으로 한 남학생이 들어왔답니다. 제가 유학 중인 도시 보스턴은 대부분 건물의 외벽에 비상시 대피용 계단이 붙어 있어요. 그래서 어떤 학생들은 창문을 열고 그 계단을 이용해 지붕에 올라가기도 하고, 그러고 놀아요. 그런데 호기심에 이리저리 올라가고 내려가다가 다시 돌아가려 하면 창문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자기 방을 찾기 어려워요. 그래도 남의 방으로 들어갈 순 없으니 그보다는 안전하게 화장실 창문을 택하는 거죠. 그리고 그 남학생이 택한 화장실이 하필 여자 화장실이었네요. 하지만 이 친구는 당당했어요. 왜냐하면 저희 학교는 이모티콘이 여자, 남자 화장실로 구분이 되어 있지만 모든 화장실 문 중앙에 ‘ANYONE CAN USE THIS RESTROOM, REGARDLESS OF GENDER IDENTITY OR EXPRESSION’이라고 쓰여 있거든요. 

엄쥐의 학교 여자 화장실 문
이 문구는 점자로도 쓰여 있어요. 시각장애인 학생이 급한 상황에 엉뚱한 화장실로 왔을 때, 눈이 보이지 않고 마음도 급해서 다른 화장실을 찾기 어렵잖아요. 그리고 문구에 대해서는, LGBT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제게는 문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양성애자도 아니며 본인이 남성이라는 인식이 확고한 남자가 여자 화장실을 아무렇지 않게 드나드는 것은 불편했어요(그 친구는 성정체성이 남성이 맞습니다). 제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너 지금 창문으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와?’라고 말하니, ‘뭐가 문제야, 여기 쓰여 있잖아'라며 그 문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고 휙 나가버렸어요. 저는 최소한 그 문구가 이런 남학생을 위해 만들어진 건 아닐 거라 생각했고, 소수 또는 급한 상황을 위한 배려의 문구가 개인의 편의를 위해 그 의미가 남용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를 통해 다른 친구로부터 ‘성 중립 화장실'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바로 저희 학교 화장실이 그런 것 같더라고요. 성 중립 화장실에 대해 구글링하자 바로 저 문장이 나왔습니다.

성중립 화장실의 표지
위에 보이는 것처럼 여자와 남자가 함께 그려져 있거나 반반 그려져 있거나 ‘ALL GENDER’ 또는 ‘GENDER NEUTRAL’이라는 단어가 같이 있었으면 이런 불편함이 덜 생겼을 것 같아요. 분명히 ‘WOMEN’S BATHROOM’이라고 돼 있으면서 성 중립 화장실 문구가 쓰여 있으니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랄까.🤔

# 샤워실도 성 중립?
그런데 모든 남학생들이 여자 화장실(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고 작은 글씨로 써 있지만 위에는 여자화장실이라고 크게 써 있는)을 사용하지는 않아요. 그런 순간에 제가 맞닥뜨리게 되는 친구들은 주로 19세 정도였는데, 더 어릴수록 여기에 거부감이 없는 것일지 아니면 호기심으로 인한 발걸음인지 모르겠어요. 왜냐면 나이가 있는 친구들은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거든요. 여자 친구들이 남자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은 본 적이 없어요. 제가 그 곳에 가지 않으니 잘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샤워실은 늘 여자 샤워실을 써요. 제가 사는 층의 친구들을 한번씩은 다 마주친 것 같아요. 
그런데 남학생들 중 일부는 샤워실도(!) 여자 샤워실을 사용합니다. 샤워실에도 화장실과 마찬가지로 ‘WOMEN’S/MEN’S SHOWER ROOM’이라고 성별 표시가 크게 쓰여있지만 그 아래에 역시 똑같이 성 중립을 나타내는 문구가 쓰여 있거든요. 이곳은 딱 샤워칸만 나뉘어 있어서 그 앞의 통일된 공간(?)에서 탈의를 해야 해요. 프라이버시를 위해 샤워칸 안에서 탈의할 수도 있지만 샤워칸도 비좁은지라 어떤 친구들은 밖에서 탈의하고 후다닥 들어갑니다. 제 미국인 여성 친구 한 명이 상의를 탈의하다가 샤워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한 남학생과(역시 성정체성이 확실한 남성입니다) 눈이 마주쳐 그대로 옷을 다시 내렸다는 일화를 말해준 적이 있어요. 그 남학생은 그냥 씩 웃었다고 해요. 제 친구는 놀라서 별말을 못했대요. 저 역시 팬티차림의 남학생을 샤워실에서 마주한 적이 있고요. 성 중립이라 사용하긴 하지만 뻘쭘한지 인사도 하지 않고 후다닥 나가더군요. 저는 아는 얼굴을 보면 왜 자동으로 인사가 나오는지 ‘헤이’라고 말했지만.. 인사하는 게 더 웃긴가요? 푸핫.🤣
한 여자인 친구가 남자 친구를 데려와서 여자 샤워실에서 같이 샤워할 때도 있었어요. 옆 옆 칸에서 샤워하고 있던 저는 솔직히 ‘그렇게 좋아서 공공장소에서 샤워까지 같이 해야겠다면 기숙사보다는 나가 사는 게...😑’라는 생각을 했지요. 서양 친구들이 제게 이런 해프닝과 본인들의 생각을 말할 때 보면 제가 아시안(Asian)이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 듯해요. 국가보다는 사람 바이 사람인 느낌이에요. 방금 말한 에피소드처럼 이곳은 종종 공공장소에서도 공공 에티켓보다는 개인의 권리를 더 우선시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들 하지만 문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때는 참 다르다 싶어요.
이 외에도 기숙사 방, 화장실, 연습실에서 섹스를 하는 일도 종종 있고요. 심지어 사전에 이야기 해주지 않아 거사 도중 룸메이트가 문을 여는 일이... (한숨). 밤늦게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그런 일을 맞닥뜨린 룸메이트는 제 친구였는데요, 놀라서 문을 닫고 나와서 그들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연습실에서 새벽을 보냈다고 했어요. 그건 정말 예의가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긴 College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라는 뉘앙스의 이 문장은 모든 것을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만들어버린답니다.

# 유학하며 좋은 점은 없나?
  1. 처음에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게 제일 좋았어요. 지금은 아웃핏에 관대하다는 점이 참 좋아요. 여기는 뱃살이 튀어나와도 본인이 입고 싶으면 크롭티 입고, 레깅스 입고, 새로운 스타일 시도하고 싶으면 여자도 삭발 한번 해보고 그래요. 달갑잖은 시선이나 평가없이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2. 그리고 입지 않는 옷을 기부하는 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질 좋고 가격 착한 중고 가게가 많아요. 잘 찾아보면 괜찮은 제품도 많고요. 제가 애용하는 곳은 ‘Goodwill’이라는 이름의 프랜차이즈 가게에요. 한 달 전쯤인가, 오랜만에 갔었는데 ‘Brooks Brothers’의 트위드 재킷을 하나 건졌어요. 중요한 자리를 위한 옷도 몇 개쯤 있으면 좋으니까요. 아마 가격이 15불 정도(약 한화 1만 7천 원)였던 걸로 기억해요. 원가는 찾아보니 460불 정도 되네요. 득템이죠? 티 나는 하자도 없고요. 질 좋은 중고 완전 괜찮음! 이런 분들은 ‘Goodwill’, 미국에 오시면 꼭 가 보시길 추천합니다.
  3.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좋은 것은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죠. 저는 철학을 한국에서 전공하다가 음악으로 바꿨기 때문에 음악을 오래 하다가 온 친구들보다 ‘음악 내의 진로 고민'으로 방황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전공을 네 번 바꿨답니다. 초반에는 연주, 중반에는 여러 가지 장르를 짤막하게 작곡하는 것, 지금은 프로듀싱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굉장히 오래 갈등을 겪다가 결국에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과제 양이 미쳤을 때, ‘이게 사람이 이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양이냐?’ 싶을 때, 과거를 생각하며 심호흡합니다. 

#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요?
저는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사귀는 걸 첫 학기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기숙사에 살았기 때문에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었는데 늘 모르는 친구 곁에 앉아서 인사를 건네고, 그렇게 친구를 사귀었어요. 매일 자기 전에 누워서 오늘 알게 된 친구들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장에 적어두는 게 마지막 일과였을 정도로, 하루에 많으면 스무 명씩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때는 신기하게 낯을 가리지도 않았고 신났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지만 코로나 이후 지금 연락하는 친구들은 손에 꼽아요. 다양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졸업이 가까워진 지금은 예전만큼 친구를 사귀려고 하지는 않아요. 자연스레 친해지는 게 제일 좋지요. 수업이 점점 어려워지고 과제 난이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학업에 집중해도 바쁜 나날입니다. 그래서 틈틈이 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팩을 한다거나 산책을 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제  자신을 돌봐야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어요. 유학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면 좋겠지만 생존을 위해 스스로 찾고 연락하고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늘 존재하네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살아야 음악을 하니까요.

# 앞으로의 일정은?
저는 지금 학기를 제외하면 졸업까지 2학기가 더 남았어요. 봄, 가을 학기보다 3주 짧은 여름학기를 풀타임으로 들으면서 젬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각오했던 일이지만 정말 이 악물고 했네요 ^^ 저는 일단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저지르고 후에 수습하는 타입이에요. 저의 이런 방식은 어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워가는 데에는 좋아요. 하지만 이번 초부터 시작했던 젬은 그 스케일이 다른 때 그랬던 것보다 컸기에 수습, 즉 책임을 진다는 게 어떤 말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함께한 행다와 여름에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사를 전합니다. 이 친구들이 아니었더라면 젬은 아마 1호로 끝나지 않았을까 싶어요 ^^ 행다는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능력이 정말 대단한 친구예요. 특히 원고와 필요한 각종 양식을 드라이브에 정리하고 아카이브를 만드는 등 많은 수고를 했답니다. 여름은 우리 셋 중에 가장 전문적인 글쓰기를 잘하고 교정 교열에 힘써 준 친구예요. 때론 저와 부딪히기도 했지만 글쓰기의 기본 같은 것을 그녀에게 배울 수 있었고 일할 때 놓치기 쉬운 것들을 알려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이제 젬이 끝나고 나면 본격적으로 음악에 집중하려고 해요. 졸업이 다가올수록 저는 수업들이 더 무겁게 느껴져요. 미국 대학은 입학보다 졸업이 힘들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졸업하기 전에 음원을 꼭 내고 싶어요. 완벽하게 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좀 가볍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젬이 좀 재미있었나요? 아니면 유익했나요? 어떤 식으로라도 의미가 있었다면 좋겠어요. 제가 담당했던 코너 ‘장르 연구실’은 장르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가 밑바탕이 되되,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 곁들여진 그런 큐레이션이 되길 바랐어요. 그런데 장르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했고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수많은 정보를 검토해야만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명확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이 자리를 빌려 사과드립니다. 제 장르 해석을 너무 맹신하지 마시고 참고하시면서 장르에 대한 본인의 해석을 쌓아 가시길 권합니다. 
저희는 처음에 구독자를 오천 명 예상했답니다. 포부가 크면 좋으니까요 하하. 그런데 마무리할 때쯤 되니 약 200명의 구독자가 있네요. 1/25을 달성했지만 정말 행복해요! 젬을 하는 동안 구독 신청을 받을 때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답니다. 한 명 한 명이 정말 귀했어요. 그동안 여러분의 시간을 젬에게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젬을 통해 구독자분들도, 저희도 조금 더 성장하는 시간이었기를 바라요.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너무 더우니 건강 유의하시고요. 여러분 앞에 즐거운 날이 더 많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 정말로 안녕! 

+ 아래 곡은 같은 학교 친구가 얼마 전에 낸 싱글인데,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아서 마지막으로 추천할게요! 비올 때 한번 들어보세요. ☔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젬의 마지막 호 글이니 너무도 호기롭게 ‘음악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쓰겠다고 했다. 넷플릭스의 <디스 이즈 팝>에서 이와 비슷한 제목의 미국 다큐를 봤고, 유사한 줄기를 잡고 글을 진행하되 한국 사례도 소개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을 질질 끌었다. 주제가 너무 거대했고 그걸 담기에 내 노트북은 작았으며 다큐 대로 하고 싶지 않아졌으며(상당 부분 참고했으나) 올림픽이 시작되었으며 양궁 경기를 봐야 했으며 무엇보다 날이 너무 더웠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물먹은 솜마냥 늘어져 있는 사이 또 원고를 더 미룰 수 없는 때가 어김없이 왔고, 반쯤 멍한 상태로 이 주제를 생각하기도 하고 안 하기로 하는 상태를 이제는 끝내기로 했다.
주위를 환기하려고 손부터 씻는데 문득 친구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생각났다. 그리고 곧 그 대상을 친구에게서 모든 인류로까지 확장하면 어떨까 싶었다. 설문 조사를 하되, 대답은 ‘YES/NO’만 할 수 있다. 질문은 이것. “음악을 듣고 울어 본 적이 있나요?”
아마 아기를 제외한다면(본인은 왜 모든 인류에 들지 않느냐고 그들이 따질 수 없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그들은 노래를 듣든 안 듣든 그냥 원래 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아마 100%의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고, 아마 질문을 듣자마자 어떤 노래, 어떤 감정들을 바로 기억해 낼 것이다. 어떤 장소나 냄새까지 기억할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십몇 회 더 글을 써서 디밀 기회가 있더라면, 그 사적인 일을 공개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들에게는 좀 아쉬운 일일 수도 있겠다. 알고 보면 적잖이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공감 #위로 #치유 #감동
음악을 들으며 공감하고 위로를 받고 치유받는다는 건 더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음악치료’라는 학문까지 있을 정도니까. 우리는 음악에 몸을 실어 춤을 추기도 하고, 또 마음까지 실어버리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을 다 훔친 음악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모르겠지만, 심간을 만지는 건 분명하다. 그것이 아니라면 귀에 꽂혀 상시 대기 중인 이어폰과 눈이 벌게진 채 피시방 키보드에 얹힌 채 콘서트 피케팅에 가담하고 있는 우리 손가락의 존재를 무엇으로 설명하겠는가. 음악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면, 연애할 때 한 다발의 꽃과 함께 김동률 콘서트 티켓을 건네, 당시 여자친구였던 새언니를 감동하게 만들고는, 결혼하고 나서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는 우리 오빠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동질감 #하나 됨 #시련을 이겨 냄
몇 년 전, 너덧 명의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을 종주했다. 산장을 예약하고 각자 싸 갈 음식을 정했다. 산행하면서는 서로 지 짐부터 비우려고 자기 가방에 있는 음식부터 먼저 먹자고 우기기는 했어도, 대부분 우리는 꽤 괜찮은 호흡을 보였다. 전부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산도 무난히 탔다. 그중 제일 잘 타는 친구가 선두에 섰고 우리는 이박 삼일 일정을 씩씩하게도 소화했다. 첫날 고단한 행군을 마치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아픈 다리를 끌고 또 다시 산행을 시작해 마침내 정상에 다다를 때가 가까워지자, 퍽 지쳤다. 다 왔다는 정상이 안 나타났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말을 세 번째 들었으며 숨이 차고 땀이 흘러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때 우리 중 누군가가 노래를 시작했다. 무슨 노래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큰 소리로 노래를 함께 불러 재꼈고, 그 와중에 메기기도 받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자 뭔가 발도 딱딱 맞으면서 신기하게도 힘이 덜 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느낌이 아니라 팩트였다. 신기하게도 정말 물리적으로 힘이 훨씬 덜 들었다. 그렇게 마침내 천왕봉에 올랐다. 한참 정상의 바람을 느끼며 모든 걸 다 이룬 듯 희희낙락했지만 내려가는 길엔 조그만 사건이 생겼다. 선두가 길을 잘못 들어, 한 번 더 정상에 올라가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그 순간,  그의 농담에도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그 잠시 동안을 제외하고는, 하산하는 내내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힘이 풀려 이 다리가 내 다리인지, 네 다리인지 모르는 유체이탈 상태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다리를 끌고 갔지만, 여하튼 우리를 끝을 보았다. 며칠의 산행에 입이 부르텄고, 근육이 뭉쳐 못 걸을 만큼 아팠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함께해서였고 또 노래를 불러서였다.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을 제대로 맛보았달까.
노동요의 마력이 이런 것이겠다 싶다. 매일 뙤약볕에서 고단하게 농사짓고, 물고기를 잡고, 탄광을 파 낸다면, 그 고된 노동을 이겨내기 위해, 쓰러지지 않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기 위해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겠다. 동서양에 모두 ‘노동요’가 있다는 건, 인류가 무언가와 싸워 온 흔적인 것이다. 자연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서였든, 노동력을 착취당해서였든, 인류가 적잖이 힘든 시기를 노래로 견뎌 왔다는 걸 보여 준다.

몇 가지의 농요 중에서 ‘모찌기노래’(공산농요)를 발견해서 기쁘다. 주요 내용은 오매불망 점심참을 기다리는 내용이다. 점심시간을 낙으로 삼는 현대의 직장인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게 꽤나 재미있다. 재치 만점 가사를 듣고 있자니 어쩌다 우리는 이 유머를 잃었나 싶다. “(생략) 짜죽 짜죽 찌는 모는/ 반달같이도 찌 드가네(쪄들어가네)/ 그럭저럭 다 쪄 가도 점심참이 아니 오네/ 찹쌀 닷말 밈쌀(멥쌀) 닷말/ 이니라꼬(이느라고) 늦어가요 /열 두 칸 정제문(정지문)을 넘나든다꼬 늦어가요/ 도리 도리 도리상에 상 채린다꼬 늦어가요/ 빵끗빵끗 우는 아이 젖 준다꼬 늦어가요/ 모야 모야 노랑 모야/ 니 언제 커서 열매 열래/ 한 달 커고 두 다 커서 석 달 만에 열매 여네.”
서양의 노동요를 보면, 흑인 노예들에게는 점심시간이라는 희망도 없었나 보다. 점심이랄 것도 없이 먹는 게 허섭했거나 아니면 그때마저 쉬지 못했던 것일까. 공사장이나 탄광에서 망치를 휘두르며 중노동을 할 때 불렀던 노동요 ‘Hammer song’ 중 하나인 ‘I got a rainbow round my shoulder’에서 밥은 한가한 이야기다. 더위를 식혀 줄 비를 기다리지만 오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그저 일하다가 죽지 않기만을 노래하고 있다. “I got a rainbow…Huh!/ Round my shoulder…Huh!/ Ain’t gonna rain…Huh!(*2)/ This old hammer…Huh!/ Killed John Henry…Huh!/ Won’t kill me, Lord…Huh!/ Won’t kill me”(무지개가…허!/ 내 어깨에…허!/ 비는 안 내리리…허!(*2)/ 존 헨리는 결국 죽었지만…허!/ 난 절대 그렇게 되지 않으리, 신이시여!/ 난 절대 그렇게 죽지 않으리) 가사에 등장하는 존 헨리는 1870년대에 철도 인부로 일했던 흑인인데, 전설적인 초인의 대명사다. 얼마나 힘이 좋았는지 망치질만으로 드릴 기계와 경쟁해서 이길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극심한 노동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 곡에서 ‘어깨 위의 무지개’란 빠른 속도로 망치를 휘둘러, 다른 사람이 보기에 어깨 위에 반원의 자취가 남은 것처럼 보인 것을 무지개로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이 끔찍한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은 Huh!라는 가사에 맞춰 망치를 내리쳤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지배층의 억압과 불합리함을 그냥 참고 당하지만 않았다. 
녹두장군을 응원이라도 하듯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부르는 김소현과 합창단의 배경은 온통 푸르른 숲이다.
#현실 고발 #저항 #약자의 목소리 대변
저항 노래를 이야기하자니 가장 먼저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생각난다. 지배층의 학정에 못 견딘 농민들이 봉기한 이 운동은 전국적으로 번졌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 정신이 동학운동의 근본인데,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헌법 1조에 나오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같은 이야기인 것이 놀랍다. 지배층이 의병장인 전봉준을 체포하자, 아낙과 아이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이 노래가 퍼지기 시작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녹두꽃은 녹두장군이라고 불린 전봉준을 의미하고, 파랑새는 파란 군복을 입던 일본군을 상징하고, 청포장수는 백성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장 유력하다. 정권은 이 노래가 급속도로 퍼지는 것이 까끄름하고 두려웠던지 출처를 알아내려 애썼다고 한다. 비록 은유였지만, 백성들은 지배층에 대한 저항을 노래로 드러냈다. 그게 너무 평화롭고도 강력해서 ‘촛불노래’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1971년 6월에 발표한 김민기 1집에 있는 ‘아침이슬’은 독재에 항거하는 의미로 불렸던 노래다. 사실 김민기는 개인의 이야기를 했던 것뿐이었다. 가난하고 되는 일도 없어 괴로워하던 어느 날, 그는 학교 근처에서 술을 마셨고 통금 시간이 다 되자 필름이 끊긴 채로 어딘가로 어영부영 들어가서 잤는데. 다음날 ‘한낮에 찌는 더위에’ 눈을 떠 보니 그곳이 돈암동 어느 야산 공동묘지였고, 태양이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고. 이것은 1970년대 청년지식인의 허무한 현실 이식에 대한 고백이었고, 대학가 시위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걸 보고 유신정권은 1975년 이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1987년 시민항쟁에서 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불렀는데, 특히 시위하다 최루탄에 맞아서 죽은 고 이한열 군 장례식 때, 그의 운구를 따라 신촌에서 시청까지 이동하던 시민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고.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쓴 문화평론가 강헌은 “청승의 습기가 완벽하게 제거된 또렷하고 당당한 발성”으로, “한치의 타협도 불사하는 정말 단호한 발성”으로, “글자 그대로 불타오르는 혁명적 낭만주의의 목소리”를 가진 양희은이 ‘아침이슬’을 불러서, “굉장히 선동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미국의 음악은 흑인의 탄압과 차별을 배제하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슬프게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939년에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가 부른 ‘Strange Fruit’(이상한 열매)를 빼놓을 수 없다. <gem> 8호 엄쥐의 장르연구실 블루스편에도 소개된 이 곡은 1930년대 인디애나주에서 백인들에게 린치당해 죽은 두 명의 흑인이 포플러나무에 매달려 죽은 것을 보고 한 백인 유대인 교사가 쓴 저항시를 노래로 만든 것이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사진을 보면 포플러나무 아래 모인 백인들이 이 ‘이상한 열매’를 올려다보며 웃고 있으니 그 잔인함에 침잠해질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이 흑인인 빌리 할리데이는 공연할 때마다 마지막 곡으로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 카페 운영이 끝나고 모두가 조용할 때, 단독 조명을 받는 상태에서 절제되고 극적인 방식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고. 가사에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등의 방향 제시가 없기 때문에 시위 현장에서 저항가로 쓰이지는 않지만, 이 노래는 흑인들의 처지에 공감하게 하기 충분하다.
“Southern trees bear strange fruit/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Black bodies swinging in the southern breeze/ Strange fruit hanging from the poplar trees”(미국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려요/ 잎사귀에도 뿌리에도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남부의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가 매달린 채 흔들리고 있어요/ 포플러나무에 매달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중략…“Here is fruit for the crows to pluck/ For the rain to gather, for the wind to suck/ For the sun to rot, for the trees to drop/ Here is a strange and bitter crop.”(여기 까마귀들이 뜯어 먹고/ 비를 맞고 바람을 빨아들이며/ 햇살에 썩어가고 나무에서 떨어질/ 이상하고 슬픈 열매가 여기 있어요)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한 명의 흑인이 경찰의 과한 진압으로 숨진다. 그 때문에 지난해 비슷하게 죽은 ‘조지 플로이드’로 인해  흑인 인권 운동이 다시 일어나면서 이 영화가 또 다시 언급되었다. 영화 OST인 ‘Fight to Power’ 역시 현장에서 의미 있게 울려 펴지곤 한다. 

스파이크 리가 연출한 영화 <똑바로 살아라>의 OST로 실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Fight to Power’(권력에 맞서 싸워라)는 강렬한 메시지와 빠르고 힘찬 힙합 리듬으로 (흑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권력과 맞서라고 말하며, 시위 때마다 울리곤 한다. “And the rhythm rhymes rolling/ Got to give us what we want/ Gotta give us what we need/ Our freedom of speech is freedom or death/ We got to fight the powers that be”(리듬과 라임이 흐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줘야 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줘야 해/ 발언의 자유는 자유 아니면 죽음/ 권력과 맞서 싸워야 해). 당시 사회상을 보여 주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면서도 재미도 있으니, 이 영화와 노래, 모두 추천한다. 참고로. 이 영화에 한국 이민자도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이 곡은, 현장에서 사람을 울린 곡이다. 전 세계 여성들이 이 노래를 길거리에서, 각자의 거실에서 부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 현장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밀크(MILCK)는 ‘Quiet’에서 과거에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던 것을 해석하면서 느낀 사적인 고백을 풀어냈다. 스스로 자유로워지려는 몸부림이었고 자기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쓴 곡이었다는데, 적지 않은 여성들이 ‘미투 시위 현장’(Me Too movement, 성폭행이나 성희롱을 여론의 힘을 결집하여 사회적으로 고발하는 것으로,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Too)를 다는 방식으로 전 세계에서 대중화되었다)에서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같이 울었다.

분홍 모자를 쓴 여성들이 평화로이 행진하며 거리에서 ‘Quiet’를 함께 부르는데 얼굴을 보니 마음이 가벼워 보인다. 어디서도 말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말자며 ‘I can’t keep quiet’ 깃발을 들고 서로 격려하며 화음을 넣어서 함께 노래하는 소리가 듣기 좋다. 
“Put on your face/ Know your place/ Shut up and smile/ Don't spread your legs/ I could do that/ But no one knows me, no one ever will/ If I don't say something, if I just lie still/ Would I be that monster, scare them all away/ If I let them hear what I have to say/ I can't keep quiet, no-oh-oh-oh-oh(*2)/ A one woman riot, no-oh-oh-oh-oh/ I can't keep quiet/ For anyone/ Not anymore.”(가면을 써/ 네 주제를 알아야지/ 닥치고 웃어/ 다리는 오므리고/ 나는 그런 것들을 그대로 따를 수 있겠지/ 하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고 영원히 나를 모를 테지/ 만약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저 가만히 있는다면 말이야/ 모든 이들을 무섭게 하는 그런 괴물이 될까?/ 만약 내가 해야 할 말을 한다면 말이야/ 나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2)/ 한 여성의 외침을 들어/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어/ 모두를 위해서/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아)
 
#It’s up to you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오면, 그건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한 구절 음악이 당신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겠고, 답답한 마음을 토해내는 도구가 될 수도 있겠고, 함께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무엇일 수도 있겠다. 어느 잠폭한 날, 어둑발에 걷는 듯, 때로 사는 게 퍽퍽하고 철저히 혼자 있는 것만 같은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 한 줄기 빛으로 마음을 해낙낙하게 하기를. 그래서 모든 역경을 낙낙히 이기기를. 이 지면에서의 길지 않았던 인연에 감사하며,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뿐이다.

보석같은 피드백 감사했습니다💌

여름 : 아니 잠시만요😭한 글자 한 글자 이렇게 좋아해주시다니 나도 미춰버려~~~ 너무너무 고마워요.😘
행다 :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오열) 매거진 운영하면서 힘들 때마다 이 피드백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구독자님의 일상도 행복하고 알찬 시간들로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
엄쥐 : ㅠㅠㅠㅠ 저는 기절.. ㅇ-<-<  너무 감사합니다..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알찬 시간이었어요! 

여름 : 이렇게 정성 들여 글 남겨 주신 거 정말 대단해요. 좋은 제안 주셨는데 저희가 고민했으나 그걸 기술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어요. 에구구, 아쉬워라. 피드백 주시고 애정 어리게 지켜봐 주셔서 감사해요. 옛날 노래마저 사랑스럽게 봐 주시니 당신은 정말 열려 있는 좋은 분!
행다 : 안녕하세요 젬매거진 기술 담당(?)이었던 행다입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매거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는데 이메일 보안정책상 구현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구독자님의 피드백 덕분에 플레이리스트를 하나로 묶어 링크를 거는 방식을 찾아볼 수 있었답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했어요💕
엄쥐 : 우왕 알차게 준비하려는 노력을 알아봐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이거 읽는데 뭉클했어요..

여름 : 이 좋은 아이디어 덕분에 저희 바로 유튜브 재생 리스트 만든 거 아세요? 다 당신 덕분이얌! 빤짝 빤짝 아이디어 주시면서 우리가 일이 많아질 거까지 생각해 주시다니 배려심 넘치는 거 뭐지. 따스해진 마음, 잊지 않고 간직할게요. 이걸로 이열치열, 여름도 이겨낼 거에요.(뭐라는지;;) 고맙습니다. 꾸벅~. 
행다 : 누군지 알 것 같은 피드백이라 2만배 더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젬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변 분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연락을 주고받은지 오래된 친구들이 선뜻 매거진을 홍보해 주기도 하고, 오랜 친구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젬이 자리잡기까지 여러분의 공이 엄청 컸어요 !!!!! (고백) 감사해요 사랑해요 여러분..💕

엄쥐 :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해주시면 정말 오예입니다..🧡이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그대에게 청탁을 못 해 본 채로 젬을 마감했다며 여름이 아쉬워하고 있어요ㅋㅋ 저희에게 큰 힘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다 : 참깨와솜사탕 저의 최애 밴드인데 소개해 주셔서 정말 놀랐어요 ㅋㅋㅋㅋㅋ TMI지만 저는 '잊어야 한다는 게'를 가장 좋아합니다.. 노래방 애창곡이기도 해요. <안경>을 다룬 원고도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렇게 구체적인 피드백 정말 정말 감동입니다💕 저도 정말 감사해요 구독자님!

여름 : 근육 파열이라니 너무 힘드시겠어요.😢 지금은 너무 조급해 마시고 건강회복하시고 쾌차하시길 정말 응원해요. 마지막에 글 남겨 주시니 정말 감사해요. 인기폭발 장르글! 앞으로 학업 마치고 어떻게든 글을 쓰라고 압박해 볼게요. 
엄쥐 : 아이고 장르글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기뻐요! 젬 장르글을 참고해서 스스로 공부해 나가신다니 아주 베리 굿입니다 ㅎㅎ
행다 : 음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을 위한 원고를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 마음이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특히 장르 코너를 맡은 엄쥐가 막중한 부담감을 가지고 원고를 써왔는데 피드백을 읽고 정말 기분이 좋았을 거 같아요 ㅎㅎ 구독자님 쾌차하시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힙합보이 유광환님!
열린 마음으로 소통해 주시고 선뜻 글도 써 주셔서 감사했어요.
블로그 흥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의 모든 일들에 행복이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은 시기가 있었습니다. 나는 나인데, 나로 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끔찍했어요. 어쨌든 하루는 시작되고, 강의는 들어야 하고, 과제는 해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분들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한없이 미워하게 되는 큰 이유였어요. 어떻게든 현관을 걸어 나갈 만큼은 몸을 일으켜야 했고 그때마다 옥상달빛의 발란스를 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없었다면 지금 원고를 쓰는 제가 있었을지 장담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음악이 한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예시를 들어야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곡을 뽑겠습니다. ‘삶이란 어제와 똑같은 하루에도 오늘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일지도 몰라’라는 한 소절이 저를 살게 했어요.

젬이 끝났다. 여러 마음이 든다. 끝날 때는 좀 긍정적이고 밝은 곡을 선정하는 게 좋을까 하다가, 제목도 그렇고 가사도 맘에 드는 이 곡으로 하기로 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인생이라는 길 위에 우리가 다 나그네같이 느껴진다. 그게 슬픈 건 아닌데 고단함은 좀 느껴지는 것 같고 어찌 됐든 이게 현실이고. 힘들어도 자고 일어나면 다시 걸어가는 게 어찌 보면 시지프스의 반복되는 하루 같다면 그건 너무 암울한가? 그렇지만 좋은 일도 있으니까.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도 괜찮다. 고개 돌려보면 그런 영혼들이 많다. 다들 그렇게 같이 살아간다. 이 노래가 위로가 되길! + 갑자기 드라마가 생각나는데 ‘나의 아저씨'. 이 노래랑 뭔가 통하는 느낌이 있다. 휴지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슬픈 걸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건 예외였다. 이건 슬퍼서 우는 거라기보단.. 따뜻해서 우나? 아무튼 좋았다.
Nightbirde의 ‘It’s OK’
 
“이렇게 저렇게 해 봐”, “그거는 해 봤어?” 이런 말들보다 가만히 들어 주는 게 힘이 될 때가 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게 든든할 때가 있다. “지난번의 실수를 돌아보고 분석해 봐. 잘못될 걸 직면하는 게 중요해.” 다 안다. 필요한 건 단지 “괜찮아”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Nightbirde의 사연을 들으니 그 흔한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겨우 서른 살에 암이 3기까지 진행되고, 폐와 척수와 간에까지 암이 전이되었다는데, 그리고 남편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는데, 그의 목소리는 사랑스러우면서 맑고, 단단한 생기가 넘친다. 새물내가 퍼지는 듯 신선하기만 하다. 깨끗한 옷을 입고 새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이 용기가 차오른다. ‘It’s OK’, ‘It’s OK’, ‘It’s OK’. 세 번 반복되는 ‘OK’를 듣고 있자니, 정말 만사 OK가 된다. 생존 확률이 2%라지만, 그건 0%가 아니므로 ‘Something’이라는 Nightbirde. 문득 내 삶에 무엇이 ‘안 오케’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 여러분에게, 그리고 새출발하는 <gem> 멤버에게, 또 나에게 외친다. 지금 삶의 자리가 어떠하든, ‘It’s OK!’...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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