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오복이를 입양했을 때, 이름을 뭘로 지을까 한참 관찰했다. 오복이는 유난히 거울 앞에 있기를 좋아했다. 쉘터에서는 커다란 거울을 볼 일이 없었을 테니, 전신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더라. 그 모습이 웃겨서, 이름을 ‘에고(ego)’라고 결정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고양이, ‘에고’라는 이름이 그럴듯했다. 그렇게 몇일 동안 오복이의 이름은 ‘에고’였다. 그런데 ‘에고야!’하고 부를수록, 오복이의 행동이 자기중심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고양이들의 흔한 자태였음에도, 내가 지은 이름탓에 오복이가 유난스러워 보이는 게 아닌가. 결국, ‘오복’이라는 이름으로 선회했다. 바꾸길 참 잘했다.




지난 봄. 일을 병행하다보니, 대학원 수업에 결석하는 일이 많았다. 출판사 원고도 쓰고 카피도 쓰고 시나리오도 쓰느라, 밤을 많이 샜다. 나는 뭘하는 놈인가. 늦게 대학원에 갔는데, 뭐하나 집중하지 못하네. 자아 비판까지 하느라 에너지를 끌어 쓰던 어느날, 지도 감독님과 면담이 잡혔다. 감독님이 뭐가 제일 걱정인가? 물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하려니, 조급한 마음이 듭니다. 일도 같이 하고 있고요.’ 걱정을 쏟아냈다. 감독님의 답변은 하나였다.



- 자의식을 버려야해.


그가 말하는 자의식이란 무엇인가. 나이, 직업, 성별, 바쁜 일상과 그에 대한 투정과 걱정, 스스로를 옥죄는 목표와 기준. 나를 둘러싼 ‘추상적인’ 모든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물론이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조차 벗어나야 한다는 걸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만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며칠전 전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동료는 내게 ‘목표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목표를 생각하는 순간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답했다.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모든 정의를 멀리하고, 그냥 행동하는 하루 하루가 더 달콤한 요즘이다.



오복이의 이름이 계속 ‘에고’였다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하나가 된 마음으로 동거할 수 있었을까. 친해지지 못했을 것 같다.










  
장마가 시작됐습니다. 저는 비에 젖은 거리를 좋아합니다. 색들이 더 또렷해거든요. 아스팔트 색마저 묵직한 배경색처럼 느껴집니다. 님 장마철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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