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맞는 말씀입니다.
수 우리 동기 중에서 누구는 팀 2개의 팀장을 하고 있기도 하고 누구는 사실상 편집장으로 일하기도 하잖아. 동기들 각자 처한 상황이 너무 다른데, 그래도 우리는 막내라는 포지션은 같지. 하지만 일하고 있는 회사의 규모도, 만드는 책의 분야도 다르니까 이야기를 한번 해 보자고. 올해 5년 차가 됐는데 기분이 어때? 나는... 무서워.
윤 이래도 되나 싶어. 5년 차쯤 되면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나는 사실 5년 차쯤 되면 베스트셀러 척척 낼 줄 알았다.
수 진짜 그랬어? 너무 희망찼다.
윤 행복회로 돌리면서 시작했지. 근데 불안했어. 출판학교 다니면서도 자주 했던 이야기지만 내가 편집자에 잘 어울리는 사람인가, 하는 고민이 늘 있었거든. 나는 한자리에 엉덩이 무겁게 진득하니 앉아서 원고를 만지는 편집자라기보다 재미있는 기획이나 구성을 생각하고 이 사람 궁금하다, 만나 보고 싶다 생각하면서 기획 아이디어를 공격적으로 내는 편집자라고 생각해. 그래서 지금도 나는 어디 가서 편집자보다 기획자나 에디터라고 나를 소개하고.
수 역시 나랑은 다르네. 나는 교정 보는 게 제일 마음 편한데.
윤 빨간 펜 들고서 한 문장 한 문장 엄청 고민하는 그런 편집자는 확실히 아니야.
수 우리 과장님이 얼마 전에 이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2년 전에 비해 내가 확실히 성장했다고 느끼신대. 왜 그렇냐고 물어보니까, 전에는 뭘 하자고 하면 내 표정이 “헉! 제가요? 어떻,,어떻게 해요? 그,, 그래도 돼요?” 하는 표정이었다면 지금은 “아... 하면 하죠.”(심드렁) 이렇대. 그게 얼굴에 보인대. 근데 그게 내가 실제로 하고 있는 생각이었는데 얼굴에 티가 난다는 게 신기했어. 전에는 ‘헉 그게 되나?’ 싶었는데 이런저런 거 해 보고 나니까 ‘하자고 하시는 것들이 어려울 수는 있지만 안 되지는 않는다, 못할 일은 아니다’라는 걸 알아서. 5년 차를 맞이한 나의 상태는 딱 이 정도인 것 같은데, 윤은 어때?
윤 우리는 지금 여전히 막내지만 어디 가면 막내가 아닌 연차가 됐잖아. 이젠 성과를 조금 더 내야 할 것만 같은 개인적인 부담이 있어. 1인분 이상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조바심도 있고. 그래도 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는 걸 실감해. 저자든 회사든 이전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설득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 자연스럽겠다, 매끄럽겠다 싶은 생각도 자주 들어. 1, 2년 차 땐 너무 막연했거든. 근데 ‘각이 나오는 순간’이 점점 생기더라. ‘엇? 이거 이렇게 해 보면 괜찮겠는데?’ 이런 게 느껴질 때, 그 길이 보일 때 나는 이 일이 너무 재미있는데, 새로운 작업에서 그 길이 보이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서 더 빨라졌다는 걸 느껴. 더불어 성장했다고도 느끼고.
수 맞아, 비슷한 맥락에서 나도 점점 포기가 빨라지고, 자수도 빨라져. 상황 판단에 속도가 붙고.
윤 내가 출판학교 다니면서 들은 얘기 중에 꽂힌 이야기가 있어. 나는 성격상 다 잘하고 싶고 실수하기 싫고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가 싫어. 물론 누가 그런 거 좋아하겠냐만 나는 완벽해야 해, 잘 해야 해 하는 강박이 되게 심한 편이었거든. 근데 어느 출판사 대표님 강연에서 그런 얘기를 들은 거야. 신입 편집자에게는 각 연차마다 해야 하는 실수가 있고 그 실수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1년 차에 해야 하는 실수는 그때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고 3년 차에 해야 하는 실수는 3년 차니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 1년 차가 할 법한 실수를 8년 차 과장이 한다? 그럼 위험한 거지. 그 연차까지 업무에 구멍이 있었는데 그거 모르고 지나갔다는 거니까. 그 얘기를 들으니까 마음이 좀 편해지더라고. 그 이후로 실수를 하면 “그래, 이번에 실수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하게 됐어.
수 그럼 5년 차에 해야 하는 실수는 뭐지? 싶은데, 또.
윤 그렇지. 기본적인 편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들은 아닌 것 같아. 그런 실수들은 이미 해 봤는데...
수 예를 들면?
윤 한쪽 면주의 페이지 번호가 날아간 적도 있고, 대통령을 대롱령으로도 쓴 거 못 잡아서 독자 전화 받은 적도 있고. 문장이 중복된 경우도 있고 중간에 뚝 끊긴 적도 있어. “오늘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문장으로 그 꼭지가 끝나는데 “오늘도 열심히” 이렇게 끝난 거야.
수 어어, 나 기억나. 우리 돈까스 가게 앞에 줄 서 있는데 전자책 제작 담당자한테서 연락받고 그 줄에 서서 노트북 꺼내서 확인하고.
윤 나 그때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머리를 막 굴렸는데 독자 항의가 하나도 안 왔다? 아무도 전화를 안 했어. 그 책 초판이 1만 부였고, 1만 명은 내가 저지른 실수를 봤을 텐데... 아무튼 그런 실수들이 있었지. 5년 차에 해야 하는 실수가 있다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회사에서 다 하고 나가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