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 작가는 브런치 대상 동기다. 동기라 하는 게 웃기지만 달리 붙일 말도 없다. 우리는 서로의 책을 구매하고 읽었지만 만나지는 못했다. 예은 작가는 일본에 산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요코하마에 살고 있다. 적어도, 우리는 인친(인스타그램 친구)이었다. 보아는 20년 전 데뷔곡에서 ‘가상 현실 속에 의미없는 상자 속에 갇혀서 살아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치만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자마자, 속깊은 이야기를 잘만 나눈 것을 보면, 가상현실에서의 관계도 충분히 유의미하지 않을까.
예은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 그치만 가상 현실 속 그녀의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어른스러운 사람이었다. 티셔츠보다는 셔츠가 어울리는 어른이었다. 약 1년 동안 상상만 했던 그녀를 도쿄에서 4D로 마주했다. 낮고 반듯한 목소리와 반듯한 표정 반듯한 검은 머리. 예의와 상냥한 웃음이 온 몸에 베어있는 예은작가가 인스타그램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그녀는 나를 생선 구이 집으로 데려갔다.
예은 작가는 어릴 때부터,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독일에서도, 홍콩에서도, 싱가폴에서도. 그러다 일본에서 대학원을 다니게 됐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서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안한 것은 아니었다. 1년 좀 넘게 ‘대학교 신입 공채’로 대기업을 경험한 적도 있다고 했다.
- 저는 비주류로 사는게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갑자기 ‘주류’로 살게 되니까, 너무 버겁더라고요. ‘주류’로 살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여기서 말하는 ‘주류’는 대단한 건 아니더라. ‘한국인’이 주류로 살아가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 자체. 그게 그녀가 말하는 ‘주류’였다. 항상 제3자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그녀는, 꼭 완벽에 가까운 삶에 도달하지 못해도 평가받을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속 평가받고 비교하게 되는 분위기를 ‘한국인’으로서 느낄 수 밖에 없었다는 거다.
- 저도 그걸 사회인이 되고서 느꼈어요. 퇴사하기 까지 그런 부분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회사 동료들은 그런 삶이 굉장히 익숙해보이고, 잘 해나가는 것 같은데. 저는 계속 한발 멀리 떨어져 있고 싶더라고요.
- 맞아요. 저도 결국에는 일본으로 왔고, 다시 ‘비주류’로 살아가게되니 마음이 너무 편해요.
그녀의 반듯함은 술과 함께 귀여움으로 바뀌어갔다. 우리는 긴자에 있는 barcacoi라는 술집에 갔다. 일요일 밤 10시였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는 작은 바. 그녀는 나를 위해 월요일에 휴가를 냈다. 우리는 말이 꽤 통했다. 나는 안자이미즈마루와 무라카미하루키에 대해 이야기했다.
- 무라카미하루키와 안자이미즈마루(일러스트레이터)는 30세에 처음 만났대요. 그런데 평생 친구가 되었대요.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20대였어요. 그 때부터 30대가 조금은 기대되었어요. 친구라는 게 어릴 때 친구만 평생간다고 생각했는데, 계속 새롭게 생기고 사라지는 거구나. 30대에도 평생 갈 인연들이 새롭게 나타나는 거구나.
그것은 예은 작가에 대한 고백같은 말이었다. 나의 안자이미즈마루가 되어다오, 까지는 절대 아니었으나, 당신도 내가 평생에 걸쳐 맞이하는 좋은 인연같구려.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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