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이 열렸습니다. 올해는 특히 많은 분들이 방문하셔서 심지어 입장티켓 사전예약분만으로도 매진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연구자님들 가운데서도 다녀오신 분들이 많이 계실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곤 하지만 여전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책의 축제에 모이게 되는 것은, 무언가 우리가 사랑할 만한 것이 여전히 책(혹은 그 언저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저 역시 그 언저리를 돌며 궁금해하고, 때론 즐거워 하며 책을 읽고 편지를 써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스피아를 쓰게된지도 어언 만 4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만, 책 사이에 끼어 오늘을 생각한다는 느슨한 컨셉이 생각 이상으로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재미났기에 지금까지 지속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초에 보내드렸던 레터의 말미에서도 말씀드렸듯, 이번 회차는 그간 많은 연구자님들께서 요청을 주셨던 ‘인스피아 쓰는 법 혹은 인스피아를 쓰기 위해 읽는 법’과 관련된 내용을 간단하게 엮어 정리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정말로 말 그대로 제가 인스피아를 ‘쓰는 법’에 대한 글을 위주로 정리를 해보았는데요. 

이것저것 써놓고 곰곰 생각을 해보니, 인스피아 쓰는 법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인스피아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 소용이 없을 것 같아(마치 발이 여덟개인 문어가 바지를 입는 법을 자세하게 말하는 꼴 같아) - 약간은 여러 분들께 팁이 될만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저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 습관이 많이 들어가있으므로, 적당히 가려서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꼭 ‘팁’이 아니더라도, 평소 인스피아를 대체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읽고 쓰고 있는지 궁금하셨던 분들은 편하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고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크게 세 가지 키워드 (1.해찰과 엉망 / 2.‘한 끗 다른 한줄’과 챗GPT / 3.도구와 뭉치)로 정리해보았고요. 

그리고 3번째 키워드와 연결되는 말미에는, 아무래도 인스피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책 중에서도 특이하게(?) 논픽션을 90% 정도 이상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 - 간단하게, 내게 낯선 분야의 논픽션 도서를 읽는 법 등에 대해 그간 제가 몸소 체험하고 또 생각해왔던 점들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의 키워드 중, 첫번째인 ‘해찰과 엉망’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은 이란을 폭격했습니다. 21일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의 핵 시설을 직접 타격하면서(링크) 한 순간에 '세계제3차대전'의 가능성이 점쳐지기까지 하며 사람들을 참담하고 깜짝놀라게 했습니다. 24일엔 가까스로 휴전이 결정됐으나(링크) 일부 지역에서 추가 타격을 개시했고요. 당일 트럼프는 기자들과 만나 “이스라엘이 마음에 안 든다”며 “휴전 중엔 이란에 폭탄 투하 중단하라”고 격분했습니다. 자신의 SNS에 이런 내용을 올리기도 했죠.(링크) 일련의 일들에서 인상적인 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결정이 연신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고 있고, 전세계 사람들이 그의 입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원래 시스템이나 예측가능한 사건들이 쌓여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들로 튀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 정세는 분명히 지나치게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핵심 원인에는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체제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검증되지 않고 영향력있는 한 사람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대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디어 환경도 그렇습니다. 그 해결은 단지 문제적 개인을 끌어내리고 다른 '초인'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이기도 한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만들고 유지해갈 것이냐에 달려있을 것입니다. 

최근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2025가 발간되었습니다(링크) (원문).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미국에서 소셜 미디어와 영상 네트워크(유튜브, 틱톡 등)를 통해 뉴스에 접근하는 비율이 54%로 급격히 증가해 TV(50%)와 뉴스 웹사이트/앱(48%)을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유튜브 뉴스 이용률은 50%로 인도, 태국, 케냐에 이어 4위입니다. 점차 읽기의 경험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번달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은 열기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예약 판매만으로도 티켓이 전부 매진될 지경이었습니다.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종이책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독서 모임에 참여합니다. 

과연 읽기의 본질도 바뀌고 있는 걸까요? 만약 본질이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괄호 안에는 온라인 서점으로 연결되는 링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책의 부제는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고요. 2023년말부터 2024년초까지 30여명의 바둑기사, 관계자 등을 심층 인터뷰해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후 AI가 현재의 바둑계를 어떻게 근본부터 바꾸어놓았는지를 흥미롭게 취재한 르포입니다. 사실 오늘 레터의 본문을 다 쓰고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챕터2에서 '나는 챗GPT를 글쓰기에 활용하지 않아!'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스스로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이 생겨났습니다. 단지 지금은 '(내 기준에서) 성능이 충분하지 않을 뿐' 어쩌면 곧 나도 어떤 방식으로든 쓰게되지 않을까? 하고요... 이 책의 내용에 빗대어 이야기해보자면, 저는 글쓰기를 승부나 경쟁이라기보다는 예술(*이 책에서는 바둑을 예술로 볼 것이냐 스포츠로 볼 것이냐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로 생각하고 있다는 변명 정도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여튼, 사족이 길었습니다만 요새 쏟아져나오는 AI 관련 서적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이고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휴가 때 읽었던 책 중 한권입니다. 실화 기반의 회고록이며, 미국 연쇄살인범의 딸 에이프릴 발라시오가 자신의 과거 기억을 더듬어 1980년대 '미제사건'으로 범인이 드러나지 않았던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고, 자신이 직접 경찰에 제보하는 한편 먼 훗날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라는 인물에 대한 기억을 꺼냅니다. 저자가 아주 어린 시절 있었던 '사건'인데다가, 그가 직접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을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범죄 그 자체에 대한 서술보다는, 어린아이로서 보았던 - 자신의 아버지라는 잔혹하며 뻔뻔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입체적인 인물에 대한 일상적 서술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지난 회차 레터(‘외국인 혐오는 왜 ‘먹히는 전략’일까? : 극우파 전성시대‘)에 대한 감상 및 피드백 노션 페이지는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