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사실 저는 입사하기 전, 회사의 규모가 작아서 업무의 내용이나 환경이 산만하면 어떡하지, 걱정했거든요. 근데 막상 한 달 반쯤 다녀 보니, 회사가 굉장히 효율적이면서도 안정적으로 굴러 간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적은 인원이지만, 알차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들만 하고 필요한 것들만 있다, 그런 느낌이라 대표님의 안목이 좋다 생각하고 있죠. 하지만 여러분이 입사했을 과거엔 좀 달랐을 거 같기도 해요. 입사 초기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유유에 다닌다 했을 때 주변 반응은 또 어땠나요?
수 일단 저는 주변에 아무래도 출판계 친구들이 많다 보니, 유유의 출간 목록을 보며 도저히 1인이 만들 수 있는 양이 아니라고 당연히 생각하더라고요. 입사 전 저도 그랬고요. 그럼에도 콘셉트가 뚜렷하고 왜인지 젊다는 느낌이 강해서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하나였어요. 물론 입사할 때쯤 제가 이전에 만들던 책과 유유의 책이 무지 달라서 걱정이 많았고, 와서도 얼마간은 긴장하고 있었던 게 사실이에요. 삐그덕거리던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지금은 ‘잘'은 모르겠지만 ‘하면 하는’ 사람은 된 것 같아요.
은 저의 경우엔 주변에 책을 안 읽는 친구들이 훨씬 많은데, 유유는 들어 봤다는 친구들이 꽤 있어서 놀란 적이 있어요. “아 나 여기 책 본 적 있어!”라든가, “거긴 좋은 책을 내는 곳이더라”라든가요. 그래서 유유가 색깔이 정말 확실한 곳이구나 생각했죠 이곳은 빨리 트렌드를 좇아 기획해서 책을 내는 ‘요즘’ 출판사이고, 말랑말랑하고 재미난 인문학 책을 만드는 곳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사실 전 유유에 어울리는 편집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원래 해외 문학이나 페미니즘, 철학 등의 심각한(?) 책을 더 좋아하던 사람이라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즐겁게 일하고 있답니다. 유유가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탄탄한 라인업이 색깔이 뚜렷하잖아요. 브랜드 이미지가 확고하다는 게 엄청난 장점이더라고요. 일단 작가 선생님들이 “유유책 너무 좋아해요!”라며 출판사에 우호적인 분들이 많고요. 그래서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이 유유와 어울리지 않은 게 아니라 내 색깔을 유유의 색깔과 혼합해서 기획하면 된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유유는 독자의 '공부'를 지향하는 출판사니까, 제가 만들고 싶은 책도 이 '공부'에 초점을 맞춰 기획하면 좀 더 타깃을 명확히 잡을 수 있고 가닥이 더 잘 잡히는 것 같아요.
영 맞아요. 기획을 하면서 느껴요. 너무 넓은 범위 안에서 기획을 고민하기보다는 ‘유유가 가지고 있는 목표에 내 색깔을 합친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오히려 더 또렷해지더라고요.
민 유유라는 출판사의 색은 강하지만, 결국 그동안 나온 책들이 각 편집자의 색이 더해져 출간된 거잖아요. 지금까지 200종이 넘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중에 여러분이 만든 책은 어떤 걸까,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한데요. 각자 이곳에서 대표로 소개하고 싶은, 책임 편집한 책 또는 기획한 책은 어떤 거예요?
수 대표 책임 도서는 판매량이나 애정보다는 몸과 마음의 품을 많이 들인 책들을 꼽고 싶어요, 처음으로 기획부터 출간까지 모두 직접 한 『영감의 말들』,지금까지 만든 책 중 가장 두꺼운 벽돌책 『선물』, 그리고 본문 외에 새로운 것들을 많이 시도해 본 세계 문학 공부 시리즈 『영원한 소년의 정신』이 떠올라요. 이래저래 품을 많이 들였고, 그만큼 많이 배웠다 싶은 책들이에요.
은 한 권만 꼽으라 하면 최근에 출간된 『피아노 시작하는 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피아노 치는 편집사(편집자이자 고양이집사)’라고 소개하거든요. 피아노를 치는 것도 좋아하고, 오랫동안 피아노 음악 듣는 게 제 인생의 낙이었어요. 편집자가 처음 됐을 때부터 피아노와 관련된 책을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유유에서 기획해서 출간하게 되어 기뻐요. 피아노 책이 시중에 꾸준히 많긴 한데, 피아노를 치고 싶은데 늦었을까 봐 망설이는 성인 분들에게 시작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은 별로 없더라고요. 제가 이곳에서 출간한 첫 번째 기획책이기도 해서 더 뜻깊은 것 같아요.
영 저는 편집자라는 직업을 가진 후 꼭 만들고 싶은 책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를 유유에서 출간할 수 있었어요.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인데요, 유유에 왔으니 사람들이 무겁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말랑말랑해 보이는 작은 책에 꼭 한번 담아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만들면 어떤 반응이 올까를 엄청 기대하면서도 걱정하면서 기획했죠. 작년 한 해 동안 ‘그간 장애 문제를 다룬 책을 읽어 본 적 없다’던 독자님들이 많이 읽어 주셨단 느낌을 받았고, 그런만큼 저에게 매우 의미 있는 책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꼽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바로 편집자 공부책 시리즈예요. 이건 제가 만들었다기보다 유유 구성원이 다같이 만들었기에 더 뜻깊고, 이 시리즈를 만들면서는 ‘이 책들이 나를 돕는다’는 느낌을 많아 받아서 좋았어요. 여덟 명의 편집자들이 편집이란 일에 대해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지만, 그중 틀렸다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어요. 모두 책 잘 만드는 베테랑 편집자이고, 자기만의 길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었어요. 그동안 저는 책을 만들면서도 ‘정답’을 모르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이 시리즈를 만들면서 그 두려움에서 해방됐어요.
민 역시 그동안 제가 좋아하던 유유의 책들이 여러분 손으로 태어난 게 맞네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유유 입사 전에 편견이 있었어요. 대표님과 출판사의 색이 너무 짙어서 ‘편집자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을 거다’ 이런 오해를 좀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회사의 색에 편집자 각자의 취향과 개성이 더해져 좋은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생각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만들 책이 더 기대되는 소개였어요.
그렇다면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기획의 방향이 있나요? 아니면 어떤 편집자가 되고 싶다? 이런 류의 본인이 추구하는 기획이나 좋아하는 편집 과정, 편집의 방향 등 편집 이야기를 좀 더 이야기해 주세요.
수 어떤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건 거창해서 말하기 어려운데요, 지금 당장 저는 제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티가 많이 안 나는 편집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찌 들으실지 모르겠지만 '이 사람은 이런 책을 잘 만드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을 만치 경험이 쌓인 것 같지 않아서요. 다만 읽을 때 적어도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 매끄러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일단 지금은 그렇습니다!
은 저는 편집 과정 중에서는 제일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기획이 제일 재미있어요. 내가 기획한 책을 편집할 때는 솔직히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되고, 마음가짐이 달라지거든요. 이 질문을 듣고 지금껏 했던 기획을 돌아봤는데, ‘언어’에 집중된 기획을 많이 했더라고요. 내가 외국어와 우리말에 관심이 많고, 다행히 이 관심사가 유유의 관심사와도 맞아 떨어지는구나 느껴요. 서브컬처 단어 사전, 영어 어감 사전, 감정사전, 순우리말 사전 등의 기획안을 썼어요. (지금 계약 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있고 잠시 멈춰 있는 기획도 있긴 하지만요.) 앞으로도 언어, 외국어, 우리말과 관련된 책을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저는 요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갇혀 있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제 저는 출판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주로 편집자들과 있으면 편하고 말도 잘 통하는데, 계속 그런 관계만 만들어 나가면 안 될 거 같단 느낌이 들어요. 독자가 줄어든다는 데, 기획할 때는 또 다른 독자를 상상하라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책 만드는 사람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내내 그런 이야기만 하면 나에게, 그리고 책 만드는 데도 도움이 안 되는 거 같다는 생각을 좀 하게 돼요. 동어반복하게 될까 봐 두려운 거죠. 유유의 핵심 타깃이 헤비리더라고 해도, 마냥 그렇게만 생각하면 안 될 거 같아요. 독자가 어디에나 있다면 헤비리더도 어디에나 있으니까 나 역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다른 것을 보고 싶다,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더 다양한 사람을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저 역시 기획을 참 좋아하는데, 단순하게 책 쓸 사람을 발견하면 진짜 기쁘거든요.이 사람의 이야기, 지식, 경험은 책이 되면 정말 좋을 거야- 이런 것을 발견하고 동시에 이 책을 읽을 독자를 떠올릴 수 있다 생각하면, 막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 생기고 기뻐요.
민 아니, 다들 어쩜 이렇게 성실하고 일 좋아하는 천사같은 분들이.. 이런 분들과 제가 일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좀 감동인데요.😭 이거 이거 대표님이 꼭 알아주셔야 해요. (잘 읽고 계시죠?) 그럼 이걸 기회 삼아 회사에 바라는 점이나 대표님께 하고 싶은 말 하나씩 이야기해 봅시다.
수 바라는 것 딱히 없고 저만 잘하면 된다고.. 다른 게 있다면 그냥.. 저를 좀 더 견뎌 주세요! (뻔뻔)
은, 영 워크숍 가요! 좋은 풍경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민 오, 워크숍.. 좋아요! 꼭 가고 싶어요. 사실 우리의 올해 목표가 회식도 많이 하고, 동료들과의 돈독함을 많이 다져 보자? 이런 것도 있잖아요. 다들 너무 바빠서 자주는 못하겠지만, 한 달에 한 번은 해보자고요.
영 좋습니다!
민 그렇다면 이번엔 좀 가벼운 질문을 해볼게요. 사실 보름유유를 통해 이 소식을 알리고 싶기도 했거든요. 바로, 🎊사옥 입주🎊! 최근 2년간 지냈던 서교동 사무실을 떠나 파주 출판단지 내 사옥으로 입주하게 되었어요. 소감이 어떠세요?
은 음.. 자연의 풍경이 아름답다? 솔직히 서울보다 좋은 점은 별로 없는데요. 정신승리하기로 했어요. 마주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치 근교로 여행 온 기분이 들거든요. 사옥의 인테리어가 펜션같이 참 예쁘고요. 통창 로망이 있었는데 통창이라 좋아요. 바깥에 논과 밭, 고양이와 거위가 보이는 걸 보면 내가 파주에 있구나, 여실히 느낄 수 있어요! ㅋㅋ
수 새 건물이라 일단 기분이 좋고요. 그리고 저도 덩달아 파주로 독립을 했는데 이 도시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지금은).
영 적응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죠. 사실 저는 예전에 파주에서 일하는 걸 좋아했어요. 동료들도 근거리에 있고, 재미있고, 안정감이 있었거든요. 근데 서교동으로 출근해 보니 거기가 더 좋더라고요.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ㅎㅎ 그래서 아직은, 다시 돌아온 이곳, 파주가 좋은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곧 다시 좋아하게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동료라는 존재는 굉장히 중요한데요. 곧 아시게 될 거 같아 말하지만, 이 사옥의 지층에는 사적인서점이 입주하고 또 그 위층에는 출판사 위고가 입주하잖아요. 이제 한 건물을 같이 쓸 동료들이 늘어난다 생각하니 기뻐요. 정작 같이 일하는 건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고 매일 인사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