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피를 잡지 못하는 편집자의 사적인 문장 수집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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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 여는 문장;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하게 되는
아름다운 경험들이 분명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줄 거라 믿어.

-  <소소한 모험을 계속하자>(김윤주, 박세진 저, 문학동네)
머쓱타드를 견디기
요즘 저는 필라테스를 배웁니다. 무려 PT! 
처음에 그룹과 개인 수업이 같이 있는 스타터를 신청했는데, 한번 수업을 하고 나서 강사님도 저도 '도저히 그룹 수업에 들어갈 수 없는 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PT로 전향했습니다. 

필라테스 수업을 하며 제가 느끼는 바는, 제가 '신체 리터러시'가 없다는 점입니다. 리터러시란 문해력, 어떤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고 읽어내는 능력을 말하죠. 저는 '몸을 보고 몸을 읽어내는 능력'이 매우 낮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몸의 움직임을 정확히 캐치하고 따라하는 능력, 지시를 빠르고 올바르게 알아듣고 그에 맞게 몸을 움직이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공놀이는 제외! 제 생각에 저는 공놀이는 꽤나 잘 합니다) 그래서 "손을 안쪽으로 쫙 펴고 마주 보세요"라고 하면 눈으로 봐도 뭔지 몰라서 뚝딱거립니다. 부끄럽지는 않은데 머쓱한 느낌? 강사님이 보여주는 아주 간단한 동작, 분명 망막에 맺힌 상으로는 정말 하나도 어렵지 않은 동작인데, 보고도 듣고도 몸을 읽어내지 못해 머뭇거리며 아주 어색하고 머쓱한 찰나가 흐릅니다. 그야말로 '머쓱타드'. 

그렇지만 운동은 제가 머쓱하든 말든 진행됩니다. 저는 어떻게든 그 다음 동작에 당도해야만 하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반 강제로 머쓱타드를 견디게 하는 힘. 몸을 계속해서 다음, 그 다음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 머쓱하든 말든 밖으로 뻗어가게 하는 훈련이 회사에서의 저에게도 버팀목이 되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정신개조(?)를 해주거나 큰 교훈을 주는 건 아니지만요. 그냥 어제 바로바로 일단 몸을 움직였듯이, 회사에서도 망설이고 뚝딱거리는 찰나에 어떻게든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필라테스 마치고 아드레날린 폭발한 상태에서 바로 적는 글이긴 하지만요) 

어쩌면 성장이라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실로 모든 일에 능숙해진다기보다는, 눈으로도 귀로도 도저히 모르겠는 지시가 떨어져도 일단 어떻게든 동작할 수 있는, 자신의 '머쓱함'을 견디는 힘이 늘어나는 게 아닐지요. 

일해라 편집자!
⁽ 내게 필요한 건 영감만이 아니야 ⁾

지난 한 달 동안, '자기만의 방'을 만드신 김보희 편집자님의 기획수업을 들었어요. 그때 편집자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만의 서랍을 만들어두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뭐에 관심이 있는지, 키워드를 정리하세요.
서랍이 없으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접해도 그냥 흘려보내게 됩니다.
서랍이 있으면 정보를 접했을 때, 그 서랍을 열어보고, 정보를 제대로 수집할 수 있게 돼죠."  

이 말씀을 듣고 아차 싶었어요. 뉴스레터와 각종 칼럼, 영화와 유튜브 영상... 저는 일단 정보를 이것저것 많이 접하고 모으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기획으로 쉽게 발전되지는 못했어요. 기획을 조금 더 많이, 잘해보고 싶기에 이리저리 찾아다녔지만 사냥을 하러 나가는 거리만 멀어질 뿐 실제로 손에 들고 돌아오는 건 거의 없어요. 
가장 큰 문제는, 제 관심사가 너무 넓다는 거였어요. 다시 말할게요, 제 관심사가 원래 넓은 게 아니라, 나는 기획자고 편집자라는 생각에 취향의 넓음을 스스로 만들어냈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래 좋아하는 것'을 밀어두고 그 자리를 다른 것들,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들로만 채운 거 같아요. 내 취향이, 내 좋음이 옳은 것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주목했다간 팀과 회사에 필요한 책, 내가 생각하는 '잘 팔릴 수 있는 책, 도움이 되는 책'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다시 말하면 저는 팀에 필요한 책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큰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제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네요). 
그런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길을 잃기 쉬워요. 기본적으로 내가 관심이 있는 곳이 아니면, 취향과 영감 그리고 소재 찾기가 시작되기가 어렵잖아요. 정보를 접하더라도 내 안에서 기획의 연쇄가 일어날 수 있어야 하는데, 불안하니 무작정 정보를 모으기만 했어요. 양으로 승부한달까요.
이제는 저만의 서랍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만들고 싶은 책의 중심에 여전히 저의 취향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끌리는 부분이 있을 거거든요. 그 키워드를 찾고 저만의 서랍을 한번 만들어봐야겠어요. 11월의 어느 레터에서, 이 서랍 만들기 후기를 들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레터는 여기서 마칠게요! 
가을에 어울리는 시
놀라운 소식, 벌써 입동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다음 주 레터는 '계절정산'으로 돌아올 예정이에요. 놀랍죠? 벌써 계절정산 시간이라니!
다음 레터에서 가을에 어울리는 시를 함께 소개하고 싶은데,
제가 시의 세계를 잘 모르는지라... 여러분이 소개하고 싶은,
가을에 어울리는 시 한 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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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lssuneun_ell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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