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우리는 서로를 읽어낼 수 있을까
"DJ 징징의 인사말"
날씨가 하루 건너 하루꼴로 더위와 추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모두 이 극악의 환절기를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
🍃가독이라는 자만과 오독이라는 폭력

문득 '읽다'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활자로 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꽤 좋아하는 편인 저는 '읽는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 '읽다'는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의미에 대해 헤아리는 것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수를 읽는다"거나 "분위기를 읽는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기에 '읽다'라는 말은 사람과도 곧잘 붙어 쓰입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표정을 읽고, 말에 담긴 의도를 읽어낸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을 통째로 읽어낸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요?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 그저 태어났기에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를, 그것도 '나'와 마찬가지로 저마다의 내면을 지닌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읽어낸다는 일이 말이죠.

물론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존재합니다.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행동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고, 문학이나 영화와 같은 작품에는 창작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해석할 수 있는 무언가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단서들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헤아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읽어낸 것이 '누군가'를 온전히 읽어냈다는 의미는 아닐테지요.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해석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우린 꽤 자주 서로를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편화된 조각조각을 통해 전부를 헤아릴 수 있다고 믿고, 또 그렇게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고 믿어버리곤 하죠. 오늘은 그런 '읽어냄'과 '읽음에 대한 믿음'이 마치 하나의 폭력처럼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
⚠️스포주의⚠️ <가능한 사랑>
🔎우리는 서로를 읽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오늘 이 주제를 위해 가져온 영화는 바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입니다. 저는 영화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기 전에 미리 극장을 다녀왔는데요! 여러분께 이 영화를 소개하기까지 기다리는 그 짧은 몇 주 동안, 저는 이 영화를 꽤 자주 꺼내어 생각하곤 했습니다. 저의 취향에 부합하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오묘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하는 소재 중 하나는 바로 폭력입니다. 거대한 기업/자본/국가가 개인에게 가하는 폭력은 이 영화의 주제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이 폭력에 집중하기보다는, 앞서 이야기한 가독과 오독의 폭력, 즉 이 영화가 타인을 섣불리 읽어내려하는 행위를 할 때 나타나는 폭력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에 주목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메세지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선명히 드러납니다. 오프닝에서 주인공 호석과 가족은 차를 타고 막 집에서 출발하려 합니다. 그때 이웃이 지나가는데요, 호석을 바라보며 "좋은 데 가는가봐"하고 말을 건넵니다. 그러나 이 가족이 현재 향하는 곳은 동료의 장례식장입니다. 평범하게, 그리고 어쩌면 무심하게 건넨 이 인사말은 실제 상황과 크게 어긋나면서 서늘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뒤로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크게 박수를 치듯 스트레칭을 하며 지나갑니다. 그저 일상의 한 순간에 불과한 것 같은 이 장면이 계속해서 생각나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이야기해온 부분과 맞닿아있기 때문이겠죠. 또한 이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예지'라는 인물과도 연결됩니다. 예지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타인의 삶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인물입니다. 렌즈 앞에 선 사람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그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예지의 카메라는 더 이상 단순한 무정물로 기능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영화 바깥으로도 확장됩니다. 이 영화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문제는 영화 속 인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오독에 그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누군가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고,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관객에게 그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도 이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순간, 우리는 수많은 가능성 가운데 일부를 선택하고 나머지를 생략합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작업이 어느새 그 사람을 특정한 이야기 속에 가두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감독은 타인의 삶을 재현하는 행위에 대한 자신의 불안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전면에 드러냅니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 역시 이러한 읽어냄의 폭력에 동참하도록 만듭니다. 인물들의 표정, 특히 호석의 표정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우리에게 무언가를 읽어내라고 재촉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그의 얼굴에서 슬픔을, 분노를, 후회를, 혹은 그 밖의 어떤 감정을 발견하려 합니다. 그 표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며, 그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얼굴에서 무엇을 읽어내든, 그것이 곧 호석이라는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읽어낸 것은 그가 드러낸 수많은 모습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그마저도 우리의 경험과 기대, 편견을 거쳐 해석된 결과일 테니까요. 한 사람은 하나의 의미로 환원될 수 없고, 하나의 이야기로 온전히 설명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호석과 미옥의 아들로 등장하는 '최철'이라는 인물은 의미심장합니다. 철이는 마치 초월적인 관찰자처럼 존재합니다. 그는 무언가를 바라보지만, 자신이 본 것을 섣불리 이해하거나 언어로 설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눈앞의 대상을 섣불리 읽어내려 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물론 그 역시 영화 속 세계에 속해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바깥에 위치해 있는 관찰자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관찰자이면서도 동시에 그 세계에서 배제할 수 없는 참여자라는 모순, 그리고 그에게만 허용된 듯한 독특한 앵글이 이 영화에서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은 이 '철'이라는 인물의 설정 배경을 직접 밝히 바 있습니다. 키에슬로프스키의 <데칼로그> 연작에 등장하는 관찰자를 철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함으로써 여러 사회적인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서로를 하나의 방식으로 읽어낼 수 없듯이, 이 영화 또한 다양한 감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렇기에 제가 아마 계속해서 이 영화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여러분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또 무엇을 읽어내실지 정말 궁금한데요. 조금 길지만 그 흘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 영화를 여러분의 11월의 첫 영화로 추천드리고 싶군요😁


-
🎵오늘의 노래: 정재일 - Listen
오늘 소개해드린 <가능한 사랑>의 음악은 정재일 감독이 담당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그의 또 다른 노래가 이번 영화와도 아주 잘 어울려 들려드립니다. <가능한 사랑> 속 OST도 어서 나와서 계속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TIP) 앨범 커버를 클릭하면 노래 감상이 가능한 유투브 링크로 연결됩니다
정재일 - Listen
-

-
143.
우리는 서로를 읽어낼 수 있을까
"DJ의 초마의 인사말"
독일은 겨울이 벌써 온 것인지 매우 춥습니다. 일교차가 심한 계절, 감기 조심하시길 바라요!
📔읽을 수 있는 것과 읽을 수 없는 것
금주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 영화주간'이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의 주인>등 여러 작품들이 프랑크푸르트 곳곳의 아트하우스나 독립영화관에서 상영중인데요. 마침 현지 개봉시기가 겹친 나홍진 감독님의 <호프>를 보고 싶어 간만에 영화관을 다녀왔습니다. 저도 여기 살게 된 뒤로 상업영화관만 가봤지 극장에 가까운 영화관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었는데요. 조그만 매점에서 커피나 와인 등을 사서 유리잔이나 도자기 잔에 담은 뒤 갖고 들어갈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스크린을 일부러 정면보다 조금 위에 위치시켜 영화보다 라이브 공연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한참 전에 개봉을 했고, 호와 불호가 선명히 갈리는 작품이었다고 전해들었는데요. 양극단으로 평가가 갈리는 영화일수록 장점은 (혹은 단점은) 무엇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직접 보고 난 뒤에는 맘편히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보실 분들은 다 보셨을테니 아시겠지만... 영화에는 외계인이 등장합니다. 초반부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 묘사되는 그들은 나중에 가면 그들만의 언어로 말을 하는데요. 영화 마지막에 가서 별도의 자막이 더해질 때가지 관객은 그들이 하는 말을 영원히 읽을 수 없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이곳에 왔고, 사람들을 해친 것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죠. 그렇지만 흥미로운 것은 언어가 통한다고, 그러니까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로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반대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때가 있고요.  

-
🩸상처를 '읽는다'는 것은 - ⚠️스포주의⚠️
어쩌면 부재를 읽고 (그에 앞서 표지가 떡하니 위에 나와있지만) 짐작하신 분도 계시겠죠? 이번 호에서 다룰 책은 <절창>입니다. 절창은 칼, 유리 조각, 예리한 금속 등 날카로운 것에 베인 상처를 의미합니다. 이 책의 제목이 왜 절창이 되었냐면 주인공인 아가씨가 남의 몸에 난 상처를 통해 그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피가 흐르는 곳에 손을 대 내면을 헤집어 상처를 읽을 수 있는 능력- 저주인지 축복인지 모를 이 능력 때문에 아가씨는 '나'가 보스라 부르는 문오언에게 거둬집니다. 
관찰자 시점을 활용하고 있어 둘의 관계가 일부는 가려져 독자가 추측하며 읽어나가야 하는 지점이 흥미로운데요. 가정교사로 문오언의 집에 고용된 '나'의 시선에서 미스터리하게 풀리는 아가씨와 보스(문오언)의 내밀한 관계성에 깊게 홀려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었습니다. 나중에 가서는 '나'의 정체도 발각되며 사건이 더욱 숨가쁘게 흘러갑니다. 오언은 뒷세계에 한 발을 걸쳐두고 사는 인물이고, 그렇기에 아가씨의 능력이 그에게 필요합니다. 좋게 말해 필요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 능력을 이용하는 거죠.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 정도로 때리고, 흠집내 그 너머의 필요한 정보를 아가씨가 읽게 합니다. 때문에 아가씨는 그를 증오하며 '때려죽여도 너만은 읽지 않겠다'고 선언하죠.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돼 그렇게 극단으로 치닫는 지는 사실 이곳에 다 적기도 어려울 뿐더러 직접 읽으시는 것이 맛도리(ㅎㅎ) 이므로 참겠습니다. 셰익스피어와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애호하는 오언 덕분에, 그리고 똑같이 그를 즐겨 읽는 아가씨 덕에 작품은 지속적으로 4대 비극의 어떠한 지점과 연결고리를 만듭니다. 둘은 작품의 대사를 빌려와 대화에 쓰기도 하고요. 
소설이 끝을 향할 수록 너무 적은 정보가 주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여백에 상상을 채워넣으라는 작가의 의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위험한 관계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한마디로 정의가 어려울 뿐더러 다각도의 해석을 더할 수록 당위가 생기기도 하니까요. 다만 제 개인적으론 <절창>의 관계가 <파과>나 <아가미>보다는 일부 더 노골적인 부분이 있는데요. 이 부분이 여러분들께는 호일지 불호일지가 궁금해지기도 하는군요. 나를 읽으라는 사람과, 당신만은 절대 읽지 않겠다던 사람은 과연 서로의 상처를 읽었을까요? 초반에 휘몰아치는 만연체를 견디면 찾아오는 서스펜스를 부디 여러분들만의 시간 속에서 즐겨주시길 바라며 오늘 소개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
🎵오늘의 노래: 드뷔시 - 달빛
가을이라 클래식이 생각나네요. 조성진의 연주로 전해드립니다!

TIP) 앨범 커버를 클릭하면 노래 감상이 가능한 유투브 링크로 연결됩니다
드뷔시 - 달빛

-
📮FEEDBACK
가독과 오독사이에서 다독을 추천드리고 싶은 가을입니다!
여러분들의 독서 리스트도 공유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