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녕의 집샌물샌

무한도전을 열심히 챙겨봤던 저는 그 안에서 수많은 명대사를 기억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형돈의 물새는 집을 ‘집샌물샌’ 이라고 놀려대던 멤버들이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정형돈처럼 성공한 연예인이 자기 이름으로 구매한 집에서 물이 샌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청천벽력 같았을까요. 업자를 통해 건너 들으니 건물에서 발생하는 누수는 그 원인을 한 번에 파악하기도 힘들고, 여길 막으면 다른 데서 터지고 또 다 괜찮다 싶으면 어딘가에서 물이 새서 축축해진다고 합니다. 그만큼 어떤 문제보다 골치 아픈 것이 누수인데요. 제가 사는 집에 이 골치 아픈 누수가 터졌습니다. 손현녕의 집샌물샌.

제가 사는 건물은 지어진지 3년 5개월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입주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부터 계속해서 누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집 안 내벽에서 물이 줄줄 흐르거나, 자고 일어나 바닥을 밟으면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문을 여는 순간 현실이 되는데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제가 딛는 바닥 타일 위에 물이 흥건하기도 하고 재수가 없는 날은 도착해 있는 택배 박스가 다 젖어 책이라도 주문한 날은 퉁퉁 불어 백과사전이 되어 있는 책을 받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집주인은 이 건물의 설비 업자를 불러 공사를 맡겼고 명확한 요구에 파손된 물건에 대한 보상은 받으며 그때그때 처리를 했습니다. “아유, 손현녕씨.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많이 불편하시죠. 우선 업자를 불러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다니시는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덧붙일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사무적인 말에는 따뜻함도 차가움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일이고 수치상 서로 오가야 할 것들이 있다면 계산으로 해결이 되니까요.

피해본 것에 대한 계산은 계산이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제가 감수하지 않아도 될 불편함에 대해서는 두 눈 감고 지나갔습니다. 집주인이 원해서 누수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처음 이 집을 지을 때의 문제였을테니까요. 오히려 집주인의 입장에서 얼마나 애가 탈까 싶었습니다. 저야 전세 기간이 지나면 돈을 돌려받고 나가면 그만이지만, 집주인은 누수 있는 건물을 계속해서 고쳐가며 관리해야 할테니 그 마음이 저보다 더 시끄러울 것 같았습니다. 누수로 방 벽에 곰팡이가 피고 벽지가 모두 부풀었을 때도 하루 이틀 집을 비워드리면서 살고 있는 도중에 도배작업을 맡기기도 했습니다. 집주인도 마음고생 심하겠다며 오지랖을 부려가면서 말입니다.

언제가부터 수도세가 폭발적으로 나왔어도 집주인에게 꼬박꼬박 공손히 알려가며 돈을 돌려받는 불편함을 감수했습니다. 그런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는 서로 돕는다는 마음을 새기면서요. 그런데 이제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조금 어렵겠습니다.  엊그제는 제 방 옆의 보일러실에 물이 가득 차는 대형 누수 문제가 터졌거든요. 업자의 말로는 저희 집 화장실에 큰 벽을 뚫어 대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기간은 2주, “그래서 저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 짐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돌아오는 대답은 “저, 그게 저희도 같이 논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였습니다.

호의를 계속해서 베풀면 바보가 된다는 말처럼 제가 바보가 되어 버린 기분입니다. 물론 대공사가 될 때까지 고사를 지내며 집주인도 그걸 바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실질적 피해를 고스란히 지고 있는 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하나하나 돈으로 따져가며 호텔 숙박비와 불편 피해 보상금을 받는 것이 맞는 걸까요. 조금 멀지만 부모님 댁으로 순순히 이동하여 이 사태를 잘 마무리 하시라고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맞는 걸까요.

사람 사는 일이 다 계산과 수치로만 흘러간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정을 베풀라는 어른들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적당함의 선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적당한 선을 아는 것이 바로 지혜라 생각합니다. 적당선, 독자님이라면 어디까지가 적당선일까요. 독자님의 지혜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