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돌스가 주목한 뉴스 Pick                                    2026. 2.1 - 2.28 


💡정책Pick

2026.2.5 전진숙 의원 등 11인이  또 하나의 돌봄기본법안을 발의했다. 돌봄권과 ‘돌봄정의’의 법적 근간이 되는 돌봄기본법을 제정하자는 요구는 2022년 1월 20일 국민입법청원으로 가시화됐다.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지만, 22대 국회(2024.5.30.)를 구성한 이후에도 관련 법안 제출이 이어지고 있다. 통칭 ‘돌봄기본법’은 돌봄정책기본법과 돌봄노동자기본법을 아우르는 것이다.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시행 2026. 2. 24.] [법률 제21239호, 2025. 12. 23., 제정]이 국회를 통과하고 구체적 실행 방안을 담은 시행령까지 입법예고됐다.[시행 2026. 3. 10.] [대통령령 제36177호, 2026. 3. 10. 제정]

2025년 말 한국은행이 연명의료를 문제삼은 보고서에서 연명의료비 지출이 2070년 16.9조 원까지 증가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이후 대통령의 연명의료 인센티브 언급(“사망 직전 치료비가 엄청나게 들어가고 그중에서도 임종 직전이 더 압도적으로 많이 들고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일종의 인센티브라도 있으면 좋겠다”)이 나왔다. 재택임종 확대를 위한 과감한 투자를 주문하기도 했다.(2월 3일 국무회의)

정부가 2월 13일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을 확정·발표했다. 치매안심센터 기능 고도화, 치매관리주치의 본사업화, 경도인지장애 심층관리, 장기요양 서비스 유연성 확대, 공적 신탁 모델 도입하는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도입 등이다.

‘장애인활동지원위원회 설치’담긴 활동지원법 개정안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국회 앞 기자회견, 활동지원사업이 보건복지부 담당 공무원들의 자의에 의하여 계획되고 운영되었던 점을 지적하며, 장애인 단체의 대표,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대표, 활동지원기관의 대표 등 활동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각 주체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활동지원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뉴스Pick

3월 27일 전국 시행을 앞둔 지역사회 통합돌봄 관련 기사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건복지부는 통합돌봄 전용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언론사마다 비슷비슷한 기조로 정부 발표를 중계하고 있기 때문에 심층분석에 해당할 만한 기사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기사들의 경향을 분류하자면,

첫째, 기대와 희망이다. 돌봄이 필요한 시민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보편적 제도의 기틀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역사회 중심 의료·요양·돌봄 연계,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취약자의 거주지를 직접 방문해 주거환경, 질환, 복용약, 사회적 고립 여부 등까지 종합적으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존엄하게 돌봄 받으면서 살 기본권을 보장하자는 취지에 대해서는 공통된 공감과 지지가 있다.

둘째, 한계와 우려이다. 의료·요양·돌봄의 협업이 필요한데, 현장은 사람·돈·장비 부족이다. 관련법은 마련됐지만 현장과의 괴리가 깊다. 한마디로 인력과 지원의 결핍이다. 조례와 조직, 인력이 없는데 권한 없이 책임만 늘었으나 정부 지원은 부족하다는 질타이다. 관련된 심층기획기사를 세계일보가 썼다.

셋째, 방향성에 대한 제언이다. ‘인력과 예산 등 관련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인프라 투자와 돌봄 인력 처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시장 기제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사회서비스원 등을 공적 돌봄의 핵심 파트너로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관 주도를 벗어나 주민자치회 등 주민조직과 공동체의 참여를 진작해야 한다’, ‘부처간 ‘칸막이 행정’을 넘어서야 한다’, ‘기존 보건의료와 복지 돌봄 제도의 구조적 개편이 필요하다’ 등 통합돌봄법 제정 전후로 일관되게 지적됐던 내용들이다.

지역신문들이 자기 지역의 현황에 기초한 구체적인 기사를 쓰고 있는데, 이를 추적·종합하여 지역간 비교를 할 필요가 있다. 다음 뉴스레터에서 다뤄보려 한다.


🗣️칼럼Pick

"지역의사제가 입시와 부동산으로 귀결될 우려, 의료취약지와 불평등이라는 절박한 문제마저 뺏어와 지위 세습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에 대한 비판,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료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의료정책임을 분명히 하고 지역사회와 함께할 의사 만들려면 기존 의대 교육체계부터 달라져야"

"신뢰 대신 법이 우선. 시장의 계약으로 사회는 전환되었다.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워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 그 치료 범위마저 소비자인 환자가 선택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둘 간의 상황 차이, 맥락의 차이를 모른 채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은 실효성에 의문. 한국에서의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죽음을 지키는 공준이 아닌 대형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마지막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작동하고 있다."

"초고령사회에서 가중되는 병원비, 간병, 돌봄을 하나로 묶은 시대적 의제로 ‘이재명 케어’가 요구된다. 병원비 본인부담상한제, 재난적의료비 지원제로 실손보험에 가입할 이유를 없애고, 간병수가 산정, 간병사 자격제, 간병보험료 도입 등 ‘간병국가책임제’ 실행, 지역사회 통합돌봄에 박차를 가할 것"

"‘당신이 살아있다면 짐이 된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믿도록 강요받기 때문. 연명의료에 인센티브를 더하는 정책이 위험한 이유. 의료윤리에서는 ‘부당한 유인책(undue inducement)’이라고 부른다. 보상이 끼어드는 순간, 순전한 결정은 온갖 계산으로 오염된다"
 

💬모돌스 칼럼


‘살던 곳’은 어떤 곳입니까?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공동대표)


올해 통합돌봄 예산은 914억, 인건비 제외하고 실제 서비스 확충에 쓸 수 있는 돈은 620억, 이를 전국 229개 시군구로 나누면 평균 2억 7천만원에 불과, 우선 지원 대상자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 중증장애인 등 약 2만 명···.


2026년 3월 27일,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관련된 보도와 논평이 쏟아지고 있으나, 여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예산 관련 수치들은 제도의 앞길이 평탄치 않음을 보여준다. ‘지역사회’, ‘통합’, ‘돌봄’,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도전들의 압축점이다. 당국에서는 관련 조례 제정, 전담조직과 인력배치, 지자체별 사업 계획 제출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나 그걸 담보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그나마도 건강보험, 일반회계, 지자체 예산 등으로 분절돼 있어 지자체가 지역에 맞는 돌봄을 운용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게 비판과 염려의 목소리이다. 지역간 인프라 격차, 돈과 인력의 턱없는 부족, 지자체의 경험차, 지원 대상의 협소함, 공공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공급체계의 높은 민간 의존도, 칸막이를 허문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연계의 가능성이 희박한 점 등이 꼬리를 문다. 관련법이 통과되고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당국의 로드맵이 발표되던 내내 반복됐던 얘기다. 그럼에도 의료, 요양, 돌봄 등의 통합 서비스를 통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살던 곳에서의 존엄한 삶과 죽음’을 보장하자는 목적과 지향에 대해서는 대체로 지지하는 것 같다.


나는 서울이란 대도시에 살지만 한 동네에 오래 머물러서인지 낯익은 얼굴들이 적지 않다.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진 할머니는 날씨의 궂음과 상관없이 담배꽁초 등을 줍고 돌아다니신다. ‘남은 여생 움직일 수 있는 한 보탬되는 일을 하고 싶다’며 혼자 결행하는 일이라고 슈퍼에 온 아주머니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다. 뒷축없는 신발을 질질 끌던 땅달보 할아버지와 정신장애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와 인지저하가 분명해 보이는 꺽다리 할아버지 삼인조가 길모퉁이에서 종일 시간을 같이 보내더니 어느날부터 한 사람씩 사라지고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양지바른 곳에 철에 안맞는 옷을 입고 앉아서 지나가던 이에게 뭐라뭐라 하시던 아주머니도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눈에 익었던 ‘이웃’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다른 ‘이웃’들로 바뀌곤 한다. 나와 그분들은 ‘이웃’ 아닌 ‘이웃’이다. 아는 데 모르는 관계, 그런데 어쨌든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는 관계다.


어느 날 문득 빈자리를 느낄 때면, ‘돌아가셨나’, ‘어디에서 돌아가셨을까’, ‘말년의 돌봄은 누구에게 어떻게 받았을까’, 혼자 궁금해하다 한숨짓곤 한다. 그분들의 마지막 궤적을 ‘괜찮게’ 그려볼 만한 그림은 잘 나오지 않는다. 나의 상상력의 부족이기도 하겠지만 그분들의 삶에 동행할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관계망을 떠올릴 경험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다. 나의 부모 돌봄과 지인들의 갖은 돌봄 경험을 다 긁어모아도, 집 아니면 시설이란 두 개 축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집이란 것도 거주 안정성, 위해요소, 드나드는 관계 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의미의 집이고, 병원, 요양병원, 요양원, 호스피스 등 시설도 나름의 경험이 천차만별이다. 어쨌든 기존의 두 개 축을 벗어나 제3의 다른 관계와 장소, 다른 연결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때론 ‘혁명적’이란 수식어까지 붙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은 내 ‘이웃 아닌 이웃들’을 우선적인 대상으로 하는 새로운 시도이다. 방향성과는 달리 돌봄이 놓여있는 기존의 형편은 어렵기 그지없다. 부모의 고령화로 인한 중증장애인 ‘돌봄절벽’, ‘간병살인’, 대자본의 요양사업 진출, 돌봄노동자 결핍과 고령화, ‘탈시설’이란 용어 사용조차도 문전박대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같이 살아가기와는 동떨어진 얼어붙은 땅을 파야 한다.


어쩌면 첫삽뜨기와 같은 게 지역사회 통합돌봄 제도이다. 시행을 둘러싼 많은 기대와 염려와 질책을 가로지르는 핵심어를 꼽자면 ‘돌봄 생태계’의 구축이다. 살던 곳에서의 존엄한 삶이란 단지 제공되는 사회서비스를 늘리는 차원이 아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어떤 사회적 관계의 연계망을 구축하느냐의 문제이다. 인프라 구축은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서적 관계를 포함하여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포함하는 것이다. 말로는 지역사회 거주인데 고립된 섬 같다면, 들고나는 서비스 제공 말고는 다른 관계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라면, 세입자 지위 등으로 인해 편의시설을 갖추지도 임종할 장소로 맘 편히 택하지도 못할 곳이라면, 말로는 ‘살던 곳’이라지만 물리적 주거환경에 그칠 뿐이다. 단지 공간이 아닌 관계가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야심찬 도전이 필요하다. 일상돌봄에서 임종돌봄까지 삶의 고유하고 다양한 굴곡마다에서 변주되고 교차될 수 있는 돌봄의 생태계를 함께 상상하는 사회적 역량이 요구된다. 특정 기관이나 거기에 관계된 종사자만이 아니라 넝쿨처럼 얽히고설킨 모든 삶의 현장과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돌봄을 중심으로 어떤 시공간을 만들어가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국가와 공공의 책임성은 돌봄을 ‘대신’해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을 돌봄 생태계에 어울리게끔 변화시키는 문제를 공통의 의제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구성원 모두는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구축과 어떤 식으로 연루될지를 자기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살던 곳에서’의 의미는 단지 개인에게 오래된 물리적 장소, 살아왔던 공간만의 문제를 넘어선다. 사회적 관계를 포함한 기본적인 인프라에 접근하며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생애 끝까지 살아갈 만하고 살고픈 그런 곳, 넝쿨 같은 관계망 속에 엮여 들어가는 그런 ‘살던 곳’이 누구에게나 깃들기를 꿈꿔본다.



🖋️모돌스 서평


생명정치의 통치를 가로지르는 돌봄의 수행성:

돌봄이 이끄는 자리』(서보경 지음, 반비, 2025)


김영옥 (인권연구소 '창' 공동대표)


통치의 정당성 확보라는 정치적 목적이 보편적 건강 보장의 약속과 만날 때, 이 약속에 부여하는 의미와 실현의 방식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르다. 역사적 과정과 정치적 환경, 경제적 상황, 그리고 믿음과 가치 체계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태국 근대사에서 국민 건강이 사회적⬝정치적 목표로 고려되는 양상은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여러 시도와 결부되어 있다. 의료 관리학이나 보건 경제학이 아닌 문화인류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의 의의가 여기에 있다.

다스림이 어떻게 삶의 돌봄이 될 수 있는가. 공공의료에 관한 질문과 그것의 실질적인 구현 사이에서 정책적 접합이 쉽지 않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돌봄이 이끄는 자리>가 주는 시사점은 크다. 이 책은 태국의 지역 거점 병원의 사례를 통해 다스림과 돌봄의 통합이라는 보건의료(healthcare)의 당위성이 어떻게 현실이 되고 있는가를 다면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이 책이 제공하는 보건의료의 면면 중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생명 윤리적으로 가장 감동적인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지 않고 ‘우리가 정부니까요’라는 의료진의 말을 꼽고 싶다. ‘어떻게?’에 대한 질문에 대한 이 답변은 너무나 간단명료하다. ‘할 수 있는 한 최고/최선의 돌봄 의료’를 출발점이요 목표로 삼는 이 말은 그러나 당연히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의 힘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책 제목이 ‘돌봄의 자리’나 ‘돌봄을 이끄는 자리’가 아니라 ‘돌봄이 이끄는 자리’임을 잘 되새김질해야 한다. 앞의 두 제목이 사람을 주체로 세우고 있다면 뒤의 제목은 돌봄을 주체로 세우고 있다. 돌봄이 어떻게, 무엇을 이끈단 말인가. 공공의료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환자, 의료진, 보호자, 간병인, 기계, 영(靈) 등등을 돌봄이 이끈다. 어떻게? 돌봄은, 이 주체들 ‘사이’에서, 끌고 밀고 당기며 서로를 제약하고 보완하고 지지하는 어떤 역학을 미세한 소용돌이로 불러일으킨다.

이 역학 내에서 명백한 경계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서로가 이끌고 이끌린다. 이끌고 이끌리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돌봄은 상호 의무의 관계성 속에서 공현존(co-presence)의 감각으로 협력하는 다양한 행위자들의 어셈블리지가 된다.

의료진은 정부의 대리인으로서가 아니라, ‘정부로서’ 환자의 치료가 보험 증서나 국적 관련 등록증(이주민, 난민, 미등록 체류자, 무국적 아동으로 분류되는) 혹은 입원비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한다. 이민자 어머니들은 병원에서 받은 대기표나 영수증, 처방전 등 모든 서류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이 서류들은 자신들이 이 장소에 엄연히 존재해 왔음을 증명할 것이다. 이른 시간 대기실에 도착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믿음을 갖고 기다린다. 자신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는 게 중요하다. 간호사들은 퇴원한 환자가 병원에서 말한 대로 잘 따르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이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지역사회에 각인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靈)들도 자기 몫을 확실히 해야 한다. 이 모든 돌봄의 회로망에서 강력하게 표출되는 건, ‘빈곤하고 아프고 힘겨운 우리를 다스림의 대상이 되게 하라, 우리를 내치지 말고 돌보라’는 호소와 그 호소에 몸을 돌리는 지역 공공의 응답이다. 이끌고 이끌리는 상호 회로망이, 미약하지만 피할 수 없는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환자(patient)는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사람이다. 이 기다림은 그저 무기력한 상황의 수용 상태가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지도록 허용하고 이끌어내는 일이다. 기대와 요구 사이에서의 행위성이자 수행성이다.

 

돌봄이 통치와 의료, 가정과 신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공통 원리로 작동하는 태국의 사례는, 특정한 주체의 고통과 죽음을 용인 내지 조장하는 생명 정치의 문제를 재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즉 돌봄의 윤리와 실천이, 생명 정치라는 거시적 사회 차원이 만들어내는 불확실하고 모호한 조건 속에서 어떤 정치적 조정을 해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태국 사회에서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생명과 삶의 형식에 대한 다원적 개념은 권력과 사회성 의무의 상호작용 또한 이끌어낸다. ‘이끌어내기’란 “타자로부터 반응을 유도하고, 그리하여 접촉과 연결, 수용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힘,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존재, 즉 구체적 현존이 발휘하는 생성적 능력”을 뜻함을 한 번 더 상기하자. 생명 정치를 가동하는 국가 권력의 속성도 가변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쟁점은 어떻게 국가로부터 보살피는 힘을 이끌어내고 구체화할 것인가이다.

한국은 2024년 의료 대란을 겪었고, 이에 대한 후속 조치로 현재 지역의 보건의료진 확보를 위한 의대 교육정책을 모색 중이다. 2026년 3월부터 시행될 지역통합돌봄에서는 방문의료가 필수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다. 변화와 전환의 시도에서 태국의 지역 공공병원 사례가 제시하는 비서구적 공공돌봄 체계가 좋은 참조점이 되길 희망한다. 정책이나 제도로만 전환을 이뤄낼 수 없다. 관료제적 합리성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감각과 거기서 태동하는 책임과 의무의 관계가 ‘이끌어내는’ 힘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제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담론은 특정 계층의 사회적 감각이다. 현재 가장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위치에 처한 사람들의 삶을 함께 돌보고 지키기 위해서는 도덕적 의존과 자존⬝자율이 공생할 수 있는 이끌어내고 이끌리는 상호 수용성의 역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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