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가운데 별칭이 있는 유일한 계절이 '동장군'이라고 부르는 겨울입니다. 러시아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이 혹독한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패퇴하는 걸 보고 영국과 미국의 언론이 "General Winter", "General Snow", "General frost"라는 표현을 썼고, 우리나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동장군(冬將軍)'으로 바뀌었다고 하죠.
손발이 시리고 입도 얼리는 동장군의 위력 탓에 겨울에 대한 인상도 사납고 거칠어서 부드럽거나 상냥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만, 인상과는 달리 겨울에 대한 행복한 추억을 가진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온 가족이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모여 밀감을 까먹거나 군고구마에 김치를 척척 올려 먹으며 도란도란 가족의 정을 쌓았습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출산율 저하에 나 홀로 가구 급증과 방방마다 침대가 놓이면서 찾아보기 힘들어진 오래전 모습이죠. 손이 꽁꽁 얼어서 트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던 기억, 첫눈 내릴 때 만나자던 첫사랑의 설렘, 나뭇가지에 얼음꽃이 핀 화사한 풍경도 떠오릅니다.
한파의 이정표 같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들뜬 소란함과 새해의 벅찬 희망을 누릴 수 있는 시기도 겨울입니다. 봄꽃 피는 들판과 작열하는 햇살 아래 푸른 파도와 붉고 노랗게 물드는 가을 산의 정취를 만끽하고 맞이하는 겨울의 축제는 한 해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리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하게 됩니다.
온 힘을 불태우는 이런 분주함 사이에는 오케스트라의 마지막 악장 직전의 고요한 겨울의 침묵이 깃들어 있습니다. 얼음이 조금씩 얼어가며 재잘거리는 소리, 밤새 소복소복 쌓이던 새하얀 눈의 속삭임, 이불의 사각거림 같은 백색소음 느낌입니다. 잠들 때까지 나직이 읊조리던 엄마의 자장가처럼 말입니다. 창밖의 차가운 공기를 거부하는 훈기 가득한 집의 정경입니다.
그리고 곁에는 책이 있습니다. 순수함으로 담백한 위로를 전하는 그림책, 마음의 허기를 채워 주는 에세이, 삶의 동반자가 되어 우울한 마음을 녹이는 소설 등 침묵의 시간에 가장 어울리는 친구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따뜻한 조명,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 한 잔과 더불어 겨울을 따뜻한 침묵의 시간으로 바꾸는 세 가지입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뜨거운 차 한 잔을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포근함을 안겨줄 담요를 챙기고, 조명은 눈이 피곤하지 않을 만큼만 조절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겨울의 따뜻한 침묵을 즐길 준비를 마쳤습니다. 행복한 겨울의 따뜻한 침묵을 즐기러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