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눈썹을 정리하던 유령이. 실수로 눈썹을 모두 밀어버려 슬퍼하던 도중, 예술 작품 하나가 떠올랐다는데?!
👻 : 오늘은 눈썹 없는 여인 모나리자를 그린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령!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자화상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아이 🎨
따뜻한 정이 가득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빈치. 바로 이곳에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천재가 태어나요.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빈치 마을에서 태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된 거래령~) 유령이 플로터에게도 꽤나 친숙한 예술가인 다빈치는 화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는데요, 사실 그는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거든요. 당시 이탈리아에서 사생아는 사회적인 편견과 함께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물론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매우 어려웠죠. 아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아 고민하던 그의 아버지는 평소 그림에 재능을 보이던 다빈치를 ‘화가의 길을 걷게 하겠다’고 결심해요. 그래서 다빈치는 14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부터 베로키오라는 예술가의 화방에서 견습 생활을 시작하게 되죠.

▲ 베로키오와 다빈치의 <그리스도의 세례>, 1475년
각종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도맡던 견습생 다빈치는 스승 베로키오로부터 점차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요. 그러던 어느 날, 베로키오는 다빈치에게 미처 완성하지 못한 회화의 일부를 채워 넣으라는 지시를 내려요. 그렇게 다빈치는 견습생이 아닌 예술가로서 <그리스도의 세례> 라는 작품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다빈치의 역할은 왼편의 아기 천사 두 명을 그리는 것이었죠. 그는 작품의 일부를 그렸을 뿐이었지만 베로키오는 다빈치의 표현력과 정교함에 깜짝 놀라고 말아요. 머리카락 한 올의 질감을 살린 세밀함과 자연스럽고 은은하게 배경을 그려낸 그의 재능에 크게 감탄한 베르키오는 다빈치를 정식 화가 길드인 성 루카 조합*에 가입시키기까지 했죠. 이것이 바로 다빈치가 미술가의 길을 걷게 된 첫 번째 단추라고!
 
* 성 루카 조합 : 당시 이름을 떨쳤던 예술가들이 함께 활동한 조합.
 
👻 : 아하! 작품의 일부에만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란듯이 실력을 입증하다니, 역시 천재는 다르네령! 다빈치가 활동하던 시대는 어땠나령?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1498년
르네상스 미술의 상징 🏛
다빈치는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이끈 예술가로 평가받아요. 그가 활동하던 14세기의 유럽은 르네상스의 물결 속에 있었는데요, 이 시기에는 고대 그리스 문화를 부흥시켜 예술, 문학, 건축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어요. 무조건적으로 신을 믿었던 과거와 달리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자연 현상을 직접 관찰하며, 보다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죠. 그리고 바로 그 중심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있었다고.

이 시기 다빈치의 작품에서는 엄격한 구도, 완벽한 비례, 생생한 원근법 등 르네상스 시대의 혁신적인 회화 기법들을 다수 관찰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그는 사실 미술뿐만 아니라 해부학, 색채학 등의 관련 과학 분야에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미술과 과학이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했죠. 해부학을 통해서는 인체의 구조를 속속들이 파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신체의 움직임과 생김새를 사실적으로 표현해냈어요. 또, 색채학을 탐구하며 물체의 크기에 따라 원근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기도 했죠. 이처럼 다빈치는 미술과 과학을 결합시키면서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인 사실주의*에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고.  
 
* 사실주의 : 대상의 세부적인 특징까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예술 사조
 
👻 : 오~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답군령. 그런데 다빈치하면 빠질 수 없는 작품이 하나 있지 않나령~?

▲ 모나리자가 전시된 루브르 박물관, 출처 : 루브르 박물관
세계의 사랑을 받기까지 🌎
맞아요! 유령이 플로터에게도 아주 친숙할 그 작품, 모나리자! 그런데 놀랍게도 모나리자는 처음부터 대중에게 사랑받는 작품은 아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전까지는 그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수많은 명작 중 하나일 뿐이었죠. 그런데 1911년 6월, 모나리자는 박물관에서 홀연히 사라지게 되고, 유명 신문사들은 해당 사건을 앞다투어 보도했어요. 그 결과 모나리자 실종 사건은 유럽 전역을 거쳐 미국까지 확산됐죠. 이후 모나리자는 예술계의 슈퍼스타가 돼요. 아이러니하게도 모나리자가 모습을 감추자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고!
 
게다가 작품을 훔친 용의자가 초현실주의*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라는 추측이 난무하면서, ‘다빈치가 그리고, 피카소가 훔친 작품’이라며 사람들은 더더욱 모나리자에 열광했어요. 알고 보니 범인은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이었지만 말이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박물관으로 돌아온 모나리자가 세상에 다시 공개되던 날 엄청난 인파가 박물관에 몰려 교통이 마비되었고, 한 사람당 10초만 볼 수 있었던 제한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나리자의 실물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고.
 
* 초현실주의: 잠재의식, 꿈의 세계등을 탐구해 혁신적인 표현 방식을 고민했던 예술 사조. 
 
👻 : 와, 모습을 감추자 오히려 더 유명해진 거였군령! 유독 모나리자라는 작품의 매력에 대중들이 흠뻑 빠진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령?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1503
그림 속에 감정을 불어 넣은 💨
우선, 모나리자라는 인물로부터 입체적인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의 오감 중 시각을 가장 고귀하게 여겼어요. 그래서 그에게 그림은 대상의 본 모습까지 완전히 담아내는 행위였죠. 감정을 인간의 본질이라 여겼던 그는 인물의 외형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과 감정까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어요. 뚜렷한 묘사만이 목적이었던 전형적인 초상화와는 달리, 인물이 가진 정서와 분위기를 담아내는 새로운 초상화의 패러다임을 이끈 거죠. 

그래서인지 모나리자에도 살아 있는 인물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숨어 있는데요, 캘리포니아 대학의 과학적 분석에 따르면, 모나리자의 표정은 80%의 행복감, 10%의 두려움, 그리고 불안감과 혐오감 등의 나머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또, 실제로 모나리자를 마주하고 있으면 착시 현상으로 인해 어느 위치에 있든 그녀의 시선이 관람객을 따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살아 있는 모나리자를 보여주고자 했던 다빈치의 노력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고.

 👻: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는 시도가 너무나도 인상 깊어령. 아니, 그런데 작품 속에 대기까지 표현해냈다구령?

▲ <모나리자>를 확대한 사진
먼지와 수증기까지 담아내다 🌁
모나리자를 보고 있으면 가까이에서는 사람을, 멀리에서는 풍경을 더 생동감있게 느껴볼 수 있어요. 이는 다빈치가 사용했던 완벽한 원근법과 스푸마토 기법 덕분이죠. 스푸마토 기법이란 그림의 윤곽선을 희미하게 처리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방식을 뜻해요. 직선의 끝이 마치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또, 다빈치는 인간의 몸에 직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수한 곡선을 사용했고, 경계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무려 30번 이상의 덧칠을 하기도 했다고. 심지어는 대기 중의 먼지와 수증기까지 그림으로 표현했는데요, 멀리 있는 풍경일수록 질감이 사라지고 흐릿해지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죠. 이는 당시의 초상화가 얼굴과 배경의 구분 없이 대상을 선명하게 그렸다는 것에 반해, 모나리자의 경우 배경과 인물이 확실히 구분되어 보다 생생한 거리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 : 아하! 모나리자가 사랑받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군령. 다빈치의 작품 세계가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네령. 그런데 다빈치는 미술 이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지 않았나령?

▲ 다빈치의 해부학 노트
세상에서 제일가는 천재 🧐
맞아요. 의학부터 음악, 심지어는 건축학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한 천재로도 유명하죠. 그는 무엇이든 거꾸로 생각해보는 독특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문 간 경계를 두지 않고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그리고 습득한 지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능력은 다빈치의 성장에 엄청난 원동력이 되었죠. 그는 특히 사람과 동물의 시체를 평생 동안 해부하며 의학자로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시체를 냉동시킬 방법도 방부제도 없던 그 시절, 온몸이 잘리고 피부가 벗겨져 악취를 풍기는 시체들과 매일매일을 함께 보냈어요.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도 장기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하나하나 스케치로 남겼던 그의 노력 덕에 당시 의학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다빈치의 탁월한 관찰력은 과학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관찰하며 공기역학*의 원리를 터득하기도 하고, 낙하산이나 비행기 등 다양한 비행기구를 설계하곤 했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그의 설계도는 현대에 실제로 활용되기까지 하는데요, 다빈치가 고안한 스케치를 바탕으로 헬리콥터 날개를 직접 제작해 시험 비행에 성공하기도 했다고. 이 밖에도 건축가로서 도시 계획을 맡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논문과 시를 쓰는 작가로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지독한 관찰력과 탐구력을 기반으로 다빈치는 자연 현상과 원리를 끊임없이 연구했던 거죠. 
 
* 공기역학 : 움직이는 물체와 공기가 상호작용할 때의 흐름을 탐구한 학문 분야
 
👻 : 여러 학문 분야에서 자유롭게 뛰어 놀던 천재였군령. 정말 대단해령!

▲ 빌 게이츠가 구매한 다빈치의 필기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이유 ✨
사실 다빈치는 제대로 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래서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나눗셈조차 어려워할 만큼 수학에 취약했죠. 대신 그는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였어요. 늘 메모 수첩을 들고 다니며 ‘하늘은 왜 파랄까?’, ‘딱따구리의 혀는 어떻게 생겼을까?’ 등과 같은 질문을 적어 뒀고, 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과 그 방법을 모두 기록했죠. 그는 단순히 호기심을 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어요. 집착에 가까운 관찰력과 상상력을 결합시켜 혁신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호기심을 풀어갔던 거죠. 그렇게 그가 당시 작성했던 노트와 일기, 드로잉은 모두 합쳐 약 1만 3천여 장 정도 되는데요, 빌 게이츠는 이러한 다빈치의 필기 72쪽가량을 350억 원을 주고 구매하기까지 했다고!
 
👻 : 노트 한 쪽에 약 5억 원이라니.. 믿기지 않아령! 엇, 그런데 다빈치에 대해 속속들이 알아볼 수 있는 전시회가 있다구령~?
문화인들 집중 💎
전시회 <다빈치의 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을 그린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가 탄생시킨 명작들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 <다빈치의 꿈>이 롯데백화점 동탄점에서 열리고 있다고! 다채로운 음향 효과와 미디어 아트를 통해 다빈치의 작품 세계를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고 하니, 경기도에 살고 있는 플로터들은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 전국의 플로터들이 문화 생활을 풍성하게 즐기셨으면 하는 마음에, 이번에는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의 전시회를 소개해드려령! 다빈치의 창의성과 역동성을 풍성하게 느끼고 오세령!

플롯 TMI 💎
플롯 카카오 뷰 채널 오픈!

유령이 플로터,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시선을 제공하는 카카오 뷰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플롯도 드디어 카카오 뷰 채널을 오픈했는데요, 카카오 뷰는 카카오톡 하단 중앙의 눈 모양 아이콘을 누르면 접속하실 수 있어요. 플롯을 검색한 뒤 채널을 추가해주시면 더욱 다양한 이야기로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이에요. 레터에 미처 담지 못했던 내용이나 다양한 문화 예술 이야기로 제작한 콘텐츠를 큐레이션해 두었으니, 채널 구독 후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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