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회 (2024.03.06)

안녕하세요. 박정민입니다.

 

오늘은 짧은 소개글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시 한 편을 두고 오래 생각했습니다. 이 시가 마음속 깊숙이 와 박히는데, 내가 이 시에 말을 얹을 자격이 되는 인간인가에 대해서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혹시 민트초코를 좋아하십니까 짙푸른

허브의 입술이 궁금하다면

파랗게 키스하자 젊은 혀들아

어금니에 박힌 초콜릿 조각을 함께 녹이며

우리는 우리의 청량(淸凉)을 완성합니다

 

가라테란 외로운 종목입니다 한국에선 더욱

고요합니다

거울을 보며 척추를 혼자 교정하면서

대쪽 같은 품새를 익혔다고요

 

결국 그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떨어집니다

개운하다는 듯이 수건에 얼굴을 씻으며

코를 박고 혼자 오래 울었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가 존재하여서

그 빛에 기대 대나무가 솟았습니다

 

오이와 가지의 식감에 찬성합니다

근대문학의 종언에 반대합니다

통폐합된 학과를 계속 다닐 겁니다

혼잣말을 열심히 중얼거릴 때

언어가 휭휭, 손끝은 창백해지고

혹시 역기(力器)만큼 시도 무겁습니까

 

허벅지가 터지도록 폐달을 밟았죠

혹한처럼 논문을 넘겼습니다

복근이 찢겨도 앞으로 미래로 스파이크를

극단(極端) 위에 선 채로 팔을 벌리면

팽팽하게 일어서는 근육의 무지개

 

아주 오랫동안 장미를 들여다보았죠

외롭고 춥고 스스로 찢고 홀로 빛나고

마루를 탕탕 울리며 우린 발바닥을 뒤집어

아, 시원하다 집과 논을 엎어버릴 때

그렇게 섬처럼, 점처럼, 꿈처럼

숨과 목처럼

단 하나를 향하여 끝을 살면서

꽃이 피든 안 피든 사랑하여서

우리는 우리의 허파에 진심입니다



_고명재,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노트에 이 시를 고스란히 옮겨놓고 바라봅니다. 그간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스칩니다. 비주류를 바라보는 나름의 신념과 가치관이 담긴 내 시선이 얼마나 떳떳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주류에 속하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난 결국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든 것을 남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는 그에 맞는 응당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 비판은 더욱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겠다는 반항의 의지를 심어주기도 하고요. 과거의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인 척했던 그 모든 순간은 행동이 결여된 신념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고명재 시인은 올림픽 가라테 경기를 보면서 이 시를 쓰셨다고 합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고 수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우는 선수, 그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 속에 시 한 편이 팔랑 떨어지며 시선을 선물합니다. 당신을 보고 있다고, 이렇게나마 보고 있다고 꾹꾹 눌러 담아 그 고요에 소리 없는 파장을 일으킵니다. 동시에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빈약한 나의 재주가 오늘따라 유독 입을 틀어막습니다.

 

사실 전 이 시를 읽자마자, 남몰래 치열한 그 고요의 세상을 독자분들께 언급하고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저의 과거와 그 모든 말과 행동이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상기되더군요. 멍하니 생각할수록, 수많은 메모를 덧붙일수록 시는 되레 내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거짓 없이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꺼풀 벗겨져 초라해진 내 모습을 마주합니다.

‘지 잘난 줄 알고 말만 줄줄 흘리다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결국 전 이번에도 시의 도움을 받아, 잠시나마 겸손해집니다.

 

시골집 개가 마당에 누워 잠에 든 모습을 보니 조금씩 봄이 오나봅니다. 추위를 뚫고 싹을 틔우는 계절에 저도 새로운 씨를 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이 씨가 다 자라 꽃을 피울 때 이 계절이 부끄럽지 않도록, 조금 더 둘러보며 살아내야겠습니다. 그때는 이 시를 조금 더 편안하게 소개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포근하게 지내시길 바라겠습니다.

박정민 드림  

문학동네시인선 184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스스로 거짓 없이 바라보게 하는 것, 시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요? 이번 우시사를 통해 소개해드린 시집은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것』입니다. 고명재 시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연 ‘사랑’인데요. 한층 포근해진 날씨에서 봄이 기운이 느껴집니다. 가장 투명한 부위로 시가 되는 것/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미래가 빛나서 역동적이고 생기 있는 사랑이 가득 담긴 시선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를 사랑해>는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소중한 피드백은 우시사를 무럭무럭 성장하게 하는 자양분입니다.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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