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이 시를 고스란히 옮겨놓고 바라봅니다. 그간 내뱉었던 수많은 말들이 스칩니다. 비주류를 바라보는 나름의 신념과 가치관이 담긴 내 시선이 얼마나 떳떳했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도 나는 주류에 속하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난 결국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남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든 것을 남들이 좋아하지 않을 때는 그에 맞는 응당한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 비판은 더욱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겠다는 반항의 의지를 심어주기도 하고요. 과거의 ‘비인기 종목에 진심인 편’인 척했던 그 모든 순간은 행동이 결여된 신념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고명재 시인은 올림픽 가라테 경기를 보면서 이 시를 쓰셨다고 합니다. 동메달 결정전에서 지고 수건에 얼굴을 파묻으며 우는 선수, 그 아무도 읽지 않는 세계 속에 시 한 편이 팔랑 떨어지며 시선을 선물합니다. 당신을 보고 있다고, 이렇게나마 보고 있다고 꾹꾹 눌러 담아 그 고요에 소리 없는 파장을 일으킵니다. 동시에 부럽고 부끄럽습니다. 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빈약한 나의 재주가 오늘따라 유독 입을 틀어막습니다.
사실 전 이 시를 읽자마자, 남몰래 치열한 그 고요의 세상을 독자분들께 언급하고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저의 과거와 그 모든 말과 행동이 과연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상기되더군요. 멍하니 생각할수록, 수많은 메모를 덧붙일수록 시는 되레 내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조금 더, 조금 더, 조금 더 거짓 없이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꺼풀 벗겨져 초라해진 내 모습을 마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