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탐험 마지막 이야기
  
여행에 어떤 책을 가져가는 가는 너무 중요하다. 누군가 내 책 ‘작고 기특한 불행’을 여행에 가져가서 너무 다행이었다고 말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얼마나 큰 칭찬인지 알기에 기뻤다. 이번 오지탐험에는 책 두 권을 가져갔다. 목정원 평론가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그리고 신유진 번역가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두 작가 모두 프랑스어를 잘하고, 프랑스에 산 적이 있다.(신유진은 계속 프랑스에 살고 있다) 둘 중에서도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고 신유진에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유럽의 거리에는 창문이 많다. 로마 근교 바닷가에서 눈이 마주친 창문 속 할머니는 내게 손을 흔들어줬다. 그것도 너무 환한 미소와 함께. 젊은 나는 오만한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밝은 미소였다. 내가 왜그리 반가우실까. 나도 이빨이 보이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베를린에서는 건물 1층에 있는 사무실을 많이 봤다. 사무실마다 큰 창문이 나 있는데 블라인드나 커튼으로 가리지도 않고 있다. 다들 거리낌 없이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빤히 쳐다봐도 모를 만큼,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만 한다. 창문들 덕분에 혼자 걷는 길도 외롭지 않았다. 



혼자 걷는 길이 창문 덕에 외롭지 않듯이, 혼자 있는 집도 창문 덕분에 외롭지 않다. 1평도 안될지라도 테라스가 달려집에서, 나는 밖으로 나가 거리를 살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의 정수리를 보고, 옆 건물 앞에 버려진 중고 물품들을 눈여겨 봤다. 건너 편 건물 테라스에 놓인 의자 갯수를 보며, 어떤 가족들이 사는지 상상했다. 그러다 어느 할머니와 눈이 마주치면, 사색에 잠긴척 고개를 숙였다.



한나 언니의 집은 1층에 있어서, 바로 앞 거리로 다니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나는 습관적인 부러움을 느꼈다. 여기서 글을 쓴다면, 어떤 글이 나올까. 여기서 일을 한다면 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가로수를 보며 산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나는 고층 아파트에 입주해야한다는 의무로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몇 안되는 선택지를 보고는 다시 주먹을 오므리고 만다. 



신유진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에는 ‘창문’을 통한 경험이 많이 나온다. 그녀가 프랑스에 살면서 창문 너머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관찰한 것들. 그녀도 건너편 건물의 아저씨와 눈이 마주치고 어색해했다가, 어느새 이웃들과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된다. 창문을 본다는 것은, 이웃을 본다는 것. 그녀는 줄곧 우리의 일상적인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지지하는 일상의 연대를 주장하는 또 다른 작가를 만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10년 전,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오스트리아 건축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기 위해, 교환학생을 오스트리아로 갔다. 지금은 너무 알려져서, 우도에 테마파크까지 생겼다고 한다. 바로 훈데르트 바서다. ‘훈데르트 바서’란 독일어로 ‘100개의 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창문을 가질 권리’라는 걸 주장한 건축가로 유명한데, 아래와 같은 말을 했었다.



"모든 사람들은 창문에 대해 권리를 가집니다. 수감된 이웃과 자신을 구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곳에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1958, 훈데르트 바서



멀리서도 창문을 통해, 자유로운 너와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또 코 끝이 찡해져버린다. 여름날, 수해로 떠난 사람들과, 가을날, 숨쉬지 못해 떠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을 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창문과 창문 사이의 적당한 여유가 있어 신뢰 할 수 있는 사이. (몇 년 전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투숙객은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는데, 2층에서 창문으로 탈출하려던 투숙객들은 좌절하고 목숨을 잃었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 건물이 막고 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밀도에서 살며, 탈출할 수도 없는 창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권리부터 재점검해야할까.



서울에 사는 나의 전세 집에는 햇빛이 잘 들어온다. 이 집의 많은 단점들을, 이 햇빛 하나로 퉁치고 살아간다. 눈부신 햇빛에 눈이 절로 떠지는 자연스러운 아침이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이유다. 정석의 방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없지만, 나는 이걸로 만족한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아파트들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다. 



오지탐험은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글입니다. 하지만 여행의 에피소드와 단서들은 계속 제 글 등장할거에요. 제 여정에 함께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님이 어디로 떠나든, 어디에 머물든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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