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건축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오스트리아 건축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기 위해, 교환학생을 오스트리아로 갔다. 지금은 너무 알려져서, 우도에 테마파크까지 생겼다고 한다. 바로 훈데르트 바서다. ‘훈데르트 바서’란 독일어로 ‘100개의 물’이라는 뜻이다. 그는 ‘창문을 가질 권리’라는 걸 주장한 건축가로 유명한데, 아래와 같은 말을 했었다.
"모든 사람들은 창문에 대해 권리를 가집니다. 수감된 이웃과 자신을 구별하고, 모든 사람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 곳에 자유로운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1958, 훈데르트 바서
멀리서도 창문을 통해, 자유로운 너와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 또 코 끝이 찡해져버린다. 여름날, 수해로 떠난 사람들과, 가을날, 숨쉬지 못해 떠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창문을 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여유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창문과 창문 사이의 적당한 여유가 있어 신뢰 할 수 있는 사이. (몇 년 전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는 화재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투숙객은 일용직 노동자들이었는데, 2층에서 창문으로 탈출하려던 투숙객들은 좌절하고 목숨을 잃었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 건물이 막고 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밀도에서 살며, 탈출할 수도 없는 창문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권리부터 재점검해야할까.
서울에 사는 나의 전세 집에는 햇빛이 잘 들어온다. 이 집의 많은 단점들을, 이 햇빛 하나로 퉁치고 살아간다. 눈부신 햇빛에 눈이 절로 떠지는 자연스러운 아침이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이유다. 정석의 방처럼 아름다운 풍경은 없지만, 나는 이걸로 만족한다. 창문 너머 어렴풋이 아파트들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다.
오지탐험은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글입니다. 하지만 여행의 에피소드와 단서들은 계속 제 글 등장할거에요. 제 여정에 함께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님이 어디로 떠나든, 어디에 머물든 응원하겠습니다.
|